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 배정 모자는 제 안에서 슬리데린의 힘을 봤고, 그리고……"
"너를 그리핀도르에 넣었지." 덤블도어가 담담하게 말했다. "내 말 잘 듣거라, 해리. 공교롭게도 너는 살라자르 슬리데린이 학생들을 직접 선발할 때 중요하게 여긴 수많은 자질을 지니고 있어. 그자가 가진 굉장히 희귀한 재능인 뱀의 말을 하는 능력이라든지……지략, 결단력…… 규칙을 무시하는 태도도 그렇고." 또다시 콧수염을 살짝 들썩거리며 그가 덧붙였다. "그런데도 기숙사 배정 모자는 너를 그리핀도르에 넣었다. 이유는 너도 알고 있어. 생각해 보려무나."
"모자가 저를 그리핀도르에 넣은 건 단지……" 해리가 자포자기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슬리데린에 넣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인데요……"
"바로 그거야." 덤블도어가 다시 한 번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게 너와 톰 리들의 큰 차이점이다.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 주는 건 말이다, 해리, 우리가 가진 능력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선택이란다." - P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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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게 보일는지 모르지만, 옷은 보온이라는 기능보다 더 중요한 기능을 갖는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옷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고, 세상이 우리를 보는 눈을 바꾼다.


남자는 세상이 마치 그가 사용하도록 만들어지고, 또한 그의 기호에 맞게 만들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세상을 정면으로 직시한다. 여자 올랜도는 비스듬히 미묘하게, 심지어는 의심이라도 하듯 세상을 본다. 그들이 만약 같은 옷을 입었더라면, 그들의 태도도 같았을는지 모른다. - P166

양성 간의 차이는 다행히도 매우 깊은 곳에 있다. 옷이란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어떤 것의 상징에 불과하다. 올랜도로 하여금 여자 옷을 선택하게 하고, 여자임을 자처하게 한 것은 그녀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이다. 그리고 여기서 올랜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일이 있어도 분명히 말하지 않는데 비해 보통 이상으로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지 모른다–그녀는 태어나길 솔직한 사람이니까. 여기서 다시금 우리는 딜레마에 빠진다. 두 성은 서로 다르지만, 서로 섞여 있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 양성은 유동적이며, 남자답거나 여자답게 보이게 하는 것은 옷뿐이고, 그 속의 성은 겉과는 정반대인 경우가 흔히 있다. 이로써 생기는 분규와 혼란은 누구나 경험한 바 있다. - P167

사교계란 노련한 주부들이 크리스마스 때 따끈하게 내어놓는 음료의 일종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는데, 그 맛은 10여 가지의 서로 다른 성분들을 제대로 섞어 흔들어서 얻는 것이다. 하나하나의 성분 그 자체는 맛이 없다. 0 경이나, A 경이나, C 경 이나 혹은 M 씨를 따로 떼놓고 보면 별 매력이 없다. 이들을 모두 한데 넣고 흔들어 섞으면, 더없이 사람을 취하게 하는 맛과 더없이 매혹적인 향기를 풍긴다. 그러나 이 도취, 이 매혹을 분석한다는 것은 우리의 능력을 벗어난다. 따라서 사교계는 최고의 것인 동시에 최저의 것이다. 사교계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제품이지만, 전혀 존재하지 않는 존재이다. 이런 괴물은 시인이나 소설가만이 다룰 수 있다. 그들의 작품은 대단하면서 아무것도 아닌 이런 것으로 가득 차, 엄청난 크기로 부풀어 오른다. - P171

만약 무장하지 않은 채로 사자 굴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무모한 짓이라면, 노 젓는 배로 대서양을 횡단하는 것이 무모한 짓이라 면, 성바오로 성당 꼭대기에서 한 발로 서는 것이 무모한 짓이라면, 시인과 단 둘이 자기 집으로 가는 것은 더욱 무모한 짓이다. 시인은 대서양과 사자를 합쳐놓은 것이다. 대서양이 우리를 삼켜버린다면 사자는 우리를 물어뜯는다. 사자의 이빨에서 빠져나온다고 해도 바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환상을 깨뜨리는 사람은 야수이고 홍수이다. 환상은 영혼에 대해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와 같다. 그 부드러운 공기를 걷어내면 식물은 죽고 빛은 사라진다. 우리가 걷고 있는 지구는 타버린 재가 된다. 우리가 걷는 것은 이회토 진흙이고, 뜨거운 자갈에 발바닥이 탄다. 진실은 우리를 파멸시킨다. 인생은 꿈이다. 깨어난다는 것은 죽음을 뜻한다. 우리에게서 꿈을 빼앗아가는 사람은 우리의 목숨을 빼앗아가는 사람이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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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있었고, 골짜기가 있었고, 냇물이 있었다. 그녀는 산을 오르고, 골짜기를 배회했고, 냇가 언덕 위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언덕을 성벽이나, 비둘기 가슴이나, 암소 옆구리에 비유했다. 그녀는 꽃을 에나멜에 비유했고, 잔디는 닳아버린 터키 양탄자에 비유했다. 나무는 시들어버린 추한 노파였으며, 양은 회색의 둥근 돌이었다. - P127

그녀는 자연이 아름다운가, 아니면 잔인한가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에 관해 자문해보았다. 아름다움이란 사물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녀 내면에만 존재하는 것인가. 이와 같이 그녀는 실재의 본질에 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이어 그 생각은 진리에, 그다음으로는 ‘사랑‘, ‘우정‘, ‘시‘에 이르렀다(고향에 있는 높은 언덕에서 그랬던 것처럼). - P129

도시들은 그보다도 못한 의견의 차이 때문에 약탈당하고, 그리고 무수한 순교자들이 여기서 다툰 논쟁거리의 어느 하나에서 한 치의 양보를 하느니 차라리 화형을 감내했다. 인간의 가슴속에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갖게 하고 싶은 것만큼 큰 욕망은 없다. 자기가 높이 평가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깎아내리는 느낌만큼 우리의 행복을 뿌리째 뽑아버리고 우리를 분노로 채우는 것은 없다. - P163

"맙소사‘, 마침내 그녀는 놀라움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리고, 차양 아래에서 기지개를 켜면서 생각했다."이건 확실히 유쾌하고 나태한 생활 방식이다. 그러나", 그녀는 다리를 걷어차면서 생각했다. "발꿈치를 휘감는 이 치마는 성가신 물건이다. 그러나 옷감은(꽃무늬가 있는 튼튼한 비단이었는데) 예쁘기 그지없다. 내 피부가 지금처럼 돋보인 적은 결코 없었다(여기서 그녀는 손을 무릎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내가 난간을 뛰어넘어 이런 옷으로 헤엄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지! 따라서 나는 수부들의 보호에 몸을 맡기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게 싫다는 건가? 정말로 그런가?" 지금까지 술술 풀리던 논의의 실타래가 처음으로 엉키자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 P137

"저항하고는 양보하고, 양보하고는 저항하는 것만큼 멋진 것은 없다. 확실히 그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정신을 황홀하게 만든다. 따라서 내가 단순히 수부에게 구조되는 기쁨 하나 때문에 난간 너머 몸을 던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어" - P138

"여자의 발목을 보았다고 해서 돛대 꼭대기에서 떨어지거나, 여자의 칭찬이 듣고 싶어 가이 포크스처럼 차려 입고 길거리를 행진하거나, 조롱받기가 싫어서 여자에게 글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거나, 약하디 약한 계집아이한테 절절매는 주제에, 밖에서는 마치 창조주 같은 얼굴을 하고 돌아다닌다–맙소사!"라고 그녀는 생각했다."저들은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아는가!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 P140

"내가 여자인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녀는 소리치고, 하마터면 자기 성에 대해 자만하는, 극도로 바보 같은 짓을 할 뻔했는데–남녀 간에 이보다 더 한탄스러운 것은 없다–그녀는 이상한 단어 하나 때문에 주춤했다. 그 단어는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슬며시 빠져나와 앞 문장 끝에 들어왔다. ‘사랑‘. "사랑"이라고 올랜도가 말했다. 그러자마자–사랑은 그처럼 성급하다–사랑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나타났는데–사랑은 그처럼 자존심이 강하다. 다른 관념들은 추상적인 상태로 불만 없이 남아 있는데, 사랑은 살아 있는 인간이 되어 케이프와 페티코트, 그리고 스타킹과 가죽조끼를 입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랜도의 모든 애인들이 여자였고, 인간의 몸은 관습에 익숙해지는 것이 괘씸할 정도로 느리기 때문에, 비록 그녀가 여자이긴 했으나, 올랜도가 사랑한 것은 여전히 여자였다. 동성이라는 의식이 오히려 그녀가 남자였을 때 가졌던 감정을 한층 더 활기차고 깊게 만들었다. 남자였을 때는 알지 못했던 무수한 암시나 수수께끼가 지금은 분명해졌다. 남녀를 구분하고, 무수한 불순물들을 어둠 속에 고이게 만들던 애매함이 사라졌다. 그리고 진리와 아름다움에 대해 시인이 하는 말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올랜도가 여자에 대해서 느끼는 이 애정은 거짓 속에서 잃었던 것을 아름다움 속에서 얻은 것이다. - P142

다행히도 오래 떠나 있던 고국 땅의 모습을 보고, 펄쩍 뛰고 감탄했노라는 것이 납득이 되었다. 아니었으면 그녀는 지금 마음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분노하고 갈등하는 감정들을 바터로스 선장에게 설명하기가 궁했을 것이다. 지금 그의 팔에 안겨 떨고 있는 자신이, 한때 공작이었고, 대사였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겹으로 된 비단으로 백합처럼 싸여 있는 자기가, 한때 사람의 목을 쳤고, 백합이 피어나고 벌들이 윙윙거리는 여름 날 저녁, 와핑 올드 스테어스의 앞바다에서 해적선 창고의 보물 자루들 사이에서, 막된 여자들과 잠자리를 같이 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선장의 단호한 손이 영국 섬의 절벽들을 가리켰을 때, 왜 그처럼 크게 놀랐는지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게도 설명할 수 없을 것이었다. - P144

그 많은 여행과 모험과 깊은 명상과 이런저런 모색에도 불구하고 올랜도는 여전히 자기 형성의 도상에 있을 따름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변화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아마도 그칠 날이 없을 것이었다. 높다란 사고의 성벽, 돌처럼 단단해 보이던 습관들이 다른 정신이 와 닿자마자 그림자처럼 무너져내리고, 뒤에는 벌거벗은 하늘과 반짝이는 별들만이 남았다. - P156

"우리 마음은 주마등인데다, 비슷하지도 않은 것들의 잡동사니인가! 한순간 우리는 자신의 출생과 신분을 한탄하고, 고행자의 기쁨을 그리워하는가 하면, 다음 순간엔 오래된 정원의 산책길 냄새에 겨워하고, 지빠귀 소리를 듣고는 운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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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보스니아 작가 이제트 사라일리치(Izet Sarajlie)은 「2176년에 보내는 편지」라는 시에서 이렇게 썼다. "뭐라고? / 아직도 멘델스 존의 노래를 들어? / 아직도 데이지를 고르니? / 아직도 어린이날을 축하해? / 도로명을 아직도 시인의 이름을 따서 지어? / 2세기 전, 1970년대엔 아이들의 놀이, 별 헤기, 로스토브 씨 집에서 춤추기가 사라지듯이 시의 시대가 저물 것이라고 했는데. / 나는 바보같이 그걸 믿을 뻔했어!" - P404

책등이 지붕처럼 펼쳐지고, 책갈피가 없으면 쪽 모서리를 접어두고, 언어로 만든 석순처럼 세로로 쌓아두는 우리의 책은 약 2000년의 역사를 지녔다. 책은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는 익명의 발명품이다. - P404

문자가 발명된 이후로 우리의 선조들은 어떤 표면(돌, 홈, 나무껍질, 갈대, 가죽, 나무, 상아, 천, 금속 등)이 글자의 자취를 가장 잘 보존할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들은 완벽하고 휴대 가능하며 내구성 있고 편안한 책을 만들어 망각의 힘에 맞서고자 했다. 중동과 유럽에서 이 초기 단계의 주인공은 파피루스나 양피지 두루마리, 견고한 서판이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종이가 발명되기 전까지 그들은 그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했다. - P404

우리는 코덱스를 발명한 누군지 모를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그들 덕분에 텍스트의 기대 수명이 늘어났다. 새로운 방식의 제본은 두루마리보다 내구성이 강하고 훼손도 덜했다. 또 평평했기에 선반에 편리하게 보관할 수 있었다. 크기도 작고 운송도 편리했다. 게다가 각 시트의 양면을 사용할 수 있었다. 코덱스의 용량은 두루마리의 여섯 배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재료의 절약으로 가격이 조금이나마 낮춰졌으며 유연성 덕분에 오늘날의 작은 수첩의 모태가 만들어 질 수 있었으며 크기도 소형화되었다.(키케로는 호두 껍데기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본 적이 있다고 한다.) - P405

한밤중에 담요를 뒤집어쓰고 손전등을 켠 채 책을 읽다가 누군가 오는 것 같으면 불을 끄던 어린 시절의 우리는 그 은밀한 독자의 직계 후손이다. 현재 우리가 읽고 있는 형태의 책이 승리할 수 있었던 건 박해 속에서 은밀한 독서를 선호한 결과다. - P411

우리가 ‘긴‘ 책을 언급할 때, 그것은 무의식적으로 두루마리를 지시하는 행위이다. 우리는 구어에서 코덱스를 라틴어의 volvo(돌다, 회전하다)에서 유래한 volumn(권, 책, 크기)이라고 부르고 있다. 더 이상 되감을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구어에서 지루한 무언가를, 절대 끝나지 않고 펼쳐지고 또 펼쳐지는 무언가를 rollo(장광설)라고 말한다. 오늘날 영어의 scroll은 마치 두루마리를 볼 때 그랬듯 화면 위의 글을 상하로 움직이는 동작을 일컫는다. 또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들은 사용하지 않을 때 말아서 보관할 수 있는 TV 스크린을 개발하고 있다. 형식의 변화사를 보면 하나의 형식은 다른 형식으로 대체되는 게 아니라 공존하고 전문화되었다. 최초의 책은 멸종되기를 거부했다. - P413

마틴 스코세이지는 「휴고」(2011)를 통해 그 같은 상황을 재현했다. 특히 조르주 멜리에스(Georges Malies) 영화의 셀룰로이드가 신발 뒷굽을 만드는 데 재사용되는 장면은 우울하기 그지없다. 영화를 개척한 사람들의 마음에 깃들어 있던 아름다움이 결국엔 빗이나 힐로 재활용되었다. 1920년대, 익명의 사람들이 예술 작품 위를 밟고 지나갔다. 그들은 예술 작품을 신고 길 위의 물웅덩이를 디뎠다. 예술 작품으로 머리를 빗었다. 그 위에 머리 비듬이 붙었다. 자신이 쓰고 있는 도구들이 실은 조그만 무덤이라는 것, 파괴의 일상적인 추모비라는 것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 P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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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지론은, 콕 집어 이름 붙이기 어려운 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식이었다. 그러니 겉모습이 유지되고 있는 한 굳이 파고들 필요가 없었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지,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 P52

스물네 살의 오빠는 이미 과묵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이 되어 있었고, 그런 성격을 스스로 혐오스러워했다.
"나는 조숙한 노인이야." 그는 거울을 보며 면도를 하면서 역겨움에 중얼거렸다. 그는 별로 관심도 없는 데다 의구심이 생기기조차 하는 아버지의 사업을 여러 해 동안 보좌해 왔고, 자기가 몸담은 환경에서 마치 침입자가 된 기분으로 가라앉지 않고 떠 있으려고 애를 썼다. 자신과 같은 조건의 사람들과 관심사나 이상을 공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P59

오늘날은 모두가 실제보다 더 괜찮은 사람인 척하고, 실제보다 더 가진 게 많은 사람인 척한다. - P64

모든 인간이 법 앞에서 평등하다거나 신이 보기에 평등하다는 이야기는 사기란다, 카밀로. 나는 네가 그것을 믿지 않기를 바란다. 법도 하느님도 우리 모두를 똑같이 대하지 않는다. 이 나라에서는 그게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면 억양의 미세한 차이, 식탁에서 포크와 나이프를 쥐는 방식, 또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수많은 사회 계층 중 어느 계층에 속하는 사람인지 단 1초 만에 알아챌 수 있다. - P68

둘째 날에는 호세 안토니오와 다른 오빠들도 시위에 가담했다. 정치적인 신념 때문이라기보다는 좌절감을 쏟아내고 싶어서였다. 또 친구들이나 지인들도 시위에 같이하고 있으니 뒤로 물러나 있고 싶지 않았다. 넥타이에 모자를 쓴 관리들, 가난한 노동자들, 남루한 차림의 노숙자들이 하나가 되어 거리에 모여들었다. 그렇게 많은 군중이 나란히 행진하는 모습은 이전에 본 적이 없었다. 과거 실업이 최악이던 시기, 비참에 빠진 사람들은 시위행진을 하고 중산층과 상류층은 저택 발코니에서 내다보던 때와는 정말 달랐다. 감정을 잘 통제하고 정돈된 생활을 유지하는데 익숙한 호세 안토니오에게 그것은 자유로운 경험이었다. 몇 시간 동안 그는 자신이 한 집단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밀하게 붙어 대열을 만든 채 몽둥이와 총으로 대응하고 있는 무장 경찰대를 향해 고함을 지르며 자극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광기에 빠진 사람 같다는 걸 스스로 깨닫기는 쉽지 않았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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