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은 처음으로 진리와 시대를 연결한 철학자입니다. 이전에그 어떤 철학자도 진리를 시대와 연결하지 않았습니다. 진리란 시대를 초월한다고 생각해온 것입니다. 그러니 밤을 새워 아버지가 남진진리를 습득하는 것이 철학이었습니다. 하지만 헤겔은 이제 진리가시대-특징적epoche-specific 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따라서 철학은 시대를 사상의 이름으로 포착하라고 말합니다. 철학이 사상의 이름으로포착해서 해석이나 해명 또는 비판해야 할 대상이 바로 사건입니다. 따라서 헤겔은 사건이 끝날 때를 기다리라고 주문합니다. 헤겔에 따르면 진리는 더 이상 철학자가 책상 위에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진리는 정의와 불의가 충돌하는 거리의 교차로에서, 폭력과사랑이 폭발하는 온-오프라인 광장에서 시민들이 구성하는 것입니
이 땅에서<자유의 폭력》에서 나는 ‘늑대의 자유는 사슴에게는 죽음일 수있다‘라는 말에 주목했습니다. 지금 이 책을 읽는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늑대인가요, 사슴인가요? 늑대나 사슴은 물론 은유적 표현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한 사회에서 늑대이면서 동시에 사슴입니다. 영역에 따라 늑대였던 사람이 사슴이 될 수도 있고, 지금은 늑대지만 언젠가 사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악한 늑대와선한 사슴이 다른 몸이 아니라 한 몸일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쓰고 있는 나 역시 늑대이면서 사슴입니다
물론 사회 속에서 늑대인간은 강•자를 가리킵니다. 반면 사슴인간은 사회적 약자의 은유입니다. <자유의 폭력》에서 나는 늑대에게 자유가 주어지는 만큼 사슴에게도 자유가 주어져야만 좋은 사회, 좋은 국가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늑대에게만 자유를 주는 사회는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라 죽음의 사회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요? 많은 철학자들은 현재를 이른바 권력 공백의 시기, 곧 인터레그넘intertegnum 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직역하자면 최고 권력의 부재 혹은 공백 기간이라는 뜻입니다. 이를테면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기 전의 시대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다시 말해 이전의 시대정신이 사라졌는데, 새로운 시대정신은 아직 출현하지 않은 상태라고할 수 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시대를 지배하는 최고의 가치가 없다는 것이며, 다른 말로 하자면 춘추전국시대처럼 모든 가치가 경쟁하거나 혹은 모든 가치가 동등하게 인정받는 다원주의 시대라고 할 수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다원주의는 가치의 영역이 아니라 사실의영역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다원주의를 하나의 가치로 보면 다원주의를 반대하는 가치도 다원주의의 가치에 의해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속화된 입헌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원주의는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라 누구도 거부할 수없는 사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