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高不用鐫頑石명고불용전완석路上行人口是碑노상행인구시비

이름이 높으면 돌덩이에 새길 필요가 없다.
오가는 사람들의 입이 바로 비석이다.

조선 중기 선비인 박수량(朴良, 1491~1554) 묘소 앞의 비석은 어떤 글자도 새기지 않았던 까닭에 백비(전남 기념물 제198•호,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 소재)라고 불린다. 청백리로 이름 높았던그의 공적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기념물이라 하겠다. 조정에서 참판, 판서 등으로 38년이나 근무했지만 자기 집 한 채 없었고, 죽은 후에는 장례 비용이 모자랄 정도였다. 게다가 유언마저도 청백리답다.
"내가 외람되이 판서의 반열에 올랐으니 영광이 분수에 넘쳤다. 내가 죽거든 절대로 묘비를 세우지 말라."

긴 시도 있고 짧은 시도 있었다. 그럼에도 한 편의 시 속에서절창(絶唱: 가장 잘된 부분)은 결국 한두 줄이다. 나머지는 절창을위한 수식어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속에는 그 한두 줄만 남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한두 줄은 단순한 한두 줄이 아니라 그 시의 전부인 셈이다. 따라서 광장의 글판 역시 두 줄이면 충분했을 것이다.

山不在高有仙則名산부재고유선 즉명水不在深有龍則靈수부재심유용즉

신선이 산다면 명산이요
물이 얕아도 용이 머문다면 명천이다.

어떠한 두려움도 갖지 말고 홀로 우뚝 설 것이며 세상에나가지 않고 숨어 있어도 번민하지 말라는 "독립불구 둔세무민"을 21세기에 좌우명으로 실천하고 있는 이가 조용헌 선생이라 하겠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얽매여 살지 않기 때문에 자기 할 말은 분명하게 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진정한 논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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