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중요하지 않은 시나리오는 쓰고 싶지 않았다. 진짜 사랑이아닌 것은 쓰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을 바라보면 그 속에 들어있는 어린아이가 보였다. 사랑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없었다. 그게 없으면 사람은 죽으니까. 그리고 이상하게도…다른 사람들을 위해 쓰고 싶어졌다. 관객과 시청자들이 원하고그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이전의 나는 나를 위해서 썼다. 그렇게 「아가씨」와 다른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고………… 그렇게해서 나는 ‘엄마’라는 사람이 되었다.
그 속에서 내가 찾은 해답은 시대적 분위기나 세상의시선으로 봤을 때 이것이 괜찮은 일인지 내가 잘 해내고있는지의 성과 여부에 대해 물을 것이 아니라, 소설을 쓰지않으면 나는 행복할 것인가에 대해 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타인의 행복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나에 대해서는 할 말이있었다. 소설을 쓰는 지난한 과정 속에서 이리저리 헤매다가한 문장이 풀릴 때, 이 문장을 만나려고 그렇게 썼다 지웠구나, 깨닫게 되는 순간, 들인 시간이나 노력과 상관없이, 가성비같은 말로는 도무지 설명이나 환산이 되지 않는 희열이머리에서 발끝으로 흘러내렸다.
그러면서 아이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도 어떤 겹이 생겨나는 걸 느꼈다. 이것을 성장이라고 부를수 있다면, 인간의 성장은 날개를 펴는 것처럼 자유로워지거나꽃이 피듯 눈부신 방식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어떤일을 통과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다른 곳에 도달하게 되는일인 것 같다. 자고 일어나면 알지 못하는 사이에 키가 자라는것처럼 어떤 길을 지나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가는 과정 속에서 성장이 일어나는 것이다.
축하할 일이고, 아이의 실패는 내가 위로할 일일 뿐이다. 아이의 성취와 실패를 나의 책임으로 내가 통제해야 할 일로생각했을 때 가장 큰 문제는 이런 것이다. 아이가 실패했을 때, 상처를 받았을 때, 아이를 품어주고 아이를 지켜주고 아이를달래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없게 된다. 아이와 나 사이를분리해야만 나는 아이가 의지할 수 있는 타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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