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존 버거 지음, 김우룡 옮김 / 열화당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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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여행지에서 만나는 아름다움을 붙드는 방법을 존 러스킨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고 소개하였습니다.  아름다움을 제대로 소유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며, 그것은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스스로 아름다움의 원인이 되는 (심리적이고 시각적인) 요인들을 의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의식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것에 관해 쓰거나 그것을 그림으로써 예술을 통해서 아름다운 장소들을 묘사하는 것이다.(277)”라는 것입니다.


러스킨은 또한 여행을 하면서 스케치를 하는 것에 더하여 아름다움에 대한 인상을 굳히려면 말로 그려야한다고 했습니다. 즉 글로 써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러스킨이 말하는 말 그림은 어떤 장소의 생김새를 묘사하는 방법일 뿐 아니라, 심리학적 언어로 그 장소가 우리에게 주는 영향을 분석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고 합니다.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이야말로 러스킨의 말로 그리기의 전형을 보게 되는 책읽기였습니다. 존 버거는 자신이 직접으로 만났거나, 아니면 사진을 통해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마치 사진을 찍듯이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이 책의 원제목이 Photocopies(사진복사)인 것은 피사체를 사진찍듯이 복사한다는 의미입니다. 원제를 글로 쓴 사진이라는 절묘한 우리말로 옮겨놓은 편집자의 재치도 대단합니다.


11번째 이야기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남자에서는 사진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사진은 적확한 순간에 방아쇠를 당기는 일, 손가락을 누르는 일일 뿐이에요.(62)” 화자는 하나의 사진을 찍는 순간, 당신의 이른 바 결정적 순간은 계산될 수도, 예고될 수도, 사고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좋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이란 쉽게 사라지는 것 아닌가요?(64)” 이야기 끝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사진은 끝없는 응시로부터 나오는 무의식적인 영감이다. 사진은 순간과 영원을 붙든다.(68)” 이 대목을 읽고 보니 제가 찍는 사진은 아무 생각 없이 순식간에 찍는 것이라서 영혼이 없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존 버거가 글로 쓴 피사체로 삼은 인물들은 멕시코 사바티스타의 마르코스 부사령관,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철학자 시몬 베유 등처럼 유명한 인물도 있지만, 명성에는 무관심한 채 오로지 그리기에만 몰두하는 무명 화가, 런던의 어느 광장에서 병든 비둘기를 돌보는 노숙자 여인, 아일랜드의 시골 버스에서 만난 수다스런 소녀, 라이플총을 빗겨 맨 열세 살의 인도 소년, 소련의 강제수용소를 백스물네 번이나 옮겨 다닌 남자처럼 무명인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존 버거는 피사체가 놓인 환경은 물론 그 사람의 내면까지 면밀하게 관찰하여 글로 그려냈습니다. 그가 그려낸 피사체의 풍경을 묘사한 대목 가운데 테이블에 던져진 주사위처럼 계획 없이 우연히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마을들이 있다. 하지만 좀 더 분명한 이유를 지니고 이루어진 마을도 있다.(19)”처럼 풍경에 대하여도 사유의 깊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아마도 마을은 실제보다 더욱 행복해 보인다. 교회이 첨탑은 아름답다. 묘지는 마치 그 위에 자리한 발코니처럼 보인다.”는 대목이 이어지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런가 하면 13번째 이야기 시편 139: “당신은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니에서는 막 일어나고 있는 듯 엉거주춤한 자세의 사람이 그려지고 여백에는 글씨로 가득 채워진 그림 한 장만을 올려놓고 있습니다. 어쩌면 말보다 그림으로 전하고 싶은 무언가를 담아낸 듯합니다만, 저자가 이 그림을 통해서 전하려고 한 자신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가늠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여백에 쓰인 글씨는 작거나 흘려 써서 내용을 식별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존 버거의 글쓰기는 사물에 대한 면밀한 관찰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느낀 마르셀 프루스트의 그것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물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글로 옮기는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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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마지막 당부 - 마지막까지 삶의 주인이기를 바라는 어느 치매 환자의 고백
웬디 미첼 지음, 조진경 옮김 / 문예춘추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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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를 진단받은 뒤 더 적극적인 삶을 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세상에 알린 <내가 알던 사람>의 저자 웬디 미첼이 세 번째 내놓은 책입니다. 두 번째 책은 사람들이 치매에 대하여 알았으면 하는 소박한 생각을 담은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이었습니다. 치매 진단을 받고서 9년이 지난 시점에 내놓은 책은 <생의 마지막 당부>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의 주인이고자 하는 심경을 담아냈습니다.


사실은 세 권의 책은 치매진단을 받은 웬디 미첼를 도와 아나 와튼이 함께 쓴 것입니다. <생의 마지막 당부>2014년 치매진단을 받고서 9년이 지난 2023년에 내놓았습니다. 최초의 진단이 그리 늦은 것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9년의 투병이라면 아직은 병증의 진행은 아직 심각한 단계에 이르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어쩌면 웬디는 네 번째 책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치매로 인하여 정신이 맑지 않은 상태를 먹구름이 내려온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아마도 기억해내야 할 것이 쉽게 떠오르지 않거나 집중이 되지 않은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병에 대한 인식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생각은 여전히 분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치매환자가 말기에 보이게 될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이 책에 담아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는 죽음이라는 단어로 책을 시작합니다. 아마도 암 등 다른 질환과는 다른 과정을 밟아 죽음을 맞게 되기 때문에 치매를 안고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을 이해하려는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았습니다.


모두 다섯 개의 장으로 되어 있는 이 책세서는 죽음을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데, 이유는 죽음을 이해해야 죽음이 편해진다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임종 돌봄, 치료거부, 조력사망에 대한 이야기들을 거쳐 마지막으로 삶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하는데, 삶에 대한 집착을 놓으면 남은 삶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누리사랑방을 통하여 자신의 삶을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왔습니다. 그와 같은 만남을 통해서 알게 된 이야기를 이 책에서 많이 소개합니다. 물론 저자가 읽은 책이나 논문 등에서 얻은 것들도 소개하고 있어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삶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들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관하여 연구한 영국의 정신과의사 존 힌튼 교수가 <죽어가는 사람들>에 적은 내용이 인상적입니다. “죽음을 앞에 둔 살마들 다수는 살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친절해지고 정신적으로 고귀해진다. 그들은 뒤에 남겨져서 상실감을 견뎌야 하는 이들의 감정이 다치지 않도록 최손을 다하며, 눈에 띄게 그리고 은근하게 애정을 드러내 보인다.(23)”라고 했습니다. 이러저런 이유로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꼭 염두에 두어야 할 내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웨덴에서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 주변을 정리하는 과정을 의미하는 도스타우닝(döstädning)이라는 단어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죽음 청소라고 옮길 수 있다고 합니다. 죽기 전에 소지품 등 주변을 정리해서 자신의 죽음 이후에 남아있게 될 사랑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을 줄여주는 과정을 이야기하는데, 대체로 65세가 되면 이 일에 착수해야 한다고 합니다.


오늘 유투브를 통해서 모녀 사이에 있었던 슬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평소에 어머니가 자주 전화를 걸고 보고 싶다고 하는 것을 귀찮아하던 딸이 그다지 바쁘지도 않은데 보고 싶다고 하는 어머니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고 따돌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가슴을 치고 후회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부모가 나이가 들면 자주 찾아뵙는 것이 이렇듯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생의 마지막 당부>에서는 임종 돌봄, 치료거부, 조력사망 등에 관한 영국 정부의 정책이나 민간단체의 활동 등을 소개하고 있어 우리나라에서도 치매환자를 위한 지원 방안을 마련하는데 참고할 만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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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레슨 인 케미스트리 1~2 세트 - 전2권 - 개정판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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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어디선가 열독율 1위라는 기사를 접했는데 도서관마다 대출 중이어서 한참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작가는 광고 문구를 쓰다가 소설을 쓰게 된 보니 가머스인데 무려 64살에 이 작품으로 등단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1960년대이고 무대는 캘리포니아 남부 해안에 있는 커먼스의 헤이스팅스 연구소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여주인공 엘리자베스 조트는 1950년 캘리포니아 대학 LA분교에서 석사과정을 밟던 중에 지도교수의 성폭력을 당하던 중에 연필로 배를 찔러 중상을 입힌 사건으로 쫓겨나 헤이스팅스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1950년 무렵의 미국사회는 여전히 남성중심의 사고가 만연해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었던 남자들이 사회에 복구하면서 전쟁 중에 남자들을 대체했던 여성들은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라는 압력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가정을 지켜야 할 여성은 남성의 영역이라 할 연구소에서의 역할이 무시되기 일쑤였습니다. 아무리 획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연구를 해도 지원을 받을 수 없었고, 어렵게 만들어낸 성과도 남성들이 가로채기 일쑤였습니다.


엘리자베스는 그런 분위기에 저항하여 힘들게 좌충우돌하는 상황이었고, 그런 와중에 연구소에서 잘 나가는 괴짜 캘빈 에번스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연구소의 괴짜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으니 운명적인 사랑이라 하겠지만, 그 운명에 숨어있는 함정을 피해갈 수는 없었습니다. 원칙을 지켜야한다는 조트의 신념 때문에 캘빈이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게 된 것입니다.


캘빈의 죽음으로 엘리자베스는 연구소의 왕따 신세가 되고 결국은 쫓겨나게 되었지만, 엘리자베스는 쥐고 있던 주제 화학적 진화의 연구를 이어가기 위해 부엌에 실험실을 차리기까지 합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TV 연출가 월터 파인과 연결되어 <6시의 저녁식사>라는 요리 편성의 진행을 맡게 됩니다. ‘요리란 엄연한 과학이고, 따지고 보면 화학이라는 엘리자베스의 철학에 따라서 요리에 과학, 특히 화학적 지식을 접목하여 설명해나가는 엘리자베스에 시청자들은 열광합니다. 심지어는 당시 린든 존슨 부통령도 이 요리편성의 열렬한 애청자였다는 것입니다. 캘빈의 죽음으로 홀로 서야 했던 엘리자베스는 그녀의 진심을 이해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결국은 헤이스팅스로 돌아간다는 결말입니다. 아기자기하고 긴박하게 돌아가던 이야기가 마무리단계에서는 긴장의 고삐가 풀린다는 느낌이 남았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표식을 붙여놓았던 부분을 꼽아보겠습니다. 캘빈이나 엘리자베스가 독특한 성격을 가졌다고 했습니다만, 두 사람이 성장과정에서 겪었던 정신적 압박감으로 인하여 형성된 것으로, 아이들의 성장하는데 있어 정상적인 가정환경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결혼과 아이를 원하는 캘빈과는 달리 엘리자베스는 사랑은 하되 결혼이나 아니는 안된다는 단호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사가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서 캘빈이 죽기 전에 엘리자베스가 임신을 하고 매들린 조트라는 딸을 낳게 됩니다. 캘빈은 죽은 뒤에서 엘리자베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피스타치오는 지방함량이 높아서 조건에 따라 천연인화물질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1952년의 미국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외간 남자와 같이 사는 법이 없었다고 합니다. 연구소에서 쫓겨난 엘리자베스가 쪼들리는 생활을 하던 중에 매들린을 낳게 되었는데 산후 통증관리를 위해 진통제조차 맞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엘리자베스는 저는 과학자거든요. 이 과정을 멀쩡한 의힉으로 겪고 싶습니다.”라고 주치의에게 의연하게 말하는 모습이 강해 보이려는 엘리자베스가 측은하게 느껴졌습니다. 엘리자베스가 딸에게 붙여준 매들린 이라는 이름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마들렌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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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초상
찰스 디킨스 지음, 김희정 옮김 / B612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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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초상>은 영국의 작가 찰스 디킨스가 1844년 가족과 함께 1년 동안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여행한 기록을 담은 책입니다. 역자의 말대로 작가는 이 책에서 정확한 여행일정이라 각 지역의 음식, 숙소 등의 정보를 다루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유명한 건물이나 유적, 예술 작품 등에 대하여도 설명을 곁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만 수년간 머릿속으로 그렸던 장소들에 대한 어렴풋한 감상을 엮은 것으로 물에 비친 그림자에 불과한 기억이라고 비유했습니다. 흔히 여행에 관한 기록을 <OOO여행기>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는 달리 <이탈리아의 초상>이라는 제목이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남았습니다.


작가는 제노바에서 1년 동안 머물 예정으로 영국을 떠나 프랑스를 거쳐 이탈리아에 갔다고 하는데, 마차를 타고 가는 여정은 그의 작품에서 보는 것처럼 서민적이었습니다. 마차 역시 전용마차를 이용한 것이 아니라 여정에 따라 마차와 마부를 수배하는 방식을 택했던가 봅니다. 프랑스 구간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마차를 닦는 법이 없는 나라에서 마차가 창피하게 여겨질 만한 것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제 마차에 묻는 진흙이 부끄러울 만큼 상쾌한 날이었다.(25)”


파리에서 리옹, 아비뇽을 거쳐 마르세유에서 배를 타고 제노바로 가는 여정이었던가 봅니다. 파리에서 르아브로로 갔다가 몽셀미셀, 루앙, 리모주, 툴루즈, 아를, 아비뇽, 엑상프로방스, 칸느, 니스를 거쳐 이탈리아로 나갔던 저의 여정과는 별로 겹치는 구간이 없습니다. 그래도 툴르즈를 지나는 가론강의 운하에서 본풍경은 디킨스가 론강에서 본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시속 20마일로 움직이는 증기선을 타고 화살처럼 빠르게 흐르는 론강을 따라 내려갔다. 배는 무척 지저분한데다 시장에 내다팔 물건들로 가득했고 동승한 사람은 서너 명 밖에 되지 않았다.(32)”


아비뇽에서는 교황청에 딸린 감옥을 직접 돌아보는 경험도 했다. 교황청과 관련된 일화는 사실일까 싶기까지 합니다. 1441년 교황특사인 피렐 드 뤼드에 관한 내용입니다. 조카가 아비뇽의 좋은 집안의 규수들을 욕보이다가 가족들에게 팔다리를 못 쓰게 될 정도로 치도곤을 당했다는데 교황특사는 앙심을 품고 때기 무르익기를 수 년 동안 기다린 끝에 조카를 다치게 한 가족들과 화해를 한다면서 교황청 부속건물에서 연회를 베풀고 폭발시키는 바람에 오백여명이 모조리 타죽고 말았다고 합니다.(47)


제노바에서 생활하면서 작가는 제노바가 하루하루 마음에 스며드는곳이라고 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언제든지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제노바의 경관이 뛰어나다는 점은 물론 식당 등 제노바 사람들의 삶을 흥미롭게 적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제노바에서는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지에서 포도주를 사오는데 선장들은 포도주의 이름은 묻지 않고 사들인 다음에 샴페인과 마데이라라는 상표를 붙여 팔았다고 합니다. 포도주의 다양한 풍미와 품질, 산지, 재배연도는 무시하고 말입니다. 오늘날에는 아프리카 해안에 있는 포르투갈의 마데이라 섬에서 나오는 포도주만이 마데이라 포도주라고 한다고 합니다.


베로나의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서 작가는 이탈리아의 도시들 구경에 나섰나 봅니다. 파르마, 모데나, 볼로냐, 베로나, 만토바, 밀라노, 피사, 시에나, 로마, 나폴리,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 파에스툼, 베수비오, 몬테 카시노, 피렌체 등에 관한 이야기들이 이어집니다. 제가 가본 곳도 적지 않아서 180년 전 디킨스가 본 것들과 제가 본 것들의 차이를 비교해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베로나에서는 줄리엣의 집만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디킨스는 여관이 된 캐퓰릿 가문의 집에서 머물렀을 뿐더러 줄리엣의 무덤도 구경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줄리엣의 집으로 알려진 장소 역시 영화와 관련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디킨스 시대에는 무슨 근거로 로미오와 줄리엣에 관련된 장소가 존재했는지 의문입니다.


디킨스는 나폴리까지는 갔으면서 나폴리 앞에 있는 카프리 섬은 물론 시칠리아에도 가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역사적인 장소에 대한 관심이 그리 크지 않았던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디킨스의 이탈리아 기행은 제가 정리한 이탈리아 여행기를 풍성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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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빈 방 - 죽음 후에 열화당 영혼도서관
존 버거, 이브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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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벼르던 존 버거의 <아내의 빈방>을 읽었습니다. 스페인 여행기를 쓸 무렵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으로 처음 만난 존 버거는 <본다는 것의 의미>, <어떤 그림>, <풍경들>, <초상들> 등을 읽으면서 그의 글 솜씨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아내의 빈방>은 지난해 아내가 아팠을 때 어디선가 보고 읽어보겠다고 생각했던 책입니다. 읽을 책을 고르는 순서에서 밀리는 바람에 지금에서야 읽을 기회를 만든 것인데, 막상 읽어본 뒤에는 진즉 읽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의 빈방>은 사십년을 함께 한 아내 베벌리 벤크로프트 버거가 세상을 떠난 몇 달 뒤에 존 버거와 아들 이브 버거가 함께 그리고 쓴 책입니다. 불과 40쪽에 불과한 얇은 책이지만 아내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책은 아들 이브 버거가 첫 번째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어머니에게 전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브는 어머니가 계신 그곳은 삶이 절대 끝나지 않는 곳일 거예요. 우리 사랑처럼요, 엄마.”라고 적었습니다.


이어서 존 버거의 글이 이어집니다. 아내가 죽은 4주 후 꿈에서 아내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당신이 없어진 자리에 당신의 존재감이 들어왔다고 할까?’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 책에 담긴 내용에 대하여 우리는 당신에게 바칠 비가(悲歌)를 쓰고 있는 거요.(10라고 적었습니다. 또한 아내에 관하여 독자들에게 전하는 글이라고도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아내에게 쓴 글을 결혼 전 하계봉사활동에 갔을 때와 혼자서 미국에 백일 동안 연수를 받으러갔을 때 몇 통의 편지를 쓴 것 말고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해 말에 출간한 <양기화의 BOOK소리-유럽여행>이 아내에게 바치는 첫 번째 책이었던 것입니다.


그가 인용한 팔레스타인의 국민작가 마흐무드 다르위시의 글귀를 읽다가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 그리고 당신이 내게 말했지, 내가 당신보다 먼저 죽으면, 판에 박힌 말과 죽은 날짜 같은 것으로 나를 가두지 말고, 내가 잠든 곳의 흙을 한 줌 떠주세요. 그럼 아마도 한 줄기 풀잎이 당신에세 죽음은 무엇인가를 또 하나 심는 것에 불과함을 알려 줄테니 ()(12)”


이런 대목도 있습니다. “그 세월 동안 내가 쓴 거의 모든 글들을 당신에게 가장 먼저 보여 줬소. 당신은 즉시 반응을 보이며 이런저런 제안을 했고, 타자기로 옮겨 친 다음, 그 글들을 외부로 보내고, 번역이나 계약 같은 것을 진행했지.(17)” 저 역시 제가 쓴 모든 글을 아내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내는 베벌리처럼 이런저런 제안을 하기 보다는 오류를 지적하는 정도에 머물렀습니다. 그래도 책을 만드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침대에 누운 당신이 온몸을 꿰뚫는 것 같은 고통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할 때, 그통을 가라앉히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모르핀이나 코르티손 주사를 한 대 더 놓아주거나 몸을 받치는 베개들을 다시 맞추어 주는 일밖에 없었을 때, () 당신은 비할 데 없이 아름다웠소. 그 비할 데 없는 아름다움은 당신의 용기에서 나오는 것이었지. () 당신의 용기는 부질없이 두려움을 극복하려 애쓰기 보다는, 그 두려움을 손님처럼 맞이해 주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당신의 용기가 마지막까지 당신과 함께한 거요. 그리고 시간을 물리친 그 용기가 우리와 함께 남아, 침묵을 채우고 있는거요.(23-24)”하는 대목은 새겨두고 싶었습니다. 그런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말입니다.


존 버거는 아내가 곁을 떠났지만 여전히 함께 한다는 의미의 글도 남겼습니다. “우리는 계속 뒤돌아보고 있소. 그리고 당신이 그런 우리와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당신은 시간을 벗어난 곳에, 되돌아보거나 내다보는 일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 있으니 말이 안 되겠지만, 그래도 당신은 우리와 함께 있는거요.(31)”


이야기의 마지막은 다시 이브 버거가 마무리했습니다. “어디에 계세요. 엄마? 죽은 이들이 진짜로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고 누군가 말하더군요. 그런데 그건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그런 곳을 말하지 않잖아요. 우리는 어디에도 없는 곳이 뭔지 모르니까요.(32)” 그리고 엄마가 어디에 계신지 모르기 때문에, 엄마의 몸이 누워 있는 곳으로 가요. 잠시 후면 우리가 고른 돌멩이가 엄마 무덤 위에 놓이겠죠. 흙과 풀 사이에 놓을 텐데, 그러면 아름다울 거라고 믿고, 또 그러기를 바라요.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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