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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빈 방 - 죽음 후에 ㅣ 열화당 영혼도서관
존 버거, 이브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14년 7월
평점 :
지난해부터 벼르던 존 버거의 <아내의 빈방>을 읽었습니다. 스페인 여행기를 쓸 무렵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으로 처음 만난 존 버거는 <본다는 것의 의미>, <어떤 그림>, <풍경들>, <초상들> 등을 읽으면서 그의 글 솜씨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아내의 빈방>은 지난해 아내가 아팠을 때 어디선가 보고 읽어보겠다고 생각했던 책입니다. 읽을 책을 고르는 순서에서 밀리는 바람에 지금에서야 읽을 기회를 만든 것인데, 막상 읽어본 뒤에는 진즉 읽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의 빈방>은 사십년을 함께 한 아내 베벌리 벤크로프트 버거가 세상을 떠난 몇 달 뒤에 존 버거와 아들 이브 버거가 함께 그리고 쓴 책입니다. 불과 40쪽에 불과한 얇은 책이지만 아내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책은 아들 이브 버거가 첫 번째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어머니에게 전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브는 어머니가 계신 “그곳은 삶이 절대 끝나지 않는 곳일 거예요. 우리 사랑처럼요, 엄마.”라고 적었습니다.
이어서 존 버거의 글이 이어집니다. 아내가 죽은 4주 후 꿈에서 아내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당신이 없어진 자리에 당신의 존재감이 들어왔다고 할까?’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 책에 담긴 내용에 대하여 “우리는 당신에게 바칠 비가(悲歌)를 쓰고 있는 거요.(10쪽”라고 적었습니다. 또한 아내에 관하여 독자들에게 전하는 글이라고도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아내에게 쓴 글을 결혼 전 하계봉사활동에 갔을 때와 혼자서 미국에 백일 동안 연수를 받으러갔을 때 몇 통의 편지를 쓴 것 말고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해 말에 출간한 <양기화의 BOOK소리-유럽여행>이 아내에게 바치는 첫 번째 책이었던 것입니다.
그가 인용한 팔레스타인의 국민작가 마흐무드 다르위시의 글귀를 읽다가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 그리고 당신이 내게 말했지, 내가 당신보다 먼저 죽으면, 판에 박힌 말과 죽은 날짜 같은 것으로 나를 가두지 말고, 내가 잠든 곳의 흙을 한 줌 떠주세요. 그럼 아마도 한 줄기 풀잎이 당신에세 죽음은 무엇인가를 또 하나 심는 것에 불과함을 알려 줄테니 (…)(12쪽)”
이런 대목도 있습니다. “그 세월 동안 내가 쓴 거의 모든 글들을 당신에게 가장 먼저 보여 줬소. 당신은 즉시 반응을 보이며 이런저런 제안을 했고, 타자기로 옮겨 친 다음, 그 글들을 외부로 보내고, 번역이나 계약 같은 것을 진행했지.(17쪽)” 저 역시 제가 쓴 모든 글을 아내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내는 베벌리처럼 이런저런 제안을 하기 보다는 오류를 지적하는 정도에 머물렀습니다. 그래도 책을 만드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침대에 누운 당신이 온몸을 꿰뚫는 것 같은 고통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할 때, 그통을 가라앉히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모르핀이나 코르티손 주사를 한 대 더 놓아주거나 몸을 받치는 베개들을 다시 맞추어 주는 일밖에 없었을 때, (…) 당신은 비할 데 없이 아름다웠소. 그 비할 데 없는 아름다움은 당신의 용기에서 나오는 것이었지. (…) 당신의 용기는 부질없이 두려움을 극복하려 애쓰기 보다는, 그 두려움을 손님처럼 맞이해 주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당신의 용기가 마지막까지 당신과 함께한 거요. 그리고 시간을 물리친 그 용기가 우리와 함께 남아, 침묵을 채우고 있는거요.(23-24쪽)”하는 대목은 새겨두고 싶었습니다. 그런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말입니다.
존 버거는 아내가 곁을 떠났지만 여전히 함께 한다는 의미의 글도 남겼습니다. “우리는 계속 뒤돌아보고 있소. 그리고 당신이 그런 우리와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당신은 시간을 벗어난 곳에, 되돌아보거나 내다보는 일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 있으니 말이 안 되겠지만, 그래도 당신은 우리와 함께 있는거요.(31쪽)”
이야기의 마지막은 다시 이브 버거가 마무리했습니다. “어디에 계세요. 엄마? 죽은 이들이 진짜로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고 누군가 말하더군요. 그런데 그건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그런 곳을 말하지 않잖아요. 우리는 어디에도 없는 곳이 뭔지 모르니까요.(32쪽)” 그리고 “엄마가 어디에 계신지 모르기 때문에, 엄마의 몸이 누워 있는 곳으로 가요. 잠시 후면 우리가 고른 돌멩이가 엄마 무덤 위에 놓이겠죠. 흙과 풀 사이에 놓을 텐데, 그러면 아름다울 거라고 믿고, 또 그러기를 바라요. (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