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입니다.
지역 청년 콘서트 행사장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분?"이라는 나의 질문에, 한 2000년생 대학생이 아무런 고민 없이 대담하게 위와 같이 대답했다. 예상치 못했던 대답 앞에 마주한 나는 짐짓 당황했지만 그런 대답조차 일종의 시대와 세대의 변화라는 생각을 했다.
최근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거나 지역 행사장에서 20대초반2000년대생을 만나면서 가장 크게 든 생각은 일에 대한 생각의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이들에게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주 5일 9시부터 6시까지 일하는 전통적인 직업은더 이상의 기본적인 선택지가 아닐 수 있다.

김아영도 곧 동일한 어려움에 처한다. 바로 <SNL코리아> 시즌 4부터 새롭게 등장한 윤가이 때문이다.이 새로운 신입은 헤드폰 형태의 에어팟 맥스를 항상 목에 걸고 다닌다. 에어팟을 착용했다는 이유로 선임들에게서 여러 번 지적을 받은 김아영은 역설적으로 에어팟 맥스를 낀 후배의 행동을 지적한다. 하지만 윤가이는 김아영에게 "노래를 듣는 게 아니라, 단지 패션능률 때문인데 안 되나요?"라고 되묻는다. 극 중에서 ‘너 같은 후배를 만나보라‘는 말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이 단순하게 반복되며 거울치료가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보다는 갈등의 양상과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가령, <MZ오피스>에서 주현영은 김아영에게 PPT를 빨리 달라고 재촉하고, 김아영은 다시윤가이에게 PPT를 요청한다. 여기서 윤가이는 "아~ 그거 지금안 돼요. 어제 오후에 시키신 일이라 상식적으로 지금은 완성하기가 힘듭니다. 원하시면 드릴 수는 있는데 완성도가 좀 떨어지고, 제 자료 퀄리티가 없어 보여서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애초에 선배님께서 저한테 마감 기한을 말씀해 주지 않으셨습니다만"이라며 바른말로 되받아친다. 결국 그의 행동에 김아영은
"내일 드리겠습니다"라고 채념한다.

한동안 인터넷 커뮤니티에 ‘대한민국 3대 헛소리‘라는 게시물이 떠돌았다. 첫 번째는 연인에게 하는 "사랑하니까 헤어지는 거야"라는 말이다. 두 번째는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어"라는 말이다. 마지막은? 출근하는 상사가 건네는 "좋은 아침!"이다. ‘굿모닝‘ 정도로 번역될 의례적인 인사가 어떻게 헛소리 취급을 받게됐을까? 그건 ‘회사로 출근하는 아침은 좋은 아침이 될 수 없기때문‘이다.

과거에는 노비가 될 바에는 대감집 (대기업) 노비가 되겠다거나, 관노비(공무원)가 되겠다는 말이 통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똑같은 노비일 뿐이라는 인식이 더 강하다. 왜냐하면 좋은 직장도 100세 인생의 관점에서는 잠시 거쳐가는 곳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정규직조차 조금 긴 임시직인 셈이다.
꿈을 실현하는 일터는 더 이상 없다. 강하게 소속감을 느끼는일터도 없다. 앞으로 2000년대생들에게는 그저 거래가 일어나는 곳에 불과할 수 있다. 노동력을 잠시 빌려주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이다. 평생직장이 아니기에 언제든 거래가 종료되면 다른 거래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저는 사실 월정액 직장인이에요. 사장님은 저를 잠시 구독하고 계신 거죠.

미국의 철학자이자 프린스턴 대학교 철학과의 명예 교수인해리 프랭크퍼트는 『개소리에 대하여』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서 저자는 거짓말Lie과 개소리 Bullshit의 차이를 설명한다. 그 핵심적인 차이는 바로 "진실에 대한 관심"이다.
거짓말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 하는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것이 사실인지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적어도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사실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개소리는 진실이 무엇인지에대한 일말의 관심조차 없다. 저자는 이러한 점에서 개소리가 거짓말보다 더 위험하고, 거짓말 보다 더 강력하게 진실된 사회의

‘당기세요’가 써 있더라도, 실제로 문을 밀었을 때 열릴 수 있는 것이다. ‘고정문‘이라고 써 있지만 밀거나 당기면 움직일 수도있는 것이다. 써 있는 그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경험이나, 안 되는게 되는 경험을 해보았다면, 무언가를 일단 뜻대로 해보는 게 꼭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높은 효율‘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생존 방식이기도 했다.

나는 인간처럼 생각하는 능력을 가진 컴퓨터, 인공지능에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내가 더 걱정하는 것은 컴퓨터처럼생각하는 사람이다.

흔히 곡선은 신의 것이고 직선은 인간의 것이라는 말이 있다.
순수한 자연에서는 직선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에 비유할 수 있다. 아날로그는 신호를 연속된 선으로 나타내고, 디지털은 신호를 인위적으로 나누어 나타낸다. 이를 자막에 적용시켜보자면, 우리가 영상을 볼 때 듣는 음성 대사는 아날로그 영역에 속한다. 그리고 이 대사를 자막이라는 문자로 표현하는 것은 일종의 디지털 영역에 속한다.

아날로그 신호인 음성에 비하여 디지털 신호인 자막은 상대적으로 정확하다. 아날로그 신호에 존재하는 외부의 노이즈나 대역폭 등의 방해 요소가 없고, 정확하게 규격화된 기호로 전달한다. 하지만 음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분명한 소리들 사이에서 음성 신호를 가려내고 해석해야 하며, 상대방의 목소리 톤과전후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의미까지 통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하면 될까?
...
하지만 디지털적 사고방식이 익숙한 디지털 AI 인간은 그보다더 나아간다. ‘하면 된다‘가 진취적이고 감정적이라면, 다음의 문장은 방어적이고도 이성적인 사고방식에 가깝다.

되면 한다.

여기서 라면은 한국인 모두가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범용적 음식이다. 여러 종류의 라면이 있다고 해도 레시피에는 큰 차이가 없다. 오 팀장은 별 생각 없이 습관처럼 물을 넣고 불을 올렸다. 물이 끓고 난 뒤에는 라면 봉지를 열어 면과 스프를 넣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보던 한 팀원이 그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팀장님 진라면을 그렇게 끓이시면 어떻게 해요?" 당황한 오팀장은 "아니 왜… 내가 뭘 잘못했나?"라고 물었고, 팀원은 답답해하며 대답했다. "오뚜기 진라면은 물이 끓기 전에 건더기 스프를
넣어야 한다고요. 제조사가 만든 레시피가 있는데, 왜 마음대로만드세요?"

놀랍게도 이처럼 정해진 것을 따르지 않으면 참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중대한 법이나 원칙을 어기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이들은 마치 오류가 난 기계처럼 사사건건 ‘당신이 잘못됐다‘는 메시지를 내뱉는다. 이렇게 극단적인 디지털 사고방식을 지닌 이들은 ‘사이보그형 인간‘에 가깝다.
디지털 AI 인간이 원칙과 시스템에 방점이 있다면, 극단적인디지털 사고방식을 지닌 사이보그형 인간에게는 맞음과 틀림만이 중요하다. 거기에 중간 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이보그형 인간의 등장은 우리 사회의 새로운 갈등의 씨앗을 심고있다. 모든 일에 메뉴얼이 있지도 않고, 설령 있다고 해도 그것을언제나 따르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금일 중식은 미정이야.
뭐라고? 금요일에 중국집 ‘미정‘에서 먹자고?
...?
...?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 개인과 프로필의 우선순위가 뒤바뀌는 것이다. 개인을 진실하게 그리는 프로필이 요구되는 게 아니라, 프로필에서 보이는 것처럼 존재하고 처신하는 개인이 되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는 것이다.
프로필성이란 정체성의 진실 여부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 아니라, 정체성이 형성되고 표현되는 방식과 효과에 관한 개념이다.
그래서 우리는 진짜의 프로필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진짜로 구성해서 표현하고 행위하는 ‘프로필 큐레이션‘이 필요하게 된다. 이때 한 인간의 정체성이란 이미 존재하는 본질이 밖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프로필 큐레이션에 따라 연출되어야 하는 것이된다.

기성세대는 소득과 소비를 일종의 선형적인 패턴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만약 누가 밥을 먹고 있지 않고 굶는다면 ‘가난한 아이‘이고, 호텔 식당에서 코스 요리를 먹고 있는 친구는
‘돈이 많은 아이‘라고 여기는 식이다. 하지만 어쩌면 뜻밖에도 그는 10번의 식사에서 돈을 아끼고, 그 아낀 돈으로 1번의 비싼 식사를 즐기는 아이일 수도 있다.

판교에서 중견 IT기업 대표를 지낸 70년대생 김상규 씨는근 최신 아이폰과 맥북,아이패드를 구매한 젊은 사원을 보고 여유가 있는 직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그가 그리 유복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아마 다수의 기성세대는 이러한 상황을 마주쳤을 때 합리적이지 못한 소비 습관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이러한모습은 2000년대생들에게는 특별하게 이상한 선택이 아닐 수있다. 그들이 생각하는 합리적인 소비란 모두가 일정한 선으로연결되는 선형적인 소비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곳에 집중적

이제 업계를 막론하고 일종의 공동화현상이 일어나고있다. 흔히 도심 공동화는 ‘도시의 중심부에 상주 인구가 줄어들어 텅 비게 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런 현상이 영화 산업과 같은 콘텐츠 시장뿐만 아니라 일반 소비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승자와 패자가 극명하게 갈리고 그 격차가 벌어지는 양극화 현상은 이전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적당한 수준의 성과를 내던 다수의 플레이어가 무너지지는 않았다.

도심 공동화는 도심의 텅 빈 그래프의 모습이 마치 도넛과 닮았다고 하여 ‘도넛 현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만약 지금의 ‘소비 공동화‘ 현상이 도심 공동화처럼 나름의 좌우 균형을 이루고있었다면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초합리적 소비의 결과로 그 균형은 깨졌다. 초합리적 소비가 만들어내는 것은 극소수의 승자와 절대 다수의 패자일 뿐이다. 그 결과 시장의 도넛은무너지고 있다.
공동화는 단순히 무언가가 비어 있다는 의미를 넘어, ‘마땅히있어야 할 것이 사라진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산업을 지탱하고있는 주요 플레이어들의 미래는 불투명해졌다. 국내 영화 산업에서 대다수의 영화가 손익 분기점을 중간도 넘기지 못하게 되면서 투자도 줄어들고 있다. 많은 영화의 수익이 주저앉았고, 이에 이미 수십억 원의 돈이 들어간 한국 영화 90여 편이 개봉도못하고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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