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간 속에 살 것인가
‘시간‘이라는 말은 그리스 말로 두 가지로 표현합니다. 하나는
‘크로노스‘, 인간의 시간으로서 내가 생각하고 내가 결정하는 시간을 말합니다.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로서 주님께서 뜻하시고결정하시는 시간입니다. 인간의 시간 속에 살면 언제나 불안하고 근심과 걱정에 시달립니다. 그러나 주님의 시간 속에 살면 시련과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우리의 삶이 작은 날갯짓이 되도록

이스라엘의 이름 없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이 제자들을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제자 공동체 안에서 이룬 일치와 사랑의 삶이 그 원동력이었습니다. 이는 믿지 않는 이들에게신앙을 불러일으키는 강한 힘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우리 신앙 공동체가 이루는 일치와 사랑은 나비 효과를 만들어내고 널리 퍼져나갈 것입니다.

작은 일에 달려 있다

우리는 ‘이웃사랑‘을 큰 것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나는 돈이 없어‘라거나 ‘내가 무슨 힘이 있어야지‘ 하면서 이웃을 위한 봉사나 헌신을 어려워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소유와 능력에달려 있지 않습니다. 이웃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고 가엾은 마음을 지닌다면, 어떠한 처지와 여건에서도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것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저녁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우리가 일상에서 사랑을 베풀 대상과 기회는 참으로 많습니다.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이 큰일에도 그러할 수 있습니다.

축복의 말이 하는 일

노자의 『도덕경』에는 ‘음성상화(音聲相和)‘라는 말이 나옵니다.
음(音)은 내는 소리이고 성(聲)은 듣는 소리인데, 음과 성은 서로떼어 놓을 수 없이 조화를 이룬다는 말입니다. 먼저 나에게서 나가는 소리가 온전해야 듣는 소리도 온전해집니다. 선의(善意)는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축복의 말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반대로 상대방에게 악담이나 저주를 했을 때는 그것이 그대로 자기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식단을 바꾸자

유다인들은 육신의 배고픔이 채워지면, 그것을 구원받은 것으로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의 이러한 생각을 바로잡아주시려고 하셨지만 그들은 귀를 막았습니다.
영적 배고픔과 갈증은 세상이 주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세상이 주는 양식에만 맛들이다 보면 영적 양식에 대한 입맛을잃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살을 우리에게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소화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대로 참된 인간이 되게 해주셨습니다. 주님을받아들이기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세상이 주는 달콤한 식단을끊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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