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절을 돌아보는 대목에 설 때면 ‘연출에 있어 중요한 것은 모호성이다‘라는 말에 슬며시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한때 그러한 연출관을 비겁한 변명이라고 생각했던 적도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매우 영리한 태도라 생각한다.
연출에 있어 모호성이 중요하다는 말은 ‘연출 의도를 삭제하고 삭제된 의도의 자리에 관객, 독자, 청자의 감정만을 남겨각자의 추억과 감상으로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의미라고생각하면서부터다. ‘연출의 모호성‘은 오래전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창작을 하고 거기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직관적이고 분명한 ‘의도‘가 삭제되어도 사람들은 감상을 통해 메시지를 읽어낸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알게 되었다. "좋은 작품은 끝을 맺은 뒤에도 살아 움직인다"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말을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싶다.
삶의 여정은 어떤 방향도 목적도 없다. 다만 살아가는 구체적인 장면 속에서 매 순간 새롭게 구성되어야 한다고 읽었는데, 앞으로는 더욱 구체적으로 더 새롭게 다음날들을 살아가야 할 것 같다. 막다른 길에서, 새로운 여행의 시작에서부터.
그러니 차라리 파리의 카페들이 낫지 않을까? 그렇게 시끌벅적하게 요란을 떠느니 그냥 이렇게 무덤덤한 편이 더 낫겠구나 싶었다. 어쩌면 그들에게 역사란 사건이 아니라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그리고 그편이 훨씬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관광객으로서는 어렵게 찾아간 카페가 내가 생각한 그곳이 맞나 싶은 마음에 웨이터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혹시 이 카페에 헤밍웨이가 앉았던 자리나 유품 같은 것이 있나요?" "그런 건 없는데요." "여기가 헤밍웨이가 글 쓰던 그 카페가 맞기는 한가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그 손님은 안 오신 지 꽤 됐습니다."
"도대체 뭘 건져내세요?"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자기 고민을 바다에 던지는데, 생각이 가벼워 물 위에 뜬 것들을 걷어내는 겁니다. 제때 걷어내지 않으면 사람들의 고민이 많아지거든요." "남의 고민은 건져서 뭐에 쓰시려는 겁니까?" "이렇게 건져낸 고민은 서쪽 바위에 잘 펴서 말리는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민을 던져버리면 그만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고민이란 깊이 젖을수록 더 무거워집니다. 오히려 맑은 날 꺼내 잘 펴서 말려야 가벼워집니다. 던져버린 고민을이렇게 건져내지 않으면 언젠가 큰 파도가 칠 때 고스란히몰려들게 됩니다."
해거름에 해변 모래사장을 헤집으며 느릿느릿 지나는 소한 마리와 몰이꾼도 보았다. 뭘 하는 것이냐고 묻자 "백사장아래 묻혀있는 오래된 사람들의 지혜를 찾고 있다"고 했다.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혜와 같이 소중한 것을파도가 조금만 밀려와도 쏠려가는 해변에 묻어 놓다니……………왜 그 소중한 것을 거기에 묻어놓는 것일까 싶었다. "당신은 지식과 지혜를 구분할 줄 모르는군요. 지식은 구하는 것이지만, 지혜는 발견하는 것입니다. 모래밭에 지식을묻어놓으면 언제고 큰 파도에 쏠려 사라지지만, 지혜는 어떤 파도가 와도 아무리 오랜세월이 흘러도 그 자리에서 발견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쨌든 모든 기획에는 분명한 의도와 그 의도가 담긴 내용이 있어야 마땅하고, 행사가 끝나면 참석했던 관객들이 의미 정도는 분명히 알고 돌아가야 성공적인 이벤트이며 축제라고 가르치기도 했다. 그래서 내용이 아무리 재미있고 그럴듯해도 목적과 의도가 분명하지 않은 기획들은 영혼 없는 예술가와 같다고도 이야기해 왔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관점이 반드시 맞는 것만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우리는 대부분 정해진 일들을 따라가며 하루를 보낸다. 거기에는 대개 마땅한 이유와 목적이 있다. 하지만 어떤 날은아무 생각 없이, 아무 이유 없이 보내는 시간도 분명히 있다는 것을 나는 왜 인정하지 못했던 걸까? 게다가 사람들은 늘 ‘제발 이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벗어나 아무 이유도 목적도없이 사는 것‘에 대한 로망이 분명히 있지 않았던가!
일정도, 시간도 여의치가 않아 트라팔가까지는 못 갔지만, 또 아무리 할 일이 없다 해도 단지 베개 싸움을 하러 영국에갈 상황은 아니었지만, 앞으로 뭔가 다시 만들기 시작한다면이번에는 단지 재미만으로, 특별한 목적 없이 ‘그냥‘ 하는 것들도 해봐야겠다 싶다. 가끔은 말이다.
북극을 가리키는 나침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여윈 바늘끝을 떨고 있습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우리는그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바늘 끝이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그것을 버려야 합니다. 이미 나침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영복, <지남철〉.
제주의 일상에서 하찮은 것의 소중함을 알았고, 부족한 것의 풍족함을 알았고, 단순한 것의 복잡미묘함을 알게 되었다. 태풍이 불던 삼일 낮과 밤 동안 갇혀 있으면서 받아들이는 법, 고개 숙이는 법을 배우며 밤새 조금은 겸손해지기도 했다. 잡히지 않는 물고기를 기다리며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해, 왜 그것이 비린내 나는 일인또한 그 비린내가 얼마나 싱싱한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조간대 바위틈에서 성게 하나 꺼내 들었다고 쌍욕을 하면서 달려드는 섬사람들의쌀쌀맞음과, 뒤엉킨 낚싯줄을 하나하나 풀어주고 잡은 물고기를 고기반찬이나 하라ㄷ주고 가는 훈훈함이 한 끗 차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빨리빨리 해. 좀 빨리" 그러면, ‘추‘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느릿한 말투로 말한다. "제가요, 빨리하라는 말 정말 싫어해요. 빨리빨리 하라는 말 싫어서 제주도 왔는데."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빨리빨리‘였고, 하도 그런 말을 듣다 보니 왠지 자기가 일을 못하는 것만 같았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들 그렇게 자기를 답답하게보는 것 같아서 힘들었단다.
결과적으로 일을 못한 것도 아니고 완성도가 떨어진 것도아니었는데, 게다가 그렇게 서둘렀던 사람들보다 더 낫기도하고, 서둘러 끝낸 사람들을 보면 일 끝내고서는 하릴없이서성일 뿐이던데 왜들 그렇게 서두르는지 싶었다고 한다. 제주에 와서 지내면서 ‘아! 사람마다 저마다의 속도가 있는데, 나는 다른 사람의 속도보다 느린 것뿐이야‘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자신의 속도대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지‘ 싶어
제주에 머무는 동안 내가 생산적이지 않았으면 한다. 좀더 유약했으면 한다. 매사 별 뜻 없고 의미 없었으면 한다. 온갖 사소한 것들과 함께 유유자적 지낼 수 있으면 한다.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무언가를 위해서, 다음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냥 필요하다. 대단치 않은 것들, 사소한것들이야말로 삶에 큰 위로가 되어 주니 그래서 필요하다. 오늘부터 장마다. 종일 비 내리는 것을 본다. 하루 종일 비내리는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지금 나는 이 처음이 매우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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