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분리수거를 하면서 보니 폐지함에 초등 수학 문제집이 잔뜩 있었다. 모두 아내가 푼 것들이다. 이제껏 그 많은 문제집들을 버리며 나는 아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아내의 귀엽고 특이한 취미 생활 정도로 넘길수도 있는데, 나는 이상하게 거슬렸다. 아내는 수학 영재였다.
학창 시절 내내 온갖 수학경시대회를 휩쓸었고, 고등학교 3년동안 열두 번의 중간·기말고사 모두 수학 만점이었고, 학력고사
에서는 안타깝게 수학을 한 문제 틀렸다고 했다. 그런 사람이 왜 초등 수학 문제집을 그렇게 풀어 대는지 이해할 수가없었다.
이유를 묻자 아내는 재밌어서, 라고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당신 수준에 그게 뭐가 재밌니? 유치하기만 하지."
"재밌어. 엄청 재밌어. 지금 내 뜻대로 되는 게 이거 하나 밖에 없거든."

아내는 여전히 초등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고, 나는 아내가 그보다 더 재밌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그거밖에 할 게 없어서가 아니라 그게 꼭 하고 싶어서 하는 일.
김지영씨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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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씨는 당장의 고통과 부당함을 호소않고, 어린 시절의 상처를 계속 되새기지도 않는 편이다. 먼지쉽게 입을 열지는 않지만 한번 물꼬가 트이면 깊은 곳의 이야기까지 스스로 끄집어내 담담하고 조리 있게 잘 말한다. 김지영 씨가 선택해서 내 앞에 펼쳐 놓은 인생의 장면 장면들으들여다보며 나는 내 진단이 성급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하는 세상이 있다는뜻이다.
내가 평범한 40대 남자였다면 끝내 알지 못했을 것이다. 대학 동기이자 나보다 공부도 잘하고, 욕심도 많던 안과 전문의아내가 교수를 포기하고, 페이닥터가 되었다가, 결국 일을 그만두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특히아이가 있는 여자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사실 출산과 육아의 주체가 아닌 남자들은 나 같은 특별한 경험이나 계기가 없는 한 모르는 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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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커피 1500원이었어. 그 사람들도 같은 커피 마셨으니까얼만지 알았을 거야. 오빠, 나 1500원짜리 커피 한잔 마실 자격도 없어? 아니, 1500원 아니라 1500만 원이라도 그래. 내 남편이 번 돈으로 내가 뭘 사든 그건 우리 가족 일이잖아. 내가오빠 돈을 훔친 것도 아니잖아.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해야 돼?"
정대현 씨는 가만히 김지영 씨의 어깨를 끌어다 안았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어 그저 등을 토닥이며 아니야, 그런 생각 하지 마, 라는 말만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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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은 반사적이며 직관적이다.
무의식은 우리가 행하고 또 세상에 대해 알고 있다고 믿는 거의모든 것에 통찰력을 제공한다. 우리 마음속에 간직한 가장 오래된 지식이자 광대하고 신비한 기억의 총체다.
두뇌에서는 늘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나 우리의 생각과 행동과감정은 의식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맨 David Eagleman의 주장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의식적 자아를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식은 정신 기능의 일부에 지나지않는다. 반대로 무의식은 내면의 삶을 검열하는 데 에너지 대부분을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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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은 피상의 바로 아래이자 각성의 바로 저편에 있는영역이며 바로 그곳에서 이 이상한 전염 사건을 형성하는 요소 모두가 작동한다. 각각의 요소는 소리 없이 이 사람 저 사람을 오가며 기하급수적 비율로 번져 섬뜩하면서도 터무니없는 결과를 낳는다. 무의식은 어쩌면 바빌론 사람들이 수메르계산법에 0을 더한 이후 가장 논쟁적이고 혁명적인 이론일 것이다.
무의식적 반영은 직관과 본능, 심지어 공감보다 의미가크며 (우리가 생각하기에) 타인이 경험하는 상황에 기초한다. 그와 달리 사회전염은 타인의 생각과 행동과 감정을 완벽하게모방하는 것이다. 이는 친구의 즐거운 감정에 공감하는지 아니면 흥분, 심장박동 증가, 엔도르핀 방출 등 상대의 감각을 우리가 실제로 똑같이 경험하는지의 차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흥미로우면서도 당혹스러운 점은 우리가 타인의 경험에 감염되었다는 사실도, 그 경험이 마치 컴퓨터 운영 시스템처럼 이면에서 우리 삶을 좌지우지한다는 사실도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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