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 내가 별이 되는 것이다. 이 순간의 삶 속에서 내가 영원을 경험하는 것, 이것이 삶의 목적이다.
우리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 내가 별이 되는 것이다. 이 순간의삶 속에서 내가 영원을 경험하는 것, 이것이 삶의 목적이다. 그런데한번 삶이 시작되면 눈앞이 온갖 목표들로 가득 채워지고 그것이목적을 넘어서게 되어 정작 목표를 지배하는 목적을 잃어버린다. 나에게 별은 무엇일까? 목적을 잃지 않게 해주는 힘이다. 내가 좋은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승진하고・・・・・……. 이것이 목적일까? 그것은 목표이다. 자유로워지는 것! 깨닫는 것! 자존감을 잃지 않는 것! 자부심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 목적이다. 윤동주 시인은 「서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 하는 거지, "모든 죽어가는 것을 가지고 별을 흔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목적을 가지고 목표를 지배하는 거지, 목표로 목적을 흔들지않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방송의 목적으로 시청률을 지배해야지 시청률로 방송의 목적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
굳어져가는 나의 반짝거림을 잃지 않기 위해 필요한 중간고리가있다. ‘반성‘이다. 어떤 가치도 지속적인 반성이 따르지 않으면 완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별똥별보다 더 짧은 순간을 사는 인간이 영원한 별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에 대한 부정, 반성, 의심이 필요하다. 왜 그럴까? 영원을 경험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영원을 경험해서 내가 영원한 존재로 등극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나의 ‘별 헤는 마음‘이다.
인간은 패배할 수 없게 태어났다. 패배하면 안 되는 존재로 태어났다. 파멸은 기능과 목표의 좌절에서 온다. 목적, 즉 별을 잃는 것을 패배라고 한다. 산티아고는 이렇게도 말한다. 파멸할지언정 패배하지 않겠다. 산티아고는 별처럼 살고자 했다. 산티아고는 혼잣말을 한다. 자네는 단지 살기 위해 그리고 먹거리로 팔기 위해 물고기를 죽였던 것은 아니잖아. 여기서 ‘자네‘는 산티아고 자신이다. 84일 만에 잡은 청새치는 산티아고에게 어부로서 자부심이었다.
별처럼・・・・・・자부심이 있는 별 같은 존재들은 무엇을 하든지 멋지다. 무엇을 하든지 당당하다. 왜냐하면 자부심으로 뭉쳐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기 때문에, 당당하고 두려움도 없다. 자부심 있는 두 별은 산티아고와 청새치이다. 산티아고와 청새치의 사투는자부심으로 가득한 두 별의 교류였으며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기능적으로 제거하려는 목표가 아니었다. 왜 그럴까? 청새치는 산티아고에게 하나의 자부심이자 자기가 별처럼 존재하는 한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어 떼가 달려들어서 자신이 죽을 수 있는상황에도 청새치를 끝까지 지켰다. 시인 윤동주도 삶의 자부심과 삶의 존엄을 늘 의식하고 있었다. 시인은 「서시」에서 그것을 노래했다. 윤동주 시인은 별을 노래하는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열망에 휩싸여 있었다. 시인은 바랐고 기대했다. 그런데 최근에 그것을 기대와 바람으로만남기지 않고 당장에 실현하고자 하는 시인이 나타났다. 정양주 시인의 별을 보러 강으로 갔다는 시다. 이팝나무 꽃을 올려다보다 은하수가 그리웠다피아골 물보라는 하늘 올려다보며 흐르고
분명한 사람에게는 작은 결정일 수 있다. ‘별처럼 산다‘고 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삶을 살면서 ‘내가 나로 빛난다‘는 뜻이다. 내가 나로 빛나면 유한한 시간 속에서 무한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할 수있는 가장 큰 힘은 ‘원하는 것‘이다. 내가 교수 생활을 하면서 가장놀랍고 슬픈 일은 청춘들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보다 더 놀랍고 슬펐던 일은 그들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에게 묻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는자기가 확인해야 한다. 원하는 것이 없는 삶은 빛날 수 없다. 원해야 한다! 나는 ‘원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가 분명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게서 ‘나에게만 있는 비린내가 약해지는 느낌을받았다. 모든 생선에는 그 생선만이 가지고 있는 비린내가 있다. 내게도 나의 비린내가 있었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그 비린내가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나‘라기보다는 ‘우리‘ 속의 한 명으로 용해되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위기라 생각했다. 내 비린내를 회복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나를 극단으로 몰고 갈 수밖에 없었다. 내게는 하나의 염원이 있다. 우리 모두가 자기 안에서 별을 경험하고 그리고 내가 별이 되는 삶을 원하자는 것이다. 이제 다른 별이빛나는 모습에 박수 치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내가 별이 되어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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