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말에 상처받거나, 반대로 나의 정제되지 않은말이 누군가를 아프게 할 때에도 박준의 문장을 찾았다.
그의 글에서 적절한 말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사람의 태도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령 이런 문장.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살아남는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마지막까지 살아남을나의 언어가 ‘가시 박힌 말‘이 아니라 부디 ‘따뜻한 말‘ 이기를.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나는 이 문장을 읽고 또읽었다.

물리적으로 따지면 하루 중 시인으로 사는 시간,
그러니까 시를 쓰거나 시적인 것을 끄적이거나 시적인생각을 하는 시간은 길지 않아요. 10분에서 30분? 그런데 이 시간은 귀해요. 다른 글쓰기와 달리 내가 좋아서 자발적으로 하는 유일한 일이거든요. 짧더라도, 이게 있으면 나머지 시간을 견딜 수 있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에 기울이는 시간이 없으면 다른 시간도 무너지는 것 같고요. 그래서 캐릭터 중 가장 적은 시간을 쓰지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시인은.

시인이나 작가라고해서 우리가 잘 안 쓰는 말을 구태여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쓰지 않는 게 아까운 말들이 있어요. 그런말들은 찾아내서 먼지 털어 쓰는 것도 작가의 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조용하다‘를 ‘고요하다‘, ‘고적하다‘, ‘적요롭다‘로 바꿔 쓰면 뉘앙스가 조금씩 달라져요. 어떤 생각을 하나의 단어로만 표현하는 것과열가지로 표현할 수 있는 건 다르죠.

‘쓰지 않는게 아까운 말‘이라는 표현을 듣자마자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미인(美人)‘이 떠올랐다. 박준 시인에게미인은 ‘아름다운 존재‘를 총칭한다. 세상을 떠난 누이,
옛 애인,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 등이 그의 시에서 ‘미인‘
으로 호명되곤 했다.
미인이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좁은 의미로 오염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어서 탈탈 털어 쓴 측면이 있어요. 아름다운 여성을 지칭할 때만 쓸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말이어서 작정하고 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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