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몸 안에 있다 - 의사이자 탐험가가 들려주는 몸속에 감춰진 우리 존재와 세상에 대한 여행기
조너선 라이스먼 지음, 홍한결 옮김 / 김영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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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몸은 전체적으로 보면 복잡하게 생겼다. 둥근 머리에 대략 원통 모양의 네 팔다리, 뾰족뾰족 튀어나와 무슨 모양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뼈, 그러나 우리 몸은 간단히 둘로 나눌 수도 있다.
바깥쪽과 안쪽이다. 바깥쪽 삶은 피부 겉면에서 시작하여 외모, 대화, 공기, 자연, 타인 등 일상의 영역을 아우른다. 대부분의 사람은평생 바깥 세계에만 관심을 두고 살지만, 의학 교육은 안쪽의 삶에중점을 두게 되어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무슨 병세가 나타나면 그제야 몸속에서 일어나는 미지의 작용에 덜컥 겁을 내면서 관심을기울이곤 한다. 우리 몸속은 수술할 때나 크게 다쳤을 때가 아니면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지만, 그곳이야말로 인체의 주역이다.

나는 신체 부위 하나하나를 공부해나갔다. 구조와 기능을 세세히 암기했고, 고무 같은 느낌의 보존 처리 표본을 살펴봤고, 세포구조를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병들었을 때와 건강할 때 각 기관이어떻게 작용하는지 숙지했고, 고된 선다형 시험을 거치면서 그 상세한 스토리를 읊어내고 나면 다음 기관으로 넘어갔다. 의대 교육은 각종 장기들과의 스피드 데이트(한 장소에서 여러 이성을 돌아가면서 잠깐씩 만나보는 미팅 방식옮긴이)였으며, 나는 모든 장기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수축과 일그러짐을 반복해야 한다. 음식물이 기관에 접근하여 곧 숨을막을 것 같은 순간, 여러 근육이 연동하여 후두라고 하는 기관 상단부를 들어 올린다. 곁에서 보면 목의 울대뼈가 위로 씰룩거리는동작이다. 이때 기도의 열린 입구가 혀 밑에 밀착되면서 후두덮개가 마치 맨홀 뚜껑처럼 후두를 틀어막는다. 그러면 음식물이 기도를 안전하게 피해 식도로 넘어갈 수 있다. 음식물이 지나가고 나면후두는 다시 내려와 원위치인 목 중간쯤으로 돌아간다.

음식물을 삼키려면 5개의 뇌신경과 20여 개의 근육이 협력해야한다. 목구멍의 위험천만한 구조를 보완하려다 보니 이렇게 복잡한 기전이 됐지만, 중대한 문제의 해법치고는 너무 거추장스럽고복잡한 방식이라 탈이 나기 쉽다. 특히 먹으면서 말을 할 때는 식도와 기도를 동시에 열려고 하니 오작동이 일어나기 쉽다. 해마다질식해서 사망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도 이상하지 않다.

기침은 흡인으로 탈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한 우리 몸의 중요한기전이다. 코에 재채기가 있고 위장에 구토가 있다면, 폐에는 기침이 있어서 불필요한 이물질을 몸 밖으로 밀어내는 구실을 한다. 기침은 유아에게도 나타나는 반사작용으로, 민감한 기관과 기관지에 이물질이 닿으면 자동으로 촉발되는 반응이다.
누구나 살다 보면 흡인을 하게 되며, 기침은 우리 몸이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흡인을 해소하려는 행동이다. 건강한 사람의 경우 기침은 꽤 효과적이어서,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갔을 때 기침이 발작

완전히 타인인 내가 의사로서 할 일은, 생을 마감하는 인체의 고통과 아픔을 덜어주듯 가족 간의 갈등을 중재하고 달래는 것뿐이었다.
목구멍은 음식물과 공기를 흡입하는 곳일 뿐 아니라, 폐에서 내쉬는 공기가 후두를 통해 목소리로 바뀌는 곳이기도 하다. 목구멍을 통해 우리는 생각을 표현하고, 수잔처럼 의지가 강하고 독립적인 사람들은 소망을 피력하기도 한다. 의사로서 내가 할 일은 환자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이고, 특히 환자가 더 이상 스스로를 대변하지 못할 때는 더욱 그렇다. 삶의 마지막 시기에 병원에서 침습적의료 행위에 고통받을까 봐 두려운 사람은, 어떤 치료를 금할지를명시한 사전의료지시서에 서명해두어야 한다.

우리 몸의 구조는 자궁 속에서 배아가 생겨나면서 미시적으로형성된다. 우리는 누구나 세포로 이루어진 평평한 원반으로 태아의 삶을 시작한다. 원반은 수정 후 몇 주 만에 동그랗게 말려서 원통모양이 된다. 이 원통이 인체의 기본 얼개를 이룬다. 한쪽 끝에입구가 있고 다른 쪽 끝에 출구가 있는 관 형태다. 우리 몸은 여기서부터 성장하여 모습을 갖춰가며 구조적으로 엄청나게 복잡해진다. 그렇지만 처음의 관 모양 구조는 평생 그대로 남는다. 성장한우리 몸은 앞쪽에 음식물과 공기가 들어오는 입구가 있고 뒤쪽에출구가 모여 있는, 호화롭게 장식된 하나의 관에 지나지 않는다.

목구멍의 생김새는 이 관 모양의 구조에서 기인한다. 배아가 발달함에 따라 앞쪽에 있던 하나의 입구가 나란히 붙은 두 개의 관으로 나뉘어 각각 음식물과 공기를 맡으면서, 질식이나 흡인의 위험이 그때부터 상존하게 된다. 우리 몸은 이를 보완하고자 입구로들어오는 물질을 잘 가려내기 위한 얼굴과 뇌를 만들어내고, 삼키기·기침·구역질 등 보호 기전을 발달시킨다. 그 같은 보호 기전은거의 항상 제구실을 한다.
태어나서 첫 숨을 쉬는 순간부터 공기와 음식물은 목구멍에서정확하게 나뉘어 들어가며, 목구멍의 이 아슬아슬한 곡예는 평생동안 이어진다.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지 않게 하는 것은 우리 몸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에 속하지만, 뇌졸중이나 알츠하이머로 쇠약해진 환자의 목구멍이 더는 곡예를 지속할 수 없게 되면 몸은흡인과 함께 제 수명을 다한다. 흡인은 그런 환자의 가장 흔한 사망 원인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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