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살이나 먹어야 자신에게 몰두하는 것,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 생명을 북돋울 만한 그 무엇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걸 깨달을 수 있을까? 오래된 덕을 배워야 한다. 바로 겸손이다. 겸손이란 우리가 각자 따로따로 있어서는 별 볼 일 없는 존재들임을 현실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 진리를 찾는답시고 스스로를 온실 안에 고립시킬 필요가 없다. 진리가 무엇이고, 진리가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알기 위해, 우리는 형제자매와 스승과 부모 같은 사람들, 책과 이론과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이들과 함께 진리를 이야기할 수 있다. (풀베르트 슈테판스키)
어른이 된다는 것, 그리고 나이가 든다는 것은 스스로는 별로 가진 것 없음을, 우리 스스로에게서는 이렇다 하게 영혼의 양식이 될 만한 것을 별로 길어낼 수 없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자신에게서 길어낼 수있는 소망은 아주 작다. 스스로 낼 수 있는 용기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 가슴이 꾸는 꿈은 진부하다. 얼마 가지 못한다. 우리는 구해서 받는 사람들이다. 스스로를 먹이거나 위로하거나 용기를 불어넣을 수 없다
뿌리와 잎은 각자 힘을 얻는 수단이 다르다. 하나는 물을, 하나는 빛을 받아들인다. 그처럼 개개인은 하느님의 현존을 서로 다르게 경험한다. 자신의 삶에 어떤 것이 요구되는지를 서로 다르게지각하고, 서로 다른 모습으로 배려하고 섬긴다. 중요시하는 것이서로 다르며, 힘들고 부담되는 것이 서로 다르다.
같은 신앙 안에서도 다른 사람들이 믿는 방식, 그들이좋아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뿌리와 잎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 이것이 그들의 신비다.
"오소서 성령이여, 하느님의 뜻을 행하도록 나를 도우소서"라는 마음의 외침보다 성령을 더 강력하게 초청하고 끌어당기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런 기도를 하는 사람은 잎을 내고 빛을 향해 나아가는 나무처럼 생명을 펼치게 될 것이다.
아내가 어려움을 토로할 때마다 일제 할머니는 따뜻하고 진심 어린 위로와 격려를 해주었다. 그녀는 말을 하다가 도중에 자연스럽게 기도로 옮겨가곤 했다. 하느님과 친밀하다 보니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채 말이 축복기도로 옮겨가고, 기도가 다시금 지혜로운 말로 이어지는 듯했다. 한번은 병원에 병문안을 갔는데, 의사와 간호사 여러 명이, 뭐랄까 스스로를 잊은 듯한 해맑은 표정으로 일제 할머니의 침대 옆에 서 있었다. 의료적인 용건 때문이 아니라, 노쇠한 그녀에게서 뭔가 특별한 것이 느껴지는 듯했다. 일제 할머니는 하느님과 가까운, 우리 곁의 성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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