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문제 해결 방식을 연구하는 신경과학자들은 바람직한 해결책을 찾는 최고의 방법은 한가로운 시간을 갖는 것이라고 말한다. 풀기 힘든 문제일수록 그것에 매달려 집착하기보다 잠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때 더욱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다고 말이다. 노동만큼이나 여가를 중요시한 데이비드 흄은 노동과 휴식, 집중과 산만함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았다. 그는 활동하고 집중하는 뇌 영역과 사색하고 휴식하는 뇌 영역 사이의 균형을 강조하면서 지금껏 푸대접을 받았던 산만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처음으로 돌아가 우리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속도를 늦출 것을 제안했다. - P59
버지니아 울프가 몽테뉴의 열렬한 독자였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울프는 "우리 의식 속에 가라앉아 있는 진실은 때때로 게으름 속에서, 몽상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라고 썼다. 성급하게 변화하려 하기보다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사유할 때, 진정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명문장이다. - P65
수전 손태그의 말처럼 그것은 차라리 "주의력 과잉 장애"라고 할 수 있다. 손태그는 여행을 할 때면 글쓰기는 잠시 미뤄둔 채 듣고, 말하고, 풍성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여행 중에는 글을 쓰지 않는다. 나는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듣는 것도 좋아한다. 바라보는 것도, 관찰하는 것도 좋아한다. 어쩌면 나는 ‘주의력 과잉 장애‘일지도 모른다. 무언가에 집중하는 일, 그것이 내겐 가장 쉬운 일이다. - P79
손태그에게 집중이란 정보를 무분별하게 소비하지 않는 일이다. 그는 자신이 원치 않으며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창의적인 사고는 정보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때 발휘된다. - P82
키르케고르가 이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를 통해 설명하듯, 집중을 통해 즐거움을 맛보는 비결은 자의적으로 관점을 변경함으로써 예상치 못한 것, 부적절한 것에서 권태를 물리쳐 줄 요소를 발견하는 것이다." 장난스럽고 짓궂었던 키르케고르는 지루한 상황에서 유희적 요소를 찾아내며 그 순간을 견뎌냈다. 고루하고 단순한 사고방식을 거부했던 그는 감각적인 경험에 몰입하고 지엽적인 요소들에 집중하면서 즐거움을 느꼈다. 그는 이런 방식을 다른 일에도 적용하면 예상치 못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 P89
미국 예술 비평가 조너선 크레리는 이런 모순에 대해 "정보통신 시스템은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탐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 주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를 한곳에 가두고 고립시킬 뿐"이라고 지적했다. 디지털 기기를 사용할 때 우리가 느끼는 안정감은 행위와 무위, 연결과 단절이 결합된 결과에서 비롯되는 감정이다. 그래서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여 타인과 교류하는 행위는 종종 원만한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오해되기 십상이다. - P98
대개는 집중력을 유지하려는 자기 통제와 산만함을 대립적 개념으로 보지만, 루소는 수면의 움직임을 감각적으로 경험하면서 동시에 거기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끌어낸다. 그는 자발적으로 자신을 사회와 단절시켰다. 진정한 자아를 되찾기 위해 스스로 고립을 택한 것이다. 이처럼 의도적인 고립은 멀티태스킹이나 산만함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앞서 언급했듯이, 산만함은 정신을 분산시켜 예상치 못한 곳으로 우리를 이끌고 간다. 실제로 루소는 과도한 집중이 아닌 몽상을 통해 자신을 사회적 자아에서 해방시키고 마침내 진정한 자아를 되찾는다. 그러나 사회적 관계에서 벗어나 홀로 은둔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자발적 고립은 외부 세계와의 관계를 단절시켜 자기중심적 생각에 빠지게 하고, 정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산만함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더불어 살면서 어떻게 집중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 P101
흄은 과도한 집중이 자기중심적이고 유아론적인 반면, 산만함은 타인과의 유대와 연대를 강화한다고 말했다.
나는 저녁을 먹고, 주사위 놀이를 하고,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유쾌하게 서너 시간을 보내고 나서, 다시 논리적 사유를 하려고 하면 그것이 너무 냉정하고 억지스러우며 우스꽝스럽게 느껴져서 그 일에 몰두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 그렇지만 내게는 아직 예전의 성향이 남아 있다. 때때로 모든 책과 문서들을 불에 던져버리고 다시는 이성적 사유와 철학을 위해 삶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야 할 정도로 말이다. - P106
그렇다면 우리는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까, 아니면 때때로 정신을 느슨하게 하고 여유를 가져야 할까? 설정한 목표에 집중하며 단조로운 삶을 살아야 할까, 아니면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다 해도 기꺼이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아야 할까? 앞서 알베르 피에트는 인류학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산만함이 결점이 아니라 생존에 필요한 정신적 기제라고 설명했다. 오직 인간만이 존재하는 동시에 부재할 수 있으며, 끝없이 이어지는 무의미한 생각들을 감당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침팬지나 원숭이와 달리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창의성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집중할 수 없다고 해도, 무엇이 문제인가? 중대한 일과 사소한 일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양쪽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것은 약점이 아닌 강점이다. 피에트가 지적한 것처럼,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명백히 약점으로 보이는 산만함은 인간에게 창의성이라는 특성을 부여했다. 이런 창의성은 주의력이 분산될 때 더욱 풍부해지고, 유희적 요소와 비극적 사고를 균형 있게 조화시킨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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