줍는 순간 - 안희연의 여행 2005~2025
안희연 지음 / 난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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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 묘지의 이름이 ‘해변의 묘지‘라는 사실이 내게는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발레리가 해변의 묘지라는 시를 쓸 때 그는 자신이 죽은 뒤에 ‘해변의 묘지‘에 묻힐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이건 계획된 일일까, 우연의 일치일까? 아무려나 좋았다. 내가 두 발 딛고 있는 이곳이 ‘시와 삶이 합일되는 장소‘라는 것이 나의 심장을 뛰게 했으니까. 발레리가 태어난 곳과 그가 죽어 묻힌 곳이 동일하다는점도 좋았다. 그는 내게 몸소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시와 삶이하나인 것처럼, 삶과 죽음도 하나라는 사실을.

나는 다시 그녀의 책을 펼쳐들었다. 내가 사랑했던 그녀의문장은 이런 것이었다. "작은 우연이 일생을 결정하기도 한다.
인간은 유리알처럼 맑게, 성실하고 무관심하게 살기에는 슬픔,
약함, 그리움, 향수를 너무 많이 그의 영혼 속에 담고 있다."비릿한 감정이 목울대를 타고 넘어왔다. 결국 인간의 삶을 지탱해나가는 것은 온갖 종류의 그리움이지 않겠느냐고, 먼 시간속의 그녀가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그때 그 여행에서 만난 스라바스티의 대인스님은 "인도인들마음에는 전쟁(다툼)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매일같이 강가에 나와 몸을 씻고, 사원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다 죽으면 두 번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라 했다. 이번 생의 행복과 슬픔은 이번 생으로끝난다는 것. 그래서 더 나은 삶, 더 크고 좋은 집에 대한 욕망으로 고통스러워하기보다는 오늘 지금 이곳에서의 삶을 받아들이고 지속해나갈 뿐이라는 것.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어려운 일을 어려운 대로 지켜보면서 나는 "살아 있으라, 누구든살아 있으라"던 기형도의 아름다운 문장을 떠올렸다.

그래서 네 릭샤를 탄 건데 이제 와서 사기칠 생각 마라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따져봐도 소용없었다. 자기는 분명fifty‘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큰 소리가 나자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중 한 할아버지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오기에사정을 설명했다. 얘기를 다 들은 할아버지는 너의 억울함은이해하지만 이 사람은 너보다 가난하니 네가 그냥 오십 루피를지불하는 게 좋겠다는 거였다. 나는 분통이 터져서 삼십 루피를 내밀며 이 이상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 매몰차게 돌아서는내 뒤통수에 대고 릭샤꾼은 소리쳤다. "Are you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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