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울에 도착하자 디건은 평소처럼 천국으로 연기를 뿜는 자기 집을 보며 반가움을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천국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디건은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는 이 세상너머에 아무것도 없음을 안다. 신은 한 남자가 자기 아내와 땅을 다른 남자로부터 안전하게 떼어놓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러나 디건은 항상 미사에 참석한다. 그는 이웃의 평판이 어떤 힘을 갖는지 알기 때문에 일요일 미사에 빠졌다는 소문이 퍼지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을이다. 마당에서 갈색 오크 나무 잎이 경련하듯 바스락거린다. 녹초가 된 디건은 처음 눈에 띈 아이에게 개를 준다. 우연히도 그 아이가 바로 막내이고, 우연히도 그날이 딸의 생일이다. - P94

그렇게 해서 아버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들어본 적 없는 딸은 리트리버를 끌어안으며 디건이 어쨌든 딸을 사랑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도 같이 받아들인다. 순진하면서도 직감이 뛰어난 꾀 많은 딸이 노란 원피스를 입고 서서 디건에게 생일 선물을 주어 고맙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듣자 디건은 왠지 가슴이 아프려고 한다. 어쨌거나 딸아이도 사람이다. - P95

저지는 새로운 침대에서 몸을 굴려 등을 대고 누워서 식탁 밑 서랍장을 바라본다. 이 집은 좀 다르지만 디건은 기회가 생기자마자 개를 팔 것이다. 여자 쪽은 이해가 된다. 자기 새끼를 보호하려는 암컷일 뿐이다. 제일 큰 애는 혼자 조용히 지낸다. 가운데 아이한테서는 한 번도 맡은 적 없는 냄새가 난다. 돼지 풀에 가까운, 동물보다 식물에 가까운 냄새다. 뭔가를 묻으려고 땅을 파면 나오는 뿌리처럼 말이다. 낯선 곳에서 저지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힘을 다해 잠과 싸우지만 부엌의 어둠과 난로의 열기는 지금까지 알던 그 어떤 안락함과도 다르고, 깨어 있으려는 의지가 곧 흔들린다. 저지는 자면서 두 번째 젖꼭지에서 젖을 찾는 꿈을 다시 꾼다. 저지의 어미는 티나헬리 쇼에서 우승한 리트리버였다. 어미는 저지를 깨끗이 핥아주고, 개울을 건네주고, 저지가 자기 새끼인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 P99

다음 날 아침, 자는 시간이 불규칙한 모자란 아이가 제일 먼저 일어난다. 저지는 잠에서 깨 기지개를 켜고 아이를 따라 헛간으로 간다. 둘은 마른 장작을 같이 나르고, 아이는 저지가 기대하는 것을 알고 불을 피우려고 최선을 다한다. 아이가 어제 타고 남은 재에 장작을 넣고 후후 분다. 재 때문에 둘의 얼굴이 잿빛이 될 때까지 분다. 아래층으로 내려온 여자애는 오빠를 보고 비웃지 않는다. 그저 무릎을 꿇고 선생님 같은 목소리로 불을 어떻게 피우는지 가르쳐줄 뿐이다. 여자애는 남은 일요일 신문을 구기고 마른 장작을 쌓은 다음 성냥을 켠다. 남자애가 그 모습을 보며 흥미를 느낀다. 기묘한 파란색 불꽃이 점점 커지면서 변하더니 어느 순간 불이 된다. 남자애는 그 과정의 무언가 때문에 기분이 좋아져서 감탄한다. 아이는 감탄하는 재주가 있다. 다른 사람은 일상적인 일이라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흔한 것들에서 크나큰 중요성을 본다. - P99

그녀는 배신자가 된 기분으로 아침 식사를 준비하러 성큼성큼 걸어간다. 그녀는 아침이면 종종 배신자가 된 기분이 든다. 남편과 애들이 빨리 나가면 좋겠다. 그녀는 항상 마음 한구석으로 생각이 차분하게 가라앉고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고독을 갈망한다. - P101

마사는 뜨거운 팬 속에서 달걀이 하얗게 단단해지는 것을 본다. 그녀는 절대 달걀을 먹을 수가 없었다. 오늘 아침에도 마사는 양의 간이나 콩팥이 먹고 싶다. 그녀는 항상 그런 음식을 좋아했지만 디건은 먹으려 하지 않았다. 이웃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디건 가족은 항상 제일 좋은 것만 먹었고, 그는 아내가 정육점에서 간을 주문하는 모습을 절대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마사는 어느 화요일에 앞치마를 두른 채로 다른 남자와 결혼했으면 좋았을걸 하고 생각한다. 정육점에 가서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사 오는 남자, 이웃의 생각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아마도 더블린 출신의 남자와 말이다.
팬이 지글지글 소리를 내자 마사가 밖으로 나가서 최대한 큰 소리로 외친다.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절망이 저 아래 아하울의 계곡까지 전해지고, 계곡이 그녀의 말을 돌려보낸다. - P102

저지는 자기가 말을 못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사람들은 입만 열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없는 말을 한다. 자기의 말에 자기가 슬퍼한다. 왜 말을 멈추고 서로 안아주지 않을까? 여자가 울고 있다. 저지가 그녀를 핥는다. 손가락에 기름과 버터가 묻어 있다. 그 아래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냄새는 남편의 냄새와 다르지 않다. 저지가 손을 깨끗하게 핥자 마사는 개를 쫓아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그 마음은 어제의 것이다. 이제 그것 역시 그녀가 절대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일이 되었다. - P103

잠에서 깬 그가 창가로 가서 오크 나무를 내다보니 늘 그렇듯 어둠 속에 서 있다. 디건은 수염을 긁으며 꿈을 되새긴다. 이제 꿈을 꾸는 것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에 가장 가까운 일이 되었다.
아내를 보니 파리한 가슴이 얇은 면 잠옷에 짓눌린 채 깊이 잠들었다. 그는 마사를 깨워서 당장 꿈 이야기를 하고 싶다. 가끔 그는 그녀를 멀리 데리고 가서 마음을 전부 털어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 - P107

"아깝게." 디건이 이렇게 말하고 고개를 젓는다.
"샐리랑 펀을 먹어야 할 정도로 쪼들리는 건 아니잖아. 당신이 파내서 먹든가. 소스는 내가 만들게."
"결혼하고 지금까지 소스 같은 거 만든 적 없잖아."
"그거 알아, 빅터 디건? 당신도 만든 적 없어." - P111

잠이 덜 깬 마사는 "내가 당신을 왜 떠나겠어?"라고 말하고 돌아눕는다.
디건이 몸을 쭉 편다. 정말 이상한 말이다. 그는 아내가 자기를 떠나리라 생각한 적도 없고, 아내가 그런 마음을 품었으리라 생각한 적도 없다. 오늘 밤은 집 자체가 이상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마사가 심은 장미가 벽을 타고 올라 바람이 불면 창문을 두드린다. 계단에서 물 같은 녹색 그림자가 떨린다. 그는 불안한 마음으로 술을 한 잔 마시러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언젠가는 다 끝난다. 토지 문서를 돌려받으면 철제 상자를 사서 오크 나무 밑에 묻을 생각이다. 아하울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면 그의 미래는 풍족할 것이다. 그의 아이들을 낳아준 마사는 때로 B&B에서 밤을 보내고 새 옷을 사면서 행복하게 지낼 것이다. 두 사람은 아일랜드 서부를 여행할 것이고, 그녀는 아침으로 간과 양파를 먹으리라. 그들은 다시 따뜻한 해변을 걸을테고 디건은 발밑의 모래를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 P112

인생의 많은 것들이 그렇듯 둘째 아들은 실망스러웠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연다. 하늘은 맑고 달은 계속 모습을 바꾼다.
올해의 호랑가시나무는 베리 때문에 빨갛다. 그는 힘든 한 해를 점치며 커튼을 다시 닫는다. 그릇장에 놓인 딸의 새 연습장 표지에 이름이 깔끔하게 적혀 있다. 빅토리아 디건. 딸아이의 이름을 보면 뿌듯하다. 자기 이름과도 아주 비슷하다. 서늘함이 등줄기를 타고 오른다. 그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난 당신을 떠나지 않아 라던 마사의 말을 생각한다. - P114

1월이 되자 더블린의 가게들이 할인 판매를 한다며 광고한다. 마사는 버스를 타고 오코넬 스트리트로 가지만 가게 근처에는 가지 않는다. 그녀는 클러리스 백화점을 지나 리피강을 건너서 결국 돌리어 스트리트의 영화관에 가서 사탕을 먹고 스크린에 미국으로 떠난 아일랜드 소녀의 비극이 흘러나오는 동안 엉엉 운다. 마사는 막대 사탕을 사서 첫째를 데리고 돌아 오고, 떠나겠다는 환상에서 깨어난다. 어디로 갈까? 돈은 어떻게 벌까? 그녀는 "아는 악마가 낫다"라는 표현을 기억해 내고 변덕을 부린다. 디건은 그녀가 갱년기라는 결론을 내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는 아내가 상당히 두려워졌고, 다정함을 느끼고 싶어서 종종 무릎에 딸을 앉힌다. - P115

디건은 길을 따라 미끄러지듯 내려가는 후미등을 바라보면서 노란 원피스를 입은 딸이 고맙다고 말하던 모습을 떠올리지 않으려 애쓴다. 자기 무릎에 앉은 딸을 생각하지 않으려 애쓴다. 그는 상관없다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고 혼잣 말을 한다. 디건이 집으로 들어가려고 돌아서는데 위에서 무언가가 움직인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잠옷 차림의 마사가 침실 창가에 서서 지켜보고 있다. 그녀가 손을 들자 디건이 깜짝 놀라 같이 손을 든다. 어쩌면 그녀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개가 없어져서 좋은지도 모른다. 그가 거기 서서 지켜보고 있으려니 아내의 손이 주먹으로 바뀌고 주먹이 흔들린다. 그렇다. 모든 것이 밝혀진다. - P118

여자애가 밖으로 달려 나가 개의 이름을 부른다. 숨을 만한 장소를 전부 뒤진다. 저지가 뼈다귀를 묻는 자리, 건초 헛간의 굴, 꿩의 잠자리가 있는 개암나무 뒤 덤불. 아이는 계속 찾아다니지만 결국 저지가 가버렸다는 사실이 마음에 새겨지고, 그에 따라 마음도 바뀐다. 어차피 아버지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 아이는 떠나겠다고 마음먹지만 학교도 가지 못한다. 아이는 겨우 참새 모이만큼만 먹고, 일주일 뒤부터는 말을 아예 하지 않는다. 저녁마다 자전거를 타고 나가서 개의 이름을 외치고 다닌다. - P119

"저지! 저지!"라는 소리가 교구 전체에서 들린다."저지!" 디건은 아이가 살짝 정신이 나갔음을 알지만 극복할 것이다. 시간문제일 뿐이다. 아하울의 다른 모든 것은 거의 변함이 없다. - P119

마사는 그날 아침 숲에서 저지에게 돌을 던지는 자기 모습을 본다. 저지는 꼬리를 다리 사이로 숨기고 도망친다. 저지가 뒤를 돌아보자 마사는 미안해지지만, 그녀는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 인생의 너무나 많은 부분이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녀가 토스트에 치즈를 올려 굽지만 딸은 먹으려 하지 않는다. 마사가 딸의 침대에 앉아서 다른 개를 데려오자고, 딸의 것이 될 작은 강아지를, 사랑할 수 있는 개를 데려오자고 말하며 달랜다.
"신문을 봐봐. 실레일리 외곽에서 한 배에서 난 강아지들을 판대. 짐 멀린스의 강아지야. 네가 사랑에 빠질 만한–"
"엄마가 사랑에 대해서 뭘 알아요?"
이 말이 그녀의 가슴을 때린다. "나도 사랑을 알아." 마사가 우긴다.
"엄마는 아빠를 사랑하지도 않잖아요. 엄마가 신경 쓰는 건 돈밖에 없잖아요." - P120

마사는 디건이 가진 제일 좋은 접시에 타르트와 케이크를 잔뜩 담아서 나눠 준다. 디건은 그녀가 연기 중임을 깨닫는다. 연기가 정말 대단하다. 매일 이렇게 먹진 않는다고 누가 생각이나 할까? 소들이 울타리 대문으로 몰려와서 들여보내 달라며 큰 소리로 울지만 디건은 움직일 수가 없다. 몸속의 모든 것이 그에게 일어나라고 말하지만 호기심이 상식을 이긴다. 그가 다리를 꼬다가 저지의 낡은 침대에 앉아서 주의를 기울이던 둘째를 실수로 걷어찬다.
"미안." 디건이 말한다.
그 목소리에 이웃 사람들이 그의 존재를 기억해 내고 고개를 돌린다. - P123

"세상에, 저렇게 이야기를 잘 푸는 사람은 없다니까요."
"조금만 조르면 돼요."
"아, 아니에요." 마사가 잔에 남은 술을 삼킨다. 오늘 밤 그녀는 술이 필요하다. 마사의 어머니는 자기 아버지 쪽에 집시의 피가 섞여 있다고, 집시의 피 때문에 길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늘 말했다. 그녀도 몇 번인가 집시로 오해받은 적이 있었다. 마음을 가라앉힌 그녀는 무슨 이야기를 할지 이미 알고 있다. 정확히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정하기만 하면 된다. - P125

마사가 그들이 앉아 있는 부엌에 신경을 집중시킨다. 그녀는 가끔 이런 무서운 면이 있었다. 그녀가 자기 발을 내려다보며 집중한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냄새를 찾아야 한다. 모든 이야기는 독특한 냄새가 있다. 그녀는 장미로 정한다.
"음, 어쩌면 이런 이야기는 할 수 있겠네요."
디건의 아내가 머리카락을 넘기고 입술을 축인다.
"이제 시작이군!" 데이비스가 손을 문지른다.
마사는 좌중이 조용해질 때까지 다시 기다린다. 말이 어떻게 나올지 그녀도 전혀 모르지만 이야기는 거기에 있다. 그녀가 할 일은 그것을 그러모아 적당한 말을 찾는 것뿐이다. - P125

음, 이 여자, 모나는 그의 청혼을 받아들였어요. 그녀는 이 남자와 결혼해서 그의 농장에 살러 갔죠. 남자의 이야기만 들었을 때는 대저택일 줄 알았는데 집 안으로 들어가 보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 낡은 집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말은 축축하지 않다는 것밖에 없었거든요. 놀란은 소도 있고 착유장도 있었지만 가구는 나무좀투성이였고 굴뚝에는 까마귀가 둥지를 틀고 있었어요. 모나는 집을 치우려고 무척 애를 썼지만 틀니 두 쌍과 숟가락이 같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는 포기했어요. 결혼식 날 밤에는 매트리스에서 대죄처럼 튀어나온 스프링이 느껴졌어요. 어떤 날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울음을 참는 것밖에 없었죠.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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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피투성이 연인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0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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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의도적인 열정이 아니듯, 환멸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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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그를 집으로 초대했다. 당신이 감자튀김을 가져오면 내가 불을 피우고 주전자를 올릴게요. 그들은 타오르는 난로 앞에서 저녁을 먹었다. 식탁에 노란 식탁보가 깔려 있었다. 그녀가 고리버들 매트를 깔고 소금과 후추, 따뜻한 접시를 내놓았다. 포크와 나이프가 은빛으로 반짝였다. 그녀의 침실에는 디오더런트 향기가 맴돌았고 작은 촛불이 켜져 있었다. 커튼 너머로 전조등 불빛이 지나갔다. 새벽에 그가 잠에서 깨보니 그녀가 그의 가슴에 손을 얹고 잠들어 있었다. 당시 그는 레이든 밑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날 아침, 그는 중심가로 가서 우유와 얇게 저민 햄을 샀고, 남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 P74

"신경 쓰지 마." 그가 말한다. "무슨 상관이겠어. 우리가 죽어 없어진 뒤에도 땅은 그대로 남아 있을 거야. 우리야 땅을 빌려 쓰는 것밖에 더 돼?" - P76

"누구든 무슨 말을 못 하겠어, 그냥 하는 말이지–"
"내가 밖으로 나가서 대문을 열고 말을 쫓아냈어요." 브래디가 말한다. "그녀가 기회를 한 번 더 줬지만 예전 같지 않았죠. 예전과 전혀 달랐어요."
"세상에." 레이든이 몸을 물리며 말한다. "자네한테 그런 면이 있는지 몰랐군." - P77

그가 침대에 들어가 점퍼를 벗는다. 신발도 벗고 싶지만 두렵다. 신발을 벗으면 아침에 절대 다시 신지 못할 것이다. 그는 이불 밑에서 몸을 웅크리고 커튼이 없는 창문을 바라본다. 이제 겨울이다. 저 밖에서 뭘 하는 걸까? 텃밭에서 바람이 피리 소리 비슷한 끔찍한 소리를 내고 어딘가에서 짐승이 울부짖는다. 그는 매케이드의 개가 내는 소리이기만을 바란다. 브래디는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고 오직 그녀만을 생각한다. 심장박동이 느껴진다. 곧 그녀가 돌아와서 그를 용서하리라. 굴레가 다시 옷걸이에 걸리고 식탁에 식탁보가 깔리겠지. 그의 마음 속에서 은빛이 잠시 번쩍한다. 잠이 그를 덮칠 때 이미 그녀가 거기 있다. 그녀가 창백한 손을 그의 가슴에 올리고, 그녀의 검은 말이 그의 들판에서 다시 풀을 뜯는다. - P78

"나랑 결혼하는 거 생각해 볼래요?"
이 질문이 공중에 떠 있는 동안 마사는 망설였다. 디건은 오락실을 등지고 서 있었다. 그의 등 뒤로 불빛이 너무 밝아서 마사는 그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슬롯 머신과 가끔 넘치는 동전을 조금 밀어내서 누군가 돈을 따게 해주는, 동전이 가득 쌓인 선반밖에 없었다. 밴에서 아이가 솜사탕을 향해 손을 뻗었다. 사람이 점점 줄고 있었다. 여름이 끝나는 중이었다. - P85

가끔 헛간에 서서 씨앗을 쪼는 닭들을 바라보며 행복감을 느 끼다가도 이내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곤 했다.
1년이 지나기도 전에 그녀는 결혼 생활의 공허함을 쓰라리게 느꼈다. 침대를 정리하는 공허함, 커튼을 치고 여는 공허함. 이제 마사는 결혼하기 전 그 어느 때보다도 외로웠다. - P87

그해 여름에 마사의 장미는 진홍색으로 피어났지만 오래지 않아 바람에 꽃이 송이째 다 떨어졌고, 마사는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달았다. 그녀가 가진 것은 결혼한 뒤로 거의 말도 하지 않는 남편과 빈집뿐이었고, 자기 앞으로 들어오는 수입도 없었다. 마사는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결혼했다. 무엇을 기대했을까? 그녀는 감정이 점점 크고 깊어져서 사랑이 될 줄 알았다. 지금 마사는 친밀함을, 오해를 뛰어넘는 대화를 간절히 원했다. - P89

아주 드문 일이었지만 이웃 사람이 찾아오면 마사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실 그녀는 이야기를 제일 잘했다. 그런 드문 밤이면 이웃들은 그녀가 허공에서 무언가를 잡아채듯 문득 떠올리고는 눈앞에서 그것을 깨뜨려 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 기억에 남는 것은 늘 인상적이었던 낡고 멋진 집도, 그 집을 소유한 걱정스러운 표정의 남자도, 별난 10대 아이들도 아니고, 밤이 깊어질수록 진갈색 머리카락이 점점 헝클어지는 여자와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를 잡아채는 그녀의 창백한 손이었다. 그녀가 난롯가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초록색 자두처럼 점점 무르익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면 가끔 밤 속으로 나가기가 무서워졌기 때문에 길이 끝나는 곳까지 디건이 그들을 데려다주어야 했다. 그런 밤이 끝나면 항상 여자를 침대로 데려가서 그녀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것임을 그녀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확인시켰다. 그는 가끔은 그녀가 이야기를 잘하는 것이 그 때문이라고 믿었다. - P91

집이 골짜기에 서 있고 벽이 기껏해야 판지 두께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죽고 형제들이 떠나자 디건은 감상적인 기분이 들었다. 그가 기억하는 것은 어린 시절 내내 어머니가 커튼을 친 방에만 누워 있었다는 사실이나 아버지가 네 멋대로 굴지 말라며 매를 들던 밤이 아니라 더 간단한 것들, 명백한 사실이었다. 아하울 길가에 일렬로 늘어선 오크 나무는 증조부가 심었다. 아이들이 그네를 아무리 높이, 아무리 세게 타도 가지가 부러지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남들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알았다. 이 땅이 아내와 자식들보다 더 큰 만족감을 준다는 것을. - P92

디건은 이제 중년이다. 이쯤 되면 어떤 사람은 인생의 많은 부분이 끝났다고, 한정된 선택지 안에서 살아야 하는 내리막 길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다르다. 디건에게 은퇴는 그가 감수한 모든 위험에 대한 보상이다. 연금이 나올 때 쯤이면 자식들은 다 컸으리라. 그는 집에서 쓸 쇼트혼 소 한 마리만 데리고 아하울에서 사는 모습을 그려본다. 그는 내킬 때 일어나서 돌을 정리하고 과수원 담벼락을 손볼 것이다. 삽을 꺼내서 오크 나무도 더 심을 테다. 돌담이, 오크 나무의 파란 그림자가 벌써부터 느껴진다. 첫째는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아 성을 물려줄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일찌감치 은퇴해서 그토록 갈망하는 편안한 삶으로 물러날 때까지 디건은 자식들을 키우고 생활비를 내고 한참 일해야 한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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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사유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사유와 거리가 멀다. 우리는 늘 미래가 당장 거의 코 앞에 닥쳐오는 곳에 살고 있다. 미국은 크게 다섯 가지 중요 동사로 움직인다. 생산하다, 최대로 뽑아내다, 소비하 다, 지우다, 승리하다. 사유하기와 그것에서 파생되는 되돌아보기, 이해하기, 책임지기 같은 것들은 시간과 관심을 요구한다. 아주 길고 고요한 진공 상태가 필요하다. - P16

사유는 대체 무엇이며 지금 우리에게 왜 그토록 중요할까? 사유의 과정은 기억하기, 인식하기, 책임지기의 행위를 수반한다. 눈앞에 있으나 우리가 바라보기를 거부하는 바로 그것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들여다보고 살펴보고 수치심을 기꺼이 끌어안으라고 요구한다. 사유는 개인과 집단의 책임과 그 둘이 언제,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결정한다. 진정한 사유에는 실수와 잘못, 악행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필요하다면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는 일까지도 뒤따른다. - P20

과격한 허위 정보들이 넘쳐나는 시대에서 사유하기란 평범한 행위가 아니다. 사유는 가짜 뉴스와 그럴듯한 거짓말, 거북한 역사를 덮으려는 우파의 간교한 시도에 대한 해독제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딘가 불편하고 죄책감을 일으킬 만한 역사적 진실을 가르치는 데 거의 발작처럼 반발감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는 어리석고 유치하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이대로는 아이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가 결국 이 끔찍한 기억상실증으로 오염된 바다에서 서서히 익사하고 말 것이다. 귓가에 들려오는 음악에 귀 기울이고 불 속으로 걸어 들어가 진실을 대면하려는 의지를 가질 때야 우리는 진정한 자신으로 서로의 안에서 살 만한 미래를 꿈꿀 수 있다. - P21

글쓰기는 자살과 광기로부터 나를 구원했다. 적어도 그 광기로 무언가를 만들게 해주었다. 나의 글쓰기는 증인이었다. 고발이며 고백, 발굴, 구원이었다. 단어를 나열하는 일은 일종의 벽돌쌓기였다. 그마저도 아주 잠시만 지탱되는. 그렇게 나는 혼돈과 폭력 속에서 의미를 건져 올렸다. 글 속에서 나는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가족을 찾을 수도 있었다. 우리 존재를 비추는 거울이 없다면 무슨 수로 우리가 실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작가 마크 마토우세크 Mark Matousek는 "어머니의 얼굴에서 세상을 배운다"라고 했다. 그런데 어머니의 얼굴을 이해할 수 없다면, 어머니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녀의 두 눈과 관심이 당신을 향하고 있지 않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세상을 배우고 발견하게 될까? - P22

나는 글에서 이것을 발견했다. 글은 내 친구였다. 글은 나무가 우거진 오솔길을 달리는 내 작은 기차였다. 글은 타올랐다. 글은 힘이었다. 글은 창을 열었다. 글은 내 옷을 벗겨 냈다. 글은 일을 꾸몄다. 비명을 질렀다. 글은 저항이었다. - P28

오후 5시, 우리는 울워스에 있다. 망치와 왼손잡이용 장갑을 찾는다. 실내는 밝고 사람들로 붐빈다. 동독 사람들은 오렌지색 바구니를 손에 들고 흥분해 돌아다닌다. 그들은 나무에 매달린 다람쥐처럼 바구니를 거꾸로 든다. 마침내 자유다. 마음껏 빈곤할 자유 그리고 우리의 빈곤을 목격할 자유.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이 혼란스러운 쇼핑객들 위를 마치 발급이 거부된 비자처럼 떠다닌다. - P41

밖에서 너무 오래 지내면 생기는 일입니다. 익히지 않은 스크램블드에그처럼 모두 뒤섞여 버려요. 당신 몸의 부서진 파편들이 피를 흘리며 다른 파편들로 흘러 들어가고요. 당신의 감정은 빌어먹을 싸구려 울워스 가방에 쑤셔 박힌 물건들처럼 나뒹굽니다. 그러고는 이내 가방에 무엇이 들었는지조차 까맣게 잊게 되어요. 당신이 아는 것은 그저 가방이 무겁다는 것,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당신의 가방을 내려놓도록 허락하지 않기에 짊어지고 다녀야 한다는 사실뿐입니다. 가방에 허락된 공간은 그 어디에도 없지요. 그러다 어느 밤, 당신은 제기랄, 이 염병할 가방, 내뱉고 가방 따위 내팽개쳐 버리고 맙니다. 며칠 후 돌아오면 가방은 사라지고 없어요. 당신은 진심으로 화가 난 것처럼 굽니다. 누가 내 가방을 가져간 거야? 썅, 누가 내 가방을 가져갔냐고? 그 안에 전부 다 들어 있는데!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가방이 사라져서, 그리고 당신도 나중에는 그런 식으로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기분이 한결 나아집니다. 뭐, 어느 정도는. - P45

나는 이제 소리 내어 떠들지 않아요. 말은 나를 아프게 해요. 내 안에서 나오는 말이 나를 찔러요. 그 말들은 내가 더럽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요. 말들은 내가 이제 씻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상기시키지요. 내가 더는 움직이지 않고 더는 열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은 다른 사람들처럼, 내게서 분리되어 나를 떠나요. 나는 내 말들이 나를 떠나지 않기를 바라요. 내게 머물기를 원해요. 그것만이 내 유일한 가족인걸요. - P50

안녕하세요, 친애하는 맬컴 턴불 총리님, 피터 더턴 장관님.
저희는 마누스섬 임시수용소에 갇혀 있는 난민이자 망명을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번에는 다른 제안을 드리고자 이 편지를 씁니다.
지난번에도 편지를 써 이 감금 조치를 풀어달라고 도움을 요청한 바 있지만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에 저희는 우리가 쓰레기와 별반 다르지 않은 한편, 이 생지옥을 살아가는 본보기가 되어 다른 보트들이 더는 호주에 오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에 충실한 노예라는 사실을 깨닫기에 이르렀습니다.
[…]
이에 저희는 이 막대한 비용 손실을 막고 호주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국경 또한 영원히 지킬 수 있는 제안을 몇 가지 드리고자 합니다.
1. 우리 모두를 바다 한가운데서 쓸어버릴 수 있는 해군 함정(HMAS도 좋습니다)
2. 가스실(DECMIL이 처리해 줄 것입니다)
3. 독극물 주사(국제보건의료서비스HMS가 도와줄 것입니다)
이는 그 어떤 농담이나 풍자가 아니며 저희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해 주기를 간청합니다.
호주 이민•국경보호부DIBP가 이미 밝혔듯 저희에게 안전한 보금자리를 제공해 줄 나라가 없기에 저희는 이곳 마누스섬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고문과 같은, 트라우마로 점철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전합니다.

마누스섬 난민들이자 망명 신청자들 드림 - P53

나는 어디서도, 그 어떤 곳에서도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기분을 상상해 보려 애쓴다.
강간과 살인, 사랑하는 사람들이 눈앞에서 죽는 폭력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자라온 집을 떠나고 온몸으로 기억하는 땅을 떠나고 내 의식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 는 산과 바다, 지금까지 집이라고 알고 있던 그 모든 것을 떠나야 하는 심정을 헤아려 본다. 그저 낯선 땅을 밟았다는 이유만으로 범죄자가 되는 심정을 말이다. 그저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로. 나는 육백 명의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증발하고, 잊히고, 파괴될 수 있는지도 계속해서 생각한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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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이 사제의 발을 본다. 더러운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것은 모욕이다. 사제는 신발을 벗어 밖에 두면서 발이 아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중국인이 등받이 없는 의자를 꺼내 온다. 그는 손이 빠르다. 유연하고 잘생겼고, 자기 집에서 자유롭게 움직인다. 사제는 티 한 점 없이 깨끗한 창유리를 통해 강을 내다보면서 새삼 날카로운 질투를 느낀다. - P59

"네." 중국인이 말한다. "당신 문제 있어요."
"내 문제요?"
중국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난 아무 문제도 없어요." 사제가 말한다.
중국인이 웃는다. 원래 문제 있는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는 것을 그도 안다. - P59

중국인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하고 있다. 그런 다음 소매를 팔꿈치까지 깔끔하게 접어 올리더니 손을 뻗어 사제를 만진다. 다른 사람과 닿은 것은 3년 만인데, 모르는 사람의 손이 깜짝 놀랄 정도로 부드럽게 느껴진다. 어째서 상처보다 부드러움이 사람을 훨씬 더 무력하게 만들까? - P60

롤러의 딸과 보낸 파편 같은 시간들이 마음을 스친다. 그녀를 속속들이 알아가는 것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그녀는 자기 인식이란 말의 너머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대화의 목적은 스스로 이미 아는 사실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모든 대화에 보이지 않는 그릇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이야기란 그 그릇에 괜찮은 말을 넣고 다른 말을 꺼내 가는 기술이었다. 사랑이 넘치는 대화를 나누면 더없이 따스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고, 결국 그릇은 다시 텅 빈다. 그녀는 인간 혼자서는 스스로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사랑을 나누는 행위 너머에 진짜 앎이 있다고 믿었다. 그는 때로 그런 그녀의 생각에 화가 났지만 그녀의 말이 틀렸음을 결코 증명 할 수 없었다. - P61

이제 중국인이 사제의 손을 주무르면서 뒤로 최대한 꺾자 사제는 손목이 틀림없이 부러질 것만 같다. 그런 다음 그의 머리를 들어 올리더니 점점 더 큰 원을 그리며 빙빙 돌린다. 중국인이 사제의 머리 양옆에 무릎을 대고 그의 척추 맨 아래, 꼬리뼈에서부터 몸통을 지나 무언가를 끌어온다. 뭔가 딱딱한 것이 꼼짝도 하지 않으려 하지만 중국인의 손은 신경 쓰지 않는다. 사제는 미처 마음의 준비도 되기 전에 안에서 무언가가 접히는 것을 느낀다. 해안에서 바닷물이 접히면서 또 다른 파도를 만들 때 같다. 그의 입에서 파도가 부서진다. 그녀의 이름이 끔찍한 비명처럼 터져 나오고, 다 끝난다. - P62

사제가 벽에 걸린 그림을 가리키며 묻는다.
"이건 뭐죠?"
"오래됐어요." 중국인이 말한다.
"비어 있네요."사제가 웃는다.
중국인은 이해하지 못한다.
"비었어요." 사제가 말한다. "가득 차 있지 않다고요."
"네." 중국인이 말한다. "당신 문제 있어요." - P63

그가 그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건조하고 기대로 가득 찬 봄이 왔다. 오리나무가 싹을 틔우면서 허연 가지가 놋빛으로 변한다. 이제 모든 것이 더 선명해 보인다. 울타리 기둥 너머에서 밤이 단단히 준비한다. 갈퀴는 무척 사랑받고 닳아서 반짝거린다.
하느님은 어디 있지? 그가 물었고, 오늘 밤 하느님이 대답하고 있다. 사방에서 야생 커런트 덤불이 풍기는 짙은 냄새가 뚜렷하다. 양 한 마리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 푸른 들판을 가로지른다. 머리 위에서 별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하느님은 자연이다. - P64

"그건 그렇고, 암말에 편자를 달고 오는 길이야."
"말은 괜찮았어요?"
"난리였지." 레이든이 말한다. "여기 브래디가 안 도와줬으면 아직도 달고 있었을걸."
"젊은 애들이나 하는 일이야." 맥필립스가 말한다. "나도 팔팔할 때는 편자를 직접 씌웠지."
"파인트 세 잔만 마시면 안 해본 일이 없지." 노리스가 말한다.
"두 잔 마시면 못 할 일이 없고!" 레이든이 한술 더 뜨며 말한다. - P71

이제 뉴스가 끝나고 숀이 라디오를 끈다. 이 침묵은 모든 침묵과 마찬가지다. 다들 조용해져서 좋아하면서도 침묵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 뻔해서 좋아한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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