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탐구하고 가르칠수 있는건 그리 많지는 않으나,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것들이다. 말하자면, 가까운이웃과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 크고 작은 사물들에가치를 부여하는 방식, 삶의 균형을, 삶에서 사랑의 자리라든가, 그 힘과 리듬을, 또한 죽음의 자리를 찾는 그 방식, 그밖에 다른 일들, 냉혹함, 연민, 슬픔, 아이러니, 유머 등, 필요하지만 어려운 일들을 생각하거나 생각하지않는 그 방식 등 -이탈로 칼비노 ‘사자의 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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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쓸모 - 21세기 프랑스 대표적 지성의 문학을 대하는 현대적 방식
앙투안 콩파뇽 지음, 김병욱 옮김 / 뮤진트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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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이성에 무관심한 채 그저 자기 몸매만 가꾸는 예술이라면 소멸해버릴 위험성이 있다. 보들레르가 1852년1월 <세속의 학교>라는 글에서 주장하는 바가 바로 그거다. "머지않아 사람들은 과학과 철학 사이에서 형제처럼걷길 거부하는 모든 문학은 살인하는 문학이요 자살하는문학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보들레르는 세기 속의 문학을, 세기에 굴종하거나 세기에 봉사하는 문학이 아니라세기 속에 현전하는 문학을 지지했다.

프루스트는 문학을 다른 삶, 삶 밖의 삶, 세계 밖의 삶으로 만든다. 활동적인 삶과 명상적인 삶을 나눈 고대와 기독교적 구분의 현대식 버전이랄까. 그가 말하는 명상적인삶이란 곧 품격 있는 여가otium cum dignitate, 키케로나 몽테뉴의 은퇴 생활, ‘자발적 평온‘, 공부하는 여가요, 몽테뉴의 친구 라보에시가 말한 ‘자발적 예속‘ 같은 것이다.

현대는 활동적인 삶과 명상적인 삶의 서열을 뒤집었다. 예전엔 오티움orium의 반대인 네고티움negotium이 자아 상실을의미했으나, 이제는 개신교의 부상과 관련지을 수 있는추세에 따라(이는 바로 막스 베버의 1904년 저술 <기독교 윤리와자본주의 정신>이 주는 교훈이다) 비즈니스négoce10)가 자아실현의 장, 존재 성취의 장 자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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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쓸모 - 21세기 프랑스 대표적 지성의 문학을 대하는 현대적 방식
앙투안 콩파뇽 지음, 김병욱 옮김 / 뮤진트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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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활자의 비중이 작아지는 시대, 흥미롭게 읽고 여러모로 머물게 한 책이다. 책은 돈이 되는가? 쓸모에 관하여,…..
문학은 삶의 해답을 주지 않지만 질문을 계속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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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쓸모 - 21세기 프랑스 대표적 지성의 문학을 대하는 현대적 방식
앙투안 콩파뇽 지음, 김병욱 옮김 / 뮤진트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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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의 말을 떠올려보자. 그의 소설 《목로주점>이대중을 즐겁게 해주어서 많이 팔렸다며 일부 불평꾼 비평가들이 비난하자, 그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잘 팔린다는 건 나쁜 징조다!" 이런 생각이 시대 정신과 불편한관계인 현대 예술가의 신조인 것 같다. 작가에게 돈을 벌어다 주고, 서점에서 성공하면, 한마디로 돈벌이가 되면,뭔가 의심스럽다는 얘기다. 이는 곧 유행을 따른다는 뜻이요, 다음 시즌에는 팔리지 않으리란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책의 미래 삶은 현재의 삶과 역의 관계에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현재의 실패가 모두 미래의 수익성을 가리키는 지표인 건 아니지만(보들레르의 선언 "아름다운 것은늘 괴상하다"가 괴상한 것은 늘 아름답다는 걸 의미하지 않듯이),현재의 성공이 후대를 보장하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드물다. 이는 문학을 특징짓는 하나의 현대적 특성이다.

소설가 필립 지앙은 로르 아들러와 가진 <프랑스 튀르> 방송 인터뷰 (2012년 8월 30일자 "오르 샹Hors-champs")에서, 문학의 유용성에 대한 자기 생각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어디에 쓰이느냐고요? (...) 나는 인기 있는 작가가 되고싶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쓸데없는 짓을 하는 거니까요.
-삶에 꼭 유익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그건 큰 논란거리죠. 나는 작가란 뭔가에 도움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미적 감동만 일깨워줄 게 아니란 겁니다. 그건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요. 아니, 시간을보내는 데 도움이 되긴 하죠. 소파에 앉아, 이를테면 프루스트의 책을 펼쳐 들고서 말입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프루스트를 좋아합니다. 아름답죠. 한데 그게 지금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요? 없어요. 프루스트는 내가길 건너가는 걸 도와주지 않아요.

오늘날의 작가는 여러분이 길 건너가는 걸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길을 건너간다는 것, 그 말의 의미는 당신이 어떤 작가의 책을 읽은 후에는, 길을 건너갈 때, 프루스트만 읽는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건너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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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가 된 꿈에서 깨어난 장자는 "내가 나비의 꿈을꾼 것인가, 나비가 내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물었다.
요즘 소설과 영화, 드라마, 웹툰에서 주인공이 갑자기 다른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가거나, 신분이 전혀 다른 존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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