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던 사람 - 알츠하이머의 그늘에서
샌디프 자우하르 지음, 서정아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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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의 그늘에서라는 부제를 단 <내가 알던 사람>은 책의 뒷장에 적힌 알츠하이머 간병 7, 유머와 비탄의 회고록라는 문구가 눈길을 끌어 읽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워싱턴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심장내과의사입니다. 어렸을 때 농업분야의 유전자를 연구하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형, 누이동생과 함께 인도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형과 함께 의사가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파고에 정착하고 노스다코타 주립대학 연구활동을 하다가 정년을 맞게 되었는데 은퇴식에 참석했던 저자는 우리는 시련을 마주하되 피하지 않았고 그로 인하여 강해졌다.(16)’라는 글귀가 벽에 걸린 아버지의 서재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은퇴 후 치매를 늦추거나 피하는 방법이라는 CNN 기사의 인쇄본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기억력이 떨어져 있다는 아버지가 신경과 고든선생의 진료를 받았을 때 간이정신상태검사에서 30점 만점에23~25점을 받아서 경도인지장애가 의심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기억력은 빠르게 감퇴되면서 치매의 초기단계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자와 형 그리고 누이는 치매가 시작된 아버지와 파킨슨병으로 오랫동안 치료를 받고 있는 어머니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를 두고 의논을 한 끝에 저자와 형이 살고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롱아일랜드로 이사를 하기로 합니다.


<내가 알던 사람>은 파킨슨병을 앓던 어머니와 알츠하이머 병을 발견한 아버지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 부모를 돌보던 세 자녀의 분투기록을 정리한 것입니다. 알츠하이머병에 관한 이야기는 물론 간병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이 비교적 잘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노스다코타의 파고에서 멀지 않은 미니애폴리스에서 살고 있는 누이는 전화로, 혹은 비행기를 타고 와서 함께 의논을 하는 등 세 자녀는 부모님을 간병하는데 있어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오랫동안 겪어야 하는 치매환자의 간병은 자칫 가족들의 충돌이 발생하거나 주 간병인이 병을 얻을 수도 있는데 저자와 형은 병원에서의 진료를 하면서 부모님의 간병에 소홀함이 없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감동이었습니다. 특히 나이든 부모는 자녀가 돌본다는 인도전통의 인식이 미국에 와서도 어느 정도는 남아있어 고집스러운 아버지를 모시는 일이 수월치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알츠하이머환자의 특징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4년 기준의 자료이기는 합니다만, 저자가 치매의 본질과 치매환자의 간병에 관한 정보를 세세하게 찾아보았다는 점도 이 책에서 발견한 소득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대목입니다. “2014년의 그 여름, 형과 여동생과 나는 적절한 보수도 (교육도) 받지 않은 채 노년층을 돌보는 이 나라의 약 1500만 가족 간병인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이 치매 가족을 돌보는데 할애하는 시간은 평균 주장 30시간으로 무보수로 일하는 이들의 노력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4천억 달러가 넘는다고 했습니다. 저자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 한 가족 간병인은 그렇게 힘든 무보수직은 난생 처음이었다.(46)”라고 댓글을 달았더랍니다.


치매에 걸린 가족을 돌보는 간병인의 입장에 관한 형의 말도 인상적입니다. “사랑으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의무감으로 하는 사람도 있는 거야. 나는 의무감으로 하는 쪽이고.(112)” 사랑이건 의무감이건 가족을 돌보는 일을 외면하는 사람보다는 낫다고 하겠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세월이 흐른 뒤에 어머님께서도 돌아가셨을 때 우리는 이제 고아가 되었네라고 형제들과 함께 자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양친이 돌아가시기 전에는 절대로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없다.(150)”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모님이 살아가시는 동안에는 우리를 아이로 여기는 사람이 항상 존재한다는 뜻인데, 바꾸어 말하면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의지할 생각을 하기 마련이라는 뜻으로 읽었습니다.


<내가 알던 사람>은 지금까지 읽었던 치매에 관한 책 가운데 여러 가지 의미로 중요한 책읽기였습니다. 지금까지 몇 차례 개정작업을 해왔던 치매에 관한 책을 다시 개정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때는 이 책을 중요한 참고서로 다시 읽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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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국 인문 기행 나의 인문 기행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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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다녀온 일본근대문학기행을 이끌어 주신 로쟈 이현우 교수님께서 필자가 쓰고 있는 여행기를 격려해주시면서 추천해주신 <나의 미국 인문기행>을 읽었습니다. 책을 쓴 서경식 교수는 <소년의 눈물>로 이미 만나본 적이 있지만 인문기행을 담은 책으로는 처음 읽어보았습니다. 제목은 인문기행이라 하였으나 주로 미술과 음악 등 예술분야의 내용을 많이 담고 있어서 예술기행이라고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문기행의 연작으로는 영국, 이탈리아, 일본 등에 이은 책으로 여는 글을 읽어보면 미완성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7장의 원고를 탈고하고는 3년여의 공백기간이 지난 뒤에 맺음말 원고를 보낸 다음날 작고했다고 합니다. 원고의 분량이 충분하지 않았던 탓인지 264쪽 분량의 책의 왼쪽면은 자료를 수록하거나 비어있었고, 오른쪽 면에는 글을 담았습니다.


저자가 미국기행의 연재를 힘겨워했던 것은 코로나19의 유행이라는 세계사적 위기라는 외적 요소와 정년퇴임에 따른 어수선함과 건강악화와 같은 개인적 요소가 겹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책에 담겨진 내용은 서너 차례의 미국 방문의 경험을 담아냈는데, 처음 방문은 한국에 수감되어있던 두 형의 석방과 지원활동을 위하여 미국의 인권단체와 국무부를 방문했던 1980년대 중반과 후반, 2016년에 마지막으로 방문했다고 합니다. 이 책에 담긴 내용 가운데 2019~2020년의 이야기는 아마도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에는 친구나 지인도 있고 좋은 미술관도 있으며 훌륭한 가극 공연장도 많은데도 불구하고 미국으로의 발길이 뜸했던 것은 미국사회가 반지성적이고 오만한 자기중심주의가 만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반감이 두드러졌다고 합니다. 저자의 지적에 특별하게 토를 달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북한이나 러시아의 사정에 대하여는 언급하지 않고 있는 점에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역사적 사실에 관한 글을 쓸때는 사실관계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인지 2016년에 코스타리카 대학에서 행한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했을 때 이베리아반도의 기독교국가 들이 그라나다를 함락하면서 국토재정복이 완성되었고, 그해 유대인들이 이베리아반도에서 쫓겨나 흩어지게 되었다고 하는 설명에는 우선순위와 시차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점이 있는 듯합니다. 그라나다가 함락된 것은 149212일이었고, 콜럼버스는 그해 83일 스페인을 떠나 1012일에 바하마제도의 산살바도로 섬에 도착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슬람왕국의 종교적 관용주의를 누리던 유대인들은 그해 331일 조인된 알람브라 칙령에 따라 731일부로 추방되었다고 합니다. 이베리아반도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은 유럽과 아프리카 북부로 흩어졌는데 이베리아반도에서 상권을 쥐고 있던 유대인들이 네덜란드로 옮겨감에 따라 네덜란드가 부를 쌓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실 홀로코스트의 대상이 된 유대인들은 근원적으로 서기 132년 로마제국에 대한 반란이 진압되면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저도 여행을 하면서 미술관을 찾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디트로이트에서 하루 묵었던 적이 있습니다만, 헨리 포드 박물관을 방문했으면서도 디트로이트 미술관을 건너 뛴 것은 여행사에서 받은 정보가 충분히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옛날 디트로이트 미술관 부근이 치안이 좋지 못했다는 이야기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뉴욕의 현대미술관 역시 뉴욕 시내에서 하루 묵었던 것을 이틀로 하고서라도 가보았어야 한다고 뒤늦게 후회를 합니다. 시카고 미술관에서는 한나절을 머물면서 그림을 감상했으면서도 에드워드 호퍼의 나이트호크스를 본 기억이 남아있지 않은 것도 이상합니다. 누구말대로 미술관에서도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달리듯 구경한 것 같습니다.


책읽기를 마칠 무렵 로쟈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신 서경식 교수의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도 읽어볼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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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안는 것
오야마 준코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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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무래도 나쓰메 소세키 탓인지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마음을 맡기는 보관가게2>로 만났던 오야마 준코의 <고양이는 안는다는 것>을 읽었습니다. 작가는 43살에 연속극 극본 작가로 등단하여 극본상을 수상하였지만 극본의뢰를 받지 못하자 연속극 또는 영화의 원작이 될 소설쓰기에 도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1년에 열편의 장편소설을 완성한 끝에 <고양이 변호사>가 원작소설 대상을 받으면서 소설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양이는 안는다는 것>은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고양이가 화자가 되어 고양이들 사이의 관계를 비롯하여 인간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고양이들 사이에, 그리고 고양이와 인간들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를 그려냈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이 이야기를 “ ‘고양이힐링을 환상적으로 결합, 외로운 고양이와 인간이 서로 애정을 주고받으며 저마다의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간결하지만 여운이 오래가는 문장들로 아름답게 풀어낸다.”라고 정리했습니다.


이야기는 도쿄의 변두리를 흐르는 아오메(靑目) 강에 걸린 네코스테(猫捨) 다리입니다. 다리 주변에는 도매상이나 상점 주인이 세운 흙벽으로 된 창고가 많았는데 쥐가 들끓게 되자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세월이 흐르자 벌이가 좋은 상인은 흙벽을 허물고 서양식 창고를 짓게 되면서 쥐가 사라지게 되었고 고양이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네코스테(猫捨)라는 말은 장사가 잘 된다는 의미를 담은 은어가 되었다고 합니다. 배로 물류를 운반하던 창고주인들은 공동출자하여 다리를 놓았습니다. 그리고 사업의 번창을 기원하며 네코스테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이 네코스테 다리에서는 한밤에 가끔씩 다리 주변에서 살고 있는 길고양이를 비롯하여 집고양이까지 모여들어 집회를 연다고 합니다.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등장하는 주인공 고양이는 요시오와 키이로, 등장인물은 사오리와 고흐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자신이 인간인 줄 알고 있던 고양이 요시오와 도오쿠에서 올라온 사오리가 주인공입니다. 사오리는 매사가 오빠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골에서 자신이 설 자리가 없자 도쿄로 올라왔던 참입니다. 편의점에서 일하던 사오리는 애완동물가게에서 눈에 띈 러시안블루 수컷 고양이를 전재산인 3만엔을 들여 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직원 기숙사에 들여 키울 수가 없어 창고에서 남몰래 키우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사오리와 함께 살던 요시오는 함께 밤을 보내고 싶다는 사오리를 찾아 벽을 오르다가 강에 떨어져 네코스테 다리로 흘러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리 주변의 고양이를 돌보는 요시오씨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게 되고 다시 사오리를 만나게 됩니다. 고양이 요시오를 매개로 하여 고양이를 돌보는 요시오씨와 사오리가 좋은 사이로 발전하게 되는 것을 보면 작가가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듯하여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삼색털 고양이 키이로는 암컷이라서 버림을 받게 되고, 고흐라는 화가의 눈에 띄어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대인관계가 별로였던 고흐에게는 가타오카라는 수다쟁이 친구와 가끔 찾아오는 조카 호노가 있습니다. 고흐는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인물화, 정물화 등을 그리는데 문제는 모든 작품들이 미완성이라는 것입니다. 조카 호노가 고흐에게 삼색 고양이 키이로는 왜 그리지 않느냐고 물어봅니다. 그때 고흐가 호노에게 말합니다. “고양이는 그리는 것이 아니라 안는 것말입니다.


고흐가 키이로를 좋아하는 것을 질투한 호노는 키이로를 네코스테에 버렸지만 고흐가 다시 찾아옵니다. 그리고 가타오카가 데려온 여자를 그리기 시작하여 완성에 이릅니다. 하지만 고흐의 화방을 이해하지 못한 가타오카와 호노의 실수가 겹쳐서 불이 나는 바람에 고흐가 죽고 그의 작품들도 모두 불에 타고 말았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부터 다섯 번째 이야기에서는 주인공 고양이와 인물들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인물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인물이 별다른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 채 시나브로 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이 이야기는 그런 의문이 전혀 남지 않도록 마무리를 잘 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야기들 가운데 전혀 의도하지 않은 누군가의 행동으로 죽음을 맞는 사람도 있고, 돈이 되지 않는 고양이를 버리는 사람도 등장하지만 착한 행동으로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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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셸터 - 2023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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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함께 나는 기억한다, 과거를 과거에 묶어두기 위해라는 광고 문안에 끌려 읽게 된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타임 셸터>입니다. 불가리아 작가 책으로는 처음인 듯합니다. 작가의 세 번째 장편소설인 <타임 셸터>2023년 인터네셔널 부문의 부커상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제목이기도 한 타임 셸터(time shelter)에 대한 조작적 정의가 분명한 것은 아닙니다만 이야기에 등장하는 가우스틴의 말에 따르면 오늘날 기억을 잃은 사람들의 대다수가 자발적으로 과거로 돌아가 숨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의 과거를 시간대피소라고 할 수 있을 거란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기억을 잃는 사람들은 알츠하이머병을 비롯한 치매 등 어떤 이유에서든 기억 쇠퇴를 겪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그들을 위하여 시간대피소를 마련해주는 요법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환자들의 내면의 시간과 일치하는 공간을 창조해내는 것입니다. 단순히 작은 공간일 수도 있고 그 공간을 확대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우스틴은 과거요법이라고 하는 진료소를 열게 되었습니다. 처음 마련한 과거요법은 1965년의 소환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가우스틴의 첫 번째 진료소는 스위스에서 문을 열었는데, 이는 토마스만의 <마의 산>을 기리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사실 치매환자를 위한 비약물요법 가운데 회상요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환자의 지나온 삶과 관련된 것(과거 사진을 대표적으로 사용합니다)을 이용하여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훈련을 반복하면서 기억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치료법입니다.


가우스틴의 과거요법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됨에 따라 다양한 시기의 공간을 마련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도 같은 성격의 진료소들이 설치되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덴마크의 항구도시 오르후스에는 옛날식 주택으로 이루어진 민속마을을 조성하여 여행객들에게 과거의 삶을 구경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특정 시간대에는 기억상실 환자들이 입장하여 과거를 회상할 수 있게 합니다.


시간대피소에서 주목하는 감각은 후각입니다. “나는 기억의 텅 빈 굴에서 마지막으로 떠나가는 것은 향기의 기억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후각이 일찍 형성되는 감각이기 때문일 테고, 바로 그런 이유에서 그것은 맨 마지막에, 머리를 땅에 처박고 냄새를 킁킁거리는 작은 동물처럼 떠나간다.(121)”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작가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대한 색다른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오디세이아>는 트로이전쟁의 영웅 오디세이아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여정을 이야기합니다. 포세이돈과 엮여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험난해지는데, 신들의 도움으로 위험에서 빠져나오기도 하고 요정 칼립소에 붙들려 행복하게 보내는 시절도 있습니다. 자신과 함께 하면 불멸의 삶을 주겠다는 칼립소의 제안을 뿌리치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로 한 결정은 일종의 시간대피소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그렇다면 고향에 돌아간 오디세우스는 칼립소와 보낸 시간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를 생산하고 있다.(172)’는 명제를 내놓으면서 유럽사회에서는 과거로의 회귀하기 위한 국민투표가 진행됩니다. 나라마서 국민들이 선호하는 과거의 시점을 결정하는 국민투표가 실시된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나라마다 국민들의 성향이 다른 탓에 그 시기가 제각각이라는 점입니다.


화자가 불가리아 국민인 까닭에 불가리에 대한 이야기들이 등장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불가리아 항공은 공항에 도착하면 파샤 흐리스토비가 부르는 <불가리아 장미 한 송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는 이야기와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한 다음 승객들이 박수를 친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리고 불가리아 전통의 축제의 현장도 묘사하고 있어 지난해 다녀온 불가리아 여행에 관한 추억이 소환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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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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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펀트래블의 일본근대문학기행에서 와세다 대학의 무라키미 하루키 도서관을 찾아가는 일정에서 누군가 추천을 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무려 768쪽이나 되는 이 책은 43년만에 완성된 책이라고 합니다. 하루키는 등단 이후 다양한 매체에 글을 발표했는데 대부분 책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1980년 문예지 문학계에 중편소설로 발표되었지만 유일하게 책으로 발표되지 않은 채였습니다. 하루키는 2020년 코로나19로 인하여 사람들 사이에 벽이 세워질 무렵 이 작품을 새로 다듬기 시작하여 2024년에 책으로 내놓게 되었습니다. 출판사에서는 하루키가 43년간 견고히 구축해온 세계가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한 권에 고스란히 담겼다.’라고 했습니다.


그로서는 드물다고 할 작가후기에서 하루키는 앞뒤 사정이 있었지만, 덜 익은 채로 세상에 내놓고 ㅁㄹ았다는 느낌이 들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등단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는데 매우 중요한 무엇을 담아내려 했지만 필력이 충분하지 못했었다고도 했습니다. 1982년 무렵 처음의 중편소설의 줄거리에 전혀 다른 이야기를 덧붙여 동시에 진행하는 발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두 가지 이야기를 교대로 진행하다가 마지막에 하나로 합친다는 구상이었습니다.


이야기는 1, 2,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를 완성해서 묵혀두는 사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2부와 3부를 이어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1부에서 화자는 열입곱 살이 되던 해에 그 도시(뒤에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라고 나옵니다)에서 온 열여섯 살 소녀와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녀는 그 도시에 살고 있는 몸통에서 떨어져 나온 그림자라고 했습니다. 그 도시에 가려면 그냥 원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 그녀와 긴밀한 관계를 맺을 시간적 여유와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해 안타까워하다가 결국은 그녀가 살고 있는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 가게 됩니다. 도시의 성문에 서자 문지기는 그림자를 떼어내야 도시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그림자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도시는 그와 그녀가 만들어낸 상상의 장소일 수도 있습니다.


도시에 들어가게 된 그는 도서관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가 하는 일은 오래된 꿈을 읽는 일이다. 그렇게 일을 시작하고서 도서관에서 일하는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되지만, 그녀는 그와 만났던 일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림자가 한 일을 몸통이 알 수가 없다는 것이겠지요. 그녀와 함께 일하는 사이 그가 성문 앞에서 떼어놓은 그림자를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고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결국 그는 그림자와 함께 성을 탈출할 계획을 세웁니다. 남쪽 언덕 너머에 있는 웅덩이가 도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웅덩이로 가늘 길에 벽이 앞을 가로막습니다. “너희는 벽을 통과하지 못한다. 설령 하나를 통과하더라고 그 너머에 다른 벽이 기다리고 있다. 무슨 짓을 하든 결과는 똑같아.(206)”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벽은 그들을 막지 못합니다. 그림자와 함께 웅덩이까지 오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는 그림자를 탈출시키고 자신은 도시에 남겠다고 합니다.


2부에서는 어떤 영문인지 성에서 현실세계로 나온 화자가 시골에 있는 도서관의 관장으로 일하기 시작하는데, 전임관장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와 죽은 전임관장이 등장하여 화자와 도서관 직원 소에다씨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M**라는 초능력을 가진 소년이 등장하여 결국은 그림자 없는 성으로 들어가 화자의 역할을 대신하게 됩니다. 3부는 그림자 없는 성에 들어갔던 화자가 현실세계로 돌아오는 순간에서 마무리가 됩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것이 존재한다면, 바로 이 벽이야. 누구도 이 벽을 넘을 수 없어. 누구도 이 벽을 부술 수 없고.(45)”라고 문지기가 이야기했던 것과는 달리 화자나 M**가 벽을 통과할 수 있었던 점도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는 듯합니다.


이 소설에서 특이했던 점은 그림자 없는 성에서 에도 성의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림자 없는 성의 벽은 잉카문명이 남긴 성벽의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이야기에 등장했던 인물들과의 관계가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은 채 마무리된 탓인지, ‘그래서?’라는 의문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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