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 창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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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 펜벗에서 정한 이달의 주제는 ‘오늘의 편지’입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이메일이 아닌 편지를 써본 것이 언제였나 싶습니다. 십대 무렵 인근도시로 진학한 친구와 일주일이면 두 세통씩 편지를 주고 받았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공부할 때 편지를 보내주셨던 선친께서는 잡념을 버리고 공부에 정진할 것을 당부하시는 내용을 빠트리지 않았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그래서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들을 담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게 되었습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로 정조 재위시설 중용되어 수원 화성건축에 기여하는 등 활약을 하였다. 정조 사후에 일어난 신유교란에 연루되어 시작한 유배생활이 무려 18년간 이어지게 되고, 이 기간 중에 학문에 몰두하여 당시 관심을 모으던 실학을 집대성하여 500여권에 달하는 서적을 집필하였습니다. 유배생활이 힘든 가운데서도 다산은 아들들이 학문을 등한시할까 노심초사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들들의 마음을 다독이거나 채찍질하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보내곤 했던 모양입니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는 다산이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두 아들에게 주는 가훈, 둘째 형님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 그리고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편지 등을 나누어 담았습니다. 30여 성상을 다산연구에 바친 박석무교수가 몇 차례에 걸쳐 다듬기를 거듭하여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옮겼습니다.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 전체의 절반이 넘도록 구성한 것은 아들을 걱정하는 다산의 마음이 바로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주는 교훈이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다산은 가문이 폐족이 되었음을 자인하고 “폐족이 글을 읽지 않고 몸을 바르게 행하지 않는다면 어찌 사람 구실을 하랴(11쪽)”하며 학문에 정진할 것을 주문합니다. 그리하여 책을 읽고, 책을 쓰는 방법은 물론, 어떤 책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지 까지 구체적으로 주문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아들들을 유배지로 불러 같이 공부하기도 했던 것을 보면 당시의 유배라는 것이 일상생활까지 규제하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다산이 아들들이 학문에 정진하기를 바랐던 것은 앞서 적은 것처럼 폐족이라고 해도 정신줄까지 놓지 말고 자존을 지키라는 의미가 컸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너희들이 끝끝내 배우지 아니하고 스스로를 포기해버린다면 내가 해놓은 저술과 간추려놓은 것들을 앞으로 누가 모아서 책으로 엮고 교정하며 정리하겠느냐?(41쪽)”라고 한 것을 보면, 자신의 학문적 성과들이 묻히게 될 것을 우려한 것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아가 자신이 후세 사람들로부터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당부가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오래 전 선친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남겼던 글들을 묶어 <소운집(嘯雲集)>이라는 제목의 문집을 만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선친께서 네 아들을 걱정하시는 마음을 담은 글을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책으로 묶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학문에 정진하는 일 이외에도 사림으로 행해야 할 도리를 깨우치는 내용도 있습니다. 큰 아버지 섬기기를 아버지처럼 하라는 내용도 있고, 풍족한 살림은 아니지만 여러날 밥을 끓이지 못하는 집에는 쌀되라도 퍼다 주어 굶주림을 면하도록 해주라는 당부도 담겨 있습니다.

 

제가 공부한 내용들을 간추려 전공을 같이하는 분들은 물론 일반인들까지도 공유할 수 있도록 책을 만드는 일도 해왔으니 다산이 자식들에게 당부했던 여러 가지 일들 가운데 일부는 해왔구나 하는 안심이 들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선친께서 저를 통하여 자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으셨던 생각들을 어떻게 제 자식들에게 전할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공부하는 기간이었기 때문에 지켜보는 편이었습니다. 다음 주면 입대하여 훈련을 받게 되는데, 훈련기간 중에 다산처럼 편지를 보내 세상사는 이치를 고민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선친께서 남기신 마음도 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책상서랍 귀퉁이에 던져 놓았던 펜과 잉크를 다시 챙겨보아야 하겠습니다. 컴퓨터 자판으로 두둘겨 뽑은 창백한 편지보나, 볼펜보다는 펜에 잉크를 묻혀 한자 한자 정성을 담은 손편지를 보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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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2-20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은 미명이다. 새벽이 당도하길 기다리며...어쩌고저쩌고` 하는 정일근 시인의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 가 생각납니다. 한 때는 이 시가 너무 마음에 들어 외우고 다녔는데 이제는 기억에서 가물가물 ...

처음처럼 2015-02-22 23:44   좋아요 0 | URL
저도 찾아서 읽어보아야 하겠습니다.

저는 드디어 큰 아이에게 편지를 보낼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벌써 기대가 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