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갇힌 채 현재와 미래를 보지 못하는 자신이 속한 귀족 계층을 혐오하면서도 자신이 속한 뿌리를 거부할 수 없는, 뼛속까지 귀족인 자신의한계를 잘 알고 있는 공작은 담담히 고백한다. "우리는 표범이었고사자였소. 이제 자칼과 하이에나가 우리를 대신하려 하고 있소." "현재 상태가 있는 그대로 유지되기를 원한다면, 모든 것이바뀌어야합니다. We want everything to remain as it is, then everything has to change ".
영화 초반에 나오는 파브리치오 공작의 조카 탄크레디의 이유명한 대사는 변화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기득권을 잃지 않고 살아남으려는 시칠리아 귀족들의 심중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대사가 유독 진하게 남는 이유는 모든 귀족이 탄크레디 같지 않으면서 탄크레디였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실존했던 수많은 귀족은 변화를 거북해하고 경멸했다. 그래서 역사의 전환기에 그들의 모습은 영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한 시대의 종말이 낳은 퇴폐미를 보여준다. 하지만 변화하는 세태에 한탄하며 불평을 늘어놓아도 결국 그들은 변화하는세상에 적응하려고 스스로 끊임없이 변화했다. 귀족에게도 적자생존의 법칙은 절대적이다.
유럽 귀족의 역사를 다룬 이 책에서 키워드를 단 하나 뿐이야한다면 그것은 남다름이다. 변화를 거부한 채 과거의 노스캔들에빠진 자들은 남다름의 물질적·정치적·경제적 토대를 무너뜨리게 하는 달라진 세상을 경멸한다. "무엇도 잃지 않으려면 모든 것을" 심지어 자신의 존재 방식까지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들도 이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새로운 차별화 수단을 고민할 뿐이다. 지배집단으로서 제도적으로 보장된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에도 귀족은그 모습이 바뀌고 심지어 이름까지 바뀌어 더는 귀족으로 불리지 않을지언정, 특권층으로 살아남으려고 끊임없이 환경에 적응하며 집단의 차별화를 시도해 왔다. 환경이 변화하고 세상이 바뀌니 차별화 방식도 역동적으로 변화한다. 때로는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때로는 해괴한 방식으로. 왜냐하면 "당신이 변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당신을 바꿀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민족이나 인종 또는 계급에 근거해 인간의 우월함을주장하는 것이 크나큰 환상이라고 폭로한다. 감독의 바람대로 이 환상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그릇되며 근거 없는 그리고 정치적으로올바르지 않은 이념으로 그 위상이 확립되었다. 무엇보다도 현대사회의 개인주의는 유럽 귀족 집단의 오랜 생명을 완전히 끊어놓은 것처럼 보인다.
현대의 개인주의와 귀족의 집단주의 사이에 공통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 개인도 과거의 귀족도 모두 남다름을 추구했다. 하지만 이 차별화는 다르다. 귀족의 집단주의는 집단의 기본 음률을변주할지언정 거부하지는 않는다. 이에 대한 거부는 곧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부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나야‘라는 원칙에 충실한현대의 개인주의는 사회적·집단적 기준에 순종하는 것을 언제든 거부할 수 있게 만든다. 그렇다. 개인주의야말로 귀족의 사회적 존재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최종병기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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