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군가 ‘귀가 밝다‘고 말한 것은 그가 ‘특정한 저것의소리를 듣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가 ‘스스로 듣는다‘는 것을의미한다. 내가 누군가 ‘눈이 밝다‘고 말한 것은 그가 ‘특정한저것의 모양을 본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가 ‘스스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릇 스스로 보지 않고 저것을 보는 경우나 스스로 얻지 않고 저것을 얻는 경우는 다른 사람이 얻으려는 것을 얻음이지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음이 아니며, 다른 사람이 맞다고하는 것에 맞추려 함이지 자신이 맞추어야 할 것에 맞추는 것이 아니다.
「변무」

남이 저 소리를 들어보라고 했지만 무슨 소리인지 식별하지 못한사람‘이나 ‘저 소리를 스스로 막연히 듣고 무슨 소리인지 식별한사람 중에 누가 더 귀가 밝은지 고민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장자는 나머지 두 경우를 놓고 저울질했던 것 같습니다. ‘남이저 소리를 들어보라고 해서 무슨 소리인지 식별한 사람‘과 ‘저소리를 스스로 막연히 들었지만 무슨 소리인지 식별하지 못한 사람‘ 중에는 어느 쪽이 귀가 밝다고 할 수 있을까요? 장자는 후자의 손을 들어줍니다. 왜일까요? ‘남이 저 소리를 들어보라고 해서 무슨 소리인지 식별한 사람‘은 남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막연한 소리조차 듣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반해 ‘저 소리를 스스로 막연히 들었지만 무슨 소리인지 식별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텐트에 함께 있던 지인의 귀를 이용해무슨 소리인지 바로 식별할 수도 있고, 아니면 날이 밝은 뒤 캠핑장을 살펴보고 늦게나마 무슨 소리인지 식별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명‘, ‘눈이 밝다‘는 의미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만의 생각에 불과하다‘는 자각은 ‘타자들은 나처럼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안다는 것과 동시적입니다. 장자에서꿈의 모티브가 등장할 때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이 점입니다.

당연히 천하 안은 삶을 보존하는 문명이고 천하 바깥은 삶을 기약할 수 없는 야만이라는 이데올로기적 협박은 그들에게 먹히기 힘들었습니다. 복종은 지배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죽을 수 있다는 협박이 제도화되고 내면화되어야 가능합니다.
나보다 힘이 센 누군가가 우리 목을 조르며 "죽을래, 아니면 살래!"라고 협박합니다. 이런 협박을 무력화시키는 방법, 복종의강요를 좌절시키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그래, 죽여라!" 복종하는 삶을 영위하느니 자유로운 죽음을 결연히 선택하는 순간, 그누구도 우리를 복종시킬 방법은 없습니다.

두 번의 협박, 아니 반복적인 협박은 천하에 포획된 정착민적 삶을 사는 이들에게 통하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정착· 농경생활은 영토가 탄생의 기반이 되는 겁니다. 정착지를 떠나서는 죽을 것 같고, 지배에 복종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습니다. 반대로 천하에 머물면 살 수 있을 것 같고, 복종을 감내하면 살 수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들을 생사관(生死)에 가두어버리면서정착민들은 피지배계급이 되고 맙니다. 이제 복종하는 삶이 죽음보다 불행한 삶이라는 호소도 피지배계급의 귀에는 들어오지않습니다. 이미 그들은 죽음의 공포에 깊이 사로잡혀 있으니까요. 자유의 길은 복종을 거부하면, 혹은 정착지를 떠나서는 죽을 수도 있다는 꿈에서 깨어나야만 시작될 수 있습니다. 생사관이 몽각관이기도 한 이유입니다. 바로 여기서 천하 내부와 천하외부가 공존했던 진나라와 그곳의 삶이 상징적 힘을 갖습니다.

천하를 상대화할 수 있는 역사적 상상력이 주는 힘이라고 해도좋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죽음을 감내하는 자유인의 투쟁은 여유를 갖게 됩니다. 국가를 미련 없이 떠나는 길도 있다는 걸 아는 순간, 복종에서 벗어나려는 투쟁은 자유가 아니면 죽음이라는 거친 이분법의 절박감과 긴장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진나라라는 역사적 상징은 생사관과 몽각관을 통과하는 데 경쾌함과 여유를 제공합니다. 생사관과 몽각관을 천하의 변경 진나라 위에 놓는 예민한 문학적 감각! 장자가 일급의 지성인 이유입니다.

자신이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하건 항상 그것이 나만의 꿈이 아닌지 의심하라는 겁니다. 친구를만날 때, 애인을 만날 때, 고양이를 만날 때, 꽃을 만날 때, 늑대를만날 때, 바람을 만날 때, 매번 우리는 개운치 않게 생각하고 개운치 않게 행동해야 합니다. 깔끔한 분류와 명확한 가치평가는국가의 꿈이니까요. 대붕은 바람이 충분히 모여야 날 수 있는 법입니다. 작은 꿈에서 깨어나는 경험이 충분히 쌓여야 합니다. 생사관과 몽각관을 가볍게 날아 넘어갈 수 있는 대붕이 되려면 말입니다. 대붕이 되어 관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게 비상할 때,천하는 아주 협소한 세계라는 것이 분명해질 겁니다. 장자의 말대로 "단지 크게 깨어날 때만 우리는 큰 꿈을 꾸었음을 알게 되니까요.

이야기를 마치며 장자는 자신이 꾸었던 큰 꿈, 가위눌리면서도 깨기 힘들었던 그 지독한 악몽을 분명히 합니다. 바로 국가주의입니다. "그렇지만 어리석은 자들은 자신들이 깨어있다고 생각하고 분명하게 아는 듯 ‘왕이구나! 목축민이구나!‘라고 말하는데, 고루하기만 하구나!" 마지막까지 장자는 진나라를역사적 상징으로 쓰는 노련함을 보여줍니다. 왕과 농민이 아니라 왕과 목축민으로 지배와 복종 관계를 묘사하니까요. 농민과달리 목축민은 언제든 영토국가를 떠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의 큰 꿈에도 자유의 실마리를 새겨 넣었던 철학자, 바로 장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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