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본디 외지고 고립된 곳이며, 사람이많이 사는 골짜기와 달리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니고 있기 마련이다. 공기는 희박하면서도 더 맑고, 물길은 더 깨끗하다. 인간의몸과 집단 활동에서 발생하는 오물과 폐수가 모두 아래로 흐르기때문이다. 높은 산에 오른다는 것은 속세의 타락과 일상의 아귀다툼에서 벗어나는 행동일 수밖에 없다. 뇌의 더 높은 층으로 올라갈수록 육체의 원초적 ·동물적 작용에서 벗어나 고매한 정신에 가까워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에 취하는 행위를 통해서도 때로는 삶을 바라보는 나름의 관점에이를 수 있다. 히말라야의 높은 산에서 내려다보거나 뇌의 높은 층에서 바라보면, 일상의 문제는 대수롭지 않고 사소해 보인다. 그러므로 높은 곳은 사색과 명상에 더없이 적합한 장소다. 고도가 뇌를압박하는 현상도, 어쩌면 뇌라는 지상의 거처에서 마음을 해방하려는 사람에게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산속의구도자들은, 산소부족을 발판 삼아서 더 높이 떠오른‘ 상태에 이르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로리가 그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를 공개했다. 흰색 플라스틱 통에서 반들거리는 분홍색 살덩어리를 꺼냈다. 사슴의 뇌였다. 큰 오렌지 정도의 크기로, 내가 몇 년 후 의대에서 해부한 인간의 뇌가멜론 정도 크기인 것에 견주어 훨씬 작았다. 로리는 땋은 머리가주름진 뇌의 표면에 닿지 않게 주의하면서 뇌를 양손에 살포시 받쳐 들고 수강생들에게 보여주었다. 축축하고 냄새 나는 날가죽을고급스러운 가죽 원단으로 변신시키는 데 필수적인 재료가 바로
‘뇌라고 했다. 이를 ‘브레인 태닝brain tanning‘이라고 하며, 무두질공법의 하나다. 선사시대에서 미국 식민지 시대에 이를 때까지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 방법으로 부드러운 가죽을 만들어 옷을 해입었다.

게다가 피부는 똑똑하다. 태양에 꾸준히 노출되는 유일한 신체기관으로, 햇볕을 받으면 색소를 늘려서 저절로 거무스름해진다.
태양의 전리방사선에 DNA가 손상되어 돌연변이를 일으키지 않게 보호하는 작용이다. 반복적으로 마찰을 받으면 두꺼워져 굳은살을 만든다. 앞으로의 마찰에 대비해 자신을 보호하려고 갑옷을입는 것이다. 간은 프로메테우스 신화에 묘사된 것처럼 재생능력으로 유명한 기관이지만, 그런 간도 피부의 회복력과 재생능력에는 한참 못 미친다. 피부에 상처가 나면 세포가 사방에서 몰려들어결손 부분을 메우면서 저절로 아문다.

묶어주는 층도 있고, 케라틴을 생성하는 층도 있다. 표피의 맨 아래층이자 진피에 접한 층에는 줄기세포가 존재한다. 줄기세포는필요할 때마다 분열하여 피부를 재생하고 상처를 메우며, 우리가일생 동안 배출하여 집이며 자동차, 회사에 먼지로 쌓이는 죽은 세포를 대체하는 역할을 한다. 표피를 구성하는 층들이 바로 몇 년전 로리가 가죽을 긁어낼 때 주시하라고 했던 그 층들이었다.

인체의 모든 부위는 피부처럼 층으로 나뉜다. 눈의 흰자위는 네층, 동맥벽은 다섯 층, 장의 내벽은 여섯 층으로 이루어졌다. 얇은대뇌피질도 여섯 층으로 되어 있다. 계층화는 인체의 기본 구성 원리로, 복원력을 높이고 세포의 기능을 더욱 전문화하는 효과가 있다. 체내의 모든 구조물은 아무리 얇고 단순해 보일지라도 양파처럼 여러 겹으로 되어 있다.

두 가지 진단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하나는 표피가 완전히 벗겨져 몸 대부분에 진피만 남는 스티븐스-존슨증후군sjs이라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피부의 바깥층이 소실되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화상 전문 병원에서 집중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많다. 또 하나는 포도알균열상피부증후군SSSS이라는 것으로, 치명도는 훨씬 낮으며 독소로 인해 표피의 층들을 고정해주는 접착제가 손상되어 발생한다. 그 경우 독소를 일으키는 포도알균 감염을항생제 치료하기만 하면 된다.

피부는 완전히 몸의 겉에 위치한 유일한 기관이지만, 환자의 몸속 건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황달이 있으면 간질환을 짐작할 수 있다. 아랫다리의 피부가 갈색을 띠고 두꺼워지면 만성심부전일 수 있고, 극심한 경우에는 피부가 거의 나무껍질처럼딱딱해지기도 한다. 심지어 몸속에 숨은 암도 부드러운 촉감의 검은색 발진이나 눈꺼풀의 그물 무늬로 나타날 수 있다.

나는 그 모습을 거울로 삼아 내 얼굴 뒤에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내 감각과 지각 회로는 내가 씹었던 모든 음식의 느낌을 비롯해 내 인생의 거의 모든 경험을 포착해왔다. 스비드 요리는말하고 있었다. 나 역시 평생 쌓아온 경험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어떤 생물(큰 생물이든 미생물이든)의 저녁밥이 될 것이며, 내가 만지고본 모든 것은 결국 다진 간처럼 단순한 무언가로 축소될 것이라고

해부학과 생리학이라는 엄밀한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살아 있는 양이 아이슬란드의 저녁 식탁에 오르기 위해 치른 죽음은 내가앞으로 의사로서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맞서 싸우거나 마주할 죽음과 다를 게 없었다. 언젠가는 나 자신의 죽음도 똑같은 과정을거칠 것이다. 시신을 해부하면서 내 몸의 구성 요소를 배우고 내몸속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었던 것처럼, 나는 내 평생의 가장철학적인 요리를 탐구하면서 내 몸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내 몸은 음식이었다.

나는 의학 공부를 하면서 해부학에 관한 기본 지식을 넓혔을 뿐아니라, 좋은 음식을 알고 잘 요리하는 법을 알려면 동물의 해부학과 생리학을 알아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해부학과 식욕의 두 세계를 더없이 긴밀하게 묶어준 스비드 덕분에, 추상적인 음식에 얼굴을 부여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음식은 더 선명한 인격성을 띠었고, 음식에 공감하는 것과 음식을 먹는 것은 양립 불가능한행위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역겨운 것‘에 대한 내 감각도완전히 바뀌어서 식용과 비식용을 구분하는 습관이 재배열되었고, 음식에 관한 인식의 문이 깨끗해졌다.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인식의 문이 깨끗해지면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즉 무한하게 보인다"고 했지만, 그렇게 되면 음식도 있는 그대로, 즉 맛있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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