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보산 성당에서 미사가 시작되었다. 미사 중에 낭독된 독서는 모세가 그곳에서 죽었다라고 맺고 있었다. 처음으로 나는 "왜요?"라고묻지 않았다. "하느님, 모세를 그렇게 고생시키고 왜 약속의 땅에 들여보내지 않으신 것인지 말해 주세요"라고도 하지 않았다. 예순이다 되어서 이곳에 왔기에, 떠나오기 전 내가 ‘나는 틀릴 수 있습니다‘라는 걸 아프게 깨닫고 떠나왔기에 얻은 축복이었다. 이보다한 환갑 선물이 있을까. 그러고 보니 새삼 예순이라는 나이가 실감되었다. 이순(順)이라고 하지 않던가, 귀가 순해진다는

가장 어두운 시간에도행복은 존재한단다.
불을 켜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말이지.
영화 <해리포터> 중에서

나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뭐라고 대답하실까 많이 궁금했다. 나의빈약한 상상력은 성모님께서는 워낙 겸손하시니까 "무슨 소리니, 외모는 중요한 게 아니란다"라든가, 아니면 단순하게 "고맙다", 뭐 이러고 넘어가실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성모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한다.
"으응, 내가 아름다운 이유는………… 많이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비논리적인 이 구절 하나로 나는 메주고리예 성모님의 발현을 믿어버렸다. 이 단순한 말은 십 대 초반의 아이들이 지어내기에는 너무 고차원적인 말이 아닌가

"전남의 한 조그만 마을에서 태어났어요. 중학교 때 아버지가 일찍돌아가셨지요. 큰딸인 나는 학업을 다 이루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와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학교를 다닐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다 제가새로 소개받은 어떤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지요. 거기 사장님께서 어느 날 저를 부르시더니 서울 시내에 나가 구경을 시켜주시고 밥도 사주시고 그리고 뜻밖에도 저를 서점에 데려가 책을 사주셨어요. 저에게는 서울이란 온통 고생과 긴창뿐인 도시였는데 아주 뜻밖의 일이었지요. 집에 갈 때가 다 되어서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제가 조심스레 여쭈었어요. ‘제게 왜 이런 걸......‘ 하고요. 사장님께서 웃으시며 제게 자신의 지갑을 열어 돈을 보여주며 대답하셨어요."누군가 너에게 이런 걸 해주라고 이 돈을 주셨단다. 그러니 아무염려 말아라‘

‘그런 좋은 분이 계시다니 믿을 수 없네요‘
저는 그냥 웃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말씀이 이어졌죠.
‘그 사람이 궁금하니? 만일 그렇다면 그게 어디든 네가 가는 길에 있는 성당에 들어가보거라. 거기 그분이 계시단다.‘

"미안해요. 아시다시피 내가 아들 잃고 요새 정신이 없어 실수를했네요. 누구라도 젊은 아들을 잃고 나면...
나는 그 유명한 분을 안다. 좋은 분이었다. 겸손한 분이었다. 그래서 내가 존경하던 그분은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당돌한 젊은수녀는 그것을 용서하지 않고 이렇게 대꾸했다고 한다.
"왜 자매님 아들은 죽으면 안 되는 거죠?"
다음 날 그분은 수녀원을 나왔다. 괘씸해서가 아니었다. 모욕적이어서도 아니었다. 깨닫고 치유되어서였다. 그 모진 한마디가 그분이스스로 둘러친 유폐의 벽을 깨부순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에게말했다.
"그 지극한 고통 속에서도 우리는 얼마나 교만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 고통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 대개 이런 것이 우리의소원이 아니던가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고통이 없어지고 나면 인간의 손과 발이 뭉개지고 코가 뭉개지며 종국에는 눈도 먼다. 조금도 주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을 닫다가 손을 찧어도, 발 위로 무거운 돌이 떨어져도 피하지 않는다. 아프지 않기 때문이다. 눈은왜 멀게 되냐면, 눈을 계속 뜨고 있어도 아프지 않기 때문에 깜박이지 않게 되고 깜박이지 않으니까 심한 안구건조증이 오고, 그리하여 각막이 상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센병 환자들에게 몇 초마다 작은 소리를 내는 장치를 주어 그때마다 눈을 깜빡이게 하면실명이 방지된다고 했다.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 이것은 죽음에 이르는 길인 것이다. 참으로 중대하고 두려운 일이다.

아잔 브라흐마 스님은 그의 책 ‘성난 물소 놓아주기에서 ‘고통이란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을 기대하는 마음‘이라고 짧고 멋진 정의를 내렸다. 나는 결혼이 줄 수 없는 것을 결혼에서 바랐고, 사람이 줄 수 없는 사랑을 사람에게 원했던 것 같다. 나중에 신을 다시찾게 되었을 때 내가 원했던 그 사랑의 원형이 거기 있었다는 것을알고 깜짝 놀랐다. 그걸 인간에게 바랐었다. 우상숭배를 하려 했던것이다.

두 번째로 고통이 주는 이점이 있는데, 그것은 겸손해진다는 것이다. 야트막한 정상까지 가려고 산을 오르기 시작하거나 책을 하나쓰려고 자리에 앉거나 하면, 말할 것도 없이 고통이 다가온다. 내 한계는 너무도 분명해서 "오늘은 이 밭의 잡초를 다 뽑아야겠다. 뭐,한나절이면 되겠네" 하거나 "이번 달 말까지 원고를 끝낼 수 있을 것같아요" 하는 망상이 깨지는 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도 않는다. 내가고작 이만큼밖에 안 되는 인간이구나 싶다. 여기서 그 고통을 자기비하로 떨어지지 않게 잘 관리하면, 그것은 곧바로 고통의 세 번째이점인 성숙으로 연결된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박탈과 고통의 삶을 살기로결심해서는 안 됩니다.
탄탄하고 오래 지속되는 참된 사랑은 자기 자신의행복과 타인의 행복을 동시에 추구하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타인을 향해 가려고, 종종 우리 자신을 가두는고리를 깨뜨릴 때, 인생은 흥미진진해집니다.
-엠마뉘엘 수녀, 『나는 100살,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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