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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던 사람 - 알츠하이머의 그늘에서
샌디프 자우하르 지음, 서정아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8월
평점 :
‘알츠하이머의 그늘에서’라는 부제를 단 <내가 알던 사람>은 책의 뒷장에 적힌 ‘알츠하이머 간병 7년, 유머와 비탄의 회고록’라는 문구가 눈길을 끌어 읽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워싱턴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심장내과의사입니다. 어렸을 때 농업분야의 유전자를 연구하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형, 누이동생과 함께 인도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형과 함께 의사가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파고에 정착하고 노스다코타 주립대학 연구활동을 하다가 정년을 맞게 되었는데 은퇴식에 참석했던 저자는 ‘우리는 시련을 마주하되 피하지 않았고 그로 인하여 강해졌다.(16쪽)’라는 글귀가 벽에 걸린 아버지의 서재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은퇴 후 치매를 늦추거나 피하는 방법’이라는 CNN 기사의 인쇄본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기억력이 떨어져 있다는 아버지가 신경과 고든선생의 진료를 받았을 때 간이정신상태검사에서 30점 만점에23~25점을 받아서 경도인지장애가 의심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기억력은 빠르게 감퇴되면서 치매의 초기단계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자와 형 그리고 누이는 치매가 시작된 아버지와 파킨슨병으로 오랫동안 치료를 받고 있는 어머니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를 두고 의논을 한 끝에 저자와 형이 살고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롱아일랜드로 이사를 하기로 합니다.
<내가 알던 사람>은 파킨슨병을 앓던 어머니와 알츠하이머 병을 발견한 아버지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 부모를 돌보던 세 자녀의 분투기록을 정리한 것입니다. 알츠하이머병에 관한 이야기는 물론 간병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이 비교적 잘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노스다코타의 파고에서 멀지 않은 미니애폴리스에서 살고 있는 누이는 전화로, 혹은 비행기를 타고 와서 함께 의논을 하는 등 세 자녀는 부모님을 간병하는데 있어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오랫동안 겪어야 하는 치매환자의 간병은 자칫 가족들의 충돌이 발생하거나 주 간병인이 병을 얻을 수도 있는데 저자와 형은 병원에서의 진료를 하면서 부모님의 간병에 소홀함이 없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감동이었습니다. 특히 나이든 부모는 자녀가 돌본다는 인도전통의 인식이 미국에 와서도 어느 정도는 남아있어 고집스러운 아버지를 모시는 일이 수월치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알츠하이머환자의 특징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4년 기준의 자료이기는 합니다만, 저자가 치매의 본질과 치매환자의 간병에 관한 정보를 세세하게 찾아보았다는 점도 이 책에서 발견한 소득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대목입니다. “2014년의 그 여름, 형과 여동생과 나는 적절한 보수도 (교육도) 받지 않은 채 노년층을 돌보는 이 나라의 약 1500만 가족 간병인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이 치매 가족을 돌보는데 할애하는 시간은 평균 주장 30시간으로 무보수로 일하는 이들의 노력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4천억 달러가 넘는다고 했습니다. 저자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 한 가족 간병인은 “그렇게 힘든 무보수직은 난생 처음이었다.(46쪽)”라고 댓글을 달았더랍니다.
치매에 걸린 가족을 돌보는 간병인의 입장에 관한 형의 말도 인상적입니다. “사랑으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의무감으로 하는 사람도 있는 거야. 나는 의무감으로 하는 쪽이고.(112쪽)” 사랑이건 의무감이건 가족을 돌보는 일을 외면하는 사람보다는 낫다고 하겠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세월이 흐른 뒤에 어머님께서도 돌아가셨을 때 ‘우리는 이제 고아가 되었네’라고 형제들과 함께 자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양친이 돌아가시기 전에는 절대로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없다.(150쪽)”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모님이 살아가시는 동안에는 우리를 아이로 여기는 사람이 항상 존재한다는 뜻인데, 바꾸어 말하면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의지할 생각을 하기 마련이라는 뜻으로 읽었습니다.
<내가 알던 사람>은 지금까지 읽었던 치매에 관한 책 가운데 여러 가지 의미로 중요한 책읽기였습니다. 지금까지 몇 차례 개정작업을 해왔던 치매에 관한 책을 다시 개정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때는 이 책을 중요한 참고서로 다시 읽어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