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도착했을 때는 이런 식으로 일을 분배했지만, 작업이 진척되자 점점 더 짜증스럽고 끔찍해졌다. 가끔은 도무지 마음을 잡지 못해 며칠 동안이나 실험실에 들어가지 못할 때도 있었다. 또 어떤 때는 일을 마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작업하기도 했다. 참으로 더럽고 끔찍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첫 실험을 하던 시절에는 일종의 광적인 열의가 내 눈을 가려 이 끔찍한 일의 실체를 보지 못했다. 내 마음은 노동의 결과물에 철저히 못박혀 있었고, 내가 하는 일의 공포에는 눈을 감아버렸다. 그러나 이제 나는 차갑게 식은 피로 일에 임하고 있었고, 심장은 내 손이 하는 일에 구역질하는 일이 잦았다. - P222
내가, 나 자신을 위해서, 영원히 이어 질 후세에 이런 저주를 퍼부을 자격이 있는 것일까? 전에는 내가 창조한 존재의 궤변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 악마의 협박에 무너져 분별을 잃었다. 그러나 이제 처음으로 그 약속의 사악함이 내게 밀어닥치는 것이었다. 후대가 나를 종족의 역병과 같은 존재로 저주할 거라는 생각에 온몸이 떨렸다. 일신의 평안을 구하는 대가로 전 인류의 생존을 주저 없이 팔아버린 이기적인 인간으로. - P225
괴물은 내 얼굴에 떠오른 결의를 읽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분노에 차서 이를 갈았다. "모든 인간이 제 가슴에 품을 반려자를 맞고, 모든 짐승이 제 짝을 찾는데, 나만 혼자여야 한단 말인가? 내게도 사랑의 감정이 있었는데, 돌아온 건 혐오와 경멸뿐이었다. 인간아! 증오해도 좋다. 하지만 조심하라! 네 시간들은 공포와 불행 속에 흘러갈 것이며, 머지않아 번개가 떨어져 네 행복을 영영 앗아갈 것이다. 나는 참담한 극한의 불행 속에서 뒹구는데, 네놈은 행복할 거라 생각하느냐? 다른 열정들은 다 짓밟힌다 해도 복수심만은 남는다. 복수, 앞으로는 복수가 빛이나 양식보다 내게 더 소중한 것이 되리라! 나는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먼저 당신, 나의 독재자이자 고문관인 당신이 당신의 불행을 내려다보는 태양을 저주하도록 만들어주겠다. 조심하라. 나는 두려움이 없고, 그렇기에 강력하다. 뱀의 간교함으로 지켜볼 것이며, 뱀의 맹독으로 찌를 것이다. 인간아, 내게 입힌 이 상처를 끝내 후회하고야 말 것이다." - P228
우리 감정이란 얼마나 변덕스러우며, 이 참담한 불행의 극한에서도 끝내 놓지 못하는 목숨에 대한 애착이란 얼마나 기이한 것인가! - P233
어째서 나는 죽지 않았을까? 이 세상을 살아낸 그 어떤 인간보다 더 참담하게 불행했던 내가, 어째서 망각과 휴식 속으로 꺼져 들어가지 않았을까? 죽음은 맹목적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유일한 희망인 꽃 같은 어린아이들을 무수히 낚아채 가지 않는가. 얼마나 많은 신부들과 젊은 연인들이 건강과 희망의 절정에 섰다가 바로 다음날 묘지의 벌레들과 부패의 먹잇감이 되고 마는가 말이다! 대체 나는 어떤 물질로 만들어졌기에, 그 많은 충격들을 이렇게 다 견디고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수레바퀴가 돌아가듯 매번 생고문 같은 고통이 새롭기만 했는데. - P239
내 비탄과 우울은 지독히도 끈질겼지만, 아버지는 절망하지 않았다. 간혹 가다가 내가 살인 누명을 썼던 굴욕을 떨쳐내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자존심이란 얼마나 허망한지 모른다면서 날 일깨워주려 할 때도 있었다. "아! 아버지." 나는 말했다. "정말 저를 모르시는군요. 저처럼 형편없는 존재가 감히 자존심을 내세운다면 인간에게, 인간의 감정과 정념에 굴욕일 것입니다. 유스틴, 불쌍하고 운도 없는 유스틴은 저와 마찬가지로 죄가 없었지만, 똑같은 혐의를 뒤집어쓰고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그 죽음의 원인도 저란 말입니다. 제가 그애를 죽인 거예요. 윌리엄, 유스틴, 그리고 앙리, 다들 제 손에 죽은 거란 말입니다." - P251
기억은 광기를 수반했다. 지난 일을 생각하면 진짜로 광증이 나를 사로잡았다. 가끔은 맹렬하게 화를 내며 분노에 불타기도 하고, 가끔은 시무룩하게 우울증에 빠져 있기도 했다. 말도 않고 보지도 않고 나를 덮치는 수없는 불행에 멍하니 넋을 잃은 채 미동도 없이 앉아 있곤 했다. - P257
아! 불행한 사람이라면 체념도 좋겠지만, 죄인에게는 평화가 있을 수 없다. 과다한 슬픔에 허우적거리다보면 가끔 누릴 수 있는 감정의 사치는 회한의 고뇌에 쓰디쓴 독으로 변해버렸다. - P258
정해진 혼인 날짜가 가까워올수록, 비겁한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예감 때문이었는지 심장이 쿵쿵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즐거워 죽겠다는 얼굴로 내 감정을 감추었다. 이것이 아버지의 얼굴에는 미소와 기쁨을 가져다줄 수 있었지만, 항상 나를 지켜보는 훨씬 섬세한 엘리자베트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그녀는 우리의 결혼을 평온하고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기다렸으나, 과거의 불행이 새겨놓은 일말의 근심이 스며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지금 확실하고 구체적인 행복처럼 여겨지는 게 곧 헛된 꿈이 되어 흩어져버릴까봐, 그리하여 깊고 영원히 지울 수 없는 회한 외에는 아무 흔적도 남겨놓지 않고 사라질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 P259
인간의 정신에 급작스러운 격 변만큼 고통스러운 건 없다. 햇살이야 비칠 테고 구름이야 낮게 깔릴지 모르지만, 그 무엇도 하루 전날의 풍광을 되살려놓을 수는 없었다. 악마는 내게서 장래의 행복에 대한 마지막 희망까지 앗아가버렸다. 그 어떤 생물도 나만큼 비참했을 리가 없다. 이토록 소름 끼치게 무서운 사건은 인간 역사상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 P267
그들은 죽었고 나는 살았다. 그들을 죽인 살인자 역시 살아 있었고, 그를 파멸시키기 위해 나는 지쳐빠진 육신을 질질 끌고 가야만 한다. 풀밭에 무릎을 꿇고 땅바닥에 키스를 하며, 떨리는 입술로 외쳤다. "내가 무릎을 꿇은 신성한 대지에 걸고, 내 곁을 헤매는 혼령들에게 걸고, 지금 내가 느끼는 깊고 영원한 비탄에 걸고 맹세한다. 또한 그대, 오 밤이여, 그리고 그대를 지배하는 정령들에게 걸고, 이런 불행을 초래한 악마를 추적할 것을 맹세한다. 그 아니면 내가 치명적인 결투로 죽어갈 때까지. 이 목적을 위해서 나는 목숨을 부지할 테다. 이 값비싼 복수를 결행하기 위해서, 영영 눈앞에서 추방해버리려 했던 태양을 다시 한번 바라보고, 이 대지의 푸른풀을 또다시 밟을 테다. 죽은 자들의 영이여, 내가 그대들을 초혼한다. 방랑하는 복수의 집행자들이여, 나를 도와 안내해달라. 저주받은 지옥의 악마가 고뇌를 깊이 들이마시게 하라. 지금 나를 괴롭히는 절망을 그가 느끼게 하라." - P274
"클레르발을 죽인 후, 나는 슬픔에 무너지고 철저히 피폐해진 심장을 안고 스위스로 돌아갔다. 프랑켄슈타인이 불쌍했다. 공포심에 가까운 연민을 느꼈다. 나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그러나 내 존재와 그에 수반되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초래한 장본인이 감히 행복을 꿈꾸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내게는 비참과 절망을 쌓고 또 쌓아 안겨준 주제에 영영 금지된 감정과 열정을 누리려 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 무력한 질투와 쓰디쓴 분노가 나를 끔찍하게 허기진 복수심으로 가득 채우고 말았다. 내가 했던 협박을 기억해낸 나는 그대로 행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 자신에게 치명적인 고문 행위를 자초하는 짓임을 알고 있었으나, 나 자신은 충동적 본능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와 같아 혐오스러워하 면서도 순순히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막상 그녀가 죽었을 때! ······아니, 그때 나는 비참하지 않았다. 감정은 모두 훨훨 떨쳐버리고 고뇌는 모두 억누르고 흘러넘치는 절망을 만끽했다. 그후로 악은 나의 선이 되었다. 여기까지 몰리자, 이젠 자발적으로 선택했던 요소에 내 본성을 적응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악마적 계획의 완수가 도저히 충족되지 않는 열망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끝이 났다. 저기 내 마지막 희생자가 있으니!" - P298
그러나 내 불행에 공감해 주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어떤 공감도 내게는 있을 수 없으니까. 처음 공감을 구했을 때는 미덕에 대한 사랑에서, 내 온몸과 마음에서 흘러넘치던 행복과 사랑의 감정에서, 동참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랬다. 그러나 이제, 그때의 미덕은 내게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 되었고 행복과 애정은 쓰라리고 혐오스러운 절망으로 변해버렸으니, 이제 내가 무엇에 대한 공감을 구할까? 고통이 지속되더라도 혼자서 견뎌내는 데 나는 만족한다. 죽는다 해도, 혐오와 불명예가 기억을 짓누르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한때는 미덕과 명성과 기쁨의 꿈이 내 상상을 달래주었다. 한때는 이 외모를 용서하고 내가 풍기는 훌륭한 자질들을 사랑해줄 존재들과 만나고 싶다는 헛된 희망을 품었다. 명예와 헌신이라는 고아한 생각에서 자양분을 얻었다. 그러나 이제 죄악으로 가장 미천한 짐승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했다. 어떤 범죄도, 어떤 악행도, 어떤 악의도, 어떤 불행도 내가 겪은 것에는 비할 수 없다. 내가 저지른 끔찍한 짓 들을 하나씩 돌이켜보면, 한때 숭고하고 투명한 미와 위풍당당한 선의 비전으로 사고가 충만했던 존재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이다. 타락한 천사가 사악한 악마가 되는 법이다. 하지만 심지어 신과 인간의 원수에게조차 외로움을 함께할 친구와 동료가 있다. 나는 철저히 혼자다. - P300
전 인류가 내게 죄를 지었는데, 나만 유일한 범죄자라는 멍에를 써야 하는가? 어째서 당신은 자기 친구를 경멸하며 문간에서 몰아낸 펠릭스를 미워하지 않는가? 어째서 자기 아이를 구해준 은인을 죽이려 했던 시골 사람을 비난하지 않는가? 아니, 이 사람들은 덕스럽고 흠 없는 존재들이겠지! 불행하고 버려진 내가 추물이니, 당연히 면박당하고 발길에 차이고 짓밟혀 마땅하겠지. 심지어 지금도 이런 불의를 생각하면 피가 끓어오른다. - P301
당신은 나를 미워하겠지. 그러나 그 증오는 나 스스로 느끼는 혐오감에는 차마 비길 수도 없다. 나는 그 일을 집행한 손을 본다. 그런 상상을 처음 품었던 심장을 생각한다. 그들이 내 눈길과 마주치고 그 행위가 내 생각을 온통 사로잡을 그 순간만을 갈망한다. - P301
몇 년 전, 이 세계가 담은 심상들이 처음 내게 열렸을 때, 여름의 명랑한 온기를 느끼고 바스락거리는 잎사귀와 지저귀는 새 소리를 들었을 때, 그리고 내게 이들이 전부였을 때는 죽기 싫어 흐느꼈을 텐데. 죽음은 이제 내게 남은 유일한 위로다. 범죄에 더럽혀지고 쓰디쓴 회한에 갈기갈기 찢긴 내가 죽음이 아니라면 어디서 휴식을 찾겠는가? -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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