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순수함‘에 대한 정의는 상대적일 수밖에 없고, 여기에대해 어떤 답을 내리거나, 맞다, 틀리다를 다투는 일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치열한 논쟁이 오간다 한들, 결국 창작물에 대한 책임과 결과는 오롯이 창작자에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비단 예술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삶을살아가며 ‘하고 싶은 일‘을 더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의 비율을 필사적으로 줄여나가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원하는 일‘과 ‘현실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 책임을 담보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직업적 순수성‘의 척도란, 자신의 일을 대하는책임감의 크기와 그 정교함의 정도입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일‘
이 ‘업‘이 되는 방식이 그렇습니다.

어떤 형태의 예술이든 작품이라는 건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동시에 지극히 사회적인 산물입니다.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공감과 위로를 얻고, 때로는 ‘이 세계를 함께 살아가는 동료‘라는 강력한 연대의 용기를 얻기도 합니다. 그래서 ‘무명‘이라는 광막한공백의 영역에 자신의 이름을 존재하게 만들었을 때 예술가는비로소 유명을 얻게 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예술가가 번듯한 이름을얻는 일의 의미가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일,
그렇게 살아남는 일이 이름이 없는 채로 대부분의 시간을 살아왔던 저를,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저를 지탱해주는 신념입니다.

오래전부터 동물 중에서도 새를 가장 좋아했습니다. 날개가상징하는 자유로움을 언제나 갈망해 왔습니다. 학창 시절 제가가장 공감했던 단 하나의 문장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자신의자유의지로 자기의 자유의지를 포기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뿐"
이었습니다. 미술대학에 진학한 후 저는 갑갑한 현실을, 자유로운 새가 날개를 잃고 인간의 몸속에 갇힌 ‘새 인간‘의 형상으로표현했습니다. 그 작품들로 생애 첫 개인전을 열었을 때의 전시제목은 <새상>이었습니다.

당시 공모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저는 우연히 도도새에 대해알게 되었습니다. 남아프리카 인근 모리셔스라는 작고 아름다운섬에 살던 도도새는 천적이 없는 평화로운 환경 속에서 날아야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결국 날지 못하는 새로 퇴화해 버렸습니다. 때문에 포르투갈 선원들이 그 낙원에 발을 들여 놓았을때 그들의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포르투갈인은 그들에게 ‘도도‘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도도‘는 ‘바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1681년, 최후의 도도새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지금, 그들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건 모리셔스의 포트루이스 자연사 박물관에 박제된 도도새의 뼈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분명한 과정과 목적이 있는 길을권하고 때로는 강요합니다. 하지만 모리셔스에서의 모험은 ‘유익한 방식의 방황‘ 역시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와 새로운 가능성을찾는 좋은 방법이 될 거라는 확신을 제게 갖게 했습니다. 이 세상을 정글에 비유한다면, 살아갈 수 있는 방법 또한 셀 수 없이 많지 않을까요? 호모 비아토르 Homo viator, 우리는 길 위의 인간이며,
언제나 길 위에서 떠나고 돌아오는 동안 성장과 변화의 기쁨을맛보아 온 존재이니까요.

"사람은 오직 혼자 있을 때만 자기 자신이 될 수 있고, 고독을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유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쇼펜하우어의 금언처럼, 수다스럽지 않은 시간들은 우리에게 종종 더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법입니다. 때문에 자발적인 고독은 분주하고 천편일률적으로 흘러가던 일상의 시간에서 한 발 뒤로물러나 자신의 삶을 관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외로움loneliness과 고독solitude의 차이는 거기에서 옵니다. 자발적인 고독속에서 잠시나마 은자가 되는 경험은 우리의 삶에 어떤 화두를

어쩌면 살아간다는 일에 익숙해진다는 건 수많은 선택들이 주는 스트레스로부터 조금씩 의연해질 수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게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의연해지되 무뎌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 괜찮을 거야‘라는 막연하고 성의 없는 위로나 툭툭 던지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선택의 번민 속에서 선뜻 제게귀를 열어주고, 손을 잡아준 이들과 함께 삶을 발견해 나가는 기쁨을 느끼고 싶습니다.
확신이라는 말이 좀처럼 어려운 이 세상 속에서 저는 그런 방식으로 믿어보고 싶습니다. 나 스스로를, 그리고 당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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