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 - 성심당의 도시, 대전이 만들어진 이유 북저널리즘 (Book Journalism) 104
주혜진 지음 / 스리체어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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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자 에드워드 렐프EdwardRelph"가 말한 것처럼 "사람은 곧 자신이 살고 있는 장소이고,
장소는 곧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비슷비슷한 자기소개 멘트인 것 같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출신지에 따른 엄연한 차이가 있다. "안녕하세요, **입니다. 저는 방배동 살아요."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부산에서 왔습니다,‘ ‘대전이 집‘이라고 얘기하는 와중에 서울 사람들은동네 이름으로 자신의 출신지를 얘기하는 섬세함을 보인다.
심지어 아파트 이름을 대는 경우도 있는데, 더 신기한 건 서울사람들은 아파트 이름만 듣고도 어느 동네인지 알아챈다는것이다. ‘대전 산다‘ 라고 하면 아무도 대전 어느 동네 사냐고묻지 않을 텐데, 왜 서울 사람은 꼭 특정 동네를 지칭하며 자신을 소개하는 걸까. 누군가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서울은 크니까. 그렇다, 서울은 크다. 그래서 그냥 서울에서 왔다고 하거나 서울 산다고 하면 부족하다. ‘서울이 다 네 집이냐?‘란 질문을 피하려면 서울 어느 동네라고 얘기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서울은 진짜 클까?

하지만 서울은 방배동으로 성북동으로 세검정으로 잘게 쪼개져야 하고 세분화돼 소개된다. 서울은 구와 동네가 각기 개성과 특성을 가진다. 종로구엔 광화문이 있고, 한옥이 지닌 감성과 골목길의 옛 정취가 있다. 심지어 탑골공원의 할아버지들과 80년대풍 상점들은 종로가 만들어 낸 레트로풍 스타일이 됐다. TV 드라마에서 한 번쯤 들어본 "예, 성북동입니다"는 부잣집 사모님의 단골 멘트였고, 성북동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어도 성북동을 저택과 외교공관, 갤러리와 연결해상상할 수 있게 했다. 대치동은 대학 입시 학원가로, 성수동은트렌디한 카페 거리로 소환된다. 이렇게 서울은 다채롭고 다양하다. 꼭 여행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소설과 영화에서, 누군가의 블로그 에세이에서, 광고의 배경으로 서울은 언제나탐험의 대상이다. 새로운 서울은 지금도 발굴 중이다.

살고 있는 동네, 도시나 지역이 식성과 억양에 배어 나오고, 그게 꼭 나를 다 설명하는 것 같다. 내가 속한곳이 허접하고 후진 것이라 취급된다면, 아니 그런 취급을 받고 있다는 걸 내가 알아챈다면 난 내가 누구인지 숨기고 싶다.
내가 떠나온 곳을, 동네를, 지역을 부정deny 하고 싶다. 부정 또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을 가진 ‘deny‘의 명사형 ‘디나이얼‘
과 ‘지방출신‘을 붙여, 두려움을 가지고 자기 정체성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지방(출신) 사람을 ‘디나이얼 지방출신‘이라부를 수 있지 않을까.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공간을 "어떤 물질이나 물체가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자리"
로 정의한다. 존재의 위치와 사건의 발생을 가정한다는 면에서 공간은 가능성을 지닌 빈자리 혹은 여지room 라 할 수 있다. 그 가능성은 움직임이다. 축구 선수가 ‘공을 패스하면서공간을 넓혀 간다‘고 말하듯이, 공간은 이동하면서, 움직임에의해 새롭게 생기고 확장된다.

공간이 움직임movement이라면, 장소는 정지pause다. 움직임 중에 정지가 일어나면 그곳은 장소가 될 수 있다. 머물지않고 스쳐 지나가면 장소가 되지 않는다. 스쳐 지나간 공간은그저 점과 점의 연결, 거리distance일 뿐 ‘장소‘로 인식되지 않는다. 움직임이 멈췄다는 면에서 이미 장소는 시간을 움켜쥔다.
멈춘 자리에서 보낸 시간이 그 공간의 목적이나 특징, 의미나가치를 만들어 낸다. 흔히 ‘장소‘를 ‘의미 혹은 가치가 담긴 공간‘으로 정의하는데, 의미와 가치를 형성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면에서, 이 말 역시 시간이 장소를 만든다는 뜻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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