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울에 도착하자 디건은 평소처럼 천국으로 연기를 뿜는 자기 집을 보며 반가움을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천국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디건은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는 이 세상너머에 아무것도 없음을 안다. 신은 한 남자가 자기 아내와 땅을 다른 남자로부터 안전하게 떼어놓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러나 디건은 항상 미사에 참석한다. 그는 이웃의 평판이 어떤 힘을 갖는지 알기 때문에 일요일 미사에 빠졌다는 소문이 퍼지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을이다. 마당에서 갈색 오크 나무 잎이 경련하듯 바스락거린다. 녹초가 된 디건은 처음 눈에 띈 아이에게 개를 준다. 우연히도 그 아이가 바로 막내이고, 우연히도 그날이 딸의 생일이다. - P94
그렇게 해서 아버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들어본 적 없는 딸은 리트리버를 끌어안으며 디건이 어쨌든 딸을 사랑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도 같이 받아들인다. 순진하면서도 직감이 뛰어난 꾀 많은 딸이 노란 원피스를 입고 서서 디건에게 생일 선물을 주어 고맙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듣자 디건은 왠지 가슴이 아프려고 한다. 어쨌거나 딸아이도 사람이다. - P95
저지는 새로운 침대에서 몸을 굴려 등을 대고 누워서 식탁 밑 서랍장을 바라본다. 이 집은 좀 다르지만 디건은 기회가 생기자마자 개를 팔 것이다. 여자 쪽은 이해가 된다. 자기 새끼를 보호하려는 암컷일 뿐이다. 제일 큰 애는 혼자 조용히 지낸다. 가운데 아이한테서는 한 번도 맡은 적 없는 냄새가 난다. 돼지 풀에 가까운, 동물보다 식물에 가까운 냄새다. 뭔가를 묻으려고 땅을 파면 나오는 뿌리처럼 말이다. 낯선 곳에서 저지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힘을 다해 잠과 싸우지만 부엌의 어둠과 난로의 열기는 지금까지 알던 그 어떤 안락함과도 다르고, 깨어 있으려는 의지가 곧 흔들린다. 저지는 자면서 두 번째 젖꼭지에서 젖을 찾는 꿈을 다시 꾼다. 저지의 어미는 티나헬리 쇼에서 우승한 리트리버였다. 어미는 저지를 깨끗이 핥아주고, 개울을 건네주고, 저지가 자기 새끼인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 P99
다음 날 아침, 자는 시간이 불규칙한 모자란 아이가 제일 먼저 일어난다. 저지는 잠에서 깨 기지개를 켜고 아이를 따라 헛간으로 간다. 둘은 마른 장작을 같이 나르고, 아이는 저지가 기대하는 것을 알고 불을 피우려고 최선을 다한다. 아이가 어제 타고 남은 재에 장작을 넣고 후후 분다. 재 때문에 둘의 얼굴이 잿빛이 될 때까지 분다. 아래층으로 내려온 여자애는 오빠를 보고 비웃지 않는다. 그저 무릎을 꿇고 선생님 같은 목소리로 불을 어떻게 피우는지 가르쳐줄 뿐이다. 여자애는 남은 일요일 신문을 구기고 마른 장작을 쌓은 다음 성냥을 켠다. 남자애가 그 모습을 보며 흥미를 느낀다. 기묘한 파란색 불꽃이 점점 커지면서 변하더니 어느 순간 불이 된다. 남자애는 그 과정의 무언가 때문에 기분이 좋아져서 감탄한다. 아이는 감탄하는 재주가 있다. 다른 사람은 일상적인 일이라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흔한 것들에서 크나큰 중요성을 본다. - P99
그녀는 배신자가 된 기분으로 아침 식사를 준비하러 성큼성큼 걸어간다. 그녀는 아침이면 종종 배신자가 된 기분이 든다. 남편과 애들이 빨리 나가면 좋겠다. 그녀는 항상 마음 한구석으로 생각이 차분하게 가라앉고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고독을 갈망한다. - P101
마사는 뜨거운 팬 속에서 달걀이 하얗게 단단해지는 것을 본다. 그녀는 절대 달걀을 먹을 수가 없었다. 오늘 아침에도 마사는 양의 간이나 콩팥이 먹고 싶다. 그녀는 항상 그런 음식을 좋아했지만 디건은 먹으려 하지 않았다. 이웃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디건 가족은 항상 제일 좋은 것만 먹었고, 그는 아내가 정육점에서 간을 주문하는 모습을 절대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마사는 어느 화요일에 앞치마를 두른 채로 다른 남자와 결혼했으면 좋았을걸 하고 생각한다. 정육점에 가서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사 오는 남자, 이웃의 생각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아마도 더블린 출신의 남자와 말이다. 팬이 지글지글 소리를 내자 마사가 밖으로 나가서 최대한 큰 소리로 외친다.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절망이 저 아래 아하울의 계곡까지 전해지고, 계곡이 그녀의 말을 돌려보낸다. - P102
저지는 자기가 말을 못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사람들은 입만 열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없는 말을 한다. 자기의 말에 자기가 슬퍼한다. 왜 말을 멈추고 서로 안아주지 않을까? 여자가 울고 있다. 저지가 그녀를 핥는다. 손가락에 기름과 버터가 묻어 있다. 그 아래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냄새는 남편의 냄새와 다르지 않다. 저지가 손을 깨끗하게 핥자 마사는 개를 쫓아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그 마음은 어제의 것이다. 이제 그것 역시 그녀가 절대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일이 되었다. - P103
잠에서 깬 그가 창가로 가서 오크 나무를 내다보니 늘 그렇듯 어둠 속에 서 있다. 디건은 수염을 긁으며 꿈을 되새긴다. 이제 꿈을 꾸는 것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에 가장 가까운 일이 되었다. 아내를 보니 파리한 가슴이 얇은 면 잠옷에 짓눌린 채 깊이 잠들었다. 그는 마사를 깨워서 당장 꿈 이야기를 하고 싶다. 가끔 그는 그녀를 멀리 데리고 가서 마음을 전부 털어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 - P107
"아깝게." 디건이 이렇게 말하고 고개를 젓는다. "샐리랑 펀을 먹어야 할 정도로 쪼들리는 건 아니잖아. 당신이 파내서 먹든가. 소스는 내가 만들게." "결혼하고 지금까지 소스 같은 거 만든 적 없잖아." "그거 알아, 빅터 디건? 당신도 만든 적 없어." - P111
잠이 덜 깬 마사는 "내가 당신을 왜 떠나겠어?"라고 말하고 돌아눕는다. 디건이 몸을 쭉 편다. 정말 이상한 말이다. 그는 아내가 자기를 떠나리라 생각한 적도 없고, 아내가 그런 마음을 품었으리라 생각한 적도 없다. 오늘 밤은 집 자체가 이상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마사가 심은 장미가 벽을 타고 올라 바람이 불면 창문을 두드린다. 계단에서 물 같은 녹색 그림자가 떨린다. 그는 불안한 마음으로 술을 한 잔 마시러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언젠가는 다 끝난다. 토지 문서를 돌려받으면 철제 상자를 사서 오크 나무 밑에 묻을 생각이다. 아하울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면 그의 미래는 풍족할 것이다. 그의 아이들을 낳아준 마사는 때로 B&B에서 밤을 보내고 새 옷을 사면서 행복하게 지낼 것이다. 두 사람은 아일랜드 서부를 여행할 것이고, 그녀는 아침으로 간과 양파를 먹으리라. 그들은 다시 따뜻한 해변을 걸을테고 디건은 발밑의 모래를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 P112
인생의 많은 것들이 그렇듯 둘째 아들은 실망스러웠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연다. 하늘은 맑고 달은 계속 모습을 바꾼다. 올해의 호랑가시나무는 베리 때문에 빨갛다. 그는 힘든 한 해를 점치며 커튼을 다시 닫는다. 그릇장에 놓인 딸의 새 연습장 표지에 이름이 깔끔하게 적혀 있다. 빅토리아 디건. 딸아이의 이름을 보면 뿌듯하다. 자기 이름과도 아주 비슷하다. 서늘함이 등줄기를 타고 오른다. 그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난 당신을 떠나지 않아 라던 마사의 말을 생각한다. - P114
1월이 되자 더블린의 가게들이 할인 판매를 한다며 광고한다. 마사는 버스를 타고 오코넬 스트리트로 가지만 가게 근처에는 가지 않는다. 그녀는 클러리스 백화점을 지나 리피강을 건너서 결국 돌리어 스트리트의 영화관에 가서 사탕을 먹고 스크린에 미국으로 떠난 아일랜드 소녀의 비극이 흘러나오는 동안 엉엉 운다. 마사는 막대 사탕을 사서 첫째를 데리고 돌아 오고, 떠나겠다는 환상에서 깨어난다. 어디로 갈까? 돈은 어떻게 벌까? 그녀는 "아는 악마가 낫다"라는 표현을 기억해 내고 변덕을 부린다. 디건은 그녀가 갱년기라는 결론을 내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는 아내가 상당히 두려워졌고, 다정함을 느끼고 싶어서 종종 무릎에 딸을 앉힌다. - P115
디건은 길을 따라 미끄러지듯 내려가는 후미등을 바라보면서 노란 원피스를 입은 딸이 고맙다고 말하던 모습을 떠올리지 않으려 애쓴다. 자기 무릎에 앉은 딸을 생각하지 않으려 애쓴다. 그는 상관없다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고 혼잣 말을 한다. 디건이 집으로 들어가려고 돌아서는데 위에서 무언가가 움직인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잠옷 차림의 마사가 침실 창가에 서서 지켜보고 있다. 그녀가 손을 들자 디건이 깜짝 놀라 같이 손을 든다. 어쩌면 그녀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개가 없어져서 좋은지도 모른다. 그가 거기 서서 지켜보고 있으려니 아내의 손이 주먹으로 바뀌고 주먹이 흔들린다. 그렇다. 모든 것이 밝혀진다. - P118
여자애가 밖으로 달려 나가 개의 이름을 부른다. 숨을 만한 장소를 전부 뒤진다. 저지가 뼈다귀를 묻는 자리, 건초 헛간의 굴, 꿩의 잠자리가 있는 개암나무 뒤 덤불. 아이는 계속 찾아다니지만 결국 저지가 가버렸다는 사실이 마음에 새겨지고, 그에 따라 마음도 바뀐다. 어차피 아버지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 아이는 떠나겠다고 마음먹지만 학교도 가지 못한다. 아이는 겨우 참새 모이만큼만 먹고, 일주일 뒤부터는 말을 아예 하지 않는다. 저녁마다 자전거를 타고 나가서 개의 이름을 외치고 다닌다. - P119
"저지! 저지!"라는 소리가 교구 전체에서 들린다."저지!" 디건은 아이가 살짝 정신이 나갔음을 알지만 극복할 것이다. 시간문제일 뿐이다. 아하울의 다른 모든 것은 거의 변함이 없다. - P119
마사는 그날 아침 숲에서 저지에게 돌을 던지는 자기 모습을 본다. 저지는 꼬리를 다리 사이로 숨기고 도망친다. 저지가 뒤를 돌아보자 마사는 미안해지지만, 그녀는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 인생의 너무나 많은 부분이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녀가 토스트에 치즈를 올려 굽지만 딸은 먹으려 하지 않는다. 마사가 딸의 침대에 앉아서 다른 개를 데려오자고, 딸의 것이 될 작은 강아지를, 사랑할 수 있는 개를 데려오자고 말하며 달랜다. "신문을 봐봐. 실레일리 외곽에서 한 배에서 난 강아지들을 판대. 짐 멀린스의 강아지야. 네가 사랑에 빠질 만한–" "엄마가 사랑에 대해서 뭘 알아요?" 이 말이 그녀의 가슴을 때린다. "나도 사랑을 알아." 마사가 우긴다. "엄마는 아빠를 사랑하지도 않잖아요. 엄마가 신경 쓰는 건 돈밖에 없잖아요." - P120
마사는 디건이 가진 제일 좋은 접시에 타르트와 케이크를 잔뜩 담아서 나눠 준다. 디건은 그녀가 연기 중임을 깨닫는다. 연기가 정말 대단하다. 매일 이렇게 먹진 않는다고 누가 생각이나 할까? 소들이 울타리 대문으로 몰려와서 들여보내 달라며 큰 소리로 울지만 디건은 움직일 수가 없다. 몸속의 모든 것이 그에게 일어나라고 말하지만 호기심이 상식을 이긴다. 그가 다리를 꼬다가 저지의 낡은 침대에 앉아서 주의를 기울이던 둘째를 실수로 걷어찬다. "미안." 디건이 말한다. 그 목소리에 이웃 사람들이 그의 존재를 기억해 내고 고개를 돌린다. - P123
"세상에, 저렇게 이야기를 잘 푸는 사람은 없다니까요." "조금만 조르면 돼요." "아, 아니에요." 마사가 잔에 남은 술을 삼킨다. 오늘 밤 그녀는 술이 필요하다. 마사의 어머니는 자기 아버지 쪽에 집시의 피가 섞여 있다고, 집시의 피 때문에 길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늘 말했다. 그녀도 몇 번인가 집시로 오해받은 적이 있었다. 마음을 가라앉힌 그녀는 무슨 이야기를 할지 이미 알고 있다. 정확히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정하기만 하면 된다. - P125
마사가 그들이 앉아 있는 부엌에 신경을 집중시킨다. 그녀는 가끔 이런 무서운 면이 있었다. 그녀가 자기 발을 내려다보며 집중한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냄새를 찾아야 한다. 모든 이야기는 독특한 냄새가 있다. 그녀는 장미로 정한다. "음, 어쩌면 이런 이야기는 할 수 있겠네요." 디건의 아내가 머리카락을 넘기고 입술을 축인다. "이제 시작이군!" 데이비스가 손을 문지른다. 마사는 좌중이 조용해질 때까지 다시 기다린다. 말이 어떻게 나올지 그녀도 전혀 모르지만 이야기는 거기에 있다. 그녀가 할 일은 그것을 그러모아 적당한 말을 찾는 것뿐이다. - P125
음, 이 여자, 모나는 그의 청혼을 받아들였어요. 그녀는 이 남자와 결혼해서 그의 농장에 살러 갔죠. 남자의 이야기만 들었을 때는 대저택일 줄 알았는데 집 안으로 들어가 보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 낡은 집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말은 축축하지 않다는 것밖에 없었거든요. 놀란은 소도 있고 착유장도 있었지만 가구는 나무좀투성이였고 굴뚝에는 까마귀가 둥지를 틀고 있었어요. 모나는 집을 치우려고 무척 애를 썼지만 틀니 두 쌍과 숟가락이 같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는 포기했어요. 결혼식 날 밤에는 매트리스에서 대죄처럼 튀어나온 스프링이 느껴졌어요. 어떤 날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울음을 참는 것밖에 없었죠.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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