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이제는 이런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없어지면 없는 대로 살고, 자꾸 달아나는 것들을 달아나도록놔두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상자와 서랍을 더 많이만들어서 그들을 그 안에 가두기보다는..

우리는 일상의 경계를 넘어서 기계의 세계 속으로 들어갈권한이 없다. 전문가를 부르면 부품을 통째로 갈거나 기계자체를 새것으로 바꾸라고 한다. 결국 고장 난 기계를 내다버리고 새것을 들여놓는다. 우리는 이 기계들의 주인이지만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물론 기계들도 우리가 갖고 있는다른 걱정거리들에 아무 관심이 없다.
이런 관계가 우리 삶 전체를 지배한다. 문제들은 보이지않는 곳에서 일어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우리가 사물의 겉에만 관심이 있고 그 내부에무관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장 난 것이 냉장고나세탁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일 때, 우리가 속해 있는 집단일때, 우리의 운명을 규정하는 제도 자체일 때에도 우리가 할 수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유리잔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깨지는 한순간의 소리를1분, 한 시간, 하루 또는 1년으로 늘려놓으면 어떻게 될지상상해본다. 소리의 총량은 그대로지만 시간이 늘어남으로써그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 된다. 우리는 그것을 유리잔이깨지는 소리로 인식하지 못한다. 유리잔 스스로도 자신의몸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삶을, 하필이면 깨지는 유리잔에 비유하고 싶지는 않지만,삶은 이처럼 느리게 진행되는 사건의 과정이다.

내가 거쳐온 세상이라는학교가 내게 박아 넣은 나사못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내 속에 들어와 지금의 나를 만든 이 이물질들, 나사못들로엮여 있는 습관과 관념의 덩어리가 바로 나다. 그것들이 나를만들었다면, 그 이전에 그것들이 아닌 원래의 ‘나는 과연누구였을까. 그런 것이 정말 있기는 했을까.

나에게도 나무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수많은 가지들이 있다. 그것들 중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정하고 잘라낼 것과 살릴 것을 정해야 한다. 생각처럼잘되지는 않지만,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버릴것을 버리는 나무의 결단을 배워야 한다. 나무가 된다는 것은한곳에 자리 잡고 무슨 일이 일어나기만을 마냥 기다리는것이 아니다. 나무의 미덕은 인내와 여유로움만이 아니다. 치열한 자기성찰과 말 없는 실천에 나무의 미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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