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리커버 특별판, 양장)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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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는 과학 기자로 발돋움하던 20대 초반,
데이비드 스타 조던David Starr Jordan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듣는다. 데이비드는 거대한 생명의 나무"의 형태를 밝혀지구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을 하는 과학자, 곧 분류학자였다. 당대 인류에게 알려진 어류 중 5분의 1을 그와 동료들이 발견했다. 1906년, 데이비드가 수년간 수집한 어류 표본 수천 종이 지진으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표본이 절단되고, 이름표가 흩어진 그날 이후 그가 이름 붙인 물고기 수천마리가 미지의 존재로 되돌아갔다. 데이비드가 이 혼돈에 반격한 방법은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는 물고기에 이름표를 꿰매붙이는 일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룰루는 그를 바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룰루가 이 분류학자를 다시 떠올린 시점은 자신에게 찾아온 혼돈에 뒤흔들리고 자기 손으로 인생을 난파시킨 뒤 그 잔해를 다시 이어 붙여보려고 시도하고 있던 때였다.
"어쩌면 데이비드는 무언가를, 끈질김에 관한 것이든, 목적에 관한 것이든, 계속 나아가는 방법에 관한 것이든 내가 알아야 할 뭔가를 찾아낸 것인지도 몰랐다...… 자기가 하는 일이 효과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전혀 없을 때에도 자신을 던지며 계속 나아가는 것은 ..… 바보의 표지가 아니라 승리자의 표시가 아닐까

1851년 뉴욕에서 태어난 데이비드는 보잘것없는 것들에 마음을 쓰는 아이였다.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의이름을 익히고, 꽃들의 이름을 알아내며, 표본을 수집하던소년은 코넬대학에서 3년 만에 학사와 석사 학위를 따낸다.
그리고 스물두 살에 당대 가장 유명한 박물학자 루이 아가시Louis Agassiz의 페니키스섬 자연사 수업에서 바닷속 물고기들을 처음으로 만난 후, 무수한 어류 수집 원정에서 낚아 올린미지의 물고기들에 이름을 붙인다. 1891년 스탠퍼드대학 초대학장이 된 데이비드는 해양 연구소를 세우고, 계속해서 혼돈과 싸우며 승승장구한다. 그러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인해 그는 30년간 쌓아온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고 만다.

사실상 룰루의 저술에서 시발점이 되었던,
1906년의 혼돈을 데이비드가 어떻게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는 전환점으로 삼았는지, 룰루는 계속 데이비드의 여정을 따라가며 그가 구축한 질서의 이면을, 숨어 있는 삶의 질서를깨달아간다. 그리고 ‘인생의 의미는 없어. 신은 없어. 너는 중요하지 않아‘라는, 그의 삶을 혼돈으로 밀어 넣었던 그림자에서 마침내 벗어나 줄곧 갈망한 것을 얻는다. 곧 혼돈을 맞닥뜨리는 방법을, 목표만 보고 달려가는 터널 시야 바깥에 훨씬 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이 삶을 계속 살아갈 희망을 얻는다.

룰루는 자신의 어릴 적 일화를 소개하는데,
그의 아버지 또한 세상의 통념과 질서 그 너머를 바라본 사람이었다. 일곱 살 룰루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 아버지는 단언했다.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너한테는 네가 아무리내세도,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어.
특별하게 느껴지더라도 너는 한 마리 개미와 전혀 다를 게없다." 그리고 광대한 시간에서 인간이 존재한 기간은 겨우
‘요만큼‘이라고 손가락을 모으며 말했다. "우리는 아마 곧 사라지게 될 거야. 그러니까 만약 지구 저 멀리서 떨어져서 본다면 ..…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거지."
데이비드가 자신을 독려하기 위해, 그 모든 일의 허망함에 짓눌려 으스러지지 않기 위해, 망해버린 사명을 계속 밀고 나아가는 일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에게 들려준 말이 무엇이었는지 나도 알고 싶었다. 누구나 살면서 그처럼 절박한 순간을 만나니까. 룰루가 진실을 찾았을 때 나는안도했다. 삶은 여전히 불확실하고 나는 때때로 길을 잃는다.
그러나 그 불확실함과 혼돈은 얼마나 큰 선물인가. 내가 곧잘 틀린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나의 질서를 흐트러뜨리고 나의 혼돈을 질서 지으시는 하느님은 얼마나 신비로운 분인가. 이 모든 것에 경이를 느끼기를. 그래서 계속 살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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