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리고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지금 이게 뭐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군, 오늘 페테르와 밖으로 나가 게망을 끌어올리지 않았나 그리고 꽃게를 팔러 시내에도 갔었는데, 하나도 팔지 못하고,
페테르가 안나 페테르센에게 선물로 꽃게가 가득 든 비닐봉지하나를 넘겨준 게 다지, 그러니까 페테르가 봉지를 부두에 놔두고 왔고, 한참 후 그녀가 와서 가져갔지,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조금 지나서 안나 페테르센이 왔었지, 그 모든 일이 생생한데, 지금 내가 죽었다니이제 자네도 죽었다네 요한네스, 페테르가 말한다오늘 아침 일찍 숨을 거뒀어, 그가 말한다내가 자네의 제일 친한 친구여서 나를 이리로 보낸 거라네, 자네를 데려오라고 말이야, 그가 말한다그러면 게망은 뭐하러 걷어올렸나, 요한네스가 묻는다자네 삶과의 연결을 끊어야 하니 뭔가는 해야 했지, 페테르가말한다그런 거로군, 요한네스가 말한다그런 거라네, 페테르가 말한다

하지만 난 자네가 보이는걸 요한네스가 말한다몸을 잠시 되돌려받았어, 자네를 데려올 수 있도록, 페테르가말한다이제 고깃배를 타고 떠나자고, 그가 말한다어디로 가는데? 요한네스가 묻는다아니 자네는 아직 살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구먼, 페테르가 말한다목적지가 없나? 요한네스가 말한다없네, 우리가 가는 곳은 어떤 장소가 아니야 그래서 이름도 없지, 페테르가 말한다위험한가? 요한네스가 묻는다위험하지는 않아, 페테르가 말한다위험하다는 것도 말 아닌가, 우리가 가는 곳에는 말이란 게 없다네, 페테르가 말한다아픈가? 요한네스가 묻는다우리가 가는 곳엔 몸이란 게 없다네, 그러니 아플 것도 없지,
페테르가 말한다하지만 영혼은, 영혼은 아프지 않단 말인가?

우리가 가는 그곳에는 너도 나도 없다네, 페테르가 말한다좋은가, 그곳은? 요한네스가 묻는다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어, 하지만 거대하고 고요하고 잔잔히떨리며 빛이 나지, 환하기도 해, 하지만 이런 말은 별로 도움이안 될 걸세, 페테르가 말한다그리고 요한네스가 페테르를 바라본다, 페테르가 그의 하얗게센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미소짓고 있다. 그의 머리카락은 이제 더욱 길어져, 어깨 아래까지 내려온다, 숱이 많고 젊어진그의 머리 주위로 금빛이 어른거린다그래 페테르 자네로군, 페테르 자네야, 요한네스가 말한다그리고 페테르와 요한네스는 나란히 서쪽 만으로 내려가 고깃배에 올라탄 적도 없는데 어느새 홀연, 배안에 있다, 그리고 꼭그렇게 다시 만을 빠져나간다이제 그렇게 두리번거려서는 안 된다네 요한네스, 페테르가말한다이제 하늘만 쳐다보고 파도소리에 귀기울여야 해, 그가 말한다.
모터소리는 이제 안 들리지, 그렇지? 그가 묻는다안 들리는군, 요한네스가 말한다

리까지 나갈 엄두를 내본 적이 없었다. 비바람이 불고 파도도 높으니까 그리고 페테르의 고깃배가 파도에 휩쓸려 올라갔다 떨어지더니 그들은 더이상 페테르의 고깃배가 아닌 다른 배에 앉아바다 위에 떠 있다 그리고 하늘과 바다는 둘이 아닌 하나이고 바다와 구름과 바람이 하나이면서 모든 것, 빛과 물이 하나가 된다그리고 거기, 에르나가 눈을 반짝이며 서 있다. 그녀의 눈에서 나오는 빛 역시 다른 모든 것과 같다. 그러고 나서 페테르가 더이상보이지 않는다그래 이제 길에 접어들었네, 페테르가 말한다그리고 페테르와 그는 그 자신이면서 동시에 아니기도 하다,

모든 것이 하나이며 서로 다르고, 하나이면서 정확히 바로 그 자신이기도 하다, 저마다 다르면서 차이가 없고 모든 것이 고요하다 그리고 요한네스는 몸을 돌려 저멀리 뒤편, 저 아래 멀리, 싱네가 서 있는 모습을 본다, 사랑하는 싱네, 저 아래, 멀리 저 아래그의 사랑하는 막내딸 싱네가 서 있다, 제일 어린 마그다의 손을잡고서, 그리고 요한네스는 싱네를 바라보며 벅찬 사랑을 느낀다. 그리고 싱네 곁에는 그의 다른 자식들 모두와 손자들과 이웃들과 사랑하는 지인들과 목사가 둘러서 있다. 목사는 흙을 조금퍼올린다, 싱네의 눈에도 에르나에게서 본 것 같은 빛이 있다.

그리고 그는 모든 어둠과 저 아래서 벌어지는 모든 궂은일을 바라본다저 아래는 궂은일이 생겼구먼, 요한네스가 말한다이제 말들이 사라질 걸세, 페테르가 말한다그리고 페테르의 목소리는 몹시 단호하게 들린다그리고 싱네는 요한네스의 관 위로 목사가 흙을 던지는 것을보며 생각한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요한네스, 아버지는 독특한 분이었죠, 유별난 구석이 있었지만, 자애롭고 선한 분이었어요, 그리고 아버지의 삶이 녹록지 않았다는 걸 저도 알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늘 속을 게워내야 했죠. 하지만 아버지는 자애롭고선한 분이었어요, 싱네는 생각한다, 그리고 고개를 들자 하늘에흰 구름이 떠간다, 그리고 오늘 바다는 저리도 잔잔하고 푸르게빛나는데, 싱네는 생각한다, 요한네스, 아버지, 요한네스, 아버지

나는 오랫동안 이런 이야기를 꿈꾸어왔다. 심각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도, 위대한 인간이 등장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답고 눈부신 이야기를 누구나 경험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두 가지 주제, 바로 삶과 죽음을 ‘특별한 언어‘로 이야기한다는 것은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 작가는 이 어려운 작업을 아주 능청맞고도 사랑스럽게 해낸다.
삶과 죽음 사이에 들어찬 모든 문장에 좀처럼 마침표를 찍지 않음으로써, 문장과 문장 사이에 잠시 휴식하기 위한 쉼표만을 사용하면서, 죽음과 삶의 과정이 결국 하나의 끝나지않는 문장 속으로 들어오도록. 이 이야기 속에서 삶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은삶을 밀어내지 않는다. 오직 하나의 무지갯빛 색실로 거대한 모자이크를 완성하는 것처럼, 작가는 삶 속의 죽음, 죽음 속의 삶‘이라는 아름다운 벽화를 천의무봉의 손길로 직조해낸다. 이 이야기와 함께하는 순간, ‘이토록 가까운 삶‘과 ‘저토록 머나먼 죽음‘이 서로의 손을 붙잡고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왈츠를 추고 있는 듯하다. 정여울(작가, 문학평론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