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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평점 :
아마도 펀트래블의 일본근대문학기행에서 와세다 대학의 무라키미 하루키 도서관을 찾아가는 일정에서 누군가 추천을 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무려 768쪽이나 되는 이 책은 43년만에 완성된 책이라고 합니다. 하루키는 등단 이후 다양한 매체에 글을 발표했는데 대부분 책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1980년 문예지 문학계에 중편소설로 발표되었지만 유일하게 책으로 발표되지 않은 채였습니다. 하루키는 2020년 코로나19로 인하여 사람들 사이에 벽이 세워질 무렵 이 작품을 새로 다듬기 시작하여 2024년에 책으로 내놓게 되었습니다. 출판사에서는 ‘하루키가 43년간 견고히 구축해온 세계가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한 권에 고스란히 담겼다.’라고 했습니다.
그로서는 드물다고 할 작가후기에서 하루키는 ‘앞뒤 사정이 있었지만, 덜 익은 채로 세상에 내놓고 ㅁㄹ았다는 느낌’이 들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등단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는데 매우 중요한 무엇을 담아내려 했지만 필력이 충분하지 못했었다고도 했습니다. 1982년 무렵 처음의 중편소설의 줄거리에 전혀 다른 이야기를 덧붙여 동시에 진행하는 발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두 가지 이야기를 교대로 진행하다가 마지막에 하나로 합친다는 구상이었습니다.
이야기는 1부, 2부,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를 완성해서 묵혀두는 사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2부와 3부를 이어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1부에서 화자는 열입곱 살이 되던 해에 그 도시(뒤에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라고 나옵니다)에서 온 열여섯 살 소녀와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녀는 그 도시에 살고 있는 몸통에서 떨어져 나온 그림자라고 했습니다. 그 도시에 가려면 그냥 원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 그녀와 긴밀한 관계를 맺을 시간적 여유와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해 안타까워하다가 결국은 그녀가 살고 있는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 가게 됩니다. 도시의 성문에 서자 문지기는 그림자를 떼어내야 도시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그림자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도시는 그와 그녀가 만들어낸 상상의 장소일 수도 있습니다.
도시에 들어가게 된 그는 도서관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가 하는 일은 ‘오래된 꿈’을 읽는 일이다. 그렇게 일을 시작하고서 도서관에서 일하는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되지만, 그녀는 그와 만났던 일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림자가 한 일을 몸통이 알 수가 없다는 것이겠지요. 그녀와 함께 일하는 사이 그가 성문 앞에서 떼어놓은 그림자를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고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결국 그는 그림자와 함께 성을 탈출할 계획을 세웁니다. 남쪽 언덕 너머에 있는 웅덩이가 도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웅덩이로 가늘 길에 벽이 앞을 가로막습니다. “너희는 벽을 통과하지 못한다. 설령 하나를 통과하더라고 그 너머에 다른 벽이 기다리고 있다. 무슨 짓을 하든 결과는 똑같아.(206쪽)”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벽은 그들을 막지 못합니다. 그림자와 함께 웅덩이까지 오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는 그림자를 탈출시키고 자신은 도시에 남겠다고 합니다.
2부에서는 어떤 영문인지 성에서 현실세계로 나온 화자가 시골에 있는 도서관의 관장으로 일하기 시작하는데, 전임관장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와 죽은 전임관장이 등장하여 화자와 도서관 직원 소에다씨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M**라는 초능력을 가진 소년이 등장하여 결국은 그림자 없는 성으로 들어가 화자의 역할을 대신하게 됩니다. 3부는 그림자 없는 성에 들어갔던 화자가 현실세계로 돌아오는 순간에서 마무리가 됩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것이 존재한다면, 바로 이 벽이야. 누구도 이 벽을 넘을 수 없어. 누구도 이 벽을 부술 수 없고.(45쪽)”라고 문지기가 이야기했던 것과는 달리 화자나 M**가 벽을 통과할 수 있었던 점도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는 듯합니다.
이 소설에서 특이했던 점은 그림자 없는 성에서 에도 성의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림자 없는 성의 벽은 잉카문명이 남긴 성벽의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이야기에 등장했던 인물들과의 관계가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은 채 마무리된 탓인지, ‘그래서?’라는 의문이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