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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구름
하야시 후미코 지음, 이상복.최은경 옮김 / 어문학사 / 2008년 3월
평점 :
곧 다녀올 일본근대문학기행에서 하야시 후미코 기념관을 찾아가는 일정이 있습니다. 동행할 예정인 로쟈 이현우선생님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도쿄는 일본의 근대문학이 태동한 곳이라고 합니다. ‘이야기의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문학적 상상력과 사회적 맥락을 제공하는 공간’이었다고 합니다. 하야시 후미코의 <뜬구름>은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에서 종전 후 몇 년 뒤에 이르는 시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야기는 동해 쪽에 있는 후쿠이현의 쓰루가에서 시작합니다. 인도차이나의 다랏트에서 일하던 여주인공 유키코가 패전 후 하이퐁의 수용소에 머물다 귀환선을 타고 쓰루가에 도착한 시점입니다. 하이퐁에 모여든 일본여성들은 간호부, 타자수, 사무원이 섞여 있었지만 대부분 위안부였다고 합니다. 쓰루가에 도착해서 조사를 받는 동안 다랏트에서의 생활을 돌아보는 유키코입니다. 전쟁이 한창이었지만 다랏트에서의 생활은 전쟁을 잊게 해줄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유키코가 인도차이나까지 흘러가게 된 것은 고향인 시즈오카에서 일하기 위하여 도쿄로 올라와 형부의 남동생 이바 스기오의 집에서 살기 시작한 일주일 만에 성폭행을 당하고, 전쟁을 치르느라 힘들어진 삶을 바꿔보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면밀하게 따져보고 삶을 결정하기보다는 즉흥적으로 변화를 주는 그런 성격으로 보입니다. 다랏트에서는 삼림기사 도미오카와 가노의 관심을 받게 되지만 유키코는 유부남인 도미오카와 사랑을 하게 됩니다. 나스메 소세키와 무사노고지 사네아쓰에 심취한 가노보다는 톨스토이 풍의 도미오카가 더 멋있어 보였던 모양입니다.
다랏트에서는 달콤했던 사랑도 패전 후 일본으로 돌아와서는 삶이 녹녹치 않은 탓인지 절절하지만은 않아보이는 도미오카에 여전히 미련을 가지는 유키코입니다. 그러면서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이바의 집에 잠시 머물다가 이바씨의 살림을 훔쳐 독립합니다. 우연히 미군 죠를 만나 도움을 받지만 여전히 도미오카에 미련을 버리지 못합니다. 도미오카는 산림청을 퇴직하고 사업을 시작하려 하지만 녹록치 않은 현실에 좌절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럴 때는 유키코를 만나 다랏트에서의 생활을 돌아보면서 위안을 찾기도 합니다만, 도미오카는 결국 유키코와의 동반자살을 꿈꾸고 이카호를 찾아갑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오세이를 꼬여 도쿄로 돌아오면서 유키코와 거리를 두게 되고, 유키코는 이바와 다시 엮여 오히나타교라는 사교집단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유키코는 삶이 막막해진 사람들을 끌어들여 착취한 금전을 훔쳐 달아나고 오세이를 살해한 남편을 도와주고 있던 도키오카와 함께 가고시마 남쪽에 있는 야쿠시마로 도망친 끝에 그곳에서 병을 얻어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패전한 나라의 바닥인생들을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이야기구나 싶으면서도 승전국에서는 어떤 인간상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 사는 일은 어디나 비슷해서 승전국이라 해도 팍팍한 삶에 지쳐있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실려 물결이 흐르는 대로, 혹은 구름이 흐르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도미오카와, 힘든 여건 속에서도 빈틈을 찾아 삶을 바꾸어가는 유키코의 삶이 어울리게 되는 것은 운명의 실타래가 그리 얽혀있기 때문일까 생각해봅니다. 뜬구름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은 적어도 지켜야 할 삶의 도리 같은 것에는 별반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합니다. 이 또한 패전이 안겨준 충격 때문이었을까요?
그래서 작가는 “도미오카는 마치 뜬구름 같은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언제 어디로 사라지는지도 모르게 사라져갈 뜬구름이다.(461쪽)”라고 이야기를 마무리한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