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의 신비주의 수피파 시인 파리드 알딘 아타르Farīd al-Dīn ‘Aṭṭār의 시 〈새들의 회의〉에는 이 이야기와 비슷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새들이 신화에 나오는 새들의 왕 시무르그를 찾으러 길을 떠나는데, 긴 여정 끝에 서른 마리의 새들이 시무르그 앞에 도착합니다. "몸집이 작은 서른 마리 새들은 깃털이 빠져 날개가 허술해지고, 지치고 병이 든 상태였습니다. 심장은 부서졌고 다리와 영혼은 망가졌지만 새들은 지성의 한계를 넘어선 곳의 어떤 형언할 수 없는 존재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 새들은 시무르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좀 더 주의 깊게 관찰하니 서른 마리의 새들이 다름 아닌 시무르그였으며, 시무르그가 곧 그 서른 마리의 새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새들은 모두 깜짝 놀라 얼이 빠졌는데, 뭐가 어떻게 된 건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중국 송나라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열 폭의 그림 십우도十牛圖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십우도에는 소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목동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소를 찾은 후에 목동은 어렵게 소를 길들여 집으로 데려가지만 마지막엔 애써 찾은 소가 온데간데없고, 그다음엔 목동마저 화폭에서 사라집니다. 어느 날 대안이라는 스님이 백장 선사를 찾아가 불교가 무엇이냐고 묻자, 백장이 대답합니다. "소를 타고 있으면서 소를 찾는 것과 같다."

철학의 목적은 머물기 위한 ‘집’이 아니라 길을 건너기 위한 ‘다리’가 되는 것임을 잊지 맙시다. 프랑스의 사상가 시몬 베유Simone Weil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고대 그리스인들로부터 다리를 물려받았지만 그 사용법을 모릅니다. 우리는 그게 집을 짓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래서 고층빌딩을 세웠고 계속해서 층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물려받은 건 길을, 벼랑을 건너가기 위해 만든 다리라는 걸 까맣게 모른 채로요. 그 다리를 통해 신에게로 갈 수 있다는 것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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