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몸으로 하는 것이라고, 그것도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김수영은 말한 바 있습니다. 하나 인상적인 것은 시라는 말자리에 다른 낱말을 넣어도 뜻이 통한다는 것입니다. 자유를넣든 혹은 사랑이나 이별이라는 말을 넣든 말입니다.
한국 현대시의 역사는 이제 백 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학창시절 국어 시간을 잠시 떠올려보면 우리는 이 현대시를 자유시라는 이름으로 배웠습니다. 시조 등 이전의 정형시와는구별되는 새로운 것. 형식이든 내용이든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것. 다만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나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누군가의 자유를 침해하는 내용을 담아서는 안 된다는 것. 이것은 자유도 아니고 시도 아니라는 것. 자유라는 말 안에는 나와 너는 물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들까지 공존해야 한다는 것.
시를 읽는 순간은 문득 좋은 생각 하나가 떠오를 때와 닮았다. 예감도 기색도 계기도 없었는데 딱히 골똘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어떻게 이 생각을 떠올렸지? 하고 스스로 기특함이 들 정도의 생각, 거창하고 대단하지는 않지만 살갑고 세심해서 성글기만 했던 내 지난 시간의 빈 곳을 채워주는 생각.
이를 위해서는 잦아들어야 한다. 비어 있어야 한다. 내가 나인 것이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내 삶 주변의 숱한 거짓 사이에서도 진실한 마음 하나가 까치발을 들고 서 있어야 한다.
세상 아름다움은 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는 것이다. 우리는 한 번도 아름다움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잊고 사는 날이 많았을 뿐.
아름다움에 한발 다가가거나 손을 뻗어 당겨오는 것. 기쁨에도 슬픔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힘은 언제나 나의 안녕으로부터 온다.
즐거운 편지. 황동규(1938~) 1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느긋하되 늘어지지 않는, 편안하되 흐트러짐 없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게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결국 스스로가 기다리고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야 한다. 너무 긴 기다림은 종종 상대를 향한 원망으로 변할 위험이 있기에. 그렇다고 해서 긴 기다림을 환상으로 바꾸어서도 곤란하다. 멀리 있는 것들은 끝이없고 기다림은 다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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