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가 포기하지 않는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이야말로 그가 비정상이라는 증거였다. 설사 그에게 불가능한 것을 해낼 수 있는—다섯 명을 한 번에 때려눕히는—능력이 있다손 치더라도 옆에 또다른 다섯 명이 대기하고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말이다. 그다음에도 또다른 다섯 명이 있고 그다음에도 또다른 다섯 명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 P178

레이철을 생각할 때면, 10미터 아래로 강을 두고 철로 다리를 건너던 그 경주에 대한 기억이 주로 떠오른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발을 디디는 곳을 보지 않았던, 아래 쪽에 무엇이 있는지 염두에조차 두지 않았던 우리의 대책 없음에, 우리의 눈먼 행동에 아직도 몸이 떨려온다. - P180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진행성 양쪽 귀 난청으로, 그 말은 태어날 때는 아무 이상이 없거나 한쪽 귀에만 문제가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양쪽 귀가 다 안 들리게 된다는 의미다. 어찌 보면 그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귀가 안 들리던 아이들, 자기들의 청력이 언젠가 회복될지도 모른다는 덧없는 희망을 품어본 적 없는 아이들보다 가르치기가 더 힘겹다. 그러나 이런 모습, 자기들이 읽는 단어 하나하나를 또렷하지 않은 발음으로나마 입 밖으로 내어보려고 무던히 애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는 이 아이들을 견디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어진다. - P183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린과 조지아를 알고 지내기 전부터 그들을 지켜보곤 했다. […] 그녀는 내가 밖에 나와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기나 했는지, 그녀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내게 한없는 위안이 되었음을 알기나 했는지, 나는 가끔 그런 것들이 궁금하다. - P185

델핀이 전에 만나던 연인과 계속해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신경쓰이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녀는 윙크를 하며 말한다. "허니. 나는 질투를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아. 내게 돌아오기만 하면 나는 상관하지 않아." 그리고 그녀가 눈을 굴리고 내 손을 토닥거리면서 이렇게 말 할 때 나는 그녀의 말을 믿는다. - P187

나는 가끔, 그녀가 인정하는 것 이상으로, 린이 우리의 가상 연인 관계를 즐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언제나 자기 아버지와의 저녁식사 자리가 곤혹스럽게 연기를 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의무라도 되는 양 행동하지만, 나는 그가 도착하기 직전의 며칠 동안만큼 그녀가 신나 있는 때를 알지 못한다. - P190

아이들과 관련된 뭔가가 린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아이들이 듣지 못한다는 사실과 관련된 뭔가가, 내 생각에는, 그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겁을 먹게 한다. 가끔씩 그녀는 낭송회에 와서 뒤쪽에 가만히 앉아 있지만, 한 번도 미소를 짓거나 박수를 치는 적이 없다.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앉아만 있다가 행사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간다. 그녀는 언젠가 내게,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어떻게 마음을 다독이며, 매일 그런 슬픔 곁에서 지낼 수 있느냐고. "당신은 그것 때문에 우울해지지 않아?" 그녀가 언젠가 내게 물었다.
"아뇨." 나는 말했다. "오히려 반대예요. 그건 나를 행복하게 하지요."
그러자 그녀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때에도 나는, 그녀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P195

이걸 읽을 계획이야?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게 그것을 내민다. 시는 길고 거의 읽을 수 없지만, 나는 처음 몇 줄은 알아볼 수 있다.
나는 부재하는 사람 / 목소리 없는 입
알아보기 힘들지만 나는 나머지 내용도 마저 읽는 척하고, 그런 다음 그에게 엄지손가락을 올려 보인다.
아름답다, 나는 수화를 한다.
"감사합니다." 그가 말한다. - P204

괜찮니?
네. 왜요?
슬퍼 보여서, 나는 수화를 한다.
그가 멈칫하더니 나를 보며 미소를 짓는다. "그렇군요." 그가 말한다. "선생님도 그래요." - P206

나를 떠나고 몇 주 뒤 로런은 내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다. […] 그녀가 우리의 "대화 단절"이라고 칭한 것에 이르기까지, 우리 관계에서 잘못되었던 모든 것을 상세히 열거하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내가 자기에게 소원했고 내가 내 생각에만 빠져 있었다고 나를 비난했다. 그녀는 내가 자기 말을 들으려는 노력을 한 적이 없고, 그저 나와 같이 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으며, 우리는 사실상 말을 하지 않고도 지낼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내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주지 않았으며, 그저 현재 상태에만 만족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내가 좀더 적극적이기를, 덜 수동적이기를 원했다고 했다. 그녀는 내가 자기처럼 무언가를 원하기를, 우리를 위한 미래를 그리기를 원했다고 했다. - P206

가끔씩 나는 내가 린 같았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을 때 그녀는 복수나 보복을 하려 들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일상을 이어나갔고, 그러다, 수차례의 카운 슬링과 대화 끝에 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깨져버렸던 거야, 그녀는 내게 말했다, 이미 깨져버린 걸 어떻게 도로 붙이겠어. 그러나 그녀에게 왜 화를 내지 않았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그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결혼을 깨는 것은 두 사람이야, 허니. 나는 그 두 사람 중 하나였고." - P208

이 순간 내게 중요한 것은, 그녀가 내게 허락하는 동안 그녀를 곁에 안고, 그곳에 린과 함께 서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우리 둘은 다만 멀리서 지켜본다. 호세의 입술을, 갑작스레 치몰리는 그의 이맛살을, 아무도 알지 못하는 언어를 말하여 자신을 둘러 싼 세계와 소통할 수 없는 한 소년을. - P215

어머니와 내가 지나고 있던, 침묵으로 가득찬 그와 같은 순간들이 그 집에서 보낸 나의 전 생애였다. 내게 줄곧 어머니는 근본적으로 슬픈 여인이었다. 어머니는 여러 면에서 아버지가 자신의 삶에 남긴 부재를 채우는 방법을 발견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 이 년 동안 집에는 우리 둘밖에 없었고, 나는 내가 숙제를 하는 동안 부엌에 함께 앉아 계시곤 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들 때마다 어머니는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나는 어머니의 눈을 보며 어머니가 전적으로 슬프다는 것을 언제나 알 수 있었다. 내 유년의 대부분 동안 어머니의 눈은 그러했는데, 지금의 어머니의 눈이 또 그랬다—어머니의 눈은 자신의 삶에 기쁨보다는 실망이 훨씬 많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 P228

나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누나 편을 들어주지 않은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누나의 논리를 항상 이해하는 척해줄 수는 없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누나의 기분을, 그 변덕스러운 기질을, 누나의 갑작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분노를 이해하게는 됐다. 그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세월이 지나면서 천천히 누나의 마음속에서 자라난 것이었다. 가꾸기 힘든 씨앗, 우리 가족의 상담 치료사는 그걸 그렇게 불렀다.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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