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잔소리 저것도 잔소리라네. 사실이 그렇잖아. 우리가 다 잘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너희 세대처럼 길에서 저렇게 망가지진 않았어. 우린 질서란 게 있었고, 침묵할 줄 알았고, 품격이 있었다고. 가족은 끝까지 고락을 함께했어. 사람들이 점잖게 살 줄 알았어." "무슨 신소리야. 점잖긴 뭐가 점잖아. 진실을 감추고 산 거지. 설마 옛날 사람들이 더 행복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 "아니. 그런 말을 하려던 건 아냐." 엄마는 이내 항복한다. "그럼 무슨 말을 하려는 건데?" 엄마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입도 닫는다. 이제 어떤 말을 할지 머리를 굴리는 중이다. 아, 찾았다. 승리의 미소와 비난조를 장착한 엄마는 말한다. "요즘 사람들은 불행이 너무 생생해." 엄마의 말에 나는 흠칫 놀랐지만 사뭇 즐겁기도 했다. 엄마가 진실을 말하거나 영리한 통찰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 즉시 엄마를 사랑할 수도 있을 것만 같다. - P49
엄마가 드러커 아줌마에게 창부라고 하고 1년 뒤에 드러커네는 이 건물에서 나갔고 그 아파트에 네티 러바인이 들어왔다. 드러커네가 이사 가고 네티가 이사 온 날은 기억에 없다. 트럭이나 봉고차가 들어와 가구, 식기, 옷가지 들을 내가고 들여오는 장면도 없다. 사람들도 짐도 마치 아파트에서 증발하듯 싹 사라졌고 다른 사람들이 그 공간을 되차지했을 뿐이다. 나는 애착이 절대적이지 않고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속성을 지녔다는 걸 아주 어린 시절에 알게 되었다. 옆집 사는 이웃을 로즈먼네, 드러커네, 지머먼네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들이 그리 달랐을까? 이웃이 있다는 사실만이 달랐다. - P51
네티와 관련해서는 모든 게 앞뒤가 안 맞게 느껴졌다. 비유대인으로 유대인과 결혼한 여자라니, 우리가 아는 유대인 중에 그런 사람은 없었다. 보아하니 그는 언제나 혼자였고 살고 싶은 곳을 스스로 자유롭게 택해왔으며 이번에도 자진해서 자기에게 특별히 이익이 되거나 자비를 베풀 리 없는 노동자 계층 유대인들 틈에서 살기로 선택한 듯했다. 요염하고 아리따운 외모 때문에 어딜 가나 부러움과 호기심의 대상이 되는 여자였던 네티는 평범한 서민들의 삶을 때로 과할 정도로 높이 평가했다. 그는 엄마의 살림 솜씨—적은 월급으로도 넉넉해 보이는 살림을 꾸리고 집에선 늘 좋은 냄새가 나며 아이들이 집에 있는 걸 만족하는 모습—를 두고 칭찬을 퍼부었는데 이런 능력이 진정 희귀한 보물인 것처럼, 자신에게는 주어진 적 없는 지참금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신이 거부당했던 삶의 상징인 것처럼 말했다. - P55
우리는 아까 걷던 길로 돌아와 렉싱턴애비뉴를 거슬러 올라간다. 공기는 아까보다 더 달콤하고 따스하고 또 무거워져서 흐린 하늘 사이로 곧 빗방울이 떨어질 기미가 보인다. 이런 날씨 참 좋아! 어떤 예측 없이 내 안에서 막연한 기대감이 솟구쳐 올라오지만 언제나 그렇듯 기대감이란 녀석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대로 곧장 또렷하게 올라오지 않고 무엇 때문인지 중간에 모양을 바꿔 다시 안으로 방향을 틀더니 시들시들해지다 명을 다해버린다. 우울하게도 내게는 참으로 익숙한 과정이다. - P70
우린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게 자기만의 세상에서 고립된 채 살아온 사람들, 평생 서로의 생활 반경에서 벗어나지 못해 닮아버린 두 여자다. 이런 순간엔 우리가 모녀라는 게 마치 외계인이 전달한 메모처럼 충격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우리는 엄마와 딸이 맞고, 거울처럼 서로를 반영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혈연이니 효도니 하는 단어는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반대로 가족이라는 개념, 우리가 가족이라는 사실, 가족의 삶이라는 것 모두 해석이 불가능한 세계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과연 그런 진실이 존재하나 싶어진다. - P72
우리 집 창문 아래로 보이는 누추한 다세대주택 앞 골목은 암흑과 침묵에 의해 완전히 다른 형태로 바뀌었다. 밤공기는 더 맑고, 온화하고, 밀도 높고, 설명할 길 없이 달콤하기도 했으며 그 공기는 내가 찾던 마법 같은 고립감을 더욱 증폭시켜주며 내 백일몽의 마침맞은 전달자가 되어주었다. 아파트를 등지고 창가에 앉는 순간부터, 눈으로 거리를 쫓을 때부터 허기진 공상이 즉각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시작했다. 이런 날의 공상은 네티의 ‘만약에 말이야 이러면 근사하지 않을까‘에서 고작 한 계단 정도 상승한 것이었지만 아주 중요한 발전이기도 했다. 내 공상은 대체로 ‘이렇게 가정해보자라는 문장으로 시작되었다. 그 뒤에는 이 구차한 현실에서 나를 구원해줄 이야기가 이어지기보다는 ‘대의‘를 품은 상상들이 뒤따랐다. 이런 식이었다. 모든 일은 언제나 나쁘게 끝나지만 그 비극 안에도 위엄이란 게 있지 않을까. 내가 쓰는 이야기의 요점은 명확하다. 인생은 비극이라는 것. ‘비극 안에‘ 머물면 인생이라는 지루하고 빈곤한 고통에서 구출될 수 있다. 사실 인생이란 게 전부 무의미해 보이기도 했다. 무의미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내가 알기론 가장 중요했다. 의미를 찾는 게 곧 구원이었다. 그것이 미숙한 십대 작가가 떠올릴 수 있는 첫 문장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신화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 P86
"몇 달 전에 너희 엄마 만났는데." 엄마는 말을 이었다. "너 연락 없다고 뭐라 하시더라. 자식들이란 애들이 하나같이 왜들 그러니!" 나는 거의 경외심을 담아 엄마를 바라본다. 엄마는 20년 만에 만난 매디슨 샤피로 앞에서도 당신 내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한다······. 매디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지하철로 향하는 길을 막아선 우리를 못마땅하게 흘겨보거나 툭툭 치고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엄마를 꽉 안았다. "어머니들이야말로 하나같이 왜들 그러세요." 그는 애정을 담아 대답했다. 나는 그를 바라본다. 만약 샤피로 아줌마가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면 그의 얼굴은 분노와 고통으로 어두워졌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엄마 입에서 이 말들이 나왔을 땐 인정 넘치게 지독하고, 후덕하게 짜증스럽다. 가끔 이렇게 한발 떨어져서 보는 순간에 우리 인생도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 P93
엄마는 이내 조용해진다. 엄마는 작년인가부터 속을 알 수 없는 오묘한 태도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허공을 바라본다.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는 듯한 아득한 표정 속에 홀로 머문다. 그러나 이번의 혼자는 내게 무척 익숙한 그 혼자, 얼굴을 냉소적이고 불행한 가면으로 만들어 그 뒤에 숨거나 당신의 아픔과 실망을 하염없이 헤아리고 있을 때의 혼자와는 다르다. 이 혼자에는 슬픔이 아닌 온화함이 깃들어 있다. 호기심과 흥미는 있어도 자기연민은 없다. 엄마의 눈이 가늘어진다는 건 엄마가 이미 아는 것을 조금 더 명확히 보고 싶어한다는 것, 이제껏 살아온 삶에 집중하고 싶어한다는 의미다. 엄마는 진실을 알려준 꿈에서 깬 것처럼 몸을 흔들면서 말한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삶을 살 권리가 있지." 엄마는 나직하게 말한다. - P95
엄마는 원시적인 상실감에 완전히 소진되어 모든 슬픔을 안으로 흡수했다. 모두의 슬픔이 당신의 슬픔이 되었다. 아내의 슬픔, 엄마의 슬픔, 딸의 슬픔을 완전히 독차지했다. 비탄은 엄마를 가득 채웠고 또 엄마를 비우기도 했다. 엄마는 핏줄이고 도관이고 발현이었다. 그 놀라운 유동성, 감각적이고 까다로운 가변성은 이제 엄마의 것이었다. - P98
장례식. 20년 후에 기자가 되어 중동에서 지내는 동안 아랍의 장례식을 거의 일주일에 한 번은 목격했다. 수백 명의 인파가 거리로 뛰어들어, 옷을 발기발기 찢고,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높고 새된 소리로 울부짖었다. 사람들이 까무러치고 서로를 밟고 지나가는 와중에 조문객들은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곡소리를 한다. 그 거리에서 내 옆에 서 있던, 아마도 서구인이었을 그 사람들은 조용히 고개를 흔들면서 이 낯설고 기이한 광경을 충격받은 얼굴로 바라보았다. 아마도 남몰래 자기는 이 사람들과 다른 부류라고 확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모든 광경이 너무도 친숙했는데, 내 기억 속 장면보다 약간 더 소란스럽고 미치광이 짓을 여럿이서 나눠 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엄마라면 이 모든 장면의 중심에 있었을 것이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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