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르마르크와 옌센은 그 이유를 가짜 노동의 증가와 함께 제대로 놀 줄 모르는 문화에서 찾습니다. 노동시간이 길수록 사람들의 여가도 수동적으로 바뀝니다. 하릴없이 TV를 보거나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는 식으로요. 너무 지쳐버린 나머지 적극적으로 몸과 마음을 움직여 활동할 엄두를내지 못하게 되는 까닭입니다. 일터에서의 생활도 다르지않습니다. 긴 노동으로 인해 에너지가 없으니, 일에 집중하기보다 그럭저럭 시간을 때우며 보내기 십상입니다. 그래서뇌르마르크와 옌센은 과감하게 가짜 노동을 줄이고 여가를제대로 꾸리는 법을 익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제대로 놀줄 알아야 일도 잘하게 된다는 의미이지요.
이들의 주장은 창조성과 ‘다르게 생각하기‘를 강조하는 최근의 기업 분위기와도 맥이 닿아 있습니다. 뇌르마르크와 옌센은 역사상 위대한 진보, 위대한 예술 작품과 사상, 기념비적인 과학 발전은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이들이 아닌 여가를 즐기던 계층에서 나왔음을 일러주지요. 한마디로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야 문명과 교양, 창의적인 기술도 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일터에서 가짜 노동을 내쫓아야 할 때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나아가, 먼저 제대로 놀아본 사람만이 놀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를 제대로 가르쳐줄 수 있는 법이지요. 앞으로의 시장이 더 많은 여가와 자유시간에서 비롯된다면, 우리가 과연지금 여가를 슬기롭게 누리고 있는지 돌아볼 때가 아닐까요? 문명의 중심은 이제 노동에서 여가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취업이 어려운 이유는 경기가 안 좋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공적인 기술혁신 덕분에 인간의 노동력은 점점 더 필요 없어지고 있지요. 한마디로, 경제가 살아난다 해서 취업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울리히 벡은 노동을 다르게 바라보라고 충고합니다. 그에 따르면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생각은 착각일 뿐입니다. 취업 노동은 줄어들지 모르지만, 시민 노동citoyen labor은 오히려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시민 노동이란 사회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하지만, 지금까지는 경제적 대가를 주지 않았던 활동을 말합니다. 육아와 가사 노동이 대표적인 사례이지요. 그 밖에도 예술, 문학, 정치 등등에서도 꽤 많은 시민 노동이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SNS나 유튜브 등에 올리는 다양한 창작물들, 기사마다 달리는 댓글들도 넓게는 시민 노동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실업급여는 받는 이들의 마음을 움츠러들게 합니다. ‘무능력자‘, ‘부적응자‘라는 꼬리표가 붙기 때문입니다. 반면, 시민수당은 수혜자들에게 자부심을 안겨주는데, 대가를받을 만한 가치 있는 일을 해서 사회에 이바지했다는 뿌듯함을 선사하기 때문이지요.
고대 그리스에서 자유인들은 노동은 노예에게 맡긴 채정치적인 삶과 공동체에 기여하는 활동에 매달렸습니다. 울리히 벡은 현대인들의 상황이 고대 그리스인들과 유사해질것으로 봅니다. 생산에 필요한 노동은 기계에 넘겨주고, 인간은 삶과 사회를 더 의미 있고 바람직하게 만드는 활동들에 정성을 쏟을 거라는 뜻입니다.
그는 전쟁터에서도 현실과 거리를 둘 줄 알았습니다. 마음이 흔들리면 급박한 것을 중요한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요. 전략과 전술은 다릅니다. 전략가는 큰 판을 읽는 반면, 전술가는 눈앞의 승리를 좋습니다. 아우렐리우스는 전략가답게 "자주 철학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할 줄 알았습니다. 사색으로 불안을 다독이며 현실을 차분하게 살폈다는 뜻이지요. 그는 세상의 온갖 소음 가운데서 변화의 본질과 핵심을 추려냈습니다
인공공지능의 등장으로 경쟁력을 잃고 일터에서 밀려나리라 걱정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철학은 다른 예상을 내놓습니다. 생산을 위해 사람이 일하던 시대는 끝나갑니다. 앞으로의 일거리는 사회생활 자체가 일거리인 시민 노동과 사람다운 삶을 가꾸는 여가에서 생겨날지 모릅니다. 변화를따라가기 급급한 추격자는 결국 힘 빠져 뒤처지게 되어 있지요. 이런 처지에서 벗어나려면 시대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패러다임 체인저 paradigm changer‘가 되어야 합니다. 처음 두장을 통해 독자들은 이에 필요한 지혜를 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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