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르디니가 말하는 ‘믿음‘을 받아들이려면 이성을 희생해야 합니다. 이성을 희생하는 것은 신이 인간에게 하사한 가장우수한 재능을 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저는 과르디니 같은 사람들을 매우 존경합니다.‘
"인간을 파괴하는 가장 큰 적은 생각하기를 귀찮아하는 게으름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줏대라고는 없이 그저 강력한 이념이 있는 종교나 정치 공동체에 속하려 드는 충동입니다."
욕망이 담긴 시선은 불순하고 왜곡되어 있다. 우리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대상을 순수하게 바라볼 때 비로소 사물의영혼, 즉 아름다움이 살아난다. 자신이 소유하거나 빌린 숲, 나무를 베고 사냥도 하고 돈을 빌릴 담보로 삼고 싶은 숲을 바라본다면, 숲은 숲으로 보이지 않는다. 제 욕망, 계획, 걱정, 주머니 사정을 해결해 줄 사물로만 보인다. 그럴 때 숲은 그저땔감이며, 젊거나 늙었거나 건강하거나 병든 모습이다. 하지만숲에 그 무엇도 바라지 않고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숲 깊숙한 곳의 녹색을 바라보면, 그제야 비로소 숲은 숲이고 식물이고 자연이며 아름답다.
욕망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관찰하고자 하는 마음이 채우면, 상대를 순수하게 바라보고 집중하려는 시선에는 모든 것이 다르게 비칠 것이다. 그러면 사람은 더 이상 유용하거나 위험하게, 재미있거나 지루하게, 온화하거나 거칠게, 강하거나약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때 사람은 본질적인 존재가 되고아름다워지며 독특해진다. 관찰은 연구나 비판이 아니라 애정이다. 영혼의 가장 숭고하고 바람직한 상태, 욕망 없는 사랑인 것이다.
나에게 삶은 이 세상의 양극(일치하는 것과 일치에서 벗어나는것) 사이를 오가는 것, 즉 이 세상의 가장 근본적인 기둥 사이를 오가는 것이다. 이 세상의 축복받은 다양성이 얼마나 황홀한지 끊임없이 언급하고 싶고, 그 다양성의 근본에는 일치가있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싶다. 아름다움과 추함, 밝음과 어두움, 성스러움과 죄악은 아주 잠시만 대립할 뿐 줄곧서로 뒤섞이며 변화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보여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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