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고치기, 가구 만들기, 텃밭 가꾸기, 장작 패기, 멍멍이들 산책 시키기, 장구 치기, 바다 수영, 옷 수선하기, 책 읽기, 영화 보기, 눈 감고가만히 앉아 있기, 요가, 가끔 돈 벌러 가기…. 모든 일이 즐겁고 소중하다. 어느 하나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이 없다. 이러한 일상에서가슴이 조금 더 두근거리는 일도 있게 마련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이 내겐 바로 그런 일이다.

앞서 말했듯 지금 나는 돈을 사용한다. ‘돈을 사용하지 않는다‘라는프로젝트의 금기는 사라진 지 오래다. 돈에 대한 거부감도, 엄격한 규칙도 없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간다. 이제 내 삶의 가능성은 돈의 유무와 상관없이 무한으로 흐른다.
‘0원살이‘ 여정이 내게 가져다준 것은 돈으로부터의 자유만이 아니다. 사실 여정의 어느 순간부터 내 관심사에서 ‘돈‘이라는 화두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돈을 사용하지 않음‘은 어느새 익숙한 일상이 되었고, 마음을 쏟을 더 중요한 가치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0원살이‘ 여정은 내 삶을 물질보다 더 깊고 높은 차원으로 이끌었고, 그 속에서 나는 참으로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그냥 이렇게 다른 것 바라지 않고 숨만쉬면서 살겠다는데 돈이 없으면 그것마저 안 되는 거야? 내 삶이, 인생이, 시간이, 나의 존재가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쓰이는 것이 당연한거야? 아니, 그렇지 않다. 내 인생은 돈이 없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
나는 오직 돈을 벌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그 자체로도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돈이 없어도 살아갈 방법이 있지않을까? 돈을 벌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내 곧 아주 단순하면서도 분명한 답이 떠올랐다.
‘돈을 쓰지 않으면 되잖아!‘

돈 없이 먹고 자고우핑이 뭐지?
WWOOFWorld 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우프는 자원봉사자와 유기농 농장을 연결하는 상호 교환의 네트워크다. 자원봉사자에게는 무료 숙식과 친환경 농사법, 현지 문화 등을배울 기회를 제공하고, 호스트에게는 일손을 제공함과 동시에 전세계 여행자와 문화를 교류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친환경지구 공동체를 구축한다.‘

"인간의 가장 큰 욕망이 뭐라고 생각해요? 행복을 조건 짓는 가장강력한 욕구 말이에요."
갑자기 던진 나의 질문에 프란은 조금도 놀란 기색이 없었다. 마치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너무도 쉽고 간단하게 말했다.
"사랑받는 것" (To be loved)D

"<선행 베풀기>라는 게 있어요. 내가 당신에게 무언가를 주면, 당신은 그것을 내게 도로 되갚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상관없는 다른 사람에게 갚음으로써 대가 없는 선행을 이어가는 거죠. 이렇게 서로를 돕는 선행이 퍼져나갈 때 우리의 삶은 사랑과 가능성으로 가득 차게 될거예요."

페드로는 자신을 차에 태워주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승낙하기는커녕 오히려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을 제안했다. 간혹 페드로와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그 혼자 부리는 고집은 세상에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며 조롱했다. 그러나 페드로는 개의치 않았다. 사람들이 그의 제안을 거절하더라도 자동차가 기후 위기에 미치는 영향을 한 번은, 잠깐이라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죄책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기후 위기에 대한 책임을 각성할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도 페드로는 자신의 ‘자동차 탑승 거부‘ 운동이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큰 변화가 시작된다고. 한 사람의 강한신념은 결국 어떻게든 영향을 주게 되어 있다고 말이다.

"조금 힘들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큰 문제 없었잖아요. 자전거는몇 군데만 손보면 되겠어요. 내 생각에 당신은 지금 다른 자전거가 필요한 게 아니라 그냥 원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종종 ‘원하는 것‘을
‘필요한 것‘으로 착각하기도 해요. 다시 잘 생각해봐요. 정말 필요한것인지 말이에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원한다‘를 ‘필요하다‘로 착각하고 있었다. 더 좋은 것을 갖고 싶다는 욕망을 이런저런 핑계로 포장하고 있던 것이다. ‘필요한 것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불안감에 스스로 불가능이란 한계를 만들었고, 하마터면 소비를 저지를 뻔한 위기를 자초했다. 아저씨 덕에 소비의 유혹에 무너지지 않았고, 무소비 여정을 지속할 수 있었다.

푸는 영리한 생각도 계산도 할 줄 모르며, 무언가를 굳이 애써 노력해서 해내려고 하지도 않는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그 일을 해결하려 곰곰이 생각해보지만, 아무리 관자놀이에다 검지를 대고 "생각, 생각, 생각" 하고 중얼거려도 현명한 답을 찾아내지 못한다.

따라서 모든 ‘영리한 역할’은 토끼나 부엉이에게 맡기고 푸는 그저 즐겁고 단순한 일만을 따른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모든 일의 해답은 언제나 즐겁고 단순한 푸가 찾아낸다.
푸는 많은 일을 하지 않고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게 해낸다. 그리고 자신이 이루어낸 모든 일을 그저 ‘저절로 이루어진 일‘이라 여긴다. 푸는 세상에서 가장 노력하지 않는, 애쓰지 않는 곰이지ㆍ무슨 일이든 잘되게 하는 곰이다. 굳이 어른들의 어려운 말로 표현하자면, 곰돌이 푸의 신비한 능력은 노자의 ‘무위자연‘을 연상하게 한다. 우주 만물의 모든 일이 인위적이고 억지스러운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즉 ‘저절로 그러함‘에의해 스스로 이루어진다는 도교의 진리 말이다. 그리고 이 진리는 넵튠을 비롯한 많은 레인보우가 믿는 ‘레인보우의 절대적 진리‘와 상당히 비슷하다.

곰돌이 푸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것처럼, 나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즐겁게 보내기로 했다. 모든 일은 내가 해내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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