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선제압용 강한 한 방보다 강한 한 방을 노련하게 방어해낼 때 상대는 맥이 빠진다. 신경전. 빈틈없는 자에게 공격 기회가 온다. 4줄 로프 안의 사방 6.4미터의 공간, 1라운드당 3분. 3라운드 총 9분.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라. - P123

삼촌에게 아버지는 유일하게 무섭지 않은 어른이었다. 그리고 삼촌은 아버지를 정말 어른으로 보는 유일한 어른이었다. 가끔 저 미련한 사람 때문에 가슴이 뜨겁다. 자기 자리가 아버지 옆인 줄 아는 그런 사람이다. - P126

얼마나 교양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자식한테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는지 모르겠다. 가난한 나라 사람이, 잘사는 나라의 가난한 사람과 결혼해 여전히 가난하게 살고 있다. 똑같이 가난한 사람이면서 아버지 나라가 그분 나라보다 조금 더 잘산다는 이유로 큰 소리조차 내지 못한다. 한국인으로 귀화했는데도 다른 한국인에게는 여전히 외국인 노동자 취급을 받는 그분이, 내가 버렸는지 먹었는지 모를 음식만 해놓고 가는 그분이, 개천 길을 내려간다. 몸이 움직인다. 내 몸이 미쳐서 움직인다. 저 꽃분홍색 술이 달린 낡은 단화 때문이다. 나는 내려가는 그분에게 달려갔다. - P130

그분이 활짝 웃었다. 그분은 울면서 웃는 능력이 있다.
아버지가 짜게 먹는 걸 기억하고 나까지 짜게 먹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직 그분의 음식을 먹지 못했다. 대신 똥주가 먹었다. 아버지와 뚝 떨어져 있는 그분의 거리. 그 거리 속에 존재하는 나. 지금 이곳이 내 자리인 모양이다. 나는 그분이 버스에 올라타는 걸 보고 체육관으로 달려갔다. - P133

똥주네 집인지 교회인지 가서 관장님을 위해 기도하는 날이 곧 올 것 같다. 나는 이번 대회에서 반드시 이긴다.
"네가 공격할 부위만 보지 말고, 상대방 움직임을 봐. 들어가는 것보다, 들어오는 거 받아치는 게 더 강한 거야. 가서 복근 단련이 나 해." - P145

정윤하가 뒤뚱뒤뚱 달리는 폼을 보면 운동은 역시 입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나는 정윤하가 버스에 올라타는 걸 보고 가볍게 섀도복싱을 하며 개천을 따라 올라갔다. 사실 길에서 섀도 하는 거 정말 별로다. 나도 낯간지럽고 지나가며 보는 사람들 표정도 별로다. 꼭 운동한 지 얼마 안 되는 것들이 한 번씩 재보는 폼 같다. 그런데도 한다. 정윤하가 버스 뒷자리에서 보고 있으니까. - P147

"완득이 운동하게 놔두세요."
"완득이마저 세상 뒤에 숨어 살게 할 생각 없어."
"여태 세상 뒤에 숨어 있던 완득이가, 운동하면서 밖으로 나오고 있잖아요. 자기가 하고 싶은 거, 제일 잘할 수 있는 거, 하게 놔두세요." - P151

"한국에 밥하러 오셨어요?"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다. 말없이 조용했던 방에 아버지 헛기침 소리가 울렸다. 내 말보다 헛기침 소리가 방 안을 더 어색하게 만들었다.
"밥이라도 마음 놓고 먹고 싶었어."
그분이 웃으며 말했다. 가끔은 울음보다 웃음이 더 가슴 저릿 때가 있다. 아버지 춤에 웃는 사람들. 그 웃음에 웃음으로 대꾸 주던 아버지. 아버지와 별반 다를 게 없던 삼촌······. 그리고 지금 그분의 저 웃음이 그렇다. - P151

그분과 두 번째 시장 길이다. 혼자 가도 된다고, 집에서 기다리라고 한사코 말리는 걸 기어이 따라나섰다. 집에서 아버지와 나눌 대화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해가 사라진 저녁 개천 길은 정말 춥다. 보도블록에서 올라온 찬 기운에 발이 시렸다. 휙휙 지나가는 자동차에 밀려 나온 바람은 주머니에 넣은 손마저 얼릴 만큼 차가웠다. - P152

이런. 아버지가 그렇게 힘들게 뜯어먹으면서도 맛있다고 한 게 정말이었군. 나중에 돈 벌면 연하고 맛 좋은 닭을 사주겠다 했던 내 다짐은 뭐였던가. 그럼 그동안 해왔던 질긴 갈비도? 도대체 그분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이제 보니 반찬 도시락 주인도 어째 내가 아닌 거 같다. 미워서 떠나놓고······. - P154

드디어 삼계탕을 먹기 시작했다. 나와 삼촌과 그분과 아버지는 폐닭에 익숙했다. 그런데 똥주와 앞집 아저씨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이런 씨불, 뭐야 이거, 이게 고기여 타이어여? 니들, 나 골탕 먹이려고 불렀지?" - P155

"제······ 어머니십니다."
목에 콱 박혀서 나오지 않는 말을 가래 뱉듯이 힘들게 했다. 막힌 가래를 뱉으면 이렇게 시원하다. 그분이, 아니 어머니가 갑자기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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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버린 동네에서 내가 움직인다. 전에는 나만 멈춘 것 같았는데 지금은 나만 움직인다. 느낄 수 있다. 나, 대회에 나간다. 나 지금 스텝 바이 스텝 중이다. - P110

"나도 아버지가 부자면 옥탑방이 아니라 지하도에서도 살 수 있어요. 사고 쳐도 다 해결해주는 아버지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에요? 선생님이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아닌 건 아닌 거예요! 하도 가난해서 다른 나라로 시집온 어머니 있어봤어요? 쪽팔려 죽겠는데 안 가져가면 배고프니까, 할 수 없이 수급품 받아가 본 적 있어요?" - P118

"너처럼 멋도 없는 새끼가 멋있는 척해도 재수 없어. 솔직히 너도 진짜 가난이 뭔지 모르잖아. 아버님이 너한테 금칠은 못 해줘도, 먹고 자는 데 문제없게 해주셨잖아. 너, 나 욕할 자격 없어, 새끼야. 쪽팔린 줄 아는 가난이 가난이냐? 햇반 하나라도 더 챙겨 가는 걸 기뻐해야 하는 게 진짜 가난이야. 햇반 하나 푹 끓여서 서너 명이 저녁으로 먹는 집도 있어! 문병 오면서 복숭아 하나 안 사오는 싸가지 없는 새끼. 아이고, 나 죽네." - P119

몰라도 될 걸 알아버린 인간들이 얼마나 너저분하게 구는지 정말 몰라서 저따위 말을 하는 거야? 남의 약점 가지고 즐거워하는 싸가지 없는 놈들이 지천에 깔렸다는 걸 정말 모르는 거야? 그렇게 태어나서 그런 모습일 수밖에 없는 아버지에게 사람들이 어떤 시선을 던지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야? 발톱이 빠지고 인대가 늘어나면서까지 연습하며 진정한 춤꾼을 꿈꾼 아버지를 변두리 카바레로 내몰고 웃음거리로 전락시킨······. - P120

그래, 나는 한 번도 내 입으로 아버지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 내가 커밍아웃을 하면 그 놀림이 내가 아니라 아버지를 향하게 되리라는 걸 너무 잘 아니까. 이 세상이 나만 당당하면 돼, 해서 정말 당당해지는 세상인가? 남이 무슨 상관이냐고? 남이 바글바글한 세상이니까! 호킹 박사처럼 세상에 몇 안 되는 모델을 두고 그런 사람도 있다고 한다면, 나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다. 1등만이 특별한, 나머지는 1등의 언저리로 밀려나 있어야 하는······. 내 아버지는 호킹 박사 같은 1등 대접을 원하는 게 아니라, 높기만 한 지하철 손잡이를 마음 편하게 잡고 싶을 뿐이다. 떳떳한 요구조차 떳떳하지 못하게 요구해야 하는 사람이 내 아버지다. 내 입으로 말하라고? 아버지는 이미 몸으로 말하고 있다. 그걸 굳이 아들인 내가 확인사살 해줘야 하나? 자기들은, 내 아버지는 비장애인입니다, 하고 다니나?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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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똥주. 남의 일에 설레발치고 다닐 때부터 눈치 챘다.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자매님 하고 튀어나오던 핫산은 왜 덤으로 얹혀 간 거야. 선생님도 아닌 것 같은 똥주. 어리바리한 핫산. 능력치 잘못 올리고 키운 캐릭터 같은 인간들. 동급 레벨 대비 최저 능력을 보유한 망한 캐릭터들이다. 게임처럼 확 삭제시키고 다시 키울 수도 없고. 영 꺼림칙하다. 똥주 하는 걸 보면 왠지 죄가 있을 것 같기는 한데. 나한테 지은 죄만 해도 몇 개야. 나 말고 또 누구 가슴을 후벼 팠나. 근데 핫산은 왜지? 순진하게 생겨서 알고 보면 똥주과 인가? 남 가지고 놀기 좋아하고 가슴에 못질 쾅쾅하는 것들은 죄다 잡혀가야 돼. 내가 한 기도가 슬슬 먹히고 있나 보다. 이상한 방식으로 먹히네······. - P94

그렇게 많이 싸우지도 않았는데 왜 싸움 습관이 뱄다고 할까. 아주 가끔 몸이 달려가서 팼을 뿐인데. 업소 아저씨들끼리 싸우는 걸 보면서 싸움에서 지면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이 몸으로 옮겨졌나. 어쨌거나 나는 일단 싸우면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고, 스포츠도 이겨야 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기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니, 뭐 이런 스포츠가 다 있냐. - P96

집에 올라가는 길에 교회를 슬쩍 둘러보았다. 늘 불이 켜 있던 쉼터 창은 요 며칠 불이 꺼져 있다. 밤늦은 시간까지 항상 켜 있었는데. 교회가 기운이 쏙 빠져 보였다. 건물도 힘이 빠질 때가 있나. 세모난 지붕이 어깨를 축 내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P96

본 적 있다. 신호등 앞에서 장사하다 걸린 노점상과 단속반이 싸우는 모습을. 다 팔아도 얼마 안 될 것 같은 채소를 비 맞으며 팔던 할머니. 카바레에 툭하면 뜨는 단속반 때문에 아버지는 죄인처럼 벽에 붙었었다. 이제는 노점상 단속반 때문에 벽에 서 있을 아버지 모습이 눈에 선했다. 한 번에 한 가지밖에 생각할 수 없는 삼촌은, 우리 물건이라는 생각밖에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맞아가면서 혹은 다행히 그냥 빼앗기면서 우, 우, 우리 거예요, 라고 했겠지. - P103

관장님은 싸움과 스포츠는 다르다고 했다. 상대에 대한 배려를 잊지 말고 매너 있게 경기하라고 했다. 이것을 어기면 이기고도 평생 죄인처럼 살아야 한다고. 나는 싸움을 싫어한다.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놀리지만 않았다면 싸우지 않았다. 그건 싸움이 아니었다. 상대가 말로 내 가슴에 있는 무언가를 건드렸고, 나도 똑같이 말로 건드릴 자신이 없어 손으로 발로 건드렸을 뿐이다. 상처가 아물면 상대는 다시 뛰어다녔지만 나는 가슴에 뜨거운 말이 쌓이고 쌓였다. 이긴다고 다 이기는 게 아니라고? 이겨야 이기는 거지. 관장님도 은근히 폼 잡기 좋아한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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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무슨 냄새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나 혼자 있을 때와는 다른 냄새다. 화장도 안 했던데 무슨 냄새일까. 이런 게 어머니 냄새라는 걸까. 그분이 먹었던 라면 그릇이 전과 달라 보였다. - P70

그 흔한 아들이니 엄마니 하는 말은 없었다. 옆에 있어본 적이 없어서, 어머니라고 불러본 적이 없어서, 내가 어머니라는 말 대신 그 분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걸지도 모른다. 다른 건 있다. 그분은 나를 보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하긴, 그분은 내 존재를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편지를 봉투에 도로 넣고 방바닥에 휙 던졌다. 무슨 모자 상봉이 이렇게 허무한지. 그분이든 나든 눈물 한 방울은 흘려줘 야 하는 거 아닌가? 삼팔선만 안 그어졌지 남북이산가족 상봉하고 뭐가 달라. 십칠 년 만에 나타난 어머니라는 분하고 고작 라면이나 끓여 먹고 헤어지다니. 어머니라는 존재 별거 아니군. 그나저나 똥주, 두고 보자. - P70

"고작 싸움이나 하라고 서울로 온 줄 아냐?"
"싸움이 아니라 스포츠예요."
"그래, 나도 예술이라고 생각하는데, 남들은 춤쟁이라고 하더라. 그게 세상이야!"
"세상이 뭐라고 해도, 아버지는 춤추셨잖아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이 날 안 받아줬다. 춤은 그나마 다른 사람하고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었고. 사지 멀쩡한 놈이 뭐가 아쉬워서 그런 쌈질을 하겠다고······."
"다른 사람하고 별로 잘 산 것 같지도 않은데요."
짝!
아버지가 내 뺨을 내려쳤다.
"아버지가 제 몸 같았으면 춤······ 안 추셨겠네요."
짝!
아버지는 다시 한 번 내 뺨을 내려쳤다. 예상했고 피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가 그런 춤을 춰서, 세상이 더 받아주지 않은 것 같은데요." - P79

"가지 말라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가만히 버티면 풀릴 오해는 풀린다고. 오해를 안고 떠나면 남은 애들한테는 죽을 때까지 그런 애로 기억될 거라고 하더라."
"그냥 말해서 얼른 풀어."
"아닌 걸 아니라고 어떻게 보여줘? 지나가는 아저씨들 붙잡고 나랑 그런 사이 아니죠, 그래? 맞는 걸 증명하는 것보다 아닌 걸 증명 하는 게 더 어렵더라."
"그런가."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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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는 몇몇 사람들은 나를 싸움꾼이라고 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싸움꾼이 아니다. 누가 나를 아는 게 싫어서 눈에 팍 띄는 싸움질은 되도록 피했다. 단지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놀린 놈들만 두들겨 팼다.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낯간지러운 이유로 팬 건 아니다. 쪽팔리고 열 받아서 팼다. 진짜 난쟁이인 아버지를 놀렸든 그 핑계로 나를 놀렸든. - P10

"왜? 너도 쪽팔려? 새끼야, 가난한 게 쪽팔린 게 아니라, 굶어서 죽는 게 쪽팔린 거야."
나는 당신이 담임이라는 게 쪽팔려.
"잔말 말고 가져가. 그리고 잡곡밥은 좀 남겨라."
똥주는 앞장서서 걸었다. 건들건들 걷는 모습이 동네 양아치 저리 가라다. 수급품. 내 체면을 생각해서 조금 조용히 해 줄 수 없을까. 우리 집 앞에 몰래 놓고 가주는 자비는 바라지도 않는다. 이건 뭐, 자기가 먹으려고 수급대상자인 제자한테 배달시키니, 천하의 야비한······. - P11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 키를 넘어섰다. 아버지는 그렇게 키 작은 어른이었다. 절대로 어린애가 아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인정하지 않았다. 야, 너, 이봐, 식으로 애 부르듯 불렀다. 아버지가 어깨만 흔들어도 웃어대더니 이제는 싫은 모양이다. 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정말 싫었다. - P16

시끄럽고 어두운 곳에서만 일하던 사람들이 조용하고 환한 곳에서 일하려 한다. 낮에는 숙소에서 나오지도 않던 두 사람이 낮에 나가는 일을 택했다. 작업환경이 이렇게 급작스럽게 바뀌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 P17

"글은 잘 쓰고 있냐?"
"······."
"대학 가라."
"······."
"좋은 데 가라는 말 아니다. 남들이 해보는 건 해봐라. 때 놓치면 하고 싶어도 못 한다. 2호선 타고 도는데, 대학생 애들······ 보기 좋더라."
몽키 몽키 몽키, 몽키 매직. 몽키 몽키 몽키, 몽키 매직. 서른이 넘은 삼촌의 디스코, 보기 좋았다. - P21

똥주 말은 틀린 게 없다. 분명히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맞는 말이 나는 영 거슬린다. 남의 비밀을 폭로하면서 ‘내가 거짓말했어? 진짜잖아.‘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남의 자존심을 긁어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 안 해도 될 말을 굳이 끼워 넣어서 웃음거리로 만들고 마는 인간. 내가 한 잘못을 나한테서 끝내지 않고 아버지까지 들먹이는 너절한 인간이다. 아프다, 엉덩이. - P28

오늘은 고급 스타킹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고급 스타킹에는 관심 없었다. 자기 앉은키와 비슷한 아버지에게 관심 있었다. 대놓고 보지도 못했다. 안 보는 척 힐긋힐긋 보았다. 카바레에서 하던 아버지의 바람잡이 실력은 지하철에서도 빛을 발했다. 평상시에는 거의 웃지도 않으면서 바람잡이 할 때는 정말 신나게 웃는다. 어렸을 때 나는 저 웃음이 정말 좋아서 웃는 웃음인 줄 알았다. - P29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넉넉한 나라에서, 꼴 같지 않게 제3세계니 뭐니 해가며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아낌없이 무시해주는 나라에 서, 어머니가 무척 힘들었을 거라고. 그럼 그 조건에 +1 해서, 어머니 없이 사는 나는 뭔가. 주가 위로랍시고 하는 말이, 아버지는 장애를 숨기지 않고 서류에 썼는데, 가운데에서 브로커가 그 부분을 싹 지우고 결혼을 진행시켰단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어머니를 신부로 맞기 위해 사기를 친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 P41

"자기 집 앞에 차를 댔는데, 못으로 씨불놈이라고 써놓는 게 정상입니까? 저분이 장애인이 아니었다면, 저 양반이 그런 짓을 할 수 있었겠냐고요. 사회가 이러면 안 됩니다."
똥주는 책상을 탕탕 치며 매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오늘 연기 좀 한다.
"거기가 왜 저 양반 집 앞이야! 내 집 앞이지."
"두 대문이 꼭 마주 보고 있는데, 왜 당신 집 앞만 돼! 차도 없는 양반이."
"나는 내 집이고, 저 양반은 세 들어 사는 사람 아냐!"
"세를 냈으니까 집 앞까지 쓸 자격이 있지!" - P47

늘 어둠침침한 곳에서만 춤을 추던 두 사람이 이제 시장에서 춤을 춘다. 아직 장에서 춤추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확실한 건 카바레 다닐 때보다 건강해 보인다는 것이다. 카바레······ 아버지가 맞는 모습을 봤고, 그러면서도 웃는 모습을 본 곳이다. 웃는데 그 웃는 모습이 싫었고, 웃으면서도 울까 봐 괜한 걱정을 했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을까. - P50

"완득아. 너도 내 춤이 우습냐? 헤헤헤. 나는 되는데, 사람들은 왜 자꾸 안 된다고 하지? 리듬은 키가 타는 게 아니라, 몸이 타는 건데. 바보 천치들, 그 쉬운 걸 몰라요. 딱 십 센티만 더 컸으면······ 헤헤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이런 말을 했었다. 그리고 그 말은 내가 아버지 키를 넘길 때부터 가슴 무겁게 들리기 시작했 다. 나는 열네 살 때 카바레를 떠났다. 내 기억의 첫 번째 장소 카바레. 가끔은 그곳이 그립다. - P51

아버지는 변두리 지역이라도 꼭 서울을 고집했다. 서울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녀야 괜찮은 대학을 가는 줄 안 것이다. 거리가 먼 2 지망 학교가 배정되면서 아버지는 학교 근처로 집을 옮겼다. 말이 근처지 개천을 따라 버스로 세 정거장을 간 뒤, 가파른 골목 꼭대기 까지 올라가야 나오는 옥탑방이었다. 조용히 살자는 내 인생 철학에 제동을 건 똥주가 사는 동네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어설픈 맹부 삼천지교가 내 인생을 이렇게 꼬이게 할 줄이야.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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