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왕절개야 그럴 수 없겠지만, 자연분만을 할 경우, 좁은 산도를 통과하기 위해 태아는 기를 쓰고 몸부림을 쳐야 했다. 그런 고투 끝에 마침내 세상에 왔을 때, 갓난아기의 마음은 어떨까? 천지가 이토록 넓다니! 오, 경이로워라! 하지 않을까? 그걸 표현할 수있는 길은 오직 소리뿐이다. 그래서 운다! 갓난아기는 목소리와 눈물로 우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로 운다. 주먹을 쥐고 발을 구르지 않는가. 몸을 하나의 ‘울림통‘으로 쓰는 것이다. 탄생의 환희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그것뿐이므로,

생물학적 이치도 그러하다. 태아는 처음 소리를 통해 세상을 만난다. "귀는 자궁 속에 거꾸로 있는 태아와 매우 닮았다. 실제로 귀에 침을 놓는 자리를 보면자궁 속에 거꾸로 있는 태아의 머리와 장기의 위치와정확히 일치한다."(서정록, 『잃어버린 지혜, 듣기, 39쪽ㅣ 토마티에 의하면, 4~5개월된 태아는 소리와 음악의 자극에반응한다. 즉, 태아의 의식의 중추를 이루는 것은 눈이 아니라 귀다. 귀를 통해 엄마의 심장박동 소리를 듣고 엄마가 말해 주는 이야기를 듣는다. 태아에게세상은 소리와 진동이다. 그러니 탄생하자마자 크게울어 젓힐 수밖에, 소리로 세상과 마주쳤으니 자신도소리로 화답하는 것이다. 고로, 탄생은 소리다

호모 큐라스의 세 가지 구호!
낭랑하게 낭송하라!
필사적으로 필사하라!
글로벌하게 글쓰기하라!

공부의 달인으로 이끌어 줄 실전 지침!
친구들과 함께 걸으면서 낭송하라!

가족들은 왜 매일 똑같은 말만 주고받는가?
하루에 한 구절이라도 고전을 낭송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데이트코스는 왜 천편일률적일까?
연인에게 고전의 구절을 들려주면 훨씬 매혹적이지 않을까?
의미 있는 날의 예식이나 파티는 왜 화려하게 꾸며야만 할까?
그곳에서 고전의 문장을 듣게 되면 최고의 선물이 되지 않을까?
얼마 전에 나온 신문기사에 따르면 스마트폰 혁명의 주역인 스티브 잡스는자기 아이들한테는 인터넷이나 아이패드를 쓰지 못하게 했고,대신 매일 저녁 식탁에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왜? 그것이 삶을 훨씬 윤택하게 해주니까. 연인끼리도 마찬가지다.늘상 비슷한 말만 주고받지 말고 서로 고전의 구절들을 들려줄 수 있으면 훨씬 ‘매혹적인‘ 존재들이 될 것이다. 예전에는 파티장에서도 낭독을 했고,친구들을 불러 일부러 낭송파티를 열기도 하지 않았는가?
또 생일파티나 결혼식도 그렇다. 화려하고 럭셔리한 물량공세만 생각할 뿐그 공간을 고매한 말과 소리로 채울 생각은 하지 않는다.
친구의 생일파티에 가서, 혹은 직장 동료의 결혼식장에 갔다가 니체나 스피노자,공자나 연암의 문장을 듣게 된다면 그야말로 최고의 선물이 되지 않을까.
그런 경험을 하게 되면 분명 그 친구나 동료를 대하는 태도가달라지게 될 것이다. 우정을 나눌 준비가 된 것이다.
그게 바로 신체와 소리의 힘이다.

아, 그렇다고 비판할 필요는 없다. 동양사상은 이런 식의 카오스를 오히려 생명의 전제조건으로 보안다. ‘살아 있는 혼돈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라." (장자)그렇다. 중요한 건 낙관도 비판도 아니고, 이 카오스를 매끄럽게 통과하는 것이다. 카오스는 혼돈이다.
하지만 이 혼돈은 방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 혼돈 속에서 특정한 시공간적 영토를 만들어 내는 것이 리듬이다.
새들이 노래를 통해 자기 영역을 확보하고 사자가 냄새를 통해 구역을 정하는 것처럼, 이것을 일러 ‘카오스-리듬‘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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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고, 춤추고,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아이의영혼과 목소리를 해방시켜 주는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아이가 말하도록 귀를 기울여 주고 격려하는 것이다.

돈키호테와 산초, 둘의 화법은 이렇듯 극단적으로대조된다. 이 둘의 교차 자체가 돈키호테』를 불후의명작으로 만든다. 서로 다른 화법들이 교차할 때 소통이 시작된다. 그리고 소통은 상생상극의 파노라마다. 같은 어조로, 같은 견해를 가진 사람끼리 하는 건소통이라 하기 어렵다. 동일성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르지만 뒤섞일 수 있는 것, 이것이 진정한 소통이다. 연암식으로 말하면, 서로의 이명을 감지하면서 상대방의 코골이를 일깨워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길 위에 나서야 한다. 길은 사건사고의 현장이다. 동시에 수많은 이야기가 탄생되는 무대이기도 하다

고전의 주인공들이 거의 모두 길 위를 떠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길 위에 있어야 낯선 사람, 새로운 환경을 만나고 또 싱싱한 말들과 충돌할 수 있다. 그것이 사건이고 곧 삶이다.해서 길을 가려면 누구든 먼저 귀를 열어야 한다.아니, 저절로 귀가 열린다. 호기심의 발로이기도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낯선곳에 가면 어떻게든 말을 알아들으려고 기를 쓰지 않는가. 귀동냥의 기술을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단지말을 알아듣는 것뿐 아니라 미묘한 뉘앙스, 독특한어조, 몸짓과 표정 등에도 다 귀를 쫑긋한다. 듣고 또듣고・・・・・… 그러다 보면 저절로 말들이 ‘헤쳐모여‘ 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그것을 나의 목소리로 전달하기만 하면 된다. 테크닉이나 잔재주도 필요없다. 내 몸을 통과하면서 모든 소리는 변주된다. 이것이 말의 향연, 곧 말잔치다.

"세상사도 연극과 다를바 없어. 세상사에서도 어떤사람은 황제 역할을 하고, 다른 사람은 교황을 하잖나. 연극 하나에 나올 수 있는 모든 인물상이 있지.그러나 종말에 가면, 생명이 끝나는 순간에는 모든사람에게 똑같이 죽음이 와서 그 사람들을 구분하던 의상을 벗기고 무덤 속에 똑같이 눕게 하지."

"참 멋진 비유입니다. (………) 저도 여러 번 많이 들어본 적이 있는 말이어서 크게 새롭지는 않사오나,그게 장기놀이 같은 거지요. 장기를 두는 동안은말마다 각기 자기 길, 자기 일이 있지만 일단 장기가 끝나면 모든 말을 섞고 합치고 흔들어 한 자루에 집어넣지 않습니까. 이건 꼭 인생이 무덤에 들어가는 것과 똑같지요."

"산초, 날이 갈수록 자네는 바보 같은 데가 줄고 사려 깊어지는구먼." "나리의 사려 깊음에 감화되어서 그런 모양입니다요. (・・・・……) 원래 메마른 불모의 땅이라도 자꾸 거름을 주고 가꾸면 좋은 결실을 맺지요. 나리와의 대화가 저의 메마른 지혜의 땅에 뿌려진 거름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나리를 모시고 접촉한 기간이 교육을 받는 시간이었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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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든 작든 어떤 윤리적 딜레마에 봉착할 때마다 자신에게 묻도록 우리 삶의 총체적 난국을 다음 네 가지 질문으로 요약하고자 한다.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왜 그렇게 하는 것일까?

더 잘할 수는 없을까?

그것은 왜 더 나은 행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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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든다. 하지만 그런 예감을 나는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어떤 아름다움은 소유될 수 없는 것이니까. 어떤 아름다움은 소유하지 않아 존재하는 것이니까.

놀이도 순진무구함도 필요하고
꽃들도 흐드러지게 피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세상은 우리에게 너무 작을지 몰라
그리고 사는 낙도 없겠지.
—헤르만 헤세

어째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죄다 하찮고 세상의 눈으로 보면 쓸모없는 것들뿐인 걸까. 하지만 이제 나는 쓸모없는 것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촘촘한 결로 세분되는 행복의 감각들을 기억하며 살고 싶다. 결국은 그런 것들이 우리를 살게 할 것이므로.

혼자 밥 먹는 날엔 가능한 한 육류를 섭취하지 않기, 치즈를 끊을 수는 없으니까 다른 때라도 유제품을 덜 섭취하기, 난방을 줄이고 물건을 사기 전에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용도를 다하기 전엔 가급적 이미 가지고 있는 물건과 비슷한 물건을 사지 않기… 여전히 매일 많은 쓰레기를 배출하며 살고 있고, 나라는 존재가 이 지구에 유해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나는 나의 선택들이 이 세상에 조금이나마 덜 해를 끼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주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 예전에는 이런 일을 공개적으로 쓰는 것이 매우 부끄러웠다. 나의 실천은 모두 하찮은 것이고—나는 여전히 육식을 포기하지 못했고, 비행기를 타야 하는 여행 역시 포기할 수 없다. 마감이 급할 때면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올 걸 알면서도 음식을 배달시킨다

내 삶의 태도는 ‘완벽’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벽이란 말은 얼마나 폭력적인지.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게으름의 면죄부가 되어선 안 되겠지만 완벽한 것만 의미가 있다는 생각은 결국 그 누구도 행동할 수 없게 만드는 나쁜 속삭임이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 인간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존재들이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팔짱 끼고 앉아 ‘당신은 이런저런 잘못을 저질렀으니, 당신의 행동들은 결국 무의미해’라고 먼 곳에서 지적만 하는 건 언제나 너무도 쉽다.

내 마음은 언제나, 사람들이 여러가지 면과 선으로 이루어진 존재들이고 매일매일 흔들린다는 걸 아는 사람들 쪽으로 흐른다. 나는 우리가 어딘가로 향해 나아갈 때, 우리의 궤적은 일정한 보폭으로 이루어진 단호한 행진의 걸음이 아니라 앞으로 갔다 멈추고 심지어 때로는 뒤로 가기도 하는 춤의 스텝을 닮아 있을 수밖에 없다고 믿고 있다.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만 아주 천천히 나아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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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이 문지방 앞의 전투에서 실패함으로써 그 한 발짝을 넘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고 이땅을 떠나는 것이 현실이다. 독일의 영성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말한 ‘돌파’, 즉 ‘브레이크스루’(Breakthrough)가 그 문지방을 통과했을 때, 이뤄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문지방에서 가장치열한 영적 전투가 벌어지는 것이다.

문지방을 넘기란 쉽지 않지만 반드시 그 문지방을 넘어야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며 새로운 생명, 즉 뉴 라이프(New Life)가탄생된다. 영정 속 이어령에게 "박사님, 정말 그 문지방을 넘어가셨나요?"라고 여쭤보았다. 한 개인의 영적 여정은 누구도 판단할 수 없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오직 그분만이 알 것이다.

물론 소원, 즉 사모함은 중요합니다. ‘사모함이 재산‘이라는 생각을 늘 했습니다. 사모함, 갈망을 통해서 인간은 다른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저와 오랜세월을 함께 한 소설가 김승옥(‘무진기행‘ 작가)씨가 하나님을 믿게 된 이후에 이렇게 고백했어요.
"내가 목숨 바쳐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알고 나니까마음이 그렇게 편안해질 수가 없었다. 목표가 있는 자는 준비를 하게 되고 따라서 부지런해진다."
‘목숨 바쳐 가야 할 길‘을 아는 자는 정말 행복한 사람 아닙니까? 저도 지성과 지상에서의 목표가 아니라영성과 영원의 차원에서 목숨 바쳐 가야 할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이런 치열한 과정을 거치다 보면 마침내 자신이 들어가야 할 문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드디어 자신이 머무를 방을 찾게 된 사람에게 필요한 덕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존중입니다. 현관 마루에서 함께 있다 자기와는 달리 다른 방을 선택한 사람도 있고, 여전히 현관 마루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들의 판단과 결정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바른 결정을 내리지 못해 엉뚱한 방에서 허우적거리거나, 혹은 현관 마루에서 한 발짝도 떼지 못한다고 판단될 때, 여러분이 할 일은 하나입니다. 그들을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빛이 그들에게도 비치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결코 인간적 잣대로 그들을 판단하는우를 범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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