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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 - 졸업을 앞둔 너에게
커트 보니것 지음, 김용욱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월
평점 :
읽어보고 싶은 책 목록에 여전히 들어 있는 <고양이 요람>의 저자 커트 보네거트를 다시 만났습니다. 처음 그를 만난 <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 http://blog.joins.com/yang412/13340292>의 소재와 이야기 구성이 참 독특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임사체험을 통하여 사후세계에서 이미 고인이 된 유명 인사들과의 인터뷰를 통하여 현세의 삶을 서술하였는데, 결론은 “인생의 목적은, 누가 그것을 지배하든 주변의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7쪽)”라고 줄여 말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로 커트 보네거트를 만나게 된 책이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입니다. 이 책에는 1972년 뉴욕주립대학 올버니 캠퍼스 졸업식에서 부터 2001년 라이스대학 졸업식에 이르기까지 10개 대학의 졸업식에서 졸업생에게 준 이야기들과 1984년 플레이보이지에 기고한 글에서부터 2001년 칼 샌드버그상 시상식의 연설문 등 6개의 연설문과 기고문을 담았습니다.
보네거트는 대학졸업장은 없었지만, 대학졸업식에서 많이 모시는 인기가 많은 연사였다고 합니다. 댄 웨이크필드는 서문을 통하여 보네거트는 ‘사람들이 생각만하고 말로는 꺼내지 않는,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고 예상을 뒤엎고 사물을 완전히 새로운 각도에서 보게 하는 꾸밈없는 단어와 구절들을 찾아냈다(10쪽)’고 짚었습니다. 그리고 ‘틀에 박힌 연설문을 대학 이름만 바꿔가며 낭독하는 대다수의 졸업식 연사들과는 달리, 이제 막 만들어진 것, 생각할 거리를 주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재치와 도발적 표현들을 내놓았다(13쪽)’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진실을 말하는 자였다(18쪽)”라고 평했습니다. 미국인권옹호연맹은 보네거트가 미국에서 가장 검열을 많이 당한 작가로 선정한 이유일 것 같습니다. 2000년 인디애나인권옹호연맹에서 행한 연설의 제목이 ‘대통령을 나쁘게 말한 자유“인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자유로운 사상을 가졌는지 알 수 있겠습니다.
그의 연설문을 읽어보면 다양한 인용자료들이 좌충우돌하듯 보이지만, 작가답게 이것들을 잘 엮어서 이야기의 줄거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이 다듬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원고를 미리 써서 읽은 것이 아니라 잡아둔 줄거리를 바탕으로 현장에서 이야기를 풀어갔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때로는 충분히 이해되지 않는 미국적 문화와 조우하게 되면 연설내용이 마음에 와 닿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듯한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중국의 화약제조법을 서양에 전한 것이 마르코 폴로였다거나, 당시의 중국인들은 너무 멍청해서 화약을 불꽃놀이에만 사용했다는 등입니다.
화약은 중국 위진시대 도가의 연단술사들이 불로장생의 영약을 구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이며, 그 연소성을 이용하여 전쟁무기로 개발된 것은 당송 무렵이었습니다. 연소성 차원을 넘어 폭발성이 강화되면서 전쟁무기로서 중요도가 높아졌고, 금나라를 무너뜨린 원나라시절에 아랍에 전해졌고, 아랍이 유럽과 전쟁을 하는 가운데 서양에 전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네거트가 화약의 유럽전래에 대하여 잘 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적당히 무게가 느껴진다거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민감한 손가락 끝으로 느껴지는 달콤한 망설임이 좋다거나 처럼 책은 느낌이 아주 좋으니까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권고는 좋습니다만, 대부분의 교육이나 의술처럼 탐욕스러운 자들이 꺼리는 분야에 뛰어들려하는 졸업생들에게 교사라는 직업을 추천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책의 제목이 되는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는 여러 대학의 연설에서 거의 빠트리지 않는 말인데, 보네거트의 알렉스삼촌이 입에 달고 살던 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인생이 순조롭고 평화롭게 잘 풀릴 때마다 잠시 멈춰서 큰 소리로 외쳐보기’를 권합니다.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50쪽)” 대학졸업식에 연사로 초청받은 이가 참고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