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 25년(1749) 8월 15일자에는 "임금이 홍화문의 누(樓)에 나아가 왕세자(사도세자)를 거느리고 사민(四民)에게 진휼을 시행했다"며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었다.
아! 푸른 하늘이 나에게 부탁한 것도 백성이요, 조종(祖宗, 선대 임금)께서 나에게 의탁한 것 또한 백성이다. 지금 보고(抄)한 바를 보니그 수효가 아주 많고, 문루에 나아가서 보니 마음에 더욱 측은하고 불쌍하다. (…) 다섯 걸음밖에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 억울함을 호소할길 없는 백성이 이와 같이 많은데도 백성의 부모가 되어 오늘날 처음보게 되니, 어찌 백성의 부모 된 도리라고 하겠느냐. (・・・)저 푸른 하늘이 나에게 명해 임금이 되게 한 것은 임금을 위한 것이아니고 곧 백성을 위한 것이다. (・・・) 백성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백성을구제하지 아니하면 민심은 원망할 것이요, 천명도 떠날 것이니, 비록임금이 자리에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필부에 불과할 것이다.

또 ‘조선왕조실록』 영조 33년(1757) 1월 28일자 기사에는 이렇게 전한다.
오늘 홍화문에 나아가 나의 백성들의 굶주려 누르스름한 얼굴빛과갈가리 해진 옷을 입은 몰골을 보았는데, 이로 미루어 먼 지방에서 가난해 의지할 데 없어 구렁에 뒹구는 모양을 직접 보는 듯했다. (……) 아!
우리 주자, 사도세자)는 내 말이 늙은이의 잔소리라고 하지 말고 무룻 대리(代理)함에 있어서 반드시 백성을 우선으로 삼아 내가 30년 동안 미치지 못했던 정치를 보좌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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