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사람
박연준 지음 / 난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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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읽다가 갑자기 흥미로운 생각이 뇌리를 스치면 그 생각에 사로잡힌 나머지 기계적으로 글자와 문장을 따라갈뿐, 이미 책은 안중에도 없을 때가 있다. 무엇을 읽었는지도 모르고 방금 읽은 내용도 기억하지 못한 채 책장만 넘긴다. 당신의 영혼은 자신의 짝인 동물성에게 책을읽으라고 명령은 해놓은 채, 정작 자신은 딴생각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31~32쪽) 정신의 딴청, 홀로 멀리 다녀옴. 이것을 여행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침대, 형이상학, 벽에 걸린 그림들, 개와 하인, 편지, 여행용 외투(실내복), 마른 장미, 여인들, 서가…………모두 여행지가 된다.

당신은 지금 당장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어디로? 물론당신의 방으로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당신 마음이다. 낡은 의자, 책이 쌓인 책상, 보석함, 거울, 옛날 사진………새로움은 언제나 ‘숨어 있다. 상상하는 눈이 그것을 찾아낸다. 『내 방 여행하는 법』이 지도가 되어줄 것이다.

재료 그대로를 먹는 건 더 좋다고 말한다. "나는 요리하는 여성이 아니다. 나와 생각이 같은 다른 여성들을 위해 한마디하자면, 나는 여성이 하루 시간의 대부분을 화덕 앞에 머물며 음식을 만들고 가사에 매여 있을 필요가없다고 주장한다. (・・・) 나는 요리보다는 좋은 책 읽기(혹은 쓰기), 좋은 음악 연주, 벽 세우기, 정원 가꾸기, 수영,
스케이트, 산책 등 활동적이고 지성적이거나 정신을 고양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 (40~41쪽)

상상력, 나아가 사는 형식에 깊은 영향을 끼친다는 얘기다. 미디어에 ‘먹방‘이 차고 넘친다. 누군가 추천한 식당에 사람이 몰린다.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행위를 비난하는 게 아니다. 맛있는 음식을 싫어하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다만 이 무분별한 쏠림 현상, 획일화되는 욕망, 식탐을 조장하는 지금의 음식 문화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걸세." 장자의 답이 근사하다.
"자네는 그 큰 나무가 쓸모없다고 걱정하지 말고, 그것을 ‘아무것도 없는 고을‘넓은 들판에 심어놓고 그주위를 하는 일 없이‘ 배회하기도 하고, 그 밑에서 한가로이 낮잠이나 자게 도끼에 찍힐 일도, 달리 해치는 자도 없을 걸세. 쓸모없다고 괴로워하거나 슬퍼할 것이 없지 않은가?"(53~54쪽)

개운한 대답이다! 쓸모없기론 예술만한 게 없고 모든예술(혹은 고매한 사상)은 크고 보기 좋은 나무 같아서두고 봐야지 베어 쓰려고 하면 딱히 쓸데가 없는 것이다. 장자는 쓸모없음의 큰 쓸모를 역설한다. 그의 이야기는 책장에 머무는 이야기가 아니라 책장을 뚫고 나온다. 눈감고 상상해보라. 책을 벗어나 ‘붕‘처럼 활개치며 하늘을 나는 이야기들을! 실제로 동서양의 많은예술가와 철학자들이 장자를 흠모했다고 하니, 이 이야기들은 멀리 또 높이 날아본 게 분명하다.

골드문트는 세상을 지배하는 이원적 구도에 의구심을 가진다. 소설 끝자락에서 수도원장이 된 나르치스와 속세를 관통한 늙은 예술가 골드문트는 재회한다.
수도원의 삶이 수련인 것처럼 속세의 삶 역시 수련이다.
치열히 살아온 골드문트는 혜안을 가진 노인이 된다. 좋은 노인이 되는 것, 그것은 가장 좋은 성장이다.

인간됨의 본질이 완벽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결국엔 생에 패배하여 부서질 각오가 되어 있는 것" (455쪽)이라고 생각했다.
대의보다 사랑, 승리보다 패배를 좇는 ‘똑똑한 남성‘이어디 흔한가? 촌철살인을 무기로 가진 그는 사실 너무따뜻한 칼‘이었다.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고 한 조지 오웰.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창을 두고 그와 마주앉은 기분이 든다.
투명하고 따뜻한.

모든 작가의 첫 걸음에는 그의 마지막 걸음도 묻어 있는 걸까? 프랑수아즈 사강(1935~2004)의 첫 소설 『슬픔이여 안녕』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그 생활에는 생각할 자유, 잘못 생각할 자유, 생각을 거의 하지 않을 자유, 스스로 내 삶을 선택하고 나를 나 자신으로 선택할 자유가 있었다. 나는 점토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나 자신으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점토는 틀에 들어가기를 거부한다. (64쪽)

이 짧은 소설을 앞에 두고 질문해본다. 가족을 탄생하게 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가족을 유지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족은 사랑해서 필요한 것인가, 필요해서 사랑하는 것인가? 우리는 결국 무엇으로 ‘변신할 것인가.

카페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는데, <엘리제를 위하여>가 흐른다. 피아노를 배울 때 누구나 한 번쯤연주해보던 곡, 후진하는 트럭에서 흘러나오던 곡, 어느집 초인종을 누르면 나오던 소리, 집 전화벨로 쓰이던익숙한 멜로디! 베토벤은 이 곡이 ‘일상 속 음악‘이 될 줄알았을까? 자기 음악을 이렇게 사용하는 걸 그가 좋아할까 생각해보다 깨달았다. 이게 고전이구나! 고전은 벽장에 모셔두고 기리는 작품이 아니라 일상에서 누구나 쉽게 접하고 ‘사용하는‘ 작품이구나! 오래되어 가치와 역사를 지닌 것, 사람들이 공공재처럼 사용하고 누리는 것,
예술가들에 의해 끊임없이 변주되어 재탄생하는 것이진정한 고전이다!

나를 마셔요이 짧은 문장에 매혹되고 싶어 이 책을 자주 읽는다.
이걸 마셔야 모험을 지속할 수 있다. 앨리스는 매번 시도하고 매번 달라진다. 그다음 이렇게 말한다.
어? 기분이 참 이상하네! 내 몸이 망원경처럼 줄어드나봐! 양초처럼 점점 작아져서 사그라들지도 몰라. 그럼 난어떻게 되는 거지?(19쪽)교훈 같은 건 없을지도 몰라요 (139쪽)하루 동안의 모험으로 앨리스는 자신이 어제와는 다른 사람이 된 것을 깨닫는다. 이 책은 판타지와 모험물의 고전이다. 모험의 주인공이 여자아이인 것도 이야기

"그게 뭔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거지."
"존중하는 건 또 뭐고!"
"다른 사람이 믿고 싶은 걸 믿게 두는 거지!" (41~42)

여름의 책』은 시작부터 끝까지 환하다. 슬픔은 있어도 청승은 없다. 아무것도 숨기지 않지만 무엇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다. 슬픔도 기쁨도 이야기 사이에 풀잎처럼 껴 있다. 그것을 발견하는 일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읽는 동안 자주 웃고 울었다. 할머니와 보내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역시 소피아처럼 할머니의 잃어버린 틀니를 소파 아래서 찾아준 적이 있다

사랑한다는 것은 순진함이요,
모든 순진함은 생각하지 않는 것………ㅡ 양 떼를 지키는 사람 중에서」
사랑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순진하지 않은사람이다. 생각을 멈추지 않는 사람, 이해를, 앎을, 계산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다. 화가 세잔 역시 "생각이 모든것을 망친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시의 세계에서생각은 바보들의 무기일지 모른다. 페소아의 시에는 시의 원형, 언어가 움트기 전의 에너지, 생각이 탄생하기전 감각의 형상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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