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추구할 권리‘란 국가나 타인의 간섭이나 강요를 받지 않고 자기 삶의 주체가 되어 살아갈 권리를 의미 합니다. (행복할 권리‘와는 구분해야 합니다. 난 행복할 권리가 있으니 나를 행복하게 만들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 P151
요즘은 과거와 달리 죽음을 앞두고 병원에서 무리하게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를 하지 않도록 ‘나는 나의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라는 내용의 문서를 남길 수 있는 제도가 생겼습니 다. 존엄하게 자신의 죽음을 맞겠다는 결정도 자기운명결정권에 속하고, 이를 사회가 존중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운명결정권에는 사랑과 연애, 결혼과 임신, 출산, 성행위 여부 등을 스스로 결정하는 ‘성적자기결정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P152
성적자기결정권은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것이며, 원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입니다. 여러 선택 지 가운데 결정할 수 있어야 하고, 그중에 무엇을 선택할지 충분 한 시간적 • 심리적 여유를 갖도록 하는 것, 혹은 취소하고 거부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을 권리이기도 합니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하지 않도록 피임에 대해 정확히 알 권리, 동성애자이든 이성애자이든 양성애자이든 성적 지향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권리 등이 모두 성적자기결정권에 속합니다.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받았을 때 침해받은 이가 부끄러워하고 죄책감을 느낄 이유는 없습니다. 침해한 사람의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침해받는 일이 생긴다면 혼자 견디지 말고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문제 제기를 하면 됩니다. 믿을 만한 주위 사람과 상의하거나 경찰에 신고하는 등 보호를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일 역시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 P155
이 글에서는 장애인이라는 말과 대비하여 장애를 지니고 있지 않은 사람을 지칭할 때 ‘비장애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정상인‘이라는 용어를 무의식중에 많이 쓰지요. 정상인이라는 용어의 대칭어는 ‘비정상인‘입니다. 따라서 정상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경우 장애인은 비정상인이라는 말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렇다면 ‘일반인‘이라는 용어는 어떨까요? 국어사전 을 찾아보면 일반인이란 "1.특별한 지위나 신분을 갖지 아니하는 보통의 사람 2.어떤 일에 특별한 관계가 없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장애를 ‘특별한 지위나 신분‘이라고 우기지 않는다면, 그리고 장애인이 ‘어떤 일에 특별한 관계‘가 있는지 억지로 찾을 요량이 아니라면 일반인 역시 장애인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쓸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또한 장애를 지니지 않은 집단은 장애인을 먼저 정의한 후 그 정의에 해당 하지 않는 이들을, 가리키는 방식으로 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그러했고 현재도 마찬가지이지요. 따라서 장애인이라는 경계의 외부에 있는 사람들은 비장애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객관성이 확보된 용어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158
권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의 상황은 장애인에게 전혀 좋지 않습니다. 비장애인에 비해 여전히 네 배나 차별을 받고 있으니까요. 영국의 경우 2005년 저상버스 보급률(3월 말 기준)이 28퍼센트였 지만 불과 10년 만인 2015년에는 89퍼센트로, 2019년에는 99퍼 센트까지 끌어올리며 사실상 모든 버스를 저상버스로 바꾸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과 영국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관점의 차이죠. 저상버스는 단지 ‘장애인을 위한‘ 버스가 아닙니다. ‘누구도 차별받지 않도록‘ 만든 버스입니다.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 어린이, 임산부, 유모차를 끌고 나온 아빠와 엄마, 때로는 무거운 짐을 든 젊은 사람들까지 포함해 모두를 위한 버스라는 말이지요. 이러한 보편적 권리의 관점에서 장애인 이동권에 접근할 때, 교통약자법 제3조 "교통약자는 (…)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라는 이동권 조항은 공허한 선언이 아닌 하나의 실질적 권리로 우리 사회에 정착될 수 있을 것입니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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