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책에서 ‘픽션은 전체적으로 볼 때 매우 도덕적이다’는문장이 인상 깊었습니다. 왜 인간은 도덕적인 이야기를 지어내고싶어 할까요? 어쩌면 인간의 도덕적 본성이 그런 충동을 일으켰을수도 있고, 이야기가 그런 도덕성을 유지시켜 관습적 패턴을 지속시켜왔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반지의 제왕』을 쓴J. R. 톨킨은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선함을 향한 구원의 질서가 우리에게 선이 승리하는 문학을 즐기게 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왜 우리는 이야기꾼의 장단에 놀아나는 걸까요? 『달과 6펜스』의 작가 서머싯 몸에 따르면 픽션 작가들이 메시지라는 가루약을스토리텔링이라는 달콤한 잼과 섞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스토리텔링의 달콤한 잼을 허겁지겁 삼키느라 가루약의 쓴맛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왜 우리는 왜곡된 기억을 갖게 된 것일까요? 심리학자제롬 부르너는 "기억은 진실 말고도 여러 주인을 섬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과거를 잘못 기억하는 이유는 삶이라는 이야기에서 주인공 자리를 지키려고 하는 본성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끔 자기기만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좀 거창하게 말하면 우리 인생은 이야기를 짓고 싶어 하는 욕구가 만들어낸 작품일지도 모릅니다. 이야기하는 자아‘, ‘서사적 자아‘라는 말이 대두된 것도 이런 배경이있기 때문입니다.
조용한 절의 선당에 승려들과 신도들이 앉아 스승 스님의 말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님은 깜짝 놀랄 말로 법문을 시작합니다. "오늘 밤에는 여러분에게 마법의 주문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놀란 눈으로 기대에 차서 스님의 다음 말을 기다렸지요. "갈등의 싹이 트려고 할 때, 누군가와 맞서게 될 때, 이 주문을 마음속으로 세 번만 반복하세요. 진심으로 세 번만 되뇐다면 여러분의 근심은 여름날 아침 풀밭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모두가 숨죽이며 기다린 주문은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였습니다. 책에서 스님의 이 말을 읽는 순간 저는 "아, 그렇지!" 하고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말은 마법의 주문이 맞습니다. 이 말은 우리를 겸손으
습니다. "옳다는 것이 결코 핵심은 아니라네." 책에서 글쓴이의 스승님이 자주 했다는 말도 가슴속으로 흘러들어왔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이 얼마나 좋은 말인지잘 압니다. 그런데 막상 화가 치솟거나 내 의견을 주장할 때 이 말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티코 스님은 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자기 생각에 의심을 품으며 조금은 거리를 두거나 덜 심각하게 접근하면 자기답게 살기가 쉬워진다는 것이지요. 그는 이것을 인간에게 부여된 초능력이라고 말합니다. 마음에서 불쑥 떠오르는 생각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만 그생각을 믿을지 말지는 선택할 수 있다는 거예요.
페니 피어스가 쓴두툼하고 묵직한 책 『인식의 도약」에서 발견한 주옥같은 문장이있습니다. "용서는 지금 이 순간을 경험하기 위해 과거의 일을 마무리하고과거로부터 오염당하는 일을 멈추는 것이다. 원한을 품는 것은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에게도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행위이다. 용서를 하면 당신은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도록 현실을 다시 그려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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