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일 주교의 숲길 단상
강우일 지음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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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숲길 탐방을 더 보람 있고 의미 있게 해주는 또 다른 선물들이 있다. 숲길을 혼자서 걸으면 잡념이 사라지고 생각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자연을 오관으로감상하는 것도 여러 가지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 좋다. 그러나 동행이 있으면 동행과 대화를 나누기에도 참 좋은 기회다. 나는 특별한 일정이 생기지 않으면 거의 매주 숲길을 걷는다. 내 나이에 외딴곳을 혼자서 걷는다고 염려하여 자주 동반해 주는 정이깊은 신부들이 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말동무도 되어주며 한주간에 있었던 일, 미디어를 통해서 알게 된 신기한 일, 감동적인일, 분노가 치미는 부조리한 일 등 세상사들을 교환하고 서로의생각을 나눌 수 있어 좋다. 또 잘 알려진 숲길은 여러 지역에서 온탐방객들이 많이 찾는다. 어떤 때는 지인을 만나기도 한다. 제주의가톨릭 신자들을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육지에서 오신 신자들, 수녀님들을 만난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이들과는 시간이 허락하면 산책 후에 함께 점심을 먹는 즐거움을 누리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2020년 11월 제주교구 교구장 직무에서 퇴임하고 교회의 모든 책임을 벗어 얼마나 홀가분한지 모른다. 사무실출근도 안 하니 마음 내킬때숲길 산책을 부담 없이 할 수 있다.
주교란 직무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교회의 사목 현장에서일하는 성직자, 수도자, 신자들이 각자의 소임을 잘 펼치도록 보살피고 감독하는 일이다. 한국에서 주교라고 번역되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에피스코포스èniokonog‘이고, 이를 현대어로 옮기면 ‘슈퍼바이저supervisor‘다. 곧 위에서 지켜보고 보살피는 일이다. 바오로 사도는 여러 지역을 끊임없이 순방하며 복음을 선포하고 한자리에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래서 바오로는 자신이 설립한 공동체에 대리를 임명하였다. 대리로 임명된 제자는 그 자리에 계속 머물며 공

이 시대는 정보 과잉의 시대라 정보의 쓰레기더미가 매일 밀려온다. 그런 쓰레기더미 가운데서 요긴한 정보를 골라내는 일은 쉽지않다. 예민한 분별력과 감수성이 필요하고 쓰레기더미를 헤치는 끈기도 필요하다. 그래서 백수지만 할 일이 많다. 숲길을 걸으며 대자연의 품에 안기는 일은 불필요한 쓰레기들과 결별하고 진리의 원천에 다가가는 식별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또 숲길을 걸으며 대자연의 풍성한 선물에 행복과 감사를 느끼기도 하지만 창조주가 당신을 닮은 존재로 우리 곁에 동행하게 하신 사람들을 만나고, 우리 사회의 그늘에서 외롭게 고통받고 있는 이들도 만나게해주시니 이 또한 내게는 큰 은총이다. 해마다 다리 힘이 조금씩줄어들고 걷는 속도도 떨어진다. 그러나 이 다리의 근육과 무릎을쓰게 해주시는 날까지 계속 걷고 싶다.

계속 독방에 있었는데 다른 일이 없으니 한 시간 운동하고, 하루 세끼 기 4천 번 넘게 혼밥을 먹고, 나머지는 책 읽고, 기도하고, 성경도 신구약을 다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한다. 매주 교도소 내 천주교 모임에 나가서 성가대 활동도 하고 레지오에 가입하여 레지오 단원도 되고 고해성사도 두 주에 한 번꼴로 보았다고 한다. 자신이 고해성사를자주 보니 다른 재소자 신자들이 처음엔 정치인이고 죄가 많아서 성사를 보겠지 하더니 나중에는 다른 이들도 차츰 성사를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수감 기간에 세 가지 결심 같은 것을 했는데, 첫째는 정직하게살자는 것, 둘째는 오늘을 살자는 것, 그리고 셋째는 사랑하자는 것이다. 이 세 가지를 지키며 살기로 결심했는데, 밖에 나오니 역시 인간인지라 어쩔 수 없이 또 여러 가지 욕심도 생기고 유혹도 생긴다고 한다. 출소 때의 결심을 잘 지켜 옛날의 지저분한 삶으로 복귀하지 않도록 기도할 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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