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풍경 때문에 글월에서 일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창에 담긴 아늑함을 보고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시간이 더 이상 불안하거나 초조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만으로도 잘하고 있다는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지금 효영에게 가장 필요한 힘이었다.

1초면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시대에 편지엔 어떤 힘이 남아 있는 걸까. 사장인 선호도 편지지와 펜팔서비스로 가게를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하진 못했다. 편지로 마음을 전달하는 사람은커녕, 요즘 젊은이들은 따뜻하고 위로되는 말을 주고받는 걸 어색하게 느끼는 것 같다고. 그래서인지 선호는 전략을 세워 글월만의감성이 담긴 항수나 노트, 만년필 등을 함께 판매하고있었다. 편지의 가치를 지키겠다는 신념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이번처럼 편지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손님을 끌어모으기 위해서는 여러 방면의 전략이 필요했다.
"쓰고 싶은 마음이 들게."

"오늘의 기분이 영원은 아닐 거야.
영원이 아닌 것들에게 내 소중한 하루를 넘겨주지 않을 거야."
제가 제일 좋아하는 대사예요 13화에 나오는 대사요!

제가 사는 곳 건너편에는 편지지를 파는 편지 가게가 있어요.
가게 이름은 ‘글월‘인데, 글월이 편지를 높여 부르는 순우리말이래요.
평소에 무심코 쓰는 단어를 더 높이고 소중하게 부르는 단어가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스마트폰 하나로 24시간 타인과 연결되는 세상에편지를 높여 부른다는 게 무슨 의미일지 궁금해지기도 했고요.

애먼 곳에 마음이 움직이면 행여나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일하는 중에는 늘 감정을 단단하게 부여잡아.
그래서인지 요즘엔 ‘여백(餘白)이라는 게 소중해지더라.
아무것도 적어 넣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숨 쉴 공간 같은 거 말이야.

여백이 주는 휴식을 즐기고 나면,
나한테도 가끔 무방비의 순간이 찾아오기도 해.
좋아하는 음악이나 영화, 시구 한 줄에 마음이 동(動)하는 순간이오는 거야.
널 말랑말랑하게 하는 것, 흠뻑 젖게 하는 것,
자꾸만 고개를 돌리게 되고, 밤새 우주를 유영하게 하는 것.
그런 걸 찾으려면 한 번쯤 한없이 여리고 약해져도 돼.
무용하다고 느끼는 시간이 실은 얼마나 유용한지, 너도 금방 알게될 거야.

"이거 비싼 거라며 깨지면 안 되는 거 아냐?"
"깨지면 깨지는 거지, 뭐 어떠냐. 효영아, 너 내가 좋아하는 시 알지? 산산조각이 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

최근에 책을 한 권 읽기 시작했는데 첫 장부터 흥미를 끄는 문장이 있었거든요.
가이 대븐포트라는 작가의 읽기에 관하여]라는 에세이입니다.
책을 읽는 행위는 그 책을 읽은 방에, 의자에, 계절에 달라붙는다는문장이었어요.
인간이 책을 읽은 시간과 공간을 총체적으로 기억하게 된다는 말에,이상하게 마음이 끌리더라고요.
나의 글도 편지도 누군가의 시공간에 함께 남는다면 무척 근사한일일 것 같아요.

글월에도 종종 편지지 모양이나 무늬, 색 등을 보며 자기 과거를 소환하는 손님들이 있다. 결국 글이라는 건 과거라는 우물에서 길어 올린물한동이라는 재료가 필요했다. 서툴고 부끄러워도 물 한 동이를퍼내야 다음 할 말이 차올랐다. 그렇게 과거라는 우물을 정화한 사람은현실에서도 자기 마음을 투명하게 볼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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