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마당의 키 작은 꽃나무들은 겨우내 무엇을 하는가.
봄부터 가을까지 푸른 잎과 붉은 꽃으로 한껏 제 모습을뽐내던 영산홍과 철쭉이 몇 달째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정지 화면으로 창밖에 멈춰 서 있다. 아침에 박새 몇 마리가다녀가면 해가 떠서 질 때까지 천천히 제 주위를 맴도는그림자밖에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풍경 속에서 그것들은바짝 마른 잔가지들을 사방으로 뻗친 채 잠을 자는지 꿈을꾸는지 미동도 하지 않는다. 꽃나무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온갖 풀벌레와 잡초들도 같은 모습으로 이 혹독한 시간을견뎌내고 있다.

그 작은것들이 하나같이 무자비한 자연에 맞서 바위처럼 묵묵히때를 기다리고 있는 걸 생각하면, 우리는 얼마나노심초사하고 안달복달하는가. 매 순간의 공허를 뭔가로채워 넣기 위해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우리의 조바심이저들에게는 얼마나 가소롭게 비칠까. 혼자 있어서외롭다느니 우울하다느니 삶이 의미가 있느니 없느니 하는푸념조차 부끄러워하는 법을 배우는 한 해가 되기를, 그렇게내 속에 숨어 있는 식물의 시간을 깨우는 새해가 되기를

A가 A가 아니고 B인 것이 변함없는 이 세계의 한계이고그 안에서 사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면, 계속해서 A가아니고 B인 A의 문제를 같은 방식으로 다루는 것이 의미가있는가? 똑같은 얘기를 반복하면서 똑같은 얘기를 반복하고있다는 것을 애써 외면한 채, 나는 어느덧 익숙해진 길을걸어온 것이 아닐까? 오히려 A가 A가 아니라 B이고 C일 수도 있음을…

나는 미술학교 목공실에서 노련한 독일인마이스터에게서 나무 다루는 법을 배우며 조각을 공부했다.
좋은 목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깐깐함을 이해할 수는있다. 세상에 남아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 오래 기억해야 할것과 빨리 잊어야 할 것의 경계를 정하는 자의 고독과 근심을이해할 수는 있다. 다만 버려지고 사라지는 쪽에 나의 시선이더 많이 머무는 점이 다를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단은 조롱과 비아냥, 일반화를 피하려고 노력한다. 복잡하게얽힌 세계에서 한 사람을 덩어리로부터 떼어내 개별적으로 보고 싶다. 내가 섹시 아시안 걸‘로 요약되었을 때 상처 받았던 것처럼, 남부에서 온 아저씨도 상처 받았을 수 있다. 그 아저씨가 남부‘에서 연상되는 전형적인 인종 차별주의자였더라면 그 공연을 보고 있지 않았을 확률이 높으니까. 공연자의 갑자기 드러난 날카로운 면에 대해서~

사회적 맥락과 개인을 동시에 온전히 이해하는 것, 내가 쓰는 언어의 요철을 없애면서도 예각을 잃지 않는 것. 그 지난한 두 가지가 포기할 수 없는 목표인 것 같다. 실패하면 그다음 번에 다이얼을 더 잘돌릴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계속한다.

시간이 지나 국내에서도 풍력발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어 기쁘다. 새들이 충돌하는 문제를 비롯해 보완할 점은 많이 남아 있겠지만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 자체가 의미 있다. 세상이 망가지는 속도가 무서워도, 고치려는 사람들 역시 쉬지 않는다는 걸 잊지 않으려 한다. 절망이 언제나 가장 쉬운 감정인 듯싶어, 책임감 있는 성인에게 어울리진 않는다고 판단했다. 작은 부분에서 시작된 변화가 확산되는 것은 인류역사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패턴이기 때문에 시선을 멀리 던진다.
합리성과 이타성, 전환과 전복을 믿고 있다. 우리는 하던 대로 하고살던 대로 사는 종이 아니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약한 부분을 햇볕 아래 드러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가끔 몇 년 전에 읽은 책 한 권이 마음에 안 들었다고 집요할 정도로따라붙으며 잔인한 말들을 하는 이를 맞닥뜨리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정말 어렵다. 마음속의 저울이 잘 작동하는 사람들과만 가까이 지낼 수 있는 것 같다. 마음속의 저울은 옳고 그름, 유해함과 무해함, 폭력과 존중을 가늠한다. 그것이 망가진 사람들은 끝없이 다른사람들을 상처 입힌다. 사실 이미 고장 난 타인의 저울에 대해서 할수 있는 일들은 별로 없는 듯하다. 그저 내 저울의 눈금 위로 바늘이잘 작동하는지 공들여 점검할 수밖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것은 계시이자 구원이었다. 갑자기 나는 어디서든 길을 볼수 있었다. 그 길은 여태껏 그것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던 중요한 길이었다. 푸른 잔디밭을 가로지르는 좁다란 오솔길, 수풀 속으로 난 짐승들이 다니는 길, 산울타리를 관통하고 정원들 사이를들락날락하고 운동장과 주차장을 가로지르는 지름길들이 눈에보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타성에 젖어 집까지 늘 다니던 길도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동이 틀 무렵 엘 부르고 라네로E Burgo Ranero를 떠났다. 내가 여기 있다는 것 말고는 더이상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내 두 다리, 태양, 대기, 내 배낭, 새와 꽃들, 길, 그리고 목적지.

내게 걷는 것은 사색의 장이라기보다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거나 적어도 뭔가 중요하거나 복잡한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때이다. 걸을 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보통 단순하고 실용적인 것, 아주 쉽고 간단한 해법을 요하는 문제들인데, 사람이 많은시내나 도심지역을 걷는 것이 아닐 때에는 대개 나 자신에 대해집중하는 것을 좋아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러니 이제는 이런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없어지면 없는 대로 살고, 자꾸 달아나는 것들을 달아나도록놔두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상자와 서랍을 더 많이만들어서 그들을 그 안에 가두기보다는..

우리는 일상의 경계를 넘어서 기계의 세계 속으로 들어갈권한이 없다. 전문가를 부르면 부품을 통째로 갈거나 기계자체를 새것으로 바꾸라고 한다. 결국 고장 난 기계를 내다버리고 새것을 들여놓는다. 우리는 이 기계들의 주인이지만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물론 기계들도 우리가 갖고 있는다른 걱정거리들에 아무 관심이 없다.
이런 관계가 우리 삶 전체를 지배한다. 문제들은 보이지않는 곳에서 일어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우리가 사물의 겉에만 관심이 있고 그 내부에무관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장 난 것이 냉장고나세탁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일 때, 우리가 속해 있는 집단일때, 우리의 운명을 규정하는 제도 자체일 때에도 우리가 할 수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유리잔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깨지는 한순간의 소리를1분, 한 시간, 하루 또는 1년으로 늘려놓으면 어떻게 될지상상해본다. 소리의 총량은 그대로지만 시간이 늘어남으로써그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 된다. 우리는 그것을 유리잔이깨지는 소리로 인식하지 못한다. 유리잔 스스로도 자신의몸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삶을, 하필이면 깨지는 유리잔에 비유하고 싶지는 않지만,삶은 이처럼 느리게 진행되는 사건의 과정이다.

내가 거쳐온 세상이라는학교가 내게 박아 넣은 나사못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내 속에 들어와 지금의 나를 만든 이 이물질들, 나사못들로엮여 있는 습관과 관념의 덩어리가 바로 나다. 그것들이 나를만들었다면, 그 이전에 그것들이 아닌 원래의 ‘나는 과연누구였을까. 그런 것이 정말 있기는 했을까.

나에게도 나무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수많은 가지들이 있다. 그것들 중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정하고 잘라낼 것과 살릴 것을 정해야 한다. 생각처럼잘되지는 않지만,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버릴것을 버리는 나무의 결단을 배워야 한다. 나무가 된다는 것은한곳에 자리 잡고 무슨 일이 일어나기만을 마냥 기다리는것이 아니다. 나무의 미덕은 인내와 여유로움만이 아니다. 치열한 자기성찰과 말 없는 실천에 나무의 미덕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