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노 과르디니의 주님의 기도
로마노 과르디니 지음, 안소근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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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늘에 계신"이라는 단어는 "하느님, 저는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원합니다."라는것을 뜻한다. 이 말을 할 때 그리스도인은, 말하자면 그하느님을 자신의 삶 안으로 들어오시게 하는 모험을 한다. 그는 하느님, 타자, 헤아릴 수 없는 분이 들어오심으로써 자신의 삶을 방해하시도록 매일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기도는 "하느님께 말을 걸고 싶으면 어느 장소로 가라.
그러면 거기에서 그분을 만날 것이다."라거나, "어떤 시간에 기다려라. 그러면 그분을 부를 수 있을 것이다."라거나, "이런 방법으로 하면 그분과 연락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반대로 주님의 기도는, "단순하게 하늘에 계신 그분을 부르면 너의 기도는 그분께 이를 것이다. 네가 어디에 있든지, 너의 말은 그분께 가 닿을 것이다. 어떤 시간이든지 너의 청원은 그분을 발견할 것이다.

네가 무엇을 겪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너의 목소리는 위로 오를 수 있고 하느님께 도달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를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그것은 결코 당연한것이 아니다. 우리는, 말하자면 우리의 생각이 지상에 매여 있는 그만큼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멈추어서서 잘 살펴보면, 어디서나, 언제나, 무엇으로부터나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다는 사실은 헤아릴 수 없이 놀라운 것이다. 올바로 그분을 부를 때 그 소리는 결코 길을잃지 않으며, 언제나 그 목적지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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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외국어를 배우면 또 다른 하나의 자아가 생긴다는 말이 있다. 그 말처럼 내가 한국어로 쓴 글과 과거 영어로 써두었던 글은 사용하는 단어에서 사고방식 그 자체까지 거의 모든 면에서 다르다. 이 이중인격과 비슷한 상태는 한국에 오래 체류하는 외국인에게 축복이자 저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렇게 복잡하게 뒤섞인 알 수 없는 상태가 나를 더 즐겁게 만든다.
내가 한국이라는 나라의 코노셔로 계속 살아가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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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ilience의 해설로 어디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없는 멋진 글이다. 그러나 이 해설보다 더 멋진 것은 그들이 토론을 거쳐 와인의 이름을 정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네 표였지만 투표 결과가 만장일치였다는것은 그들 중 세 명은 자신이 그렇게 열심히 만든 이름을 기꺼이 포기하고 친구가 만든 이름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숙론은 바로 이러자고 하는 행위다. 숙론은 상대를 제압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왜 나와 상대의 생각이 다른지 숙고해보고 자기 생각을다듬으려고 하는 행위다. 서로 충분히 이야기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인식 수준을 공유 혹은 향상하려 노력하는 작업이다. 숙론은 ‘누가 옳은가 Who is right?‘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 What is right?‘를 찾는 과정이다.

이런 치졸한 ‘판‘ 속에 지역 갈등을 성숙하게 풀어낸 두지방자치단체가 있다. 전북 군산시와 충남 서천군 사이에건설 중인 새 다리의 이름을 군산과 장항을 엮어 가칭 ‘군장대교‘라 했던 것을 두 지자체가 협의체를 구성해 이마를 맞댄 끝에 ‘동백대교‘라는 멋진 이름이 탄생했다. 군산시와 서천군은 동백꽃이 각각의 시화이자 군화라는 점에 주목했다.
자칫 ‘군장대교‘와 ‘장군대교‘를 두고 곤한 줄다리기를 벌일뻔한 이웃사촌이 도의 경계를 넘어 손을 맞잡았다. 섬진강을 따라 윗마을과 아랫마을 사람들이 화개장터에 모여 한데어우러지듯, 전라도와 충청도가 서로 금강을 넘나들며 ‘사투리로 잡담하고 오순도순 고운 정 미운 정‘ 나누길 꿈꾼다.
농촌사상가 고전우익 선생님 말씀이 생각난다. "혼자만잘 살믄 무슨 재민겨?"

미국 어느 인디언 보호구역의 학교에 새로 부임한 백인교사의 일화를 늘 가슴에 품고 산다. 시험을 시작하겠다고 하니 아이들이 홀연 둥그렇게 둘러앉더란다. 시험을봐야 하니 서로 떨어져 앉으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어리둥절해하며 이렇게 말하더란다. "저희들은 어른들에게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함께 상의하라고 배웠는데요."

니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창의성은 주로 홀로 있으며몰입할 때 나타난다. 황동규 시인은 외로움과 ‘홀로움‘
을 구별한다. 그는 ‘홀로움‘을 ‘환해진 외로움‘이라고 묘사한다. 스스로 선택한 혼자 있음은 사무치는 외로움이아니라 혼자서도 충만한 ‘홀로움‘이다. ‘홀로움‘은 말하자면 ‘자발적 외로움‘이다. 자발적이고 철저한 자기 시간 확보가 창의성과 생산성을 담보한다.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하버드명예교우회가 해마다 10~15명의 주니어 펠로우를 뽑는 데 비해 미시건명예교우회는 매년 네 명의 주니어 펠로우만 선발한다. 임기가 3년이기 때문에 늘 열두 명의 펠로우가 함께 지내게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요구 조건은 한 달에한 번 시니어 펠로우senior fellow들과 함께 거나한 저녁식사를 먹는 일이다. 시니어 펠로우는 정교수 중에서 특별히 업적이 뛰어난 분들로 선임되는데 주니어 펠로우들의 멘토mentor 역할을 한다. 반대로 시니어 펠로우들에게 주니어 펠로우는 학문의 최첨단 흐름을 짚어주는풍향계다. 월례 만찬은 서로에게 귀한 배움의 기회가 된다. 주니어 펠로우들끼리는 매주 수요일 점심을 같이 하는 전통이 있었다. 여행을 떠난 펠로우가 한둘 있더라도

칼 세이건Carl Sagan의 이 말을 들려줘도 좋을 것이다. "질문에는 순진한 질문, 지루한 질문, 부적절하게 들리는 질문, 지나친 자기비판을 앞세운 질문 등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질문은 다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이 세상에 멍청한 질문이란 없다." 엑스X(구 트위터) 팔로워가 300만 명이 넘는 필리핀의 방송인 라몬 버티스타 Ramon Bautista는 더 간단하게 마무리했다. "진짜 멍청한 질문은 묻지 않은 질문이다." 전설적 아이스하키 선수 웨인 그레츠키Wayne Gretzky가 남긴 말과 흡사하다.
"시도하지 않은 골은 100퍼센트 실패한다." 언뜻 이상하게 들리는 아이디어가 결국 정곡을 찌르거나 우연치 않게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학생들이 편안하고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숙론 분위기를만들어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숙론이 생각만큼 잘 굴러가지 않으면무조건 작은 모둠으로 쪼개라는 가르침은 나는 물론그때 함께 참여한 대학원생 모두에게 평생토록 써먹을 유용한 배움이었으리라 확신한다. 왠지 모르게 겉도는 숙론 모둠을 너댓 명 단위의 작은 모둠으로 나눠 단10~30분이라도 따로 모였다가 다시 모이면 거짓말처럼 분위기가 살아난다. 작은 모둠으로 나누면 거의 모든 참여자가 발언 기회를 얻고 일단 한번 얘기해본 주제에 대해서는 아무리 참여자 수가 늘어나도 훨씬 더적극적으로 발언하게 된다. 작은 모둠에서는 대개 전체로 다시 모였을 때 자신들을 대표해 숙론 내용을 발표할 대표보고자 rapporteur를 선임한다. 이런 ‘헤쳐 모여‘
식 숙론을 해보면 물론 대표보고자가 보고를 하더라도다른 참여자들도 놀랍도록 적극적으로 발언하기 시작한다. 나는 이 기법을 참으로 많이 실전에 접목했고 단

경청의 1:2:3 법칙‘이라고알려진 조언은 충분히 곱씹어볼 만하다. "한 번 말하고,
두 번 듣고, 세 번 맞장구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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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독창성과 온전함, 전유와 혼합에 관해 논의하다가 때로 문화가 소유물이 아니며 다른 사람들도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사용할수 있도록 건네주는 것이라는 사실임을 잊는다. 문화는 과거의 작은파편들을 가져와 새롭고 놀라운 의미 생산 방식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재활용 프로젝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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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힘이나 방치 고의적 파괴로 인해 중요한 기념물들이 사라지는 일이 점점 더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어떤 면에서 우리는 머나먼 과거의 지식을 추적해서 복원하는 일에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이다. 새로운 저장 기술 덕분에 텍스트와 이미지, 음악을 최소비용으로 저장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같은 소셜 미디어의 도움으로 이렇게 저장된 콘텐츠를 더 편하게그 어느 때보다도 널리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 만들어진 문화 유물과 관습을 지금처럼 많은 사람이 쉽게 이용할 수 있었던 적은없었다.

디지털 기술로 인해 문화 콘텐츠가 풍성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오래된 파일 형식, 웹사이트, 데이터베이스를 읽을 수 없게 되는 속도 또한 가공할 정도로 빨라졌기에 과연 우리가 조상들보다 과거를정말로 잘 보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문화의 저장과 배포기술은 바뀌었지만 문화가 작용하는 방식, 즉 저장되고 전파되고 교환되고 복원되는 방식을 지배하는 법칙은 변하지 않았다. 인류의 거의 모든 문화가 끊임없이 서로 접촉하는 세상에서도 보존과 파괴, 상실과 복구, 오류와 적응의 상호작용은 줄어들지 않고 계속된다. 우리는 과거와 그 과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두고, 누가 문화를 소유하고 그 문화에 접근할 수 있는지를 두고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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