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가 다시 나에게 인사했다. 그때서야 나는 뛰노는 아이들과 비둘기 때와 파란 지붕을 보지는 못했지만 마을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귀에 들리는 것은 정적뿐이었는데, 이는 내가 아직 그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 머릿속이 이미 세상의 소음으로 가득 차 있는 탓일지도 몰랐다. - P21

문이 없었다. 우리가 들어왔던 통로가 방문이었다. 그 여인이 초에 불을 붙이자, 텅 빈 공간이 보였다.
- 여긴 잠을 청할 만한 곳이 아니군요.
- 걱정 마요. 졸음이 가장 좋은 침대가 아니겠어요? 먼 길을 오느라 고단했을 테니 오늘은 여기서 눈을 붙이도록 해요.
침대는 내일 들여놓을 테니까. 젊은이가 이해해요. 혼자 사는 늙은이가 이것저것 챙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모친이 조금만 더 빨리 알려줬어도 이렇지는 않았을 거예요. - P23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로 모래 마당에 물구멍이 나게 만들고, 돌담 사이에 낀 월계수 이파리를 부르르 떨게 만들던 사나운 비바람이 물러간 뒤끝이다. 간간이 이는 바람에 석류나무 가지에 달려 있던 물방울이 허공에 빛을 발하며 흩어지는데, 마당에는 여태껏 구석에 틀어박혀 졸고 있던 암탉들이 몰려나와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쪼아댄다. 그사이 비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 오색찬란한 햇살은 소담스러운 돌멩이 위에 내려앉아 물기를 빨아올리는가 하면, 산들바람에 나풀대는 나무 이파리에 가만히 다가가 살랑인다. - P25

‘너를 생각하고 있어, 수사나. 그 푸른 언덕을. 바람이 이는 계절이었지. 우리가 마을에서 올라오는 생생한 소리들을 듣고 있을 때, 바람이 연출을 끌어가고 있었지. 수사나, 도와줘!" 연출을 잡은 손에 겹쳐지던 부드러운 손. "실을 더 풀어!" 그 바람은 우리를 웃게 만들었지. 그 바람에 손가락 사이로 풀려나가던 연줄이 마치 날아가던 새의 날개에 걸려 부러지기라도 한 것처럼 툭 소리를 내며 끊어질 때까지, 우리의 눈길은 하나로 모아졌지. 헝클어진 연줄을 매단 종이 새가 허공에서 빙빙 돌다 떨어져 초록 들판으로 사라질 때까지.
너의 입술은 촉촉이 젖어 있었어, 수사나. 마치 이슬에 젖은 듯한 그 입술······. - P26

‘저 하늘, 저 구름 위에,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너는 숨어 있어, 수사나. 하느님의 거대한 공간에, 당신의 섭리 뒤에, 결코 내가 도달할 수 없는 곳에, 내가 찾을 수 없는 곳에 너는 숨어 있어. 나의 간절한 소망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곳에······.‘ - P27

한 번은 내가 몸이 성치 않아서 집에 있는데, 그자가 나타나더니 대뜸 "원기가 회복되려면 맥을 한번 짚어봐야 되겠소."라고 하면서 내 몸을 만지더군. 처음에는 손가락과 손바닥을 만지고, 그러다가 팔다리도 만지고, 나중에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손대지 않은 곳이 없었어. 그런데 웃기지도 않는 게, 손길이 닿는 곳마다 응혈이 풀리면서 몸이 뜨거워지는 거야. 생각해 보게, 예언자로 행세하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집시 같은 인간이 눈알을 뒤집고 게거품을 무는데, 깜빡 넘어가지 않을 여자가 어디 있겠나. 그 바람에 홀라당 옷을 벗은 여자들도 많았지. 그때마다 그 인간은, 여자의 마음속에는 불같은 욕망이 감춰져 있다고 둘러댔어. 딴은 틀린 말이 아닐지도 모르지. 여자란 때때로 누군가에게 온몸을 내맡기고 싶은 충동에 사로 잡히니까. - P32

"이삭을 흔들며 불어오는 바람. 그 바람에 솟았다가 가라앉는 지평선과 겹겹이 굴곡을 이루며 출렁이는 오후의 푸른 들판을 바라보아라. 흙 내음, 그리고 밀과 알팔파 내음. 온통 달콤한 꿀 향기로 가득한 마을······."
[…]
"······그곳에서 세월의 온기를 품고 있는 오렌지 나무 향기를 느껴보아라."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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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와 내가 여행 다닌 장소는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가고 싶어한 곳이었다. 우리의 마지막 여행이 병원 격리 생활로 변해버리기 전에 엄마가 나를 데려가려 한 곳이었다. 엄마가 나와 함께 만들려던 마지막 추억이고, 엄마가 나를 키우며 내가 사랑하도록 만든 것의 원천이고, 내가 기억했으면 하는 맛이고, 내가 절대 잊지 않았으면 하는 감정이었다. - P344

대체로 나는 꽤 잘 적응했다. 대도시에서의 새로운 삶이며 어른의 제대로 된 직업이며 모든 게 너무 낯설었지만, 바꿀 수 없는 일에 너무 연연하지 않고 생산성을 높이는 데만 몰입하려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가끔씩 나도 모르게 지난날이 떠올라 괴로웠다. 뜬금없이 고통스러운 생각의 고리에 불이 붙으면 그동안 억누르려 애쓰던 모든 기억이 내 마음 맨 앞자락으로 훌렁 삐져나오기 일쑤였다. 엄마의 희뿌연 혀, 보라색 욕창 자국, 내 손에서 빠져나가는 엄마의 무거운 머리, 저절로 번쩍 떠진 눈. 하지만 내면의 비명이 텅 빈 가슴을 뚫고 나와 온몸을 소용돌이치며 뒤흔들 뿐, 그 감정이 제대로 해소되지는 않았다. - P353

내 기억을 곪아터지게 놔둘 수는 없었다. 트라우마가 내 기억에 스며들어 그것을 망쳐버리고 쓸모없게 만들도록 방치할 수는 없었다. 그 기억은 어떻게든 내가 잘 돌봐야 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공유한 문화는 내 심장 속에, 내 유전자 속에 펄떡펄떡 살아 숨쉬고 있었다. 나는 그걸 잘 붙들고 키워 내 안에서 죽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했다. 엄마가 가르쳐준 교훈을, 내 안에, 내 일거수일투족에 엄마가 살아 있었다는 증거를 언젠가 후대에 잘 전할 수 있도록. 나는 엄마의 유산이었다. - P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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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간에 나눈 어떤 대화도 기억나지 않는다. 말없이 서로를 안아주는 장면도 내 기억엔 전혀 없다. 우리 가족과 친척들에게 감정 과잉은 자연스러웠지만 다정한 위로는 당연히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를 벙어리로 만든 건 누가 뭐래도 엄마였다. 엄마의 비통함이 아빠의 죽음을 더욱더 비참하게 만들었고 다른 이들은 사건의 결과를 숨죽이고 지켜보는 관객으로 위축시켰다. 엄마는 온몸으로 우리가 절대 위로할 수 없고 살아낼 수도 없는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못해도 영원히 발전이나 성장을 저해할 일이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모든 드라마의 주연은 엄마였고 남은 사람들은 뒤에서 발을 끌고 돌아다니거나 말도 눈물도 없이 불행이라는 질척한 진흙탕 속에서 어기적거리는 단역이었다. 우리 모두는 엄마의 극적인 자포자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 죽음을 애도하지 못하고 엄마의 애도만 지켜보아야 하는 먼 문상객이 되어버렸다. 침울한 집 안을 배회하는 동안 우리 머리와 가슴속에 가득 들어찬 이는 오직 엄마—지금 이 난리통 속에서 아빠를 생각할 여유가 어디 있나?—이 사람을 지켜보아야 하고 돌봐야 한다. 사력을 다한 엄마의 비탄은 다른 평범한 애도를 닦아세웠다. 우리 집의 비극은 며칠 전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 P101

그렇다고 해도 누구 한 사람 나를 부드럽게 위로해주는 이는 없었다. 그 어디에서도, 부엌에서도 거실에서도 나를 치유할 수 있는, 아니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고 진정시켜줄 만한 건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실과 부엌 사이엔 질식과 생존만 한 간극이 있었다. 거실은 칙칙하고 음울하고 단색이며 무언가 갑갑하게 엉겨 있는, 공기가 희박한 곳이었다. 부엌에 가면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가 참을 수 없는 순간에 내뱉을 수 있었고 그 공기는 밖으로 나가거나 밑으로 깔렸다. 부엌엔 목소리와 말투가 있었고 분위기는 나빠졌다가 좋아지기도 했으며, 기분은 가라앉기도 나아지기도 했다. 움직임이 있고 공간이 있고 빛과 공기가 있었다. 적어도 숨을 쉴 수 있었다. 살 수 있었다. - P106

남편을 여읜 처지는 엄마를 더 고귀한 인간 존재로 승격시키는 것 같기도 했다. 엄마는 아빠의 죽음에서 회복되지 않기로 결심하면서 부엌일하던 시절에는 가져본 적 없던 당신의 타고난 진지함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후 30년을 한결같이 바로 그 진지함에 헌신했다. 지치지도 않았고 지루해하지도 초조해하지도 않았다. 그저 진지함이 가져다준 낙을 유지할 새로운 방법들을 끊임없이 찾아냈고 영락없이 그걸 당신 것으로 만들었다. - P117

아빠를 애도하는 일은 엄마의 직분, 엄마의 정체성, 엄마의 페르소나가 되었다. 몇 년 후에 나는 우리 모두가 깊이 몸담었던 정치사상(마르크스주의와 공산주의)의 여러 국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는데, 내가 만난 배관공 제빵사 재봉사 들이 본인을 사상가 시인 학자로 여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남과 다른 사람들, 공산당원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도 당신의 과부 처지를 그와 같은 방식으로 여긴 건 아닌가 생각한다. 엄마가 볼 때 당신은 남편을 잃었기에 더 차원 높은 인간, 정신적으로 우월한 사람이 되었고 감정은 더욱 심오해졌으며 수사는 더 풍부해졌다. 아빠의 죽음은 의식과 신조를 제공하는 하나의 종교였다. 일생에 단 하나뿐이던 사랑은 정통파 유대교와도 같았고 엄마는 탈무드를 기록하듯 그 안에서 율법과 유산을 찾아냈다. - P118

내가 숨 쉬는 공기는 엄마의 절망 안에 푹 담겨 있다 나오면서 진해지고 의기양양해지며 자못 흥미롭고도 위험한 것이 되었다. 엄마의 고통은 나를 구성하는 요소, 내가 거주하는 국가, 내가 바짝 엎드려 따라야 하는 법과 규칙이 되었다. 나를 지휘하고 통솔하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반응하게 했다. 나는 끊임없이 엄마에게서 벗어나기를 갈구했지만 엄마가 방에 있을 때면 한시도 그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엄마의 퇴근을 두려워하면서도 엄마가 귀가하면 잠시도 집을 떠나지 않았다. 엄마의 존재가 내뿜는 불안은 내 허파를 부풀어 오르게 했다(물리적으로 심장이 조여들었고 가끔은 쇠갈고리가 골을 파고드는 느낌까지 들었다). 욕실 문을 잠그고 혼자 숨어서 엄마를 대신해 하염없는 눈물을 쏟았다. 금요일이면 꼬박 이틀간 이어질 게 뻔한 눈물과 한숨, 불씨가 꺼져도 식식거리며 새어 나오는 연기 같은 엄마의 우울증이 공기 중에 내뿜는 묘한 책망의 기운에 대비를 해야 했다. 나는 죄책감 속에서 일어나 죄책감 속에서 잠들었고 주말이면 죄책감이 점점 더 쌓여가다 얕은 열병에 걸린 상태가 되었다. - P119

나는 엄마로 뒤덮여 있었다. 엄마는 어디에나 있다. 내 위아래에 있고 내 바깥에 있고 나를 뒤집어봐도 있다. 엄마의 영향력은 마치 피부조직의 막처럼 내 콧구멍에, 내 눈꺼풀에, 내 입술에 들러붙어 있다. 숨을 쉴 때마다 엄마를 내 안에 들였다. 나는 엄마라는 마취제를 들이마시고 취했고 풍요로우면서도 밀실처럼 사람을 숨 막히게 하는 엄마의 존재감, 엄마라는 실체, 숨통을 틀어쥐는 고통받는 여성성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물론 당시에는 그 반도 못 헤아렸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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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잔소리 저것도 잔소리라네. 사실이 그렇잖아. 우리가 다 잘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너희 세대처럼 길에서 저렇게 망가지진 않았어. 우린 질서란 게 있었고, 침묵할 줄 알았고, 품격이 있었다고. 가족은 끝까지 고락을 함께했어. 사람들이 점잖게 살 줄 알았어."
"무슨 신소리야. 점잖긴 뭐가 점잖아. 진실을 감추고 산 거지. 설마 옛날 사람들이 더 행복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
"아니. 그런 말을 하려던 건 아냐." 엄마는 이내 항복한다.
"그럼 무슨 말을 하려는 건데?" 엄마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입도 닫는다. 이제 어떤 말을 할지 머리를 굴리는 중이다. 아, 찾았다. 승리의 미소와 비난조를 장착한 엄마는 말한다. "요즘 사람들은 불행이 너무 생생해."
엄마의 말에 나는 흠칫 놀랐지만 사뭇 즐겁기도 했다. 엄마가 진실을 말하거나 영리한 통찰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 즉시 엄마를 사랑할 수도 있을 것만 같다. - P49

엄마가 드러커 아줌마에게 창부라고 하고 1년 뒤에 드러커네는 이 건물에서 나갔고 그 아파트에 네티 러바인이 들어왔다. 드러커네가 이사 가고 네티가 이사 온 날은 기억에 없다. 트럭이나 봉고차가 들어와 가구, 식기, 옷가지 들을 내가고 들여오는 장면도 없다. 사람들도 짐도 마치 아파트에서 증발하듯 싹 사라졌고 다른 사람들이 그 공간을 되차지했을 뿐이다. 나는 애착이 절대적이지 않고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속성을 지녔다는 걸 아주 어린 시절에 알게 되었다. 옆집 사는 이웃을 로즈먼네, 드러커네, 지머먼네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들이 그리 달랐을까? 이웃이 있다는 사실만이 달랐다. - P51

네티와 관련해서는 모든 게 앞뒤가 안 맞게 느껴졌다. 비유대인으로 유대인과 결혼한 여자라니, 우리가 아는 유대인 중에 그런 사람은 없었다. 보아하니 그는 언제나 혼자였고 살고 싶은 곳을 스스로 자유롭게 택해왔으며 이번에도 자진해서 자기에게 특별히 이익이 되거나 자비를 베풀 리 없는 노동자 계층 유대인들 틈에서 살기로 선택한 듯했다. 요염하고 아리따운 외모 때문에 어딜 가나 부러움과 호기심의 대상이 되는 여자였던 네티는 평범한 서민들의 삶을 때로 과할 정도로 높이 평가했다. 그는 엄마의 살림 솜씨—적은 월급으로도 넉넉해 보이는 살림을 꾸리고 집에선 늘 좋은 냄새가 나며 아이들이 집에 있는 걸 만족하는 모습—를 두고 칭찬을 퍼부었는데 이런 능력이 진정 희귀한 보물인 것처럼, 자신에게는 주어진 적 없는 지참금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신이 거부당했던 삶의 상징인 것처럼 말했다. - P55

우리는 아까 걷던 길로 돌아와 렉싱턴애비뉴를 거슬러 올라간다. 공기는 아까보다 더 달콤하고 따스하고 또 무거워져서 흐린 하늘 사이로 곧 빗방울이 떨어질 기미가 보인다. 이런 날씨 참 좋아! 어떤 예측 없이 내 안에서 막연한 기대감이 솟구쳐 올라오지만 언제나 그렇듯 기대감이란 녀석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대로 곧장 또렷하게 올라오지 않고 무엇 때문인지 중간에 모양을 바꿔 다시 안으로 방향을 틀더니 시들시들해지다 명을 다해버린다. 우울하게도 내게는 참으로 익숙한 과정이다. - P70

우린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게 자기만의 세상에서 고립된 채 살아온 사람들, 평생 서로의 생활 반경에서 벗어나지 못해 닮아버린 두 여자다. 이런 순간엔 우리가 모녀라는 게 마치 외계인이 전달한 메모처럼 충격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우리는 엄마와 딸이 맞고, 거울처럼 서로를 반영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혈연이니 효도니 하는 단어는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반대로 가족이라는 개념, 우리가 가족이라는 사실, 가족의 삶이라는 것 모두 해석이 불가능한 세계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과연 그런 진실이 존재하나 싶어진다. - P72

우리 집 창문 아래로 보이는 누추한 다세대주택 앞 골목은 암흑과 침묵에 의해 완전히 다른 형태로 바뀌었다. 밤공기는 더 맑고, 온화하고, 밀도 높고, 설명할 길 없이 달콤하기도 했으며 그 공기는 내가 찾던 마법 같은 고립감을 더욱 증폭시켜주며 내 백일몽의 마침맞은 전달자가 되어주었다. 아파트를 등지고 창가에 앉는 순간부터, 눈으로 거리를 쫓을 때부터 허기진 공상이 즉각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시작했다. 이런 날의 공상은 네티의 ‘만약에 말이야 이러면 근사하지 않을까‘에서 고작 한 계단 정도 상승한 것이었지만 아주 중요한 발전이기도 했다. 내 공상은 대체로 ‘이렇게 가정해보자라는 문장으로 시작되었다. 그 뒤에는 이 구차한 현실에서 나를 구원해줄 이야기가 이어지기보다는 ‘대의‘를 품은 상상들이 뒤따랐다. 이런 식이었다. 모든 일은 언제나 나쁘게 끝나지만 그 비극 안에도 위엄이란 게 있지 않을까. 내가 쓰는 이야기의 요점은 명확하다. 인생은 비극이라는 것. ‘비극 안에‘ 머물면 인생이라는 지루하고 빈곤한 고통에서 구출될 수 있다. 사실 인생이란 게 전부 무의미해 보이기도 했다. 무의미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내가 알기론 가장 중요했다. 의미를 찾는 게 곧 구원이었다. 그것이 미숙한 십대 작가가 떠올릴 수 있는 첫 문장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신화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 P86

"몇 달 전에 너희 엄마 만났는데." 엄마는 말을 이었다.
"너 연락 없다고 뭐라 하시더라. 자식들이란 애들이 하나같이 왜들 그러니!" 나는 거의 경외심을 담아 엄마를 바라본다. 엄마는 20년 만에 만난 매디슨 샤피로 앞에서도 당신 내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한다······.
매디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지하철로 향하는 길을 막아선 우리를 못마땅하게 흘겨보거나 툭툭 치고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엄마를 꽉 안았다.
"어머니들이야말로 하나같이 왜들 그러세요." 그는 애정을 담아 대답했다. 나는 그를 바라본다. 만약 샤피로 아줌마가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면 그의 얼굴은 분노와 고통으로 어두워졌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엄마 입에서 이 말들이 나왔을 땐 인정 넘치게 지독하고, 후덕하게 짜증스럽다. 가끔 이렇게 한발 떨어져서 보는 순간에 우리 인생도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 P93

엄마는 이내 조용해진다. 엄마는 작년인가부터 속을 알 수 없는 오묘한 태도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허공을 바라본다.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는 듯한 아득한 표정 속에 홀로 머문다. 그러나 이번의 혼자는 내게 무척 익숙한 그 혼자, 얼굴을 냉소적이고 불행한 가면으로 만들어 그 뒤에 숨거나 당신의 아픔과 실망을 하염없이 헤아리고 있을 때의 혼자와는 다르다. 이 혼자에는 슬픔이 아닌 온화함이 깃들어 있다. 호기심과 흥미는 있어도 자기연민은 없다. 엄마의 눈이 가늘어진다는 건 엄마가 이미 아는 것을 조금 더 명확히 보고 싶어한다는 것, 이제껏 살아온 삶에 집중하고 싶어한다는 의미다. 엄마는 진실을 알려준 꿈에서 깬 것처럼 몸을 흔들면서 말한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삶을 살 권리가 있지." 엄마는 나직하게 말한다. - P95

엄마는 원시적인 상실감에 완전히 소진되어 모든 슬픔을 안으로 흡수했다. 모두의 슬픔이 당신의 슬픔이 되었다. 아내의 슬픔, 엄마의 슬픔, 딸의 슬픔을 완전히 독차지했다. 비탄은 엄마를 가득 채웠고 또 엄마를 비우기도 했다. 엄마는 핏줄이고 도관이고 발현이었다. 그 놀라운 유동성, 감각적이고 까다로운 가변성은 이제 엄마의 것이었다. - P98

장례식. 20년 후에 기자가 되어 중동에서 지내는 동안 아랍의 장례식을 거의 일주일에 한 번은 목격했다. 수백 명의 인파가 거리로 뛰어들어, 옷을 발기발기 찢고,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높고 새된 소리로 울부짖었다. 사람들이 까무러치고 서로를 밟고 지나가는 와중에 조문객들은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곡소리를 한다. 그 거리에서 내 옆에 서 있던, 아마도 서구인이었을 그 사람들은 조용히 고개를 흔들면서 이 낯설고 기이한 광경을 충격받은 얼굴로 바라보았다. 아마도 남몰래 자기는 이 사람들과 다른 부류라고 확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모든 광경이 너무도 친숙했는데, 내 기억 속 장면보다 약간 더 소란스럽고 미치광이 짓을 여럿이서 나눠 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엄마라면 이 모든 장면의 중심에 있었을 것이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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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세대주택에서 여섯 살 때부터 스물한 살 때까지 살았다. 스무 채의 빌라가 있는 4층 건물이었고 내가 기억하는 건 오직 여자들만 있었다는 점이다. 거기 살던 남자는 단 한 명도 기억이 안 난다. 물론 그들은 어디에나 있었을 것이다. 남편이었고 아빠였고 아들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그 건물을 떠올릴 때마다 여자들만 기억난다. 그곳 여자들 모두가 드러커 아줌마처럼 상스럽거나 우리 엄마처럼 외고집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사람처럼 말하는 법이 없었고 넘어온 삶의 고개를 이해하는 것 같지도 않았지만 행동만 보면 세상사를 다 꿰고 있는 듯했다. 약삭빠르고, 즉흥적이고, 무식하고, 시어도어 드라이저(19세기 미국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자연주의 소설가로 이민자와 빈곤층의 삶에 주목했다)의 소설만큼이나 극적이었다. 잠시 평화로워 보이는 시기도 있었지만 그러다 어느 순간 충격적이고 야만스러운 사건들이 터졌고 그 와중에 두세 명의 삶은 상처로 얼룩지고(어쩌면 몰락해버리고) 다시금 일시적인 소강상태가 찾아왔다. 또다시 울적한 고요함, 관능만 남은 무기력, 부정이 만들어내는 평정의 나날들이 이어졌다. 나라는 여자애는 그들 한가운데서 자라고 그들의 이미지 안에서 만들어진 존재였다. 얼굴을 덮은 천의 클로로포름을 빨아들이듯 나는 그 여자들을 빨아들였다. 무려 30년이 흐른 후에야 내가 그들을 얼마나 이해했었는지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 P6

세사는 참 예쁘장하고 젊은 새댁이었어. 결혼한 지 2년도 안 되었다고 했나. 남편을 사랑하지는 않았어. 그렇다고 미워하지도 않았지만. 사실 그럭저럭 착실한 남자였거든. 내가 아는 건, 남편을 안 사랑했고 매일 엉덩이까지 찰랑찰랑 내려오는 검은 머리가 눈에 확 띄었지. 그런데 어느 날 그 머릴 싹둑 자르고 나타난 거야. 세련된 도시 여자가 되고 싶었나 봐. 남편은 아무 말 없었는데 친정아버지가 집에 오더니 깎은 머리를 보고 냅다 뺨을 갈겨버린 거야. 너무 아프고 어안이 벙벙해서 천국에 계신 할머니가 보일 정도였대. 그러곤 사위를 시켜 한 달 동안 집에 가둬버리라고 했다나. 세사는 비상계단을 타고 우리 집으로 내려와서 우리 현관으로 나갔지 뭐. 한 달 동안 매일매일 말이야. 한번은 우리 집 부엌에서 같이 커피를 마셨어. ‘세사, 친정아버지한테 여긴 미국이라고 말해. 우린 미국에서 살고 있다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 자유가 있다고.‘ 세사가 나를 빤히 보더니 그러더라.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버지한테 여긴 미국이라고 말하라고요?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양반이에요.‘ - P9

우리 가족은 1년간 이탈리아 골목에서 살았다. 어린 오빠와 나는 그 동네 학교에서 유일한 유대인이었다. 우린 참으로 비참했다. 그게 전부였다. 그저 비참하기만 했다. 유대인 동네로 이사하고 오빠는 한시름 놓았는데 매일 방과 후 자기를 유대인 범생이라고 부르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얻어맞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빠의 삶을 이루는 기본 형식이나 요소들이 근본적으로 변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이탈리아나 아일랜드 사람들 사이에서, 때로 같은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외부자스러움‘은 우리의 개성과 흥미를 북돋아주었고, 우리를 어떤 식으로건 정의했기에, 겉으로는 두려워하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우리가 남들과 다르다는 점을 짜릿해하기도 했다. - P17

우리 건물에는 대체로 유대인만 살았지만 1층에 아일랜드 가족, 3층엔 러시아 사람들이 살았고 관리인은 폴란드인이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모두 키가 멀대처럼 크고 말이 없었다. 그들은 있는 듯 없는 듯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며 건물에 드나들었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모두 삐쩍 마르고 금발에 파란 눈을 갖고 있었으며 입술이 얇았고 얼굴이 갸름했다. 그들 또한 우리 사이에선 그림자와 같았다. 관리인과 그의 아내도 말수가 적었다. 누구에게도 먼저 말 거는 법이 없었다. 아마도 이건 다수 안에서 소수가 살아남는 방식일 것이다. 소수자는 저절로 침묵하게 된다. - P17

이 안뜰을 공유하는 건물 전체에 흩어져 사는 친구들은 하루 종일 갖가지 일로 서로를 불러댔다. ("하비 언제 병원 데리고 갈 거야?" "집에 설탕 있어? 내가 매릴린 보낼게" "10분 후에 집 앞에서 만나.) 어찌나 인정과 활기가 넘쳤던지! 신선한 공기와 그림자 한 점 없는 쨍한 햇살 속에서 여자들은 서로의 이름을 불렀고 그들의 목소리는 햇볕에서 바짝 마르는 빨래 냄새와 섞이며 이 열린 공간의 다양한 질감과 색감을 만들어냈다. 나는 부엌 창문에 기대 서서 지금까지도 입에서 맛볼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안뜰을 바라보곤 했다. 그건 연하고 밝은 초록의 맛이었다. - P23

엄마는 여기 아닌 다른 세상, 진짜 세상이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가끔은 당신이 그 세상을 원한다고 생각했다. 아주 열렬하고 절실하게. 엄마는 집안일에 열중하다가도 갑자기 모든 동작을 일제히 멈추고, 한없이 길게 느껴지는 몇 분 동안 싱크대를, 바닥을, 스토브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세상이 어디 있는데? 어떻게 가야 하는데? 그게 대체 뭔데? - P25

이것이 엄마가 처한 삶의 조건이었다. 여기 이 부엌에서 당신이 누구인지 잘 안다는 것. 또한 이 부엌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지리멸렬해한다는 것. 이 부엌에서 엄마는 누구나 존경하고 감탄할 정도로 훌륭히 기능한다.
이 부엌에서 당신이 하는 일을 혐오스러워한다. 어쩌면 나중에 당신 입으로 말한 "여자로 산다는 것의 공허함"에 대해 분노를 키우고 있다. 그러다가도 골목에서 벌어지는 세상만사를 날카롭게 분석하면서 내가 아직도 기억하는 명랑하고 유쾌한 웃음을 터트린다. 아침에는 수동적이고, 오후에는 반항적이던 엄마는 매일 새로 만들어졌다가 매일 풀어져버리는 사람이었다. 당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재료를 굶주린 사람처럼 붙들고 스스로 창조한 세계에 애정을 보이다가도 일순간 어쩔 수 없이 이 생활로 끌려온 부역자처럼 느끼곤 했다. 어떻게 그처럼 처절하게 분열된 삶에 당신의 모든 감정을 쏟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그러니 나라고 무슨 수로 엄마의 감정에 감정을 쏟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 P26

커너 아줌마로 하여금 이야기를 하게끔 하는 욕구에 이성적이고 철학적인 이유 같은 건 없었다. 그분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건 인간의 감정이었고 당신의 예술적 도구인 음악, 그림, 문학을 통해 그 순수한 감정을 전달하려고 했다.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는 감정을 느낄 줄 아는 문화적인 사람들과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얘들아, 감정이 모든 걸 좌우한단다. 무엇을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인생이 풍족할 수도 빈곤할 수도 있어. 감정을 고양시키면 큰 재산이 되기도 하고 그게 싹 사라져버리면 길가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인생이 되기도 하는 거야.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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