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성공으로 흥분한 가운데 태풍처럼 나를 몰아친 그 다채로운 감정들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으리라. 삶과 죽음의 경계야말로 이상적인 목표였다. 내가 최초로 돌파해 어두운 세상에 폭포수처럼 빛이 흘러들게 만들었기에. 새로운 종이 생겨나 조물주이자 존재의 근원인 나를 축복하리라. 헤아릴 수도 없는 행복하고 탁월한 본성들이 내 덕에 탄생하리라. 나만큼 자식의 감사를 받아 마땅한 아버지는 이 세상에 다시없으리라. 이런 생각들을 따라가던 나는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지금은 불가능해도) 시간이 지나면 겉보기에는 죽음으로 부패된 육신에도 새 생명을 줄 수 있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 P66

완벽한 인간은 언제나 차분하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해야 하고, 정념이나 찰나의 욕망에 휘둘려 마음의 평정을 깨뜨려서는 안 된다. 지식의 추구가 이 법칙의 예외가 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지금 매진하고 있는 공부가 사랑하는 마음을 약하게 하고 어떤 연금술로도 합성할 수 없는 소박한 즐거움을 아끼는 취향을 망가뜨리려 한다면, 그 공부는 분명 불법적이며 인간의 정신에 맞지 않는 것이다. 이 법칙이 항상 준수되었다면, 그리하여 어느 한 사람도 가족의 애정이 주는 평온을 깨뜨리는 목적을 추구하지 않았다면, 그리스는 노예국가로 전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카이사르는 나라를 삼키겠다는 야욕을 갖지 않았을 것이요, 아메리카는 좀더 서서히 발견되어 멕시코와 페루 제국은 파멸을 맞지 않았을 것이다. - P68

살면서 일어나는 다양한 우연들도 사람의 감정만큼 변덕스럽지는 않다. 나는 생명 없는 육신에 숨을 불어넣겠다는 열망으로 거의 2년 가까운 세월을 온전히 바쳤다. 이 목적을 위해 휴식도 건강도 다 포기했다. 상식적인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열정으로 갈망하고 또 갈망했다. 하지만 다 끝나고 난 지금, 아름다웠던 꿈은 사라지고 숨막히는 공포와 혐오만이 내 심장을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 P72

아! 산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그 무시무시한 얼굴을 견딜 수 없었으리라. 미라가 다시 살아나 움직인다 해도 그 괴물처럼 참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미완의 상태에서 괴물을 찬찬히 뜯어본 적은 있다. 그때도 흉물이었다. 하지만 그 근육과 관절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자 단테도 상상 못했을 괴물이 되어버렸다. - P73

마치 고독한 길을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여 걷는 사람처럼, 한 번 뒤돌아보고는 다시 걷고, 영영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무시무시한 악마가
바로 뒤에서 그를 따라 걷고 있음을 알기에.

콜리지의 시 「늙은 수부의 노래」 중에서. - P74

함께 걸어가는 길에 클레르발은 내 기운을 북돋워주려고 애썼다. 흔한 위로의 말이 아니라 진심이 배어나는 동정심으로 달래주었다."불쌍한 윌리엄!" 그가 말했다. "그 어여쁜 아이가. 이제는 천사가 된 어머니와 함께 잠들어 있겠구나. 친구들은 슬퍼하고 흐느껴 울겠지만 그애는 이제 평온하게 쉬고 있어. 암살자의 손길도 느끼지 못할 테고, 그 보드 라운 몸을 뗏장이 덮고 있으니 아픔도 모를 테지. 우리는 이제 더이상 그애를 불쌍하게 여겨서는 안 돼. 살아남은 사람들이 가장 괴로운 법이야. 시간밖에는 아무 위로가 없으니까. 죽음은 악이 아니라든가, 인간의 마음은 사랑하는 대상의 영원한 부재 앞에서도 절망을 극복한다는 식의 스토아학파의 주장을 강요할 수는 없는 법이지. 카토마저도 동생의 시신 앞에서는 흐느꼈으니까." - P95

여정은 몹시 우울했다. 처음에는 슬픔에 빠진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로하고 슬픔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에 어서 빨리 가고만 싶었다. 하지만 고향이 가까워지자 발길을 늦추게 되는 것이었다. 마음속에 물밀듯 밀어닥치는 착잡한 감정들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에는 익숙했으나 6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도록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스쳐지나갔다. 그 시간 동안 모든 게 얼마나 변했을까? 확실한 건 급작스럽고 황막한 변화 한 가지가 일어났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수천 가지 작은 상황들이 서서히 또다른 변화들을 일으켰으리라. 훨씬 조용히 진 행된 변화들이겠지만 결정적 의미가 덜한 건 아니었다. 나는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없었다. 뭐라 형용할 수도 없는 수천 가지 이름 없는 죄악 때문에 온몸이 떨렸다. - P95

길은 호숫가를 따라 이어지다가 고향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좁아졌다. 쥐라의 검은 산등성이와 몽블랑의 빛나는 정상이 전보다 더 또렷하게 보였다. 나는 아이처럼 흐느꼈다. "다정한 산들아! 내 아름다운 호수야! 방랑자를 어찌 이렇게 반가이 맞아주는 거냐? 봉우리는 선명하고, 하늘과 호수는 파랗고 잔잔하구나. 이는 평화의 전조일까, 내 불행을 조롱하기 위한 걸까?"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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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 내내, 일을 끝낸 제본업자가 말없이 처음에 온 곳으로 돌아갈 때까지, 리다는 단 한 번 몸짓도 단 한 번 움직임도 하지 않았다. 그 뒤에도 한참, 이제 분명히 알고 있듯 곧 남편이 될 사람의 크고 근면한 손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나서도, 침대가에 그대로 앉아서 밀랍 같은 어머니의 옆모습을 응시했다. 감긴 눈썹, 불현듯 더 크고 강해 보이는 코, 모호하고 불합리하게 행복하게 웃는 것 같은 입술, 너무나 친숙하던 그 모습이 갑자기 달라 보였고, 이제야 세세한 것 전부를 포착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는 사이 무언가 오래된 것, 날카로운 것, 강한 것이 안에서 서서히 풀려나오는 것을 느꼈다. - P44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 아가씨는 예쁘지 않다. 그녀의 얼굴은 예쁘지도 추하지도 않은 매우 흔한 얼굴이다. 당시 서민층 젊은 여성에겐 일반적으로 입술, 볼, 피부를 꾸미는 화장이 허용되지 않았다는 사실로 보건대, 극히 평범하고 무난해 보인다. 감춘 듯 언뜻언뜻 비칠 뿐인 젊음의 광채를 띤 검은 눈, 온화함과 인내심 가득한 가축과 다를 바 없이 슬프고 주눅든 표정, 목뒤로 빗어 시골 여자같이 튀어나온 너른 이마를 도드라지게 한 밤색 머리칼, 풍만한 가슴의 작은 몸뚱이에 솟은, 검정 벨벳 띠를 두른 가는 목, 대단치 않은······ 그런 아가씨가 조베카처럼 번화한 거리, 그것도 페라라에서, 어제 못지않게 오늘도 늘 은밀한 저녁식사 자리로 가기 전이면 특히 활기를 띠고 고무되는 그 시간에 도망치듯 지나가는 모습이 사진기 렌즈는 물론 누군가의 눈에도 예사롭게 보였을 리 없다고 가정해야 할 것이다. - P69

말과 행동, 상상과 실행에는 어쨌든 일정한 차이가 있었다.
[…]
하지만 염탐하고 보고하는 즐거움, 추측하고 추론하는 즐거움, 이제 막 공식화된 비타협적이고 굳건한 의도를 뒤엎고 가없이 불투명한 미래로 미루는 공상의 은밀한 즐거움은 그 날 끝 무렵에 생긴 사건의 실체 앞으로 돌연 중단돼야 할 운명이었다. - P77

식당 안으로 안내되어 그가 들어오자, 혼자서 카드게임을 하고 있던 가장은 얼굴을 들고 반쯤 입을 벌린 채 그를 바라 보았다. 의사는 가장의 바로 앞에 마주 앉더니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이름, 성, 아버지, 직업, 심지어 주소까지······ 그의 자기소개는 꼭 규정에 따른 호적부 신고 같았다. 그 특이하고 어떤 면에서는 마비시키는 것 같은 정중한 태도나 식당 분위기에 갑자기 형성된 긴장감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의 긴 소개는 어쩌면 지겹고 현학적이며 그 장황한 상세함으로 인해 최소한 기괴해 보였을 수 있다. - P79

엘리아 코르코스! 그가 자기소개를 하는 동안 그전까지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집안의 네 남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 이름이 있었어? 의사 직업의 프록코트, 하얀 실크넥타이, 가지런히 모은 무릎 위에 올려놓았는데 식탁 가장자리 위까지 살짝 솟아오른 챙이 널따랗고 치켜올라간 검은 모자(이 모든 것이 중고품으로 구입했기 때문인지 어딘지 낡고 가볍게 색이 바랬고), 마치 이상한 것을 다루고 불신하는 것같이 조곤조곤 발음하면서 더러 짧은 문장이나 개별 낱말을 사투리로 섞어 풀어내는 장광설, 정상적인 재료보다 더 연약하고 섬세하며 특별한 재료로 만들어진 것 같은 그 사람의 얼굴, 그리고 그의 원래 가족이 아무리 평범하고 게다가 현재 독신남으로 혼자 살고 있다고 해도 여실해 드러나 보이는 개인의 재정적 지위, 이 모든 것이—그들이 금세 알아차린 바와 같이—그가 부유한 계층에 속하고, 따라서 근본적으로 다르고 이질적이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 P79

"두 갈랫길이 있다면, 하나는 힘들고 어렵고 불확실한 길, 또하나는 쉽고 평탄하고 아주 편한 길 앞에서 솔직히 말해 사람이 어떤 길을 택할지는 너무 자명하지요!" 마지막으로 콧수염 아래 입술이 이따금 감지할 수 없게 옆으로, 분명히 냉소적으로 씰룩이면서 말했다.
"그리고 내가 들어서게 된 길은 진짜로 평탄한 걸까요? 진짜로 쉽고 아주 편리한 걸까요? 그걸 누가 아나요?" - P84

그는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는데도(그는 분명 세상에서 가장 온화한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위대한 애국자이기도 했다), 가끔씩 페라라가 아직 오스트리아 치하였을 때 광장에서 하얀 제복의 병사들이 총검을 장착하고 대주교 궁전 앞에서 보초를 서던 아득한 시절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사람들은 그 병사들을 증오와 경멸의 눈길로 보았다. 그 당시, 1860년대 이전에는 그도 무척 젊었고 때로는 사람들과 똑같이 그랬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 불쌍한 젊은이들, 대개 보헤미아나 크로아티아 출신으로 특사 추기경의 포도밭 말뚝처럼 거기에 서 있게 된 그 젊은이들한테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무기 앞에서는 당연히 복종해야 한다. 명령이란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 P96

훌륭한 거실로 불리던 방, 델라기아라 거리 쪽으로 나 있고 아무도 발을 들여놓지 않는 어두침침하고 커다란 방의 찬장에 꽂혀 있는 기도서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가구들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을 그 냄새로 배게 만들었다. 심지어 아우실리아가 더러 그 방에 들어가 어둠속에 몇 시간 동안 앉아 혼자 생각에 잠길 때면(젬마가 죽은 뒤인 1926년 그녀가 집안 가정부 자격으로 들어와 엘리아와 여코포와 함께 살게 된 뒤에도, 심지어 1943년 엘리아와 야코포가 독일의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고 난 뒤에도, 훌륭한 거실을 마치 은신처같이 이용하는 일이 계속되었는데······), 그때마다 어김없이 불쌍한 살로모네 코르코스 씨도 그 방 안에 뼈와 살을 갖춘 모습으로 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마치 아직도 세상에 살아 있고, 소리 없이 숨을 쉬며, 그녀 옆에 앉아 있는 것처럼.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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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이 그들을 내리덮었다. 캐드펠은 마음을 가다듬은 뒤 먼저 리샤르트를 위한 기도를 올렸다. 그를 위해 기도를 올리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거대한 어둠과 끊임없이 흔들리는 초라한 불빛, 그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머나먼 곳, 추정할 길 없는 시간, 다가와 그를 휩싸는 고독, 온갖 문제들과 사람들을 휘감은 세계, 그 모든 것들이 영원의 무늬를 이루어 잠에 빠진 호흡만큼이나 완전한, 규칙적인 리듬이 되었다. - P219

환영으로 인한 것이든 죄악으로 인한 것이든 종교적 발작에 빠져 자신의 몸을 내던지면서도 그는 날카롭고 딱딱한 물체에 부딪치거나 혀를 깨무는 법이 없었다. 술 취한 사람을 다룰 때처럼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이 고통에 짓눌린 수사를 살펴보는 동안, 그로서는 마음 한 켠에서 일어나는 신랄한 생각을 도무지 막을 길이 없었다. 종교적인 열정의 과잉 또한 과음과 다름없는 도덕적 문제야. - P225

캐드펠은 콜룸바누스 수사의 몸을 덮어주고 머리를 잘 받쳐준 뒤에 제자리로 돌아가 종교적인 의무를 이어갔다. 그러나 콜룸바누스 수사를 찾아온 뭔지 모를 것 때문에 집중력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뒤였다. 마음을 모으려 노력하면 할수록 저기 엎어져 있는 젊은이에게 더 자주 눈길이 갔고, 그가 숨을 잘 쉬고 있는지 확인하느라 더 자주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뭔가 소득을 얻는 시간이 되리라 기대했던 밤이 무겁게 그의 마음을 짓눌렀다. 밤은 덧없는 숭배처럼 무의미하고 잡념처럼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이제껏 겪어본 적 없는 길고 음울하고 지루한 밤이었다. - P222

"이제 뭘 해야 하죠? 아시는 게 있으면 말씀 좀 해주세요. 우린 아직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했어요. 오늘이 바로 아버님을 매장하는 날인데도요."
"나도 알고 있네." 캐드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실은 지난밤 일어난 일을 놓고 내내 의혹을 느끼던 중이었어. 이 모든 것을 계획된 일로 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이네. 또 하나의 기적을 일으켜 수도원의 목적을 강화시키려는 것이지. 하지만 로버트 부수도원장이 그렇게까지 충격을 받는 것을 보니 억지로 꾸민 일이라고 하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그리고 콜룸바누스 수사는 전에도 이런 발작을 몇 번이나 일으킨 적이 있네. 굉장히 격렬하고 특이한 발작이지. 아마 거짓으로 꾸며내긴 힘들 게야. 발작이 덮칠 땐 마치 악마가 그의 몸을 가지고 장난이라도 치는 것 같거든. 시장의 광대도 콜룸바누스 수사의 발작을 흉내낼 수는 없을 걸세. 그래, 칼날 위에서 춤을 추듯 천국과 지옥의 뜻에 따라 공중으로 제 몸을 던지는 이들이 있는 법이지." - P226

"나도 알고 있네." 캐드펠이 말했다. "나도 자네와 같은 웨일스 사람이야. 하지만 연민의 문을 꽉 닫아두어서는 안 되네. 자네도 나도 그러한 연민의 감정을 필요로 할 때가 올지 누가 알겠나!" - P227

"야심가들은 수도복을 입고서도 엄청나게 출세를 한다잖아요. 혹시 부수도원장님이 원장 자리에 오를 때를 대비해 길을 다져놓느라 저러는 게 아닐까요? 아니면 자기가 먼저 수도원장이 되려고 남몰래 계획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성인들이 예언자로 쓰는 이라고 여기저기 소문 날 사람은 부수도원장님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이잖아요."
"부수도원장께서도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하셨겠구먼." 캐드펠이 말했다. "하지만 외경이 사라지고 나면 그분도 이런저런 생각을 할 걸세. 성녀의 일생을 기록하겠다고 맹세한 사람은 바로 부수도원장이야. 그 기록의 마지막에 이번 순례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겠지. 아마 콜룸바누스 수사는 그저 익명의 수도사 정도로 적히기 쉬울 걸세. 그의 역할도 그저 성인과 부수도원장을 연결하는 사자쯤으로 축소될 테고. 연대기 작가들은 몽상가들 이 소리 높여 스스로의 이름을 외쳐대는 것만큼이나 손쉽게 온갖 이름들을 편집하고 삭제해버릴 수 있으니까. 그러나 그 친구는 무척이나 완고한 노르만 가문 출신일세. 그런 사람들이 평생 정원이나 가꾸는 성직자로 남겠거니 생각하면서 젊은 아들을 베네딕토 수도원에 집어넣는 법은 없지." - P236

성처녀가 잠든 곳은 바로 이곳이었다. 순교했다가 기적적으로 부활한 뒤 성처녀는 부수녀원장으로 이곳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다. 동시에 그녀는 악마의 손에서 달아나듯 자기를 추적하는 크래독 왕자의 손을 피해 달아난 소녀, 금욕과 성스러움을 낭만적으로 사랑한 신앙심 깊은 철부지 아가씨이기도 했다. 이 순간 캐드펠의 마음은 둘로 분열되어, 그녀와 그녀를 필사적으로 추적했던 연인 모두에게 연민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를 사랑한 젊은이는 거친 열정에 사로잡혀 영과 육이 한꺼번에 절멸되었다. 그에게 기도를 바치는 사람이 단 하나라도 있을까?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위니프리드 성녀가 아니라 오히려 그일지도 모르는데. 결국, 그를 위해 기도한 이는 오직 위니프리드 성녀뿐이리라. 그녀도 초연함과 불가사의함을 두루 갖춘 웨일스인이었고, 그러니 아마 그의 멸절당한 육신을 끌어모아 다시 한 인간의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한마디쯤 기도를 남기지 않았을까? 열정을 억제할 수 있으며 의심을 품지 않는 인간, 그러나 전과 다름없는 모습을 한 바로 그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아무리 성인이라 해도 자신을 그토록 탐내던 사람이 있었던 시절을 돌아보며 작은 기쁨을 느끼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 P239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불경스러운 죄악에 대한 두려움, 그의 비참한 처지에 대한 동정, 그리고 엉뚱한 오해에 대한 죄책감으로 생긴 침묵이었다. 진실이 번갯불처럼 머리 위로 떨어져 모두를 압도했다. 리샤르트는 화살을 맞고 죽은 것이 아니었다. 어떤 비겁한 자가 두터운 은폐물 사이에서 뛰어나와 그의 등에 비수를 꽂아 넣었다. 성녀가 한 일이 아니었다. 인간, 한 사악한 인간이 저지른 일이었다. - P251

"땅에는 그보다 더 끔찍한 고해를 듣고서도 머리칼 하나 까딱하지 않는 사제들이 얼마든지 있어. 자신이 용서받지 못하리라 확신하는 것이 오히려 오만이지." - P267

"참 이상한 일이죠!" 잠시 후 그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동안은 누굴 아무리 증오해도 그렇게 야비한 짓은 해본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전혀 이상할 것 없네." 캐드펠은 컵을 휘저으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우리는 괴로움에 처하면 그 어떤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존재니까. 확실히 용서받을 방법이 있다는 것만 알면 그 어떤 짓이라도 저지르고말고." - P267

"우리 여자들, 우리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기르느라 평생을 희생해요. 그런데 아이들은 자라고 나면 우리 얼굴에 먹칠을 하는 식으로 보답하죠. 제가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죠?"
"아드님은 부인께 온당하게 보답할 겁니다." 캐드펠은 쾌활하 게 말했다. "아드님이 속죄하는 동안 묵묵히 지켜보되, 아드님의 죄를 변명하려 애쓰지 마십시오. 아드님은 그에 대해 무척 고마워하고 사랑으로 보답할 겁니다." - P269

남자나 여자나 같은 물질로 이루어진 존재들입니다, 휴 신부님. 상처를 입으면 똑같이 피를 흘리지요. 물론 저 부인이 가엾고 딱한 여자인 건 사실이지만, 가엾고 딱한 남자들 또한 수없이 많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 못지않게 튼튼한 여자도 있고, 우리 못지않은 능력을 가진 여자들도 있습니다." 캐드펠은 마리암을 생각하며 말했다. 아니, 쇼네드를 생각하고 있었던가? - P271

카이는 자신의 나귀를 내버려둔 채 아네스트의 나귀에만 안장을 올려주었다. 캐드펠 수사는 등자 대신 자연스럽게 자신의 두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발을 받쳐 밀어 올리는 순간, 그녀의 옷자락에서 향기로운 체취가 흘러나왔다. 팔목에 그녀의 부드러운 살갖이 스친 그 찰나야말로 이 길고 지루한 하루를 통틀어 그에게는 최고의 순간이었다. "살아 있는 동안 그대들 두 사람처럼 선랑한 이는 다시 만나볼 수 없을 게야." 캐드펠이 말했다. "존 형제는 실수를 저질렀네. 하지만 누구에게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 법이지. 이번만큼은 존 형제가 실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군." - P276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엥겔라드는 다소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뿐 그들이 할 일은 무척이나 간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휴 신부님과 부수도원장님을 찾아가야죠. 그분들께 사건의 경위를 정확히 설명드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 밖에 우리가 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이 사람을 죽인 게 잘한 일은 아니지만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습니까. 전 제가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뿐 아니라 그는 자기를 비난할 사람이 있으리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진실은 언제나 최선의 길이니까. 캐드펠은 그 천진함에 애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머지않아 저 성품도 다치게 되겠지. 이미 한 차례 부당한 누명을 쓰고도 그의 천진함은 아무 상처도 입지 않았고, 청년은 아직도 사람이란 이성적인 존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 P303

"그게 그렇게 놀라운 일입니까?" 캐드펠은 다소 짜증스럽게 물었다. 단잠을 방해받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반쯤은 자기방어를 하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인정하기 힘들었지만, 그는 당혹감과 위축감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가 귀더린에서 운구해 온 것에 대한 믿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이 어떤 경이로운 일을 이루어내더라도 그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을 텐데요." 그러나 제롬 수사가 보다 열정적으로 호응해줄 말상대를 찾아 떠난 뒤, 캐드펠은 스스로에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 나는 놀라지 않는가? 혹시 내가 기적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있는 것일까? 그래, 진정한 기적이라면, 그 까닭 같은 건 있을 수 없으니까. 기적이란 이성과 합치될 수 없으니까. 기적은 인간의 인과를 초월하여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생겨나는 법, 합리적인 기적은 기적이 아니니까. 그러자 문득 기쁨과 위안이 찾아왔다. 정말이지 세상이란 특이하고 괴상한 곳이라 생각하며, 그는 다시금 유쾌하게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 P331

"귀더린 사람 중 아직까지도 진실을 모르는 사람은 휴 신부님 한 분밖에 없을 것 같구먼." 캐드펠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말했다. "하지만 그런 분께 양심의 짐을 지우는 것도 옳지 않은 것 같단 말이지. 그래, 휴 신부님께는 역시 알리지 않는 편이 낫겠소."
"그분이 진실을 알게 될 염려는 없습니다. 그 일에 대해 의문을 품으신 적도 없고, 질문 한번 하신 적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사실 전 그분이 정말 아무것도 모르시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침묵에는 여러 미덕이 있잖습니까." - P336

평화로운 세월의 거리를 두고 돌이켜보아도 당시 더 나은 방법이 있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웨일스 출신의 작은 성녀(그분께 축복이 있기를)께서는 당신이 늘 원하던 곳에 그대로 누워 계시며, 그것이 기쁜 나머지 그곳 사람들을 살뜰히 돌보아주시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우리에게 속한 것, 우리가 가질 권리가 있으며, 아마도 우리가 가져야 마땅할 것을 가지고 있지. 전체적으로 보면 만족스러운 귀결이야. 교환한 살인자의 시체라 해도 신앙의 대상이 되면 진짜와 거의 다름없는 구실을 하는 법. 물론 완전히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말이야! 이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저 귀더린의 선량한 주민들은 앞으로도 줄곧 좋은 일들을 기대해도 될 성싶었다. -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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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집을 부수도원장님의 처분에 맡깁니다." 캐드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쇼네드가 웨일스어로 침착하게 대답했다. 창고도 있고 마구간도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그곳을 쓰십시오. 저는 죄인 곁에 가까이 가지 않을 것이며, 그곳 열쇠도 내어드겠습니다. 죄인을 감시할 사람은 부수도원장님께서 제 하인들 중 적당한 이로 직접 택하시지요. 죄인이 지내는 데 필요한 것들은 제 식구들이 마련하도록 조치하겠지만, 저 자신은 그 일에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과연 그 모든 일을 공정하게 처리할지 미심쩍어하는 분들이 계실 테니까요."
현명한 여자군. 캐드펠은 쇼네드의 말을 통역하면서 생각했다. 거듭되는 재난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는데도, 그녀는 사실상 한마디도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교묘하게 위기 상황을 벗어나려 애쓰고 있었다. 더하여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과 원하는 것을 배려할 줄 아는 너그러움은 또 어떠한가. - P156

"그 사람은 아니라고 확신하지. 무엇보다도 그런 짓을 할 만한 성격이 못 되니까. 화가 날 때 주먹질을 하고 덤벼들기는 해도, 무기를 들고 공격하는 유형은 아니야. 두 번째로, 만일 그런 짓을 하려고 계획했다면 한층 교묘하게 처리했을 거네. 자네도 화살이 박힌 각도를 보았겠지? 내가 알기로 엥겔라드의 키는 부친보다 손가락 셋을 합친 길이 정도는 더 크네. 어떻게 자기보다 키가 작은 사람의 늑골 밑으로 화살이 파고들도록 활을 쏠 수 있겠나?
설령 관목숲 속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거나 엎드려 있었다 할지라도 그렇게 화살이 박히기는 어려워. 그래, 그 혐의를 믿는 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지. 엥겔라드가 이 마을에서 가장 빼어난 궁수라는 점을 고려한다 해도 마찬가지야. 그렇다면 어느 곳에서 든 활을 쏠 수 있을 텐데 그처럼 앞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위치를 택할 이유가 없지. 이 모든 게 상황을 정확히 볼 줄 몰라 벌어진 일일세. 그런 어리석음 때문에 머지않아 막다른 벽에 부딪치고 말겠지.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도 우선적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내릴 수 있는 판단은, 자네 연인이 남몰래 살인을 저지르기 에는 너무도 정직한 사람이라는 점일세. 그런 사람은 설령 자기가 증오하는 자라 해도 그런 식으로 누군가를 살해하지 않아. 더욱이 그 젊은이는 자네 부친을 증오하지도 않았지. 나한테는 굳이 설명할 필요 없네." - P160

"자, 나는 쇼네드의 말을 전했네." 캐드필은 차분하게 말했다.
"자네가 그녀에게 가면 그녀가 직접 자네 마음을 돌리겠지. 그리고 자네가 와주기를 바라는 또 한 사람이 있네. 그 사람은 내게 말을 전하지 못했지만 말이야."
"아, 젠장." 페레디르는 고통스러운 듯 고개를 푹 꺾었다.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말아주세요······."
"그래, 나를 용서하게나. 이 일이 쇼네드만이 아니라 자네에게도 큰 슬픔을 안겨주었다는 걸 잘 아네. 쇼네드가 그런 말을 하더군. 부친께서 자네를 무척 가장 아끼셨다고······."
젊은이는 갑자기 울먹이며 휙 돌아서더니 나무들 사이로 빠르게 걸어가 깊은 숲속으로 사라졌다. 캐드펠은 생각에 잠겨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걸었다. 마치 손가락으로 탐색해나가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부드러운 부분을 만진 것처럼 당혹스러운 기분이었다. - P166

"성스러운 수사님들을 살인자로 지목하다니 그건 불경스러운 일입니다." 베네드는 기겁했다.
"왕이든 수도원장이든 인간은 결국 인간이오. 유혹에 빠지기 마련이지." - P169

그러면 리샤르트가 총애하고 아꼈다는 그 젊은이, 어릴 때부터 아들처럼 부담 없이 그 집에 드나든 젊은이는 어떤가? 캐드펠 수사는 생각에 잠긴 채 녹음이 짙게 깔린 어둠 속을 걸어 휴 신부의 다락방으로 돌아왔다. 엥겔라드나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던 모습을 떠올려보건대 천품이 살인을 저지를 사람은 아닌 듯했다. 게다가 그는, 아마도 사랑 때문에 엥겔라드에게 탈출의 길을 열어주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제는 쇼네드의 감사와 호의를, 그것이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거절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사랑만이 아닌, 보다 어두운 다른 까닭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숲속에서 말없이 멀어져갈 때 캐드펠은 얼핏 악마에 시달리는 이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나 설마 그가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그는 리샤르트의 죽음으로 가장 든든한 후원자를 잃은 셈이었다. 리샤르트는 자신이 원하는 남자를 딸의 남편으로 맺어주기 위해 끊임없이 그녀를 설득하고 끈기 있게 기다려왔으니 말이다. 그래도······ 어떻게 생각해보아도 페레디르는 캐드펠의 마음에 여전히 기이하고 꺼림칙한 느낌을 남겼다. - P172

"부수도원장님, 아아, 모두가 제 탓입니다! 제가 잘못을 저지른 탓입니다! 저는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이제 고해를 하고 싶습니다. 전 제 마음을 털어놓고 처벌을 받겠다는 각오로 기도에 참여했습니다. 이 계속되는 슬픔이 바로 저의 타락으로 인해 초래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캐드펠 수사는 생각했다. 넌덜머리가 날 지경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땅바닥을 뒹굴며 풀잎을 물어뜯지는 않으니, 그것만으로도 천만다행 아닌가!
"말해보시오." 부수도원장은 자못 다정한 어조로 말했다. "형제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사소한 것으로 왜곡시키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소. 그러니 우리가 지나친 처벌을 내리지 않을까 두려워할 것 없소. 늘 형제 스스로가 가장 가혹한 심판관이었으니까." 그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스스로가 가장 가혹한 심판관 노릇을 한다는 것은 결국 다른 사람의 판단을 회피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했다. - P175

카이가 미소 띤 얼굴로 뜰을 가로질러 다가오고 있었다. 어딘지 음습하고 조심스러운 분위기 속에서도 카이의 웃음에는 여전히 장난기가 남아 있었다.
"동료분을 구하러 오셨습니까?" 카이가 물었다. "그분이 과연 고마워하실지는 모르겠네요. 편안하게 누워 싸움닭처럼 음식을 잘 먹고 있거든요. 게다가 집행관이 온다는 소식도 아직 못 들었고요. 쇼네드 아가씨는 여태 그분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수사님도 아시겠지만 휴 신부님 역시 서두르는 기색이 없습니다. 부수도원장님만 조용하시면 하루 이틀 정도 더 이곳에 있어도 될 것 같은데요. 마을 어귀에 말 탄 사람이 얼씬거리기만 해도 아이들이 바로 달려와 알려줄 겁니다. 존 수사님은 좋은 사람들 손에 맡겨진 셈이에요."
카이는 엥겔라드와 함께 일하는 사이로 이 마을에 사는 누구보다도 엥겔라드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니, 존 수사와 이 감시자는 틀림없이 호의로써 서로를 대하고 있을 터였다. 카이의 임무는 존 수사의 도주를 막는 것이라기보다 그가 외부세계로부터 위협 받는 일이 없도록 지키는 일에 가까운 듯했다. 올바른 목적을 위해서라면 카이는 자신이 가진 열쇠마저 얼마든지 내줄 용의가 있었다. - P185

"당신이야말로 정신을 빠짝 차려야겠구먼." 그렇게 말하면서도 캐드펠 수사는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이들 모두 자기들이 하는 일에 대해 잘 알고 있으리라. "이곳 왕자가 투철한 준법 정신을 가진 사람이면 어쩌려고 그러시오? 아니면 베네딕토회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할 수도 있고 말이오."
"아, 그런 걱정은 하실 필요 없습니다! 만약 범죄자가 도망친다 해도 그건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거든요. 벌을 받을 사람도, 상을 받을 사람도 없지요. 수사님은 잃어버린 물건을 찾느라 사방을 열심히 뒤져봤지만 끝내 찾아내지 못한 적이 없으십니까?" - P186

"마음을 다해 그렇게 하겠네. 하지만 당장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나. 우리가 귀더린의 평화를 깨뜨린 장본인이라는 사실은 아직 변함이 없고, 나 또한 우리를 결함 없는 고결한 존재로 여기지 않거든. 죄인을 가려내기 전까지는 누가 결백한지 알 수 없는 법이지."
"저도 부수도원장님께 했던 말을 취소할 생각 없어요." 쇼네드는 고집스럽게 말했다.
"그분은 이 사건의 범인이 아니야. 내 시야에서 벗어난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사람을 샀을 수도 있잖아요. 성녀까지도 사려 했던 사람이니까요. 그분은 완고한 분이에요. 그게 동기가 될 수 있죠. 그리고 잊지 마세요. 잉글랜드인들과 마찬가지로 웨일스인들도 자신을 팔 수 있어요. 바라건대 그런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적지도 않을 거예요." - P196

그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부수도원장이 관대하게 허락한다면 그것으로 자기는 위험에서 벗어나게 되리라 여기는 것일까? 살인의 죄나 그로 인한 위협까지도 그것을 처음 명한 자에게 되돌려줌으로써 자신은 아무 죄과도 치르지 않은 채 감쪽같이 빠져나갈 수 있다고 믿는 걸까? 물론 캐드펠은 살인자의 손이 닿으면 피살자가 피를 뿜어낸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가 믿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이 그 말을 믿는다는 사실, 그러한 믿음이 죄인을 압박할 수 있다는 사실, 그래서 궁지에 몰린 죄인이 공포에 질려 범행을 자백할 수도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 P505

이즈음 캐드펠은 집행관을 믿어도 좋을 것이며,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이나 머지않아 알게 될 사실들을 애써 감출 필요도 없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참이었다. 결국 집행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모든 증거를 찾아야 한다는 구실로 하루나 이틀쯤 왕실 집행관을 교구 전체로 돌아다니게 만들면 그 역시 캐드펠이 온갖 조사를 통해 얻어낸 만족스러운 결론에 이르게 되리라. 공적인 심판이란 깊이 있는 탐색을 하기보다 표면에 떠오른 사실들을 수확하고 그에 따라 합당한 결론을 도출해내는 식으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여기저기서 종종 돌출되는 의구심들은 신속한 질서 회복과 평안 유지를 위해 국가가 치러야 하는 대가인 셈이다. - P209

아네스트는 식사를 가져와 그가 밥을 먹는 동안 곁에 있어주었다. 아네스트 역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불편해하고 있었다. 물건을 이용해 존 수사에게 간단한 웨일스 단어들을 가르쳐줄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했다. 교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며 마을 사람들의 말이나 생각들을 무슨 수로 알린단 말인가? 그럼에도 때로는 둘이서 큰 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경우가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존 수사는 잉글랜드어로, 아네스트는 웨일스어로, 미래에나 이해할 수 있을까 싶은 말들을 늘어놓았다. 일종의 절제된 애무처럼, 그들은 서로의 어조만으로 친밀감 을 주고받으며, 각자의 독백을 통해 부족하나마 감정을 교환하고 평화를 느꼈다. - P213

그는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가까이 다가와 있는 아네스트의 얼굴을 더욱 세밀히, 더욱 열정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보드랍고 둥근 뺨은 사과처럼 싱싱했고, 볕에 그을린 피부는 섬세하기 그지없었으며, 눈은 흐르는 햇살을 받은 냇물처럼 맑게 반짝였다. - P214

"수사님, 우리가 이 순례와 이 철야 기도에 나서게 된 건 그야 말로 크나큰 영광입니다." 콜룸바누스 수사가 캐드펠의 잰걸음에 어렵지 않게 보조를 맞추며 말했다. "수도원 역사에 우리 이름이 기록될 겁니다. 이후의 모든 형제들이 우리를 부러워할 거예요."
"그래, 나도 들었네." 캐드펠은 건조하게 말을 받았다. "부수도원장께서 위니프리드 성녀의 생애를 기록하고, 그분 유골의 이장 과정으로 그 내용을 완성하려 하신다지. 하지만 수행원들 이름 하나하나까지 거기 써 넣으실지는 모르겠군." 하긴, 자네 이름 정도라면 모르겠군. 캐드펠은 생각했다. 아마 성스러운 샘물로 가서 치료를 받은 최초의 사람쯤으로 기록되리라. 그리고 제롬 수사 이름도 등장할 것이다. 그의 꿈을 통해 순례단이 이곳까지 오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내 이름은 없겠지. 정말 다행이야!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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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자유롭게 놀 때 아이들은 어떤 기술을 습득할까? 우선 어른 없이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있는 아이는 "일이 벌어지게 만드는 방법을 파악"한다고, 리노어는 말한다. 놀이를 생각해내려면 창의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다음에는 자신이 떠올린 놀이가 가장 재미있는 놀이라고 다른 아이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게임을 지속하기 위해 다른 아이들의 마음을 읽는 법을 알아"낸다. 아이는 언제가 자기 차례이고 언제가 다른 친구 차례인지 협상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그러므로 타인의 필요와 욕구, 그것들을 충족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또한 아이는 실망감과 좌절감에 대처하는 법을 배운다. 이 모든 것을 "배제되고,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내고, 길을 잃는 경험을 통해" 배운다. "나무를 기어오르다 누군가가 말합니다. 더 높이 올라가자!‘ 아이는 그럴지 말지 결정하지 못해요. 그러다 결국 더 높이 기어오르고, 짜릿함을 느끼고, 다음번에는 더 높이 올라갑니다. 아니면 좀 더 높이 올라갔다가 너무 무서워서 울어버릴 수도 있죠··· 그래도 이제 그 아이는 꼭대기에 있습니다. 이것들이 전부 집중력의 중요한 형태입니다." - P379

리노어의 지적 멘토 중 한 명인 이저벨 벤키 박사는 칠레의 놀이 전문가다. 나와 스코틀랜드에서 만났을 때 그는 지금까지 나온 과학적 증거에 따르면 "놀이가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아동 발달의] 세 부분이 있으며, 그중 하나가 창의력과 상상력"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창의력과 상상력을 통해 문제를 생각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배운다. 두 번째 부분은 타인과 상호작용하고 어울리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사회적 유대"이며, 세 번째 부분은 즐거움과 기쁨을 경험하는 방법을 배우는 "살아 있다는 느낌"이다. 이저벨은 우리가 놀이를 통해 배우는 것들이 제대로 기능하는 인간이 되는 데 추가적으로 따라붙는 사소한 요인이 아니라 그것의 핵심이 라고 설명했다. 놀이는 견고한 인격의 토대가 되며, 이후에 어른들이 자리에 앉아 설명해주는 모든 것은 이 토대 위에 쌓인다. - P380

"오늘날의 어린 시절은 옛날과는 무척 달라요. 요즘 아이들은 성인기를 대비해줄 삶의 주고받기를 경험하지 못해요." 그 결과 아이들은 "문제를 겪지 않고,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는 짜릿함을 느끼지 못"한다. 어느 날 어바인 캘리포니아 대학의 인지과학 부교수인 바버라 사르네카 Barbara Sarnecka는 리노어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어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이게 너의 환경이야. 내가 이미 지도를 만들어놨어. 탐험은 그만둬.‘ 하지만 그건 유년기의 정의와 정반대되는 것이요." - P381

리처드와 에드는 동기가 외재적일 때(그래야만 해서, 또는 나중에 무언가를 얻으려고 그 행동을 할 때)보다 동기가 내재적일 때(자신에게 의미 있기 때문에 그 행동을 할 때) 더 잘 집중하고 지속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동기가 내재적일수록 집중력을 유지하기가 쉬워진다. - P383

동네를 배회하던 어린 리노어는 자신을 신나게 하는 것(독서, 글쓰기, 분장 놀이)을 알아내고 자신이 원할 때 그것을 할 자유가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자신이 축구나 암벽 타기, 작은 과학 실험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적어도 그것은 집중하는 법을 배우는 한 가지 방식이었다. 오늘날 이 방식은 아이들에게 차단되고 있다. 리노어는 이렇게 물었다. 다른 사람이 끊임없이 나의 주의력을 관리한다면 어떻게 주의력을 기를 수 있을까요? 무엇이 내 마음을 사로잡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집중력을 기르는 데 너무나도 중요한 자신의 내재적 동기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 P384

덴마크 오르후스의 심리학 교수인 얀 퇴네스방 jan Tonnesvang은 내게 본인이 ‘통달‘이라고 칭하는 감각, 즉 자신이 무언가에 능숙하다는 감각이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감각은 기본적인 심리 욕구다. 자신이 무언가를 잘한다고 느낄 때는 그 일에 집중하기가 훨씬 수월하고, 자신이 무능하다고 느낄 때는 집중력이 소금에 전 달팽이처럼 쪼그라든다. L.B.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현재 우리의 학교 제도가 너무 편협해서 수많은 아이들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끼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아이들의 학교 경험은 무능하다는 느낌으로 점철된다. 그러나 L.B.가 스스로 무언가를 통달할 수 있다고 (그것을 잘할 수 있다고) 느끼기 시작하자 L.B.의 집중력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 P391

우리의 학교들은 전만큼 아이들에게 운동을 시키지 않는다. 전만큼 놀게 하지도 않는다. 미친 듯이 시험을 쳐서 불안을 가중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내재적 동기를 찾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많은 학생에게 통달감, 즉 자신이 무언가를 잘한다는 감각을 기를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러는 내내 많은 교사가 학교를 이러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은 좋지 않다고 경고했지만, 정치인들은 학교 재정 지원을 이러한 흐름에 결부시켰다. - P396

해나는 나와 함께 학교 부지를 걸으며 규칙을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규칙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매일 있는 회의를 통해 학교의 모든 규칙을 만들고 투표에 부친다. 모두가 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낼 수 있고, 모두가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네 살부터 성인 직원에 이르는 모두가 똑같은 발언권과 똑같은 한 표를 갖는다. 학교는 지난 수년간 꼼꼼한 규칙을 만들어왔다. 그 규칙을 위반하다가 걸리면 모든 나이대의 학생을 대표하는 배심원단에게 재판을 받고, 배심원단이 처벌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 나뭇가지를 꺾으면 배심원단은 몇 주간 나무를 탈수 없다는 판결을 내릴 수 있다. 이 학교가 얼마나 민주적이냐면, 어린아이들도 매년 각 직원의 재계약을 결정하는 투표에 참여 한다. - P399

피터는 대부분의 인류 역사상 아이들이 서드베리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학습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렵채집 사회(진화의 측면에서는 그저께라 할 수 있는 시기까지 인류가 살았던 방식)의 아이들에 관해 지금까지 쌓인 증거를 연구했다." 수렵채집 사회의 아이들은 놀고, 배회하고, 어른을 모방하고, 질문을 엄청 많이 하며, 정식 교육을 별로 받지 않고도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유능해진다. 피터는 역사에서 예외는 서드베리가 아니라 현대의 학교라고 설명했다. 현대적 학교는 매우 최근인 1870년대에 고안된 것으로, 자리에 가만히 입 닥치고 앉아 시키는 일을 하도록 아이들을 훈련해 공장 노동을 준비시키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피터는 아이들이 호기심을 느끼고 자신이 처한 환경을 탐험하도록 진화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자연히 배우기를 원하고, 흥미로워 보이는 활동을 추구할 수 있을 때 자발적으로 학습한다. 아이들은 주로 자유롭게 놀면서 배운다. - P400

전 세계 성취도 평가표에서 종종 가장 훌륭한 학교들이 있다고 평가받는 국가인 핀란드가 이러한 진보적 모델에 가장 가깝다는 것이다. 핀란드의 아이들은 7세가 되기 전까지 아예 학교에 가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때까지 그냥 논다. 7세에서 16세 사이의 아이들은 오전 9시에 학교에 도착하고 오후 2시에 하교 한다. 숙제는 거의 없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시험도 거의 없다. 핀란드 아이들 삶의 고동치는 심장에는 자유로운 놀이가 있다. 법적으로 핀란드의 교사들은 45분 지도할 때마다 15분의 자유 놀이 시간을 줘야 한다. 그 결과는? 핀란드 어린이의 겨우
0.1퍼센트만이 집중력 문제를 진단받으며, 핀란드인은 세계에서 읽고 쓰는 능력과 산술 능력이 가장 뛰어나고 가장 행복한 사람들 중 하나다. - P404

어린이에게는 욕구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어른인 우리의 일이다. 이 문화에서 우리는 대체로 아이들의 욕구를 채워주지 않는다. 자유롭게 놀지 못하게 하고, 전자기기 화면으로 소통하는 것 외에는 별로 할 게 없는 집 안에 아이들을 가두며, 우리의 학교 제도는 대개 아이들을 무감각하고 지루하게 한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먹이는 음식은 에너지를 급격히 떨어뜨리고, 약물처럼 아이들을 들뜨게 할 수 있는 첨가제가 들었으며, 아이들에게 필요한 영양소는 없다. 우리는 뇌를 망가뜨리는 대기 속 화학물질에 아이들을 노출시킨다. 아이들이 집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것은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건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만든 이 세상의 잘못이다. - P405

나는 이렇게 묻는다. 지금 무엇을 해야 몰입 상태에 빠져들어 깊이 집중할 수 있는 능력에 가닿을 수 있을까? 미하이가 가르쳐준 몰입의 주 요소를 떠올리고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금 할 수 있는 유의미한 활동이 무엇일까? 무엇이 내 능력의 한계에 있을까? 어떻게 하면 지금 이 기준에 맞는 활동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몰입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 자기 처벌적인 수치심보다 훨씬 효과적임을 알게 되었다. - P414

나는 깊이 집중하는 능력이 식물과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집중력이 잘 자라서 잠재력을 온전히 피워내려면 특정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놀이가, 성인에게는 몰입이 필요하고, 책을 읽고, 자신이 집중하고 싶은 유의미한 활동을 찾고, 자기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생각이 배회할 공간을 마련하고, 신체 활동을 하고, 잘 자고, 뇌가 건강하게 발달할 수 있도록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고, 안정감을 느껴야 한다. 또한 우리의 집중력을 방해하고 성장을 막기 때문에 차단해야 할 것들도 있다. 지나친 속도와 전환, 지나친 자극, 우리를 공격하고 중독시키는 침략적 기술, 스트레스, 탈진, 우리를 각성시키는 식용색소로 범벅인 가공식품, 대기오염이 그러한 것들이다. - P420

어떤 국가의 경제가 성장하면 정치인들은 재당선될 가능성이 크다. 어떤 회사가 성장하면 CEO는 목에 화환을 걸 가능성이 크다. 어떤 국가의 경제나 어떤 기업의 주가가 위축되면 정치인이나 CEO는 쫓겨날 위험이 커진다. 경제성장은 우리 사회의 중심 원리다. 경제성장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의 핵심에 있다. - P428

하버드 의대에서 찰스 체이슬러가 한 말이 떠올랐다. 그는 우리 모두가 다시 전처럼 뇌와 몸이 필요로 하는 만큼 잔다면, "우리 경 제체제에 지진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경제체제는 잠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집중력 부진은 로드킬일 뿐이에요. 그저 사업의 대가죠." - P429

나의 친구인 런던 대학의 경제인류학자 제이슨 히켈Jason Hickel 박사는 아마 전 세계에서 경제성장 개념을 가장 강력히 비판하는 인물 중 한 명일 것이며, 그는 오래전부터 경제성장의 대안이 있음을 설명해왔다. 나와 만났을 때 제이슨은 우리가 성장 개념을 넘어 ‘평형 상태 경제 steady-state economy‘로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경제를 추동하는 원칙으로서의 경제성장을 포기하고 다른 종류의 목표를 선택하게 된다. 현재 우리는 녹초가 될 만큼 일해서 물건을 살 수 있으면(대부분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도 않는다) 번영을 누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제이슨은 우리가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자연에 머물거나, 충분히 자거나, 꿈꾸거나, 안정적인 일을 하는 것으로 번영의 의미를 재정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다수는 빠른 삶을 원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좋은 삶을 원한다. 죽기 직전에 자신이 경제성장에 기여한 바를 떠올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평형 상태 경제에서는 우리의 집중력을 공격하지 않고 지구 자원을 공격하지 않는 목표를 선택할 수 있다. - P429

시드니에 사는 친구가 화재경보기의 전원을 끌 수 있도록 전화 를 끊으며 생각했다. 우리의 주의력이 계속해서 파편화된다면, 생 태계는 우리가 집중력을 되찾을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생태계는 무너지고 불탈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을 때 영국의 시인 W. H. 오든 W.H. Auden은 인간이 발명한 새로운 파괴 기술을 바라보며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죽는다" 라고 경고했다. 나는 오늘날 우리가 함께 집중하지 않으면 이 산 불에 홀로 직면하게 되리라 믿는다. - P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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